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시내버스를 환승하면서
남편 대학교 동기 모임에 가는 날입니다. 처음에는 부부 모임이었는데 언제부터 남자들만 모이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어려서는 가끔 모임에 나갔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면서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차츰 남자들만 모여서 저녁 먹고 헤어지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애들이 취업하고 결혼하면서 다시 부부 모임이 되었습니다.
석 달에 한 번 만납니다. 이제는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도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모처럼 남편과 대구 시내를 나갔습니다. 술 한잔하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집에서 버스로 지하철로 환승하면서 가야 합니다. 나에게는 지하철 타는 일이 그다지 달갑지 않습니다. 일 년에 서너 번도 타지 않습니다. 아직도 지하철 타는 일이 어색하고 지하로 들어가는 일도 싫고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있으려면 그것도 편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남편도 나를 배려해서 시내버스를 주로 탑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환승해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려니까 시간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 구경하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똑바로 쳐다보는 일은 예의가 아니라서 슬금슬금 때로는 힐긋힐긋 슬쩍슬쩍 훔쳐봅니다. 모두가 휴대전화로 어색함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나랑 남편뿐이었습니다. 마주 앉은 사람과 어색함을 없애기에는 휴대전화가 딱 맞은 듯했습니다. 순간 나도 휴대전화를 꺼내볼까 하다가 눈도 아프고 한참을 들여다보면 어지러워서 참았습니다.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남편에게 “진짜 자는 거야?” 귓속말로 물었더니 ‘시작은 그랬는데 지금은 진짜로 자는 중이야!’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도 그래볼까? 눈을 감고 있으니 조금은 편했습니다. 앞에서 십 대 소녀 소년들이 막대사탕을 하나씩 입에 물고 얼마나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지 나도 모르게 눈을 맞추고 웃었습니다. 나도 막대사탕이 무지 먹고 싶어졌습니다. 무안할까 봐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아도 애들이 어떻게 웃고 이야기를 하는지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메인 요리는 장어 구이였습니다. 장어 꼬리가 퍼드득 거릴 때는 놀라기도 했지만 금세 적응해서 지인들과 어울려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장어를 먹지 못하는 친구는 가리비를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남자들은 술을 마시니 안주로 안성맞춤인 듯합니다. 술자리가 길어져서 몇 명은 먼저 커피명가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스타벅스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기웃거리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삶을 즐기면서 사는 여유가 보여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지인들과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피로를 풀고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이 도시에서는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기분입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처음부터 버스를 타자고 했습니다.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니 집에 가는 버스가 끊겼습니다. 지하철을 타야만 영남대학교까지 가면 그곳에서 마지막 시내버스를 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부랴부랴 영남대학교까지 휙휙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부리나케 버스 정거장으로 가보니 다행히 막차가 4분 뒤에 온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있었습니다.
가랑비는 투두둑 투두둑 떨어지고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남편과 나의 모습에서 먼 시간 속 그 하루가 생각났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오늘도 활기 넘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스무 살 청년이 올해 환갑 맞으며 멋쩍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2024년3월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