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 일본의 애니메이션
hanjy9713
2023.09.10. 16:31조회 9
일본의 애니메이션
요약 일본 애니메이션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쌍벽을 이루며 애니메이션 산업을 세계적으로 선도해왔다. 도에이 동화, 무시 프로덕션, 스튜디오 지브리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이 국제화·디지털화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애니메이션은 유럽, 남미, 호주 등의 영상물 판매 매장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기타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진열 방식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제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리키는 ‘아니메(アニメ)’는 일본 만화를 가리키는 ‘망가(漫画, まんが)’와 더불어 대내적·대외적으로 일본 문화산업의 중추를 이룬다.
목차 ■ 일본 애니메이션의 맹아기 ■ 일본 패망 이후, 도에이 동화와 데즈카 오사무 ■ ‘아니메’의 부흥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 ■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의 부상 ■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OVA의 선전 ■ ‘아니메’의 부활과 다양한 모색 |
■ 일본 애니메이션의 맹아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시모카와 오텐(下川凹天), 고우치 준이치(幸內純一), 기타야마 세이타로(北山清太郎)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나, 서로 정보를 교류하거나 협력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만화가인 시모카와는 흑판에 분필로 그리는 분필 애니메이션 기법을 시도했으나 시행착오 끝에 단념했다. 이후 배경을 인쇄한 종이에서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은 백색 물감으로 지우는 기법을 도입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진 <문지기 이모카와 무쿠조(芋川椋三玄関番の巻)>(1917)이다.
고우치는 <하나와 헤코나이 명검 이야기(塙凹内名刀之巻)>(1917)로 호평을 받은 이후,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홍보물인 <인기의 절정에 선 고토 신페이(後藤新平)>(1924)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도쿄 시장이었던 고토 신페이를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 애니메이션의 대중성과 호소력을 일찍이 활용한 작품이다.
기타야마는 배경과 캐릭터를 종이에 함께 그려 넣는 페이퍼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여 <원숭이와 게의 전쟁(猿蟹合戦)>(1917)을 만들었다. 1921년에는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인 ‘기타야마 영화 제작소’를 설립했으며, 후에 도에이 동화의 설립에도 관여했다.
이 세 사람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서 계몽적·교육적 성격을 띠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이들은 산업적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작품을 제작했으며, 대중적 감각이 뛰어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업계는 1923년 일어난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스튜디오와 장비에 큰 피해를 입고 한동안 제작이 주춤했다. 이후 무라타 야스지(村田安司)가 <문어의 뼈(蛸の骨)>(1927), <동물 올림픽(動物オリンピック大會)>(1928) 등을 만들며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마사오카 겐조(政岡憲三)는 최초의 본격 토키(talkie) 애니메이션이자 셀 애니메이션인 <힘과 여인의 세상(力と女の世の中)>(1932)을 발표했다.
세오 미쓰요(瀬尾光世)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소재로 한 <바다 독수리 모모타로(桃太郎の海鷲)>(1942)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일본 최초의 중·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길이가 38분에 이른다(그림 1). 속편인 <모모타로·바다의 신병(桃太郎·海の神兵)>(1944)은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84년에 극적으로 발견되어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그림 1. <바다 독수리 모모타로>의 이미지
■ 일본 패망 이후, 도에이 동화와 데즈카 오사무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이후,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물자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은 뜸해질 수밖에 없었던 반면, 일본에 수입된 미국 상업 애니메이션은 대중의 눈길을 끌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일본 최대의 영화사인 ‘도에이(東映)’가 1955년 ‘도에이 동화(東映動畵)’라는 이름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진출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게 된다.
도에이 동화는 ‘동양의 디즈니 스튜디오’라는 기치를 내걸고, 역할 분담이 명확한 분업식 제작 시스템을 갖추었다. 기존의 개인 프로덕션이 기본적으로 작가와 어시스턴트에 의한 가내수공업 형태를 띠었던 데 비해, 분업식 시스템은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한 형태였다.
도에이 동화는 첫 작품으로 <새끼 고양이의 낙서(こねこのらくがき)>(1957)를 발표한 데 이어,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白蛇伝)>(1958)를 제작한다. 중국의 전설을 재해석한 <백사전>는 선녹음 후작화, 초당 24컷의 풀 애니메이션(full animation) 방식을 적용하여 작품성에서나 기술력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그림 2). 뒤이어 <신밧드의 모험(アラビアンナイト·シンドバッドの冒険)>(1962), <개구쟁이 왕자의 왕뱀 퇴치(わんぱく王子の大蛇退治)>(1963)가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화의 주춧돌을 놓는 데 기여했다.
그림 2. <백사전>의 포스터
1960년대에 들어 일본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동시에 아시아 대륙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자, 국가적 자신감과 문화적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 1963년 후지 TV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무쇠팔 아톰(鉄腕アトム)>이다(그림 3).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인 <무쇠팔 아톰>은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가 세운 ‘무시 프로덕션(虫プロダクション)’에서 제작했다. 데즈카가 ≪만화소년(漫画少年)≫에 14년간 연재했던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당시 도에이 동화가 풀 애니메이션을 고수했던 것과 달리, 무시 프로덕션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초당 프레임 수를 줄인 리미티드 기법을 사용했다. 그 대신 시간의 경과와 움직임을 표현하는 다양한 연출 기법을 개발하는 한편, 로봇 아톰의 활약상을 정교하고 흥미로운 스토리로 풀어내어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약점을 극복하려 했다. <무쇠팔 아톰> 시리즈는 이후 나타난 공상과학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경쟁력 있는 제작 모델을 선보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무쇠팔 아톰>의 성공에 자극받아 TCJ의 <철인 28호(鉄人28号)>(1963), 도에이 동화의 <늑대소년 켄(狼少年ケン)>(1963) 등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1963년에 다섯 편이던 작품 수가 1965년에는 열세 편으로 급증했으며,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TV 콘텐츠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림 3. 데즈카 오사무 만화 전집 중 <무쇠팔 아톰> 8권의 표지(왼쪽)와 텔레비전 방영 예고편의 한 장면(오른쪽)
첫 시리즈는 흑백으로 제작되었으나, 1982년에 컬러판으로 리메이크되었다.
무시 프로덕션은 주 1회 TV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연 것에 만족하지 않고, 총천연색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맞서 최초의 TV용 컬러 애니메이션 시리즈 <정글대제(ジャングル大帝)>(1965)를 제작한다. <정글대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미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와 연출을 조율했으며, 이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 직후 극장판 제작으로 이어지는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그림 4. <태양의 왕자 호르스의 대모험>의 일본 포스터
한편 애니메이션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TV 애니메이션의 급작스러운 부흥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상대적 침체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에이 동화의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은 <태양의 왕자 호르스의 대모험(太陽の王子ホルスの大冒険)>(1966)을 발표한다(그림 4). 일본 아이누족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성장담을 치밀한 서사와 심리 묘사로 담아내어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 ‘아니메’의 부흥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
1970년대 초반, 경제 불황과 오일쇼크로 인해 침체기를 통과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반전의 계기를 맞이한다.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우주전함 야마토(宇宙 戦艦 ヤマト)>(1974)가 요미우리 TV에서 방영된 후, 극장용으로 개봉된 <우주전함 야마토(宇宙 戦艦 ヤマト)>(1977),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 사랑의 전사들(さらば 宇宙戰艦ヤマト·愛の戰士たち)>(1978)이 연달아 흥행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는 인류 멸망의 위기에 맞서 우주전함 야마토가 출격해 싸운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군의 전함 야마토가 부활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군국주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전함에 대한 세부적 묘사와 정교한 스토리를 통해 애니메이션 관객을 청장년층으로 확대시켰으며 애니메이션 ‘오타쿠’ 세대의 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나아가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메( アニメ)’라는 독자적 브랜드로 자리를 잡는 데 기폭제가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쓰모토 레이지 열풍은 후에 <은하철도 999(さよなら銀河鐵道 999)>(1979), <천년여왕(1000年女王)>(1982)으로 이어진다.
그림 5. 건담 시리즈에서 로봇은 ‘모바일 수트(mobile suit)’로 불리며 전술형 병기로 제시된다.
1970년대 아니메의 부흥에는 <우주전함 야마토>를 비롯해 SF 장르가 선도적 역할을 했다. 도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감독의 <기동전사 건담(機動戦士ガンダム)>(1979)은 기존의 로봇물과 달리 권선징악의 단순한 내용에서 탈피하여, 사회집단의 대립과 갈등을 밀도 있는 서사 구조 속에 녹여냈다. 특히 로봇의 메카닉 설정은 프라모델 제품으로 상업화되어 ‘건프라(건담 프라모델)’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폭발적 성공을 거두었다(그림 5).
1970년대에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성장을 견인했다면, 1980년대에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급팽창이 두드러진다. 대기업의 자본 유입과 흥행 감독들의 선전으로 인해, 1984년 21편이던 제작 편수는 1986년에는 41편으로 폭증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의 활약이 있다.
미야자키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미래소년 코난(未来少年コナン)>(1978)으로 데뷔한 후, 두 번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1984)로 비평적·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미야자키가 감독, 각본, 콘티를 맡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인간의 탐욕이 야기한 환경문제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 가능성을 진지하게 성찰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도쿠마 쇼텐(徳間書店)이 출자하여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가 설립된다.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1986)를 발표한 후,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1988)로 명실공히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웃집 토토로>는 시골에 머물게 된 어린 자매와 나무의 정령인 토토로의 교감을 맑은 정서로 담아낸 작품이다(그림 6).
그림 6. <이웃집 토토로>의 일본 포스터(왼쪽)와 작품의 한 장면(오른쪽)
1950년대 일본의 시골을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따뜻하고 정밀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미야자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다카하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アルプスの少女ハイジ)>(1974), <엄마 찾아 삼만리(母をたずねて三千里)>(1976), <빨강머리 앤(赤毛のアン)>(1979) 등의 명작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명성을 쌓았다(그림 7). 미야자키가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는 데 강점이 있다면, 다카하타는 이웃과 일상의 이야기에서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에 개봉한 <반딧불이의 묘(火垂るの墓)>(1988)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아가 된 두 남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처절하고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을 피해자로 미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으며 한국에서는 2014년에야 가까스로 개봉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림 7. (왼쪽부터)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이 작품들은 한국에서도 1970~1980년대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당시 열혈 어린이 시청자들은 대개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봤다가 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의 부상
1980년대 후반, 스튜디오 지브리의 독주를 깨고 SF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이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다. 사이버 펑크(cyberpunk)는 무정부주의적 세계관과 첨단 기술의 이미지가 결합된 반체제적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을 대변하는 작가로 오토모 가쓰히로(大友克洋),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오시이 마모루(押井守)를 꼽을 수 있다.
오토모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키라(AKIRA)>(1988)는 오토모 자신이 ≪주간 영 매거진(週刊ヤングマガジン)≫에 인기리에 연재했던 동명의 원작을 직접 각색·감독한 작품이다(그림 8). 미래의 황폐화된 문명을 배경으로 인류의 신경증적 불안과 사회 갈등을 치밀하게 묘사하여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림 8. <아키라>의 일본 포스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대한 집단적 공포와 불안이 반영된 작품이다.
오토모는 작가주의 상업 애니메이션을 기치로 내걸고 <아키라>를 만들기 위한 별도의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제3자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제작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아키라>는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선보였으면서도 원작의 정교한 스토리를 애니메이션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는 참패했다. 이후 안노의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1995), 오토모의 <메모리즈(MEMORIES)>(1995), 오시이의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1995)와 <이노센스(イノセンス)>(2004) 등이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의 계열을 이어갔다.
■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OVA의 선전
1990년대 초반,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되고 장기 불황에 접어들면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침체기에 접어든다. 얄궂게도 미국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1989)의 성공을 시작으로 부흥기를 구가하며 관객 몰이를 하던 상황과 맞물린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내우외환의 시기에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OVA(Original Video Animation)의 선전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했다.
비디오 전용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OVA는 극장판에 비해 적은 제작비를 들이는 대신 연작으로 출시되어 상업적 위험성을 줄이려는 시도였다. 도리우미 히사유키(鳥海永行)와 오시이 마모루가 공동 감독한 <달로스(ダロス)>(1983)가 첫 OVA 작품이다. 이후 OVA는 가정용 비디오의 보급과 중소 제작사의 진출, 장르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들의 호응에 힘입어 세를 넓혔으며, 198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 업계의 과다 경쟁과 수급 불균형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극장 애니메이션의 침체기에도 <은하영웅전설(銀河英雄伝説)>,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超神伝説うろつき童子)> 등이 OVA 시리즈로 꾸준히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한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침체 국면에서 인기가 검증된 아동용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극장판으로 만드는 흐름이 이어졌다. 후지코 후지오(藤子·F·不二雄)의 원작 만화와 TV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도라에몽 ― 노비타와 동물 혹성(ドラえもん·のび太とアニマル惑星)>(1990)은 <도라에몽> 극장 개봉 10주년 기념작이라는 프리미엄을 업고 기록적인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이후 <드래곤볼 Z ― 격돌!! 100억 파워의 전사들(ドラゴンボールZ 激突!!100億パワーの戦士たち)>(1992), <극장판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R(劇場版美少女戦士セーラームーンR)>(1993), <크레용 신짱 ― 부리부리 왕국의 보물(クレヨンしんちゃん·ブリブリ王国の秘宝)>(1994) 등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흥행을 이어갔다.
■ ‘아니메’의 부활과 다양한 모색
1990년대 후반에 들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1997)가 대성공을 거두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모노노케 히메>는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대결과 공생이라는 주제를 다루었으며, 미야자키가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여 주목받았다. 이후 미야자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ハウルの動く城)>(2004), <바람이 분다(風立ちぬ)>(2013) 등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얼굴로 자리 잡는다.
다카하타는 1990년대 초반 불황의 침체기에도 <추억은 방울방울(おもひでぽろぽろ)>(1991),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戦ぽんぽこ)>(1994)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이후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의 4컷 연재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웃집 야마다군(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1999)은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100%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5인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각 에피소드의 끝에 ‘하이쿠(俳句)’를 인용하여 형식적·정서적 마무리를 돕는다(그림 9).
그림 9. <이웃집 야마다군>의 일본 포스터(왼쪽)와 작품의 한 장면(오른쪽)
파스텔 톤의 따뜻한 색감과 간결한 드로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활약과 더불어, 닌텐도의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극장판 포켓몬스터 ― 뮤츠의 역습(劇場版ポケットモンスター·ミュウツーの逆襲)>(1998), <극장판 포켓몬스터 ― 루기아의 탄생(劇場版ポケットモンスター·幻のポケモン ルギア爆誕)>(1999)이 연달아 대성공을 거두면서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선전을 이어갔다.
2000년대 이후 위성방송의 발전, 인터넷의 발달, 국제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의 흐름을 타고 <메트로폴리스(Metropolis)>(200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2001) 등이 해외에서 ‘아니메’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노동 집약적 산업이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전환되는 경향 속에 상업 애니메이션의 1인 제작 시스템이 등장했다. 신카이 마코토(新海誠)는 감독, 각본, 작화 등 작업 대부분을 혼자 진행한 <별의 목소리(ほしのこえ)>(2002)로 주목을 끌었다. 이후 <초속 5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2007),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2013) 등에서 풍경의 아름다움과 인물의 심리를 정밀하게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다(그림 10).
그림 10. <초속 5센티미터>의 일본 포스터(왼쪽)와 작품의 한 장면(오른쪽)
참고문헌 및 사이트
손기환·조정래. 2005. 『애니메이션의 감상과 이해』. 보고사.
송락현. 2003.『일본 극장 아니메 50년사』. 스튜디오 본프리.
야마구치 야스오. 2005.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김기민·황소연 옮김. 미술문화.
한창완. 1998. 『애니메이션 영상미학』. 한울.
황선길. 1998. 『애니메이션 영화사』.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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