나의 인간애人間愛는 끊임없는 자기 극복이다. 그러나 나는 ‘고독’을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복귀, 나 자신에로의 복귀, 자유롭고 가벼웁고 쾌활한 공기 속에서 마음껏 숨쉬는 것, 바로 이것을 필요로 한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에서
‘지혜사랑’을 통하여 우리 한국인들의 백만 두뇌를 양성하고, 우리 한국인들을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 즉, ‘고급문화인’으로 육성하겠다는 나의 꿈은 2,000년 후에도, 3,000년 후에도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입식 암기교육을 철폐하고 독서중심의 글쓰기 교육을 하는 것, 모든 사상가들의 글을 다 읽고 그 독서의 힘으로 세계적인 사상가들을 배출해내겠다는 나의---- 전인류의 희망과 영광을 창출해낼---- 꿈은 어느 술주정뱅이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고독이 아닌, 영원한 추락과 그 추락 속의 고통이 필요했다. 한국문단에서도, 한국학계에서도 영원한 생매장을 당했고, 한국의 언론계에서도 한국의 출판계에서도 영원한 생매장을 당했다. 나는 현재 상가집 개만도 못한 인간이며, 그 모든 친구들과 형제들과 하급관리들에게서조차도 마치 최하천민과도 같은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 ‘영원한 추락의 기쁨’을 맛보았고, 이 추락 속의 고통이 나의 삶의 텃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공자).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으며, ‘신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방자함으로 ‘사색인의 십계명’을 창출해냈다. 나는 나의 고통을 즐겼으며, 그 고통으로 책을 읽고, 그 고통으로 산책을 하며, 그 고통으로 글을 썼다.
오오, {행복의 깊이}여,
오오, {행복의 깊이}여,
염세주의와 회의주의와 냉소주의마저도 나의 사상 속으로 끌어들이고, ‘모든 사상은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라고 그 개선나팔을 불어댈 수 있었던 기쁨은,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자기 극복의 결과이기도 했던 것이다.
영원한 추락만이 멋진 신세계가 되고, 그 생사의 운명이 걸린 혈투만이 그 고통의 열매를 수확하게 된다.
고통이 씨 뿌려지고, 고통이 자라나고, 고통의 열매가 달린다.
고통이 가벼워지고, 고통이 그 웅장한 날개를 펼치게 된다.
나는 낙천주의 창시자로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영원한 추락만이 네 자신의 길인 것을.......’
-----반경환의 {니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