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배낭을 매고 또 나선다. 오래 썼던 타거스 배낭은 낡아서 버리고 Tumi 배낭을 장만했다. 보통 수십만원인데 11만원에 샀으니 잘 산 것일까 아니면 짝퉁일까?
얼마 전에 태국에 다녀왔는데 또 갈 생각을 하다니 방랑벽이 어디 가질 않는다. 이번에는 베트남 2주 여행이다.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최근 관계가 좋지 못한데 베트남의 양아치 국민성 탓이라 베트남에 가는 것을 색안경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쌀국수부터 분짜 반미 세오 등 베트남 음식이 입맛에 잘맞고 여행비용도 적게 들며 볼거리도 제법 있어 가성비 좋은 관광지임에 틀림없다.
이번 여름엔 자주 여행을 떠난다. 최근 2년 동안 못 나갔던 해외여행에 대한 한풀이하듯. 그동안 국내여행도 꽤 다녔지만 해외여행의 느낌과는 많이 달라서인지 여행에 대한 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지는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스페인 산티아고 북쪽 순례길과 포르투갈 모로코를 엮어서 가는 여행이지만 그 근처로 가는 모든 항공료가 워낙 비싸서 그 돈을 지불하고 갈 생각이 전혀 없다. 요즘 항공편이 부족해서인지 대부분 노선의 항공료가 비싼데 베트남은 왠일인지 저렴하다. 저가항공이긴 하지만 인천- 하노이 왕복에 26만원이니 예전에 쌀 때와 비슷하다. 비엣젯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나보다. 저가항공이다보니 수하물을 부치거나 좌석을 지정한다던가 조금의 편의를 누리려면 돈을 내야한다. 저가항공을 예약하다 보면 체크할 것이 많아 시간이 걸린다.
이번에 베트남을 끝에서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간다면 호치민 인, 하노이 아웃이 좋겠지만 호치민 가는 비행편의 출발시간이 지나치게 이르던지 지나치게 늦은 것밖에 없다. 그에 반해 하노이로 들어가는 것은 오전 11시5분이라 딱 좋다. 그렇지만 북쪽에서 시작하면 여행일정을 맞추기 까다롭다. 하노이를 마지막 일정에 두어야 가봤던 사파나 하롱베이를 빼거나 넣으면서 일정을 맞출 수 있어서 남에서 북으로 가는 것으로 정했다.
하노이 도착 후 푸꾸옥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 도착하고 나서 2시간 후에 떠나는 비엣젯 항공편이 저렴한데 혹시라도 지연이 되거나 입국심사가 늦어지면 놓칠 수도 있어 불안하다. 그래서 4시간 후에 떠나는 뱀부 항공편을 예약했다. 앞에 것보다 조금 비싸다.
푸꾸옥은 베트남에서 남서쪽 끝에 있는데 우리나라 제주도같은 섬이고 떠오르는 관광지이다. 베트남의 몰디브라고 불린다. 몰디브하면 가보지 않았으나 에메랄드빛 바다와 신혼부부에게 인기있는 워터빌라가 떠오른다. 숙소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바다로 입수할 수 있는 곳. 홀로여행이지만 푸꾸옥에 워터빌라가 있으면 비용을 따지지 않고 하루 정도는 묵으려했으나 일정에 맞는 숙소를 찾지 못했다.
푸꾸옥에서 하루 정도는 섬 전체를 돌아보며 관광지를 다니고 하루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생각이다. 해변에서 떨어진 숙소가 가성비가 좋겠지만 내가 원하는 휴양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수영장 딸린 해변가 숙소가 좋을 것 같다. 그래서 3성급이고 리뷰점수가 좋은 곳을 예약했다.
어제 새 자급제 휴대폰이 배달되었다. 기존 폰도 가져가서 베트남 유심을 넣어 사용할 예정이다.
4시간 반 전에 집을 나선다. 작은 가방만 가지고 가니 공항버스 탈 필요없이 전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간다.
비엣젯 체크인에 제법 사람들이 많다. 창구가 많이 열려있고 한국인 직원들의 일처리가 빠르니 줄이 빨리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저가항공이라 탑승동으로 이동한다. 남자 2명이 셔틀을 타고 노약자석에 앉는다. 어르신카드가 나왔느니 어쩌니 하는 걸 봐서 57년생인가보다. 머리를 염색해서 나보다 어리게 봤는데 아니네. 친구 두명이 해외여행을 가나보다. 그 나이에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괜찮은 삶이다. 그런데 매너는 부족한지 사람이 꽉차고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세워 굳이 비집고 탄다.
아침을 롯데리아에서 해결한다. 햄버거 세트가 만원. 공항답다. 전에는 다이너스카드로 라운지를 이용했는데 카드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기한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지나면 연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제시간에 탑승한다. 한 열이 3+3+3으로 되어있고 이코노미석은 거의 찬 것 같다. 앞쪽은 비즈니스석은 아닌 것 같은데 많이 비어있다. 나중에 보니 디럭스석으로 되어있다. 좀더 돈을 받겠지.
중국 도발에 대비한 인천지역 군사훈련으로 인해 2시간 지연운항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런.. 중국과 전쟁이라도 하나? 지연 때문에 하노이에서 푸꾸옥 가는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4시간 후 비행기를 예약한 것은 잘한 일이다.
1시간 반 후에 출발한다. 2시간이 아니라 다행이다. 저가 항공이라 기내식이나 음료를 사먹어야 한다. 뭘 먹을지 책자를 보고 정했다. 푸드카트를 몰고 승무원이 지나가는데 사먹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배고프지 않나? 망설이는 사이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렇다면 내려서 먹어야겠네.
4시간 정도 비행 후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착륙한다. 비교적 앞쪽 자리라서 일찍 내렸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입국심사 창구마다 줄에 20여명씩 있다. 처리시간이 길지 않은데 줄이 계속 긴 것은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것인가? 맨 왼쪽 줄에 섰더니 더 왼쪽 두 창구에 사람이 없으면 우리 줄에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여 다른 줄보다 엄청 진행이 빠르다. 입국에 필요한 서류는 하나도 없다. 하다못해 입국카드를 작성하지도 않았다. 여권만 있으면 된다.
입국장을 나와서 호주 100불을 환전했다. 공항이라 아무래도 불리하니까 조금만 바꾼다. 157만동을 준다. 숫자가 커서 얼마인지 바로바로 계산이 안된다. 대충 20으로 나누면 원화 가치가 된다.
푸꾸옥은 국내선이니 국내선 청사를 찾아가야 한다. 보통 국제선 비행기에서 내리면 도메스틱이라고 안내가 있는데 여기는 없다. 여기저기에 묻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영어할만한 사람에게 물으니 밖으로 나가서 우회전하고 어쩌고 설명한다. 나가서 돌아봐도 모르겠다. 지도를 봐도 국내선이 안보인다. 택시운전사에게 물으니 길을 건너가란다. 길을 건너도 청사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헤메고 있는데 아까 물어봤던 사람이 와서 자기가 데려다주겠단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 사람이 몰고온 차를 타고 3ㅡ4분 이동한다. 걸어갈 거리는 아닌 것 같다. 국내선 청사는 국제선과 떨어져있다. 누가 이따위로 설계했냐?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으니 뭐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까 환전한 돈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올드라고 하더니 베트남 동은 안받는단다. 내가 혹시 구화폐를 받았고 시중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말이 안통하니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가만 들어보니 달러를 원하는 것 같다. 100불짜리밖에 없어서 없다고 하니 지갑을 보잔다. 자기가 돈을 꺼내서 쥐고 뭐라해서 그건 아닌 거같아 다시 뺐었다. 작은 돈이 없으니 동으로 지불한다하니 그제서야 50만동 지폐를 가져가고 또 더 내란다. 50만동이면 내가 환전한 총액의 1/3이니 3만원 정도다. 20으로 나누면 25000원. 말이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니 차에서 공항택시는 69만동이라는 종이를 보여준다. 이런 도둑놈이 있나. 시내 멀리 갈 때도 그렇게 내지는 않겠다. 잠깐 몇 분 왔는데 몇 만원을 내라니 말이 되나? 택시비 비싼 선진국도 이보다는 훨씬 적게 나오겠다. 운전사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택시비로 장난치는 놈들은 짜증난다. 큰 처벌을 가해야 한다. 그래 50만동 처먹고 떨어져라. 베트남도 질이 나쁜 인간들이 많은데 바로 걸렸네. 흥분해서 내렸는데 휴대폰을 놓고 내렸다고 알려준다. 큰일 날뻔했네. 아주 질나쁘지는 않은 녀석이네. 이런 경험도 여행의 일부겠지.
탑승권을 받고 보안수속을 거쳐 푸꾸옥 행 게이트로 이동한다. 식당에서 쌀국수와 반미를 시켰다. 각각 6만동이니 3000원이 조금 넘는다. 공항인데도 그다지 비싸지 않네.
연결통로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비행기에 탄다. 승객이 많다.
2시간 정도 후에 푸꾸옥 공항에 도착. 7시반인데 밖이 어둡다. 7시 넘으니 어두워진 것 같다. 공항이 생각보다 크다. 아까 택시비로 신경써서 여기서도 그러고 싶지 않다. 여기는 타지역에 비해 택시비가 비싼 편이란다. 합리적으로 요구한다면 오케이다. 도착층을 나서니 택시들이 서있다. 노란 아오자이 입은 여자 두명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노란 택시는 믿을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푸옹빈 하우스 간다고 하니 미터로 간단다. 오케이.
기본요금은 11300동인데 금방 3000씩 오른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7.2킬로인데 14만동 쯤 나온다고 들었으니 대충 맞는 것 같다. 숙소로 접어드니 길이 무척 좁다. 마침 반대편에서 차가 온다. 거의 벽에 붙다시피하여 지나간다. 푸옹빈 하우스는 길 마지막에 있다. 12만동이 좀 넘었는데 13만동을 주니 좋단다.
해변가라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보인다. 카운터에 사람이 없어 한참 기다렸다. 한 여자직원이 와서 체크인 수속을 하는데 일처리가 왠지 어설프다. 김태웅 이름으로 예약했냐고 묻는다. 왠 김태웅? 맨날 하는 일이 이것일텐데 이렇게밖에 못하나. 방은 좀 낡은 편이고 돈값만큼만 한다.
근처 수퍼마켓에 가서 맥주 몇개와 안주거리를 샀다. 오가는 길에 마사지샵이 많이 보인다. 태국에 비해 좀 비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