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스탄의 자이푸르를 떠나 첸나이에서 인도 님부 여정이 시작된다.
7) 일곱째 날(12/23)
● 첸나이(Chennai)
남인도의 타밀, 드라비다 계열 인종은 아리안족의 피가 섞인 북인도인보다 피부색이 짙은데. 어떤 이는 흑인같이 짙은 피부를 하고 있다.
남인도에서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북인도의 "나마스떼"와는 전혀 디른 "와라쿰"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인도의 첸나이는 독립 후 마드라스(Madras)에서 첸나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인도의 델리를 위시해서 동인도의 메인도시 캘커타는 콜카타, 서인도의 메인 도시 봄베이는 뭄바이로 각자 이름이 바뀌었다.
첸나이는 항구라는 입지조건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일찍 진출하여 무역항으로 발전했고 지금은 인구 1,400만명의 대도시가 되었다.
□ 성 토마스성당, 산토메 성당(Santhome Cathedral Basilica)
현재 남아있는 예수 12사도의 무덤은 산티아고의 야고보, 바티칸의 베드로, 그리고 첸나이의 도마무덤이 있다.
네오고딕 양식의 하얀색 성당은 16세기초 포르투갈인들이 지었다가 1893년 새로 지었고 성당 뒤편 건물 지하에 도마의 무덤이 있는데 이 건물은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방문을 앞두고 지어졌다 한다.
12사도 중 힌 명인 성 토마스의 지하묘지가 있는 건물로 신발을 벗고 입장한다.
성 토마스의 뼈의 일부를 담은 성체가 전시되어 있고 성 토마스의 모습이 누워있는 아래에 안치되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첸나이까지 머나먼 고행길 선교의 결과인지, 어쩌면 비단길을 따라 도보로 몇 년이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인도는 기독교가 3%이지만 남인도, 특히 첸나이는 기독교 비율이 타지역보다 높다고 한다.
도마는 인도까지 포교의 대상이 어떤 종교인지, 어떤 인종인지도 모르고 그 먼 길을 떠났던 것은 아닐까.
이 성당의 영문 명칭에 들어 있는 Cathedral은 대성당을 뜻하는데 이 성당의 규모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나 도마의 순교지에 있는 성당이라 이 명칭이 붙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해안 백사장 길이 14km의 마리나비치를 잠시 거닐며 코코넛 열매를 칼로 쳐서 주스를 마셔보고 첸나이박물관을 방문한다.
역사와 종교가 다양한 만큼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유물이 다양한데 유물의 각 종교별 특색을 거론하기는 지식이 얕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마말라푸람(Mamallapuram) 혹은 마하발리푸람은 해안 힌두사원으로
8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7개 사원중 태풍과 쓰나미로 파괴되고 1개소만 남아서 비슈누 조각상과 시바신 조각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명목을 유지하고 있디.
□ 크리쉬나 만다팜
석굴사원으로 여러 기둥 뒤로 석면에 크리쉬나신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 아르주나 고행상
길이 27m 높이 9m의 대형 부조벽으로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주신인 아르주나의 고행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적인 모습의 코끼리나 신화의 조각이 생생하다.
□ 크리쉬나 버터볼
커다란 바위가 흔들바위처럼 위태해 보이면서도 꼿꼿이 서있어 눈길을 끈다.
□ Five 라타스(Panchi Rathas)
5대의 전차를 끌고 가는 듯한 형상으로 화강암을 깎아 만든 7세기의 사원이다.
폰디체리로 이동한다.
인도의 지방도시간 도로사정은 양호한 편은 아니어서 시골길을 가는 듯 한데 시속 40~60km를 기록하고 있다.
산토메 성당 내부
이 아래 12사도의 막내 도마가 안치되어 있다
도마의 유골이 성채 안에 보관되어 있다
해변에서 마셨던 코코넛 주스를 따는 여인
첸나이 박물관의 인도문자, 산스크리트인지 힌디어인지
마말라푸람
크리쉬나 만다팜
아르주나 고행상
크리쉬나 버터볼
Five 라타스
8) 여덟째 날(12/24)
● 폰디체리(Pondicherry)
□ 오로빌(Auroville)
인도의 명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영적 공동체마을이다. 그는 독립운동가로도 활약하다가 명상과 요가를 통한 영적 수련을 추구하는 오로빈도 아슈람을 운영하다가 프랑스 여자 미라 알파사가 추종 및 협력자로 나서면서 그의 사후 1968년 폰디체리에 공동체마을을 만들었다.
이곳은 종교와 관계없이 세계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수행을 통한 공동체생활을 하고 신성한 영적 체험과 평화를 추구한다.
높이 30m의 공모양으로 생긴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는 명상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원에는 큰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에 다시 줄기가 땅으로 연결된 반얀트리가 특이한 모습으로 서있다.
□ 프랑스 마을
영국령 인도시절에 프랑스령으로 있던 곳으로 지금도 인도정부가 프랑스인에게 집단거주를 허용해 프랑스 마을과 프랑스인들이 살고 있고 불어가 통용되고 있다.
French 마을에 있는 오로빈도 기념관은 휴일을 맞아 인파로 붐비고 서재에 들어갈 때쯤에는 입장객이 넘쳐나서 입장이 차단되는 바람에 입장을 포기했다.
단풍도 없는 땅에 우리나라의 단풍철처럼 어디나 번잡하고 인파로 넘쳐난다.
프렌치마을을 지나 바닷가로 나오니 거기에도 수많은 인파가 백사장을 뒤덮고 있다.
휴일이긴 하지만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다 나왔을까.
길에 소는 많이 줄었으나 더운 날씨에 지친 개들이 길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해변의 MG(마하트마 간디) Road의 간디 동상을 뒤로 하고 탄자부르로 이동하는 길에는 큰 억새가 풍성하게 피었다.
오로빌의 코끼리 박제. 인도인들은 코끼리를 신성시한다
오로빌에 핀 연꽃.
인도의 국화는 연꽃이다
오로빌의 명상센터 마트리만디르
특이한 줄기 모양의 반얀트리
어디에나 넘치는 인파
탄자부르로 가는 길에 억새가 피었다
9) 아홉째 날(12/25)
● 틴자부르(Thanjavur)와 마두라이(Madurai)
□ 탄자부르의 브리하디스와라 (Brihadeeswara) 힌두사원,
인도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에 속하는 대표적인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시바신 사원으로 리사라자 1세를 위해 촐라제국에 의해 1,010년에 세워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4각의 사원탑은 높이가 64m에 달한다.
석조 건축물은 내구성이 길어서 기원전에 세워진 것도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여 21세기의 후손이 역사의 유물을 친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마두라이로 이동하여 나약궁전을 찾았다
□나약궁전(Thirumalai Nayakkar Palace)
화강암으로 지어진 인도-사라센 양식의 궁전으로 원래 규모의 1/4 정도로 파괴되었는데 연휴로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 복윈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번잡하다.
□ 미낙쉬 암만 사원(Meenakshi Amman Temple)
미낙쉬의 남편 순다레스와라와 미낙쉬를 모신 미낙쉬 암만 힌두사원은 17세기 후기 나약왕조에 의해 드라비다양식으로 건축한 인도 최대의 사원에 속한다.
마두라이의 공주 미낙쉬와 순다레스와라의 모습으로 나타나 미낙쉬와 결혼한 시바신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지금도 밤에 순다레스와라의 신전에서 가마가 와서 미낙쉬의 신전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돌아가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왕들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원을 크게 짓곤 했다.
다른 지역의 힌두사원은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정도의 제한이 있으나 미낙쉬사윈은 신발 벗기, 핸드폰, 카메라, 오디오 수신기 맡기기에 더하여 남녀별로 촉수검사까지 거쳐 입장하여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사원 내부는 넓고 다른 힌두교 사원과 달리 채색 장식이 다양하다.
가장. 높은 것은 51m에 달하는 14개의 크고 높은 탑문(고프람)이 3만 5천 위에 달하는 힌두교 신과 악마의 조각이 이 높은 탑문 전체에 경이롭고 섬세하게 새겨져 눈길을 끄는데 사원 외부 전망대에서 보면 높이 솟은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사원박물관에는 985개의 기둥과 시바신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버스에서 본 탄자부르 시장
탄자부르의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정교한 조각의 브리하디스와라
탄자부르의 인도 소녀
마두라이 나약 궁전
나약 궁전
미낙쉬 사원 탑문
미낙쉬 사원 고프람
석양의 미낙쉬 사원
미낙쉬 사원 탑문의 스카이라인
10) 열째 날(12/26),
● 고산마을 문나르(Munnar), 케랄라 주
남인도 동쪽의 타밀 나두주에서 서쪽의 케랄라주로 서고츠산맥을 넘어간다.
문나르는 인도의 휴양지로서 영국식민지 당시 휴양지로 개발되고 1,500m 고지에는 차밭이 많다.
이곳은 36가지의 향신료와 차를 생산하면서 비단길을 Silk Road라 하듯이 아라비아해쪽의 무역항 코친과 더불어 향신료길, Spice Road라는 명칭을 탄생케 했다.
문나르로 넘어오는 도로는 우리나라 편도 1차로도로보다는 좁은데, 중앙선이 없는 가파른 편도 1차로여서 신경이 쓰인다.
때로 한 번에 선회를 못 하 는 커브길도 있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저 아래 산들은 연무에 휩싸여 있다.
타밀 나두주에서 케랄라주로 넘어오는 주경계선에서는 통행세를 징수한다.
고갯길 간이 휴게소에서는 인도차 수제 짜이를 마서본다.
호텔에서 마시는 짜이보다 맛이 깊고 부드럽다.
차도 옆에는 원숭이 가족이 마실을 나왔고 1차로 산길에 힌두교의 신인 소가 유유자적 양보를 모르고 걸어가고 있다.
고도 1,713m를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드는데 차는 엔진 브레이크를 쓰며 내려간다.
1,600m 고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수원이 어디쯤일까.
1,500m 고도에 널려진 차밭에는 연녹색 찻잎이 야들야들 솟아있다.
영국의 유명한 차 Lipton은 인도산 차를 원료로 한다고 한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 차밭길을 산책해본다.
숙소인 Tea County Minnar도 고도 1,500m에 위치해 있어 20° 정도의 선선한 기온을 보이고 있다.
비슷한 고도에 있는 문나르 재래시장에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주택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을에는 붉은색 공산당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인도 공산당은 정식 정당으로서 러시아식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마두라이에서 문나르로 넘어가는 산길에는 연무가
수제차 짜이를 만드는 장면
마실 니온 원숭이 가족이 차옆에
찻길을 막고 유유자적하는 인도소
1,600m 고지에는 폭포가
차밭을 품은 문나르의 산지
가지런한 차밭
연두색의 야들야들한 찻잎
공산당기를 게양하고 있는 마을
11) 열하루째 날((12/27)
□동방의 베니스라는 별칭이 있는 알레피(Alleppey, Alappuzha)에서 보트를 타고 수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본다.
바다와 연결된 내륙수로(backwater)는 호수같이 잔잔한데 부레옥잠이 수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이를 헤치며 보트는 미끄러져 가는데 물가에는 야자수가 평화롭게 오수를 즐기고 있고 군데군데 중국식 투망이 공중에서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 때 전해진 어업기술이 아직 전승되고 있다.
□ 코친(Kochi, Cochin)
포르투갈,(1502), 네덜란드(1603), 영국(1795~1957)이 지배했던 무역항으로 향신료 선적이 많았던 Spice Road의 주요 항구다.
16세기 이후 유럽의 지배로 인구 350만의 코친은 힌두교도보다 기독교인이 더 많은 지역이다.
□ 마탄체리궁전(Mattancherry Palace, Dutch Palace)
1557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지어준 힌두사원, 1663년에 네덜란드가 새로 지어주어서 Dutch Palace라고도 한다.
초칭기 인도로 들어온 유럽인들은 현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원을 지어주는 등 회유책을 썼던 듯이 보인다.
인도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성 프란시스 교회 주위로 유럽식 주택이 보이고 있다.
1498년 인도양을 건너 인도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의 유해는 이곳 코친 성 프란시스교회에 묻혔다가 포르투갈로 이장되었다.
16~17세기 대항해시대에 유럽 각국은 대양을 건너 식민지를 개척했다.
대항해시대를 뜻하는 영어표기는 Age of Discovery로, 새 땅을 발견하는 시대임을 나타내고 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뛰어든 이 경쟁에서 포르투갈은 인도를 발견하고 더욱 동진하이 마카오를 식민지화하고 타이완에 싱륙했으며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을 식민지화했다.
이때 이들은 아시아의 지도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중 일부를 포르투갈 리스본항에서 볼 수 있다.
리스본항 해안가 광장 바닥에는 타일로 1541년의 조선과 일본지도가 있다.
1541년이면 조선 중종때인데 조정이 사화로 몸살을 앓고 국력이 내부로 소진되고 있을 때 포르투갈은 아시아를 탐색하고 일본에 조총을 전해주었다.
해변가에는 해가 저물어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라비아해의 노을을 보고 있다.
16~17세기 대항해시대 범선들이 누비던 저 바다는 변함 없는데 붉은 저녁놀을 배경으로 갈매기가 날개짓을 하고 있고 중국식 투망이 공중에 떠있다.
알레피 내륙수로 측면에는 부레옥잠이 뒤덮고 있다
부레옥잠을 미끄러져 가는 보트
내륙수로의 힌가한 야자수
내륙수로를 따라 설치된 중국식 투망
코친항의 중국식 투망이 석양에 매달려 있다
노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는 해에 갈매기 한 마리
포르투갈 리스본항 광장바닥에 있는 1541년 지도
조선이 사화로 몸살을 앓을 때 포르투갈은 아시아를 탐색하고 일본에 조총을 전해주었다.
12) 열이틀째 날(12/28)
델리로 이동하여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 델리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의 기술적인 문제로 갑자기 탑승 전날밤 결항통보를 받아 대체비행기 투입도 없는 상황에서 항공사를 바꿔 긴급예약을 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하였다.
가이드의 여행사가 동원되고 비상작업을 하여 이륙시간이 다른 2대의 비행기로 분승하게 되었고 두번 째 비행기는 벵갈루루공항을 통하여 환승까지 하게 되었다.
느긋하게 9시 비행기 탑승계획이 새벽 3시에 호텔을 나서는 상황이 되었고 후반부팀은 6시에 호텔을 나서게 되었다.
잠도 설치고 우여곡절 끝에 귀국비행기에 탑승하고서야 긴 하루를 잊기로 한다.
● 델리
델리(Delhi)는 심장이라는 뜻이라 한다.
델리 바로 아래 행정수도 뉴델리가 있고 델리는 대도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 간디 화장터 라즈갯(Rajghat)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1947년 8월 15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난 5개월 후 무슬림과 힌두교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와중에서 같은 힌두교도 과격파에게 총격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비폭력 저항이 최선의 방법이었느냐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아마도 그로서는 비폭력이 최선의 길이었음을 믿었을 것이다.
간디는 화장후 유골이 수십 개의 유골함에 나누어져 인도 각지의 기념관에 보내어졌는데 그 중 일부는 사후 60년 유족에 의해 인도양, 아라비아해, 벵갈만이 만나는 인도 남단에 뿌려졌다.
간디화장터 출입구를 나오니 문기둥에 조그만 푯말이 붙어있다.
힌디어 번역을 적용해보니 "깨끗한 인도, 청결을 향한 한 걸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로 번역된다.
간디가 쓰던 모양의 빈 안경그림에는 "깨끗한 인도"가 새겨져 있다.
비폭력 불복종 저항으로 인도의 독립을 쟁취한 간디, 그의 안경 너머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깨끗한 인도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만 같다.
□ 인도문(India Gate)
1차 세계대전 전사자 9만여명의 이름을 새긴 높이 42m의 대형 기념문.
파리의 개선문과 분위기가 닮은 면이 있다..
영국은 인도의 독립을 회유하며 많은 인도인을 영어 이름을 지어 전쟁에 참전시키고 전사자를 내었다.
인도문 뒤쪽에는 인도의 또 다른 영웅의 동상이 서있다.
수바스 찬드라 보스,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인도 임시정부 수반겸 국민군 최고사령관을 지냈고 인도 독립 2년전에 48세로 세상을 떴다.
간디 화장터 입구 기둥의 푯말
푯말 힌디어를 번역한 내용
마히트마 간디 동상
간디의 화장터
인도 독립운동가 수바스 찬드라 보스 동상
남인도 여행후기를 마치며 떠오르는 단상을 추가하면서 후기를 마감한다.
인도는 1,000년전의 세상과 첨단의 IT신업이 공존하고 지역별로 인종, 언어, 문자가 다양한 14억명의 인구가 사는, 한 마디로 그 정형의 특징을 단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국가이다.
31개 주, 헌법이 인정한 19개 언어와 29개 문자가 있는 나라.
문맹률이 30%에 달하고 선거에서 후보자의 이름과 정당의 심벌마크를 같이 표시하여 문맹자가 그림을 보고 투표할 수 있게 하는 나라.
영국이 남겨놓은 유산으로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와 토속어가 있는데 토속어는 북부의 힌디어와 남부의 타밀어를 비롯한 드라비다계 언어가 양분되어 95%를 차지하지만 언어가 122가지에 이르는 나라.
인도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던 카스트(Caste)는 헌법에 "종교, 인종, 카스트, 성별, 출생지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로 명문화되어 누구에게나 기회는 균등한 사회가 되었다.
카스트제도의 최하층 수드리보다 더 낮은 20%의 불가촉 천민(달리트, Untouchables)도 이제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다.
무료에 가까운 대학등록금의 나라.
그리하여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인도출신 기업가, 정치인이 많은 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나라.
인도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구글 CEO가 된 순다르 피차이,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마이크로스프트 CEO가 된 사티아 나델라, 인도인 모계로 미국태생인 카멀라 해리스 현미국 부통령, 최초의 유색인 영국 수상인 영국태생의 인도인, 1980년생 리시 수낙, 동남아 각국의 기업가, 실리콘 밸리의 직원 30%에 달하는 IT 강국 인도.
이전 다니던 회사의 컴퓨터 통신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전세계 어디에서나 회사 네트워크로 인도에서 원격으로 시스템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지방도시의 도로는 번잡하고 포장상태는 불량하며 삼륜차 오토 릭샤의 엔진소리와 배기소음과 인파, 자동차 경적소리로 넘쳐나는 도시거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도시간 이동도 평균 5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고 도로 인프라가 부족하여 시속 40km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도로 인프라가 꾸준히 개선되면 교통여건도 나아지리라 예상한다.
여행의 시작은 인도라는 표현을 긍정하고 싶다.
한 번의 여행으로 40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도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은 지극히 일부일 수 밖에 없다는 차원에서 다시 인도를 찾을 그날을 위해 지금은 그 시작의 발걸음을 떼는 때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13일간의 인도여행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겹의 인도문화 중 한 겹을 벗겨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 인도 태생의 다음과 같은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도인이지만 인도에 외국인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인도인화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근년에 발견된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캠베이만의 해저 30~40n 도시유적은 7,500년전으로 추정되어 인류 도시문명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여전히 모든 것이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인도, 그 안개속 같은 피안의 세계가 안개가 한 겹씩 걷혀 차츰 맑게 보일 날을 예비해 두고자 한다.
첫댓글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한 여행길 추억했습니다. 다소 힘든 여정에 피곤하실텐데도 조용조용 즐거움을 주시며 다니시더니 순간순간을 모두 담아와 이렇게 후기 남겨주셔 감사합니다.
인류가 창조해낸 문화유적을 탐방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남겨두려 합니다.
기록의 대장정~ 인도여행길을 알뜰하게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조각품들도, 예술적 건축들도, 기록되지 않았다면~
새겨지지 않았다면 모를 것을, 문항님의 후기를 통해 잘 봅니다.
저 붉은 노을은 인도답다고 해야할까요?
색채 기가막히는 아름다움으로 멋집니다.
차밭, 부레옥잠, 말같은 소, 연꽃 반얀트리~~~
성당, 종교의 나라인 인도의 색깔도 스윽~
참으로 귀하게 즐감합니다.
늘 건행하시고 새 해도 하시는 일마다 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인도의 죵교는 종교라기보다 문화인 듯한 느낌의 정형을 찾을 수 있으려면 또 타른 탐방을 예비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대의 역사와 다양한 종교가 서로 어우러져 사는 인도
시바신,비슈누신,크리쉬나신...많은 신들의 이름이 헷갈려요^^ㅎ.ㅎ.
인도인들의 종교적인 근원을 엿볼 수 있는 사원에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상들을 보며 놀라움이...
인도인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미인들이 많지요.
짧지 않은 인도여행에
후기 마무리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인도식 지명도 직접 글로 써보지 않았다면 외우지도 못 했을 것 같습니다.
친구 하나는 20년전 현대자동차 첸나이공장에 출장 갔다 카레를 많이 먹어 뒷줄이 타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그들의 조각은 섬세하고 정교하고~
힌두사원에 많이 나온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표정을 담을 수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인도와 그리스조각을 기술적 지리학이라는 어려운 표현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신비한 문화의 세계, 탐방을 미룰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인도 문화를 새롭게 공부 하듯
찬근 차근 올려 주신 후기 감사 합니다
외벽의 조각 신의 경지 인것 같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도...그리고 신앙심으로 만들어진
인도의 조각은
놀랍습니다
문항님 저는 아직 인도를 안가보았습니다
내년에는 꼭 다녀 오겠습니다
문항님게서 올려 주신 인도후기는 예습입니다
감사 합니다
미지의 세계 인도, 신비의 세계 인도, 여행자의 세계 인도, 역사의 나라 인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도주의자가 인도받아 갈 수 있는 곳 인도, 시장길은 인도와 차도의 구별이 없는 인도, ㅎㅎ
저도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인도입니다.
11) 열하루째 날 하단에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사원을 돌면서 거기가 거기 같고 문화에 문외한인 제게는
살짝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상세한 후기 덕분에 인도문화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자료도 찾고 책도 뒤적이며
공부하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2팀이어 마지막 델리여행 참여 못했던 곳까지 함께한 듯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문항님 ~~
여행기간 만큼 쉬어야 몸이 제자리로 돌아 온듯해서 후기 읽고 컨닝하고 사진도 이제 정리 좀 했네요^^
꽤나 힘들고 고단했지만 사진속에서 잘 갔다 왔구나 ~~ㅋㅋ
전 이젠 오지는 마음은 있지만 힘들듯 하네요^^
그 긴 후기쓰느라 수고하셨어요 ㅎ
여행 막바지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몇 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휴식은 인간에게 회복하는 능력을 주어 때로는 힘든 과정을 모험해보는 것도 같습니다.
라자스탄 후기를 쓰고 남인도 후기를 써야 하는데 이 일 저 일 눈앞의 일들로 또 시간이 지나고 후기는 끝내지 못해 신경이 쓰이고~
그냥 무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잘 회복하시고 새해 새 힘으로 거듭나는 낙랑님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