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의 시대 2부, 어둠에서 빛으로 - 베토벤
✺ KBS1 <예썰의 전당> [20회] 어둠에서 빛으로 - 베토벤. 2022년 09월 25일 방송 다시보기
✵ ‘예썰의 전당’ 스무 번째 주제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음악가 베토벤.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퍼져가던 19세기 초 유럽.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베토벤의 작품은 ‘혁명의 시대’를 사로잡았다. 과연 그의 작품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 예썰 하나, ‘영웅 교향곡’에는 ‘영웅’이 없다? 34살의 청년 베토벤이 꿈꾼 ‘영웅’ 유럽 전역에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번져가던 19세기 초. 34살의 청년 베토벤은 당시 영웅처럼 등장한 ‘혁명가’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세 번째 교향곡을 작곡해 헌정하려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평등한 세상을 이뤄 줄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하며 직접 ‘황제’가 되었다. 분노한 베토벤은 악보에서 나폴레옹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베토벤은 그 자리에 ‘영웅’이라는 제목을 붙여 자신이 꿈꾸던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선보였다는데. 베토벤이 음악으로 그려낸 ‘영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워진 나폴레옹의 이름
그 자리를 대신한 '영웅'
베토벤이 꿈꿨던 영웅은?
영웅의 투쟁과 고난을 표현
울음 소리와 흡사한 악기, 베토벤이 슬픔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던 오보에
계몽주의(啓蒙主義, Enlightenment) -불을 밝혀서 계몽한다는 의미
✵ 예썰 둘, 음악의 도시 빈을 제압하다! 베토벤의 파격적인 ‘음악 혁명’ 파격적인 작품으로 ‘음악 혁명’을 이끈 베토벤. 그의 혁명은 ‘음악의 도시’라 불렸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했다.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서 곳곳에서 명성을 떨쳤고, 그의 격렬하고 과격한 연주에 빈의 청중들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적 혁명은 단순히 혁신적인 연주 스타일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데. 과연 베토벤은 어떤 ‘음악 혁명’을 이뤄낸 걸까.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저항의식은 간처럼 새롭게 돋아나곤 했다.
그는 억압과 불의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 휴머니즘의 등불이 되었다.
빈 소년합창단(Wiener Sangerknaben), 막시밀리안 1세의 칙령으로 1498년 창단된 오스트리아 합창단.
처음에는 궁정교회에 봉사하던 성가대로 출발했다. 5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이 합창단에는 하이든·슈베르트·클레멘스·크라우스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소년시절에 속해 있기도 했고, 특히 모차르트는 이 유서 깊은 합창단을 위해 합창곡을 작곡해주었다. 1918년 독일 사회민주혁명으로 한때 활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 예썰 셋, 혁명의 끝에서 탄생한 불후의 걸작! ‘환희의 송가’ 속 베토벤의 숨은 메시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유럽 사회는 빈 회의를 통해 왕정복고했다.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던 사회는 점차 보수적으로 변하며 사람들은 과격한 베토벤의 음악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악재가 점점 더 겹쳐가는 상황. 심지어 베토벤의 건강과 거의 들리지 않던 청력 상태마저 악화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결코 음악적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불후의 걸작 ‘합창 교향곡’을 완성했다. ‘합창 교향곡’의 하이라이트인 ‘환희의 송가’에는 베토벤이 어둠 속에서 꿈꾸던 세상의 모습과 화합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담겨있다는데. 그는 과연 어떤 세상을 꿈꿨던 걸까.
단결의 이상과 모든 인류의 우애를 찬양하는 내용
-독일 시인 실러의 시를 가사로 사용
● 하이든이 영국 여행에 1회 공연 수익이 궁정악단 평생 연봉의 20배
베토벤이 요양을 위해 찾은 시골 마을에서
이것으로 너희들과 이별이다.
이를 데 없이 슬프다.
지금까지 품고 있던 한 가닥의 희망
어느 정도는 회복하리라는 희망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절망의 심연으로 굴러 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예술, 오직 예술뿐이다.
베토벤의 메시지, 합창 교향곡
신성한 그대의 힘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 시키는구나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op.106 "함머클라비어"
"베토벤의 음악은 보편적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
― 다니엘 바렌보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과도기의 주요인물이다. 베토벤(Beethoven) 자체는 네덜란드에서 온 성이다. 사탕무를 뜻하는 beet와 과거 영주들이 농부 등에게 할당한 소규모 토지를 뜻하는 단어 hove의 변형 hoven이 결합한 형태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음악세계는 하이든·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전통에 입각했고, 문학계의 동시대 작가 괴테와 실러의 작품에 표현된 새로운 시대정신을 포괄했으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열정적으로 부르짖던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좇았다. 베토벤은 이전의 어떤 작곡가들보다도 생생하게 삶의 철학을 대사 없는 음악으로만 표현해 음악의 위력을 드러냈다. 베토벤의 몇몇 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자신은 낭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를 따르는 여러 낭만주의자들의 작품들에 대해 사고의 원천이 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이 따르게 된 특질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설명적 음악인 표제음악에 대한 베토벤의 이상에 있었다. 베토벤은 교향곡 6번 〈전원 Pastorale〉과 연관해 표제음악을 "회화적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표출"이라고 정의했다. 음악 형식에서도 위대한 혁신가였던 베토벤은 소나타·교향곡·협주곡·현악4중주 등의 영역을 확대했고, 교향곡 9번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성악과 기악을 한데 결합시켰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개인적 삶은 병든 귀에 대한 영웅적인 투쟁으로 점철되었고, 중요작품들 중 일부는 그가 완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마지막 10년간 작곡된 것이었다. 궁정과 교회의 후원이 사라진 때에 살았던 베토벤은 악보 출판과 작곡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내적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 최초의 직업적인 음악가였다.
베토벤의 유년시절
* 베토벤의 업적. 그의 가장 커다란 업적은 성악음악에 대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 기악음악을 최고의 위치로 부상시킨 데 있다.
비(非)모방예술인 음악은 18세기에 모방예술인 문학이나 회화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음악 중에서 칸타타·오페라·오라토리오와 같은 장르는 가사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소나타나 모음곡 등과 같이 순전히 기악으로만 된 음악 장르들은 낮은 위치에 머물렀다. 이러한 생각에 차츰 변화를 일으킨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만하임 악파 관현악단의 부상으로 기악이 위용을 떨쳐 교향곡이 발전할 수 있었고, 느낌을 선호하고 순수이성에 반기를 든 작가들의 노력도 한몫을 했으며, 하이든·모차르트와 더불어 베토벤의 활동이 크게 기여했다.
이로써 영국의 수필가이자 비평가였던 월터 페이터가 말한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열망한다"라는 낭만주의 후기의 유명한 구절이 나타나게 되었다.
베토벤 이후에는 이제 더 이상 음악을 '귀에 듣기 좋은 소리 예술' 정도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그의 기악 작품들은 느낌의 강렬한 강도와 이제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완벽한 구성을 결합시켰다. 그는 오페라와 노래를 제외하고 기존의 음악 형식들, 특히 교향곡과 현악 4중주를 발전의 정점으로 올려놓았으며, 이것은 이전의 선배 작곡가들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오페라와 협주곡에 경도된 모차르트보다는 하이든에 더 가까웠다.
베토벤의 젊은 시절
* 작품활동. 처음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세 시기로 나눈 사람은 베토벤 전기작가 빌헬름 폰 렌츠인데, 그는 제1기를 본의 습작시기를 제외한 1794년 피아노·바이올린·첼로를 위한 3개의 3중주 작품1부터 시작해 교향곡 1번과 6중주곡을 처음 공개 연주한 1800년 전후로 잡았다.
제2기는 피아노 소나타 C#단조 〈월광〉을 작곡한 1801년부터 피아노 소나타 E단조 작품90을 작곡한 1814년까지로 잡았으며, 제3기는 1814년부터 세상을 떠난 1827년까지로 잡았다. 이러한 그의 구분은 유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엄격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한 작품의 작곡이, 렌츠가 분류한 어느 한 시기에 시작했더라도 다른 시기에 완성된 경우가 많았으며, 따라서 피아노 협주곡 3번이나 교향곡 2번과 같은 곡들은 제1기와 제2기에 모두 걸쳐 있는 셈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성숙기는 어떤 악기로 작곡을 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그중 피아노는 그에게 가장 친숙한 악기로 작곡의 근간이 되었다. 1800년 이전에 작곡된 그의 피아노 소나타들에는 이미 제2기의 특성이 먼저 나타나고 있는 반면, 미사곡의 경우에는 그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령 C단조 미사곡은 피아노 협주곡 4번이나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 등과 같은 시기에 작곡되었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초기 작품들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제1기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제외하면 거의 실내악에 국한되는데 이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연주하던 악기인 피아노를 기초로 만들어졌으며, 그는 18세기의 장인적 기교에 심취했다.
대부분 음 재료들은 하이든 및 모차르트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지만 당시의 양식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좀더 거칠었다. 대개 당시 사용하던 형식들을 확장시켰는데 예를 들어 교향곡이나 소나타에서 1악장 제시부는 길이가 늘어나고 복수 주제가 사용되었으며, 발전부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줄었다. 느린 2악장에서는 길이가 늘어나고 장식을 많이 한 서정적인 성격을 띠었다.
3악장(스케르초 악장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음)은 미뉴에트 악장 원래 모습에 비교적 충실했지만 흔히 미뉴에트풍과는 다른 리듬 패턴을 사용하기도 했고, 끝으로 4악장은 대담하고 명확하다. 그러나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셈여림의 대조에 대한 개성적인 처리, 특히 '크레셴도'(점점 세게)에 바로 이어 급작스럽게 '피아노'(여리게)가 나타나는 기법과 예기치 않은 강세와 모호한 리듬, 피아노 소나타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즉흥연주풍 기교(언뜻 들어서는 아주 보잘것없고 의미없어 보이던 음재료에서 의미심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법)에 있었다.
베토벤 환상곡풍(quasi una fantasia)
제2기는 1801년에 작곡된 2개의 '환상곡풍'(quasi una fantasia) 소나타로 시작하지만, 교향곡과 협주곡 분야에서는 교향곡 3번 〈영웅〉(1804)과 피아노 협주곡 4번(1806)이 작곡되기 전까지는 아직 이 기간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기간에는 즉흥연주풍 음재료의 사용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이전 시기에는 18세기의 전통적 틀 속에 이것이 얼마나 잘 흡수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반해, 이제 그는 규범으로부터 이탈이 갖는 논리적 의미를 좀더 꼼꼼히 탐색했다. 기본적으로 간단한 화성을 사용했고(모차르트와 비교할 때 좀더 간단한 편이었음) 기본박에 관련해 화성을 운용하는 기법이 새로워졌다. 베토벤은 이 기법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강세를 두어 주요주제들에 변화를 꾀함으로써 각 악장의 윤곽이 결정되었다.
결론적으로 어떤 작곡가들보다도 실험적이었는데 그는 한번 시도한 것을 또다시 반복하는 법이 없었다. 모든 작품들, 특히 중기 및 후기 작품들은 형식면에서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추었다. 1악장의 제시부가 짧아졌고 발전부와 코다가 길어졌으며, 2악장은 더욱 짧아져서 거의 생략된 듯하고, 3악장은 이제 완전히 미뉴에트가 아닌 스케르초 악장으로서 면모가 두드러져 예기치 않은 강세와 당김음을 자주 사용했다. 마지막 악장은 앞선 악장에 비해 더 무거운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경우에는 가장 중요한 악장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음들이 선율이나 화성적인 면에서 기능적으로 사용됨에 따라 장식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3기에는 악상이 더욱 압축된 반면 화성이나 짜임새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었다. 헨델에 열중한 그는 좀더 철저하게 대위법을 구사함으로써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앞선 시기에서 보여주었던 단순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따라서 이 시기의 표현과 느낌의 영역은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앞선 것이었다.
당시 그가 점점 더 크게 관심을 쏟았던 영역은 변주곡이었다. 즉흥연주 기질은 언제나 변주곡이라는 장르와 잘 부합되었고, 3번 교향곡 〈영웅〉의 마지막 악장이나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변주곡(2가지 모두 같은 주제로 작곡되었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이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물론 이전에 출판된 변주곡 작품들은 장식적인 성격만 갖고 있을 뿐 그다지 독특한 특성을 펼치지는 않았음). 마지막 시기인 제3기의 음악적 특징은 바로 변주곡 장르에서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의 말기 현악4중주나 소나타들에서 나타나는 변주곡의 독특한 특성은 축조적 건축의 개념에서 자라나는 것이었다. 현악4중주들에서는 푸가, 변주기법, 춤곡, 행진곡, 소나타 악장, 심지어 선법적·5음음계적 선율 등 그의 모든 음악기법들이 동원된다.
후대 작곡가들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베토벤의 두 작품은 5번과 9번 교향곡인데 모두 역경을 헤치고 이룬 승리를 다루고 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 C단조, 차이코스프키의 교향곡 5번 E단조,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말러의 교향곡 2번 C단조 등은 모두 이러한 베토벤의 불굴의 영혼을 계승한 후대 작품들이지만, 이것들조차 베토벤의 작품과 동등한 수준에 놓을 수는 없다.
✵ 베토벤교향곡9번 합창 환희의 송가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20회] 어둠에서 빛으로 - 베토벤,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감사합니다.
방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