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동아 (https://woman.donga.com/Library/3/all/12/128720/1)
동성애자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눈으로 인해 쉬쉬하며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며 당당하게 사랑을 선포한 두 여자의 사연.
10월5일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이색적인 결혼식이 열렸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아닌, 정장 커플룩 차림의 ‘신랑’ ‘신부’가 동시에 입장했고 결혼행진곡 대신 ‘매일 그대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회자로 나선 권모씨(여·38·회사원)가 입을 열었다.
“소크라테스, 차이코프스키, 셰익스피어, 랭보, 버지니아 울프와 앙드레 지드, 알렉산더 대왕, 나이팅게일, 입생 로랑, 조디 포스터…. 이 수많은 저명 인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놀랍게도 동성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0년쯤 후엔 오늘 같은 결혼식이 매우 자연스러운 자리가 될지 모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그 길의 첫 발을 내딛는 이 한쌍을 축하하고 축복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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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가 끝나자 이씨의 홀어머니 강숙자씨(가명·67)가 단상에 올라왔다. 두 사람에게 자신이 직접 맞춘 커플링을 끼워주고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너희들 절대로 헤어지면 안 된다. 여자이고 동성애이기 때문에 변하고 그런다면 다 가짜다. 사랑한다면서 헤어지면 다 가짜다.”
강씨의 생활한복은 땀에 완전히 젖었다.
한씨는 강씨를 위해 준비한 글을 80여 명의 하객 앞에서 읽었다.
“드디어 제가 결혼을 합니다. 오랫동안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면서도 결코 평범한 꿈이 아니었기에 접어야 했던 꿈이었습니다. 오늘 그 꿈을 이뤘습니다. 저희들의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해주신 가장 소중한 분이 여기 계십니다. 어머니. 편견 따윈 아랑곳없이 ‘너희들은 꼭 만나야 될 사람들이다’면서 ‘죽어도 떨어지지 말라’고 격려해 주신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어머니. 언니랑 저 꼭 잘 살게요(울음). 서로 위하고 사랑하면서 욕심 없이 예쁘게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손에 촛불을 들고 를 노래하는 가운데 결혼식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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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8시, 부부가 살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를 찾았다. 어머니 강씨는 지난 5월부터 딸이 동성 애인과 아파트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을 허락했다. 강씨는 차돌박이를 넣은 된장찌개에다 아귀찜, 부추를 넣은 부침개를 해놓고 기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33세 때 사고로 남편을 잃은 강씨는 34년간 홀로 이씨를 뒷바라지했다.
기자 : 결혼을 반대하진 않았습니까.
강씨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게 낫지 않습니까.
기자 : 따님의 판단이 그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따님은 원래 이성애자였으니까요.
강씨 : 딸이 평소 빈틈이 없고 제 앞가림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딸은 어긋나는 짓을 단 한번도 안 했어요. 항상 정확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니까 내가 믿었죠. 나이 마흔이 된 딸이 이제야 제짝을 만났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기자 : 결혼식을 강하게 권하신 이유는….
강씨 : 나는 돌아간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뭔지 압니다. 사랑하면 떨어지면 안 되고, 떨어지지 않으려면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은 믿음과 함께 책임감을 키워줍니다. 지난 2월에 둘이 저에게 커플링을 보여주며 “평생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고 해서 제가 “이건 무효다. 둘이서만 (약속)하는 건 너무 외롭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다시 해주고 싶다. 어머니가 해주는 반지가 진짜 결혼반지다”라고 주장했어요.
강씨는 남편이 긴 머리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머리를 기른다.
기자 : 따님의 배우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씨 : 없으면 전 못 삽니다. ‘딸’겸 ‘아들’겸 ‘사위’ 하나 얻은 걸로 생각합니다. 막내(강씨는 한씨를 이렇게 불렀다)의 목소리는 제가 저승에 가도 들릴 겁니다.
기자 : 따님의 배우자가 ‘여자’라는 걸 언제 눈치채셨습니까?
강씨 :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지난 2월쯤이었나, 딸이 전화로 미진이 자랑을 하면서 “사윗감으로 어때?” 하고 농반진반으로 묻는 거였어요. 순간적으로 알아차렸죠. 딸은 중매로 들어온 좋은 자리도 마다하고 “독신으로 평생 살겠다”고 해왔거든요.
강씨는 매일 퇴근하는 두 ‘딸’에게 뽀뽀를 해주며 “어이구, 내 새끼 왔네”하고 반긴다. 결혼식을 앞두고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우리 딸 시집간다”며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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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결혼식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닙니다. 두 사람의 ‘이혼’이 그만큼 손쉬울 수도 있다는 뜻이죠. 만약 두 사람이 갈라선다고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강씨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못 헤어집니다. 죽어서도 지켜보겠습니다, 꼭.
기자 사회 통념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강씨 남들이 볼 때는 이상한 눈으로 안 볼 수가 없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저 할매 미쳤다”고 하겠지만…. 그럴 때 전 말해요. “에이, 자기들이나 잘 살라”고요. 쟤네 둘이 그렇게 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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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2년이긴하지만 기자 질문수준...
어머님이 따님 존중해주셔서 정말 좋은것같아요 ㅠㅠㅠ 지금도 행복하게 지내고계시겠죠??
어머님 말씀이 넘 아름답고 따뜻해용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