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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의 세 가지 덕목, 난 한 그루 나무이어라, 동행하는 인생 외
한국교육자선교회 김형태 이사장님이 나누신 글입니다.
기러기의 세 가지 덕목
기러기는 다른 짐승들처럼 한 마리의 보스가 지배하고, 그것에 의존(依存)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랍니다.
먹이와 따뜻한 땅을 찾아 4 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기러기의 슬픈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물 샘을 자극합니다.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 자 대형(隊形)을 유지하며 삶의 터전을 찾아 머나먼 여행(旅行)을 시작합니다.
가장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개 짓은 기류(氣流)의 양력을 만들어 주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消耗)됩니다.
대장 기러기는 뒤에 따라오는 동료(同僚) 기러기들이 혼자 날 때보다 70% 정도(程度)의 힘만 쓰면 날 수 있도록 맨 앞에서 온 몸으로 바람과 마주하며 용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 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듣는 그 울음 소리는 실제 우는 소리가 아니라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應援)의 소리입니다.
기러기는 부산에서 서울 간을 왕복 40 번에 해당하는 머나먼 길을 옆에서 함께 날개 짓을 하는 동료와 서로 의지하며 날아 갑니다.
만약 어느 기러기가 총에 맞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離脫)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隊列)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서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 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을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 옵니다."
톰 워삼(Tom Worsham)이 쓴 '기러기' 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미물(微物)인 새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요?
만약 제일(第一)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지치고 힘들어지면 그 뒤의 기러기가 제일 앞으로 나와 리더와 역할(役割)을 바꾼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러기 무리는 서로 순서(順序)를 바꾸어 리더의 역할(役割)을 하며
길을 찾아 날아 간답니다.
이렇게 서로 돕는 슬기와 그 독특한 비행 기술이 없다면 기러기 떼는 매일 수 백 킬로를 날면서 해마다 수 천 킬로를 이동(移動)하는 그 비행에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는 속담의 의미를 깨우칩니다.
결혼식(結婚式) 폐백(幣帛) 시에 기러기 모형을 놓고 예(禮)를 올리는 것은 '기러기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덕목을 사람이 본받자' 는 뜻이라고 합니다.
첫째,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永遠)히 지킵니다.
보통 수명이 150~200 년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합니다.
둘째,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 갈 때도 행렬(行列)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 가는 놈도 '화답(和答)'을 하여 예(禮)를 지킨다고 합니다.
셋째,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屬性)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人間)이 추구(追求)하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한다고 규정(規定) 짓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미(意味)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 하겠습니다.
각자(各自)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些少)한 삶이라도 그것이 나 뿐만 아니라
누구에겐가 도움되는 삶...
모두가 공유(共有) 할 수 있는 행복에 가치를 둘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인류(人類)는 훨씬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의 존재(存在)가 되어야 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지혜(智慧)를 나누어 주며,
인정(人情)이 메마른 곳에는 사랑의 감동을 나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도 비 오는 날 우산을 들어주는 여유가 있으면 더 좋으련만...
그것이 어려울 때는 함께 비를 맞는 것도 큰 위로가 될 듯 합니다.
알고 계세요??
기러기_리더십 https://youtu.be/0_-6QtGrs4w
난 한 그루 나무이어라/정 해은
난 삿갓구름을 머리에 이고
일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가지가지에 과일을 주렁주렁 달아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한 그루 나무입니다
태양이 뜨겁게 비추면
가지가지에 핀 꽃잎으로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고
비바람 천둥이 몰아치면
가지가지 이파리로
내리는 비를 막아주고
함박눈이 내리면
가지가지에 눈꽃을 피워
내리는 눈을 막아주고
강물을 건널 땐
굵은 가지를 늘어뜨려
다리를 놓아 드리고
목말라 할 땐
줄기에 고인 물로
갈증을 녹여 드리고
추워할 땐
내 몸뚱이로 숯을 만들어
불을 지펴드리고
병들어 아파할 땐
내 모든 뿌리로 탕약을 만들어
병을 낫게 하리오
난 그런 한 그루 나무이어라
난 한 여자를 위한 나무가 되고 싶어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나네요. 나무는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베푼다.
어머니가 그렇고, 예수님이 그랬다. 소도 그렇다. 평생 주인을 위해 밭갈고 달구지 끌고, 일하다 죽는다.
죽은 후에도 살코기,뼈, 내장, 우족, 가죽, 뿔, 발톱, 심지어 꼬리까지 용도별로 다 내주고 떠난다. 그야말로 완전 봉사다.
그래서 나무도 멋있고, 소도 귀중한 존재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최선을 다한다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 아닙니까?...
그 일들도 뒤돌아보면
별거 아니지 않았습니까?
쉬지 않고 달려야 할 때도 있고
가만히 숨을 고를 때도
있는 법입니다
놓친 차는
다시 오는 차를 타면 되고
돌아가더라도 그곳에 도착하면 될 일이며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놓아 주십시다
훗날
힘들고 아팠던 일들도
뒤돌아보면 별거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1-22)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욥기 20:5)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6:30-31)
💚 同行하는 人生 💚
어리석은 개미는
자기 몸이 작아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부러워 하고,
똑똑한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서 사슴의 몸에
붙어 달릴 수가 있음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의 단점을 느끼면서
슬퍼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찾아내어 자랑한다.
화내는 얼굴은
아는 얼굴도 낯설고,
웃는 얼굴은
모르는 얼굴이라도 낯설지 않다.
찡그린 얼굴은
예쁜 얼굴도 보기 싫고,
웃는 얼굴은
미운 얼굴이라도 예쁘게 보인다.
고운 모래를 얻기 위해
고운 체가 필요하듯,
고운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고운 마음이 필요하다.
매끄러운 나무를 얻기 위해
잘드는 대패가 필요하듯이,
멋진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력이 필요하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연장을 두고서
남의 연장을 빌려 쓴다.
그러다 그만 자기 연장을
녹슬게 하고 만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혼자 힘으로 서려고 않고
남에게 기대선다.
그러다 그만 자기 혼자 설
힘조차 잃고 만다.
동행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 말 씀 ☆
♡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 잠언 13 : 20 )
☆ 영문주소를 터치해서 영상을 감상해보세요!
https://www.geimian.com/wx/34919.html
2019. 7. 27.
정전협정 66주년이 되었다.
1953. 7. 27. 오전 10시
경기도 문산리에서 사인되었다.
UN 대표 -- 해리슨 해군중장
공산군대표 -- 남 일
확인 서명자
UN군 수석대표 -- 마크 W. 클라크 미 육군대장
조선 인민군 최고사령관 -- 김 일성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 펑더화이.
판문점의 역사
1. 도끼만행사건
1976. 8. 18. 판문점 JSA 자유의 다리 인근에서 미군 6명, 국군 5명 등 11명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중 북한군의 도끼만행으로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사건이었다.
2. 2017. 11. 북한군 오 청성 하전사가 총격을 받으며 귀순하여 생명을 구한 일이 있었다.
3. 2018. 4. 판문점 선언과 9. 19. 군사합의가 있었다.
4. 2019. 6. 판문점 남 북 미 회동이 있었다.
5. 2019.7.25.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 문대통령에게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라'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판문점에는 '자유의집' (남한측/ 1965년 건축)과 '판문각'(북한측/1968년 건축)이 있었다
1980년대에 새로 '평화의 집'(남한)과 '통일각'(북한)이 지어졌다.
'갈등의 상징'에서 '변화의 공간'으로 변하기를 기대했으나 아직도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전사자, 포로된자, 실종자의 가족들의 슬픔이 있고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에 다시 판문점을 생각해 봤다.
행복의 다섯 손가락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도덕과 입법의 기초다/ 존 스튜어트 밀)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람마다 다르다.그러나 공통적인 조건 다섯을 소개한다.
물론 이 요소가 다 충족된다고 해서 곧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섯 손가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엄지 -- 정신적ㆍ신체적 건강
검지 -- 삶의 이정표를 나타내는 지혜.
중지 -- 이루고 싶은 성취와 성공
약지 -- 사랑
소지 -- 편안케 하는 금전
손바닥 -- 위 5개 요소를 떠받치고 있는 희망
현대인의 질병은 심인성 질환이기에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다. 현대질병의 90%가 심인성(스트레스)이다.
슬픔과 분노는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긴장은 고혈압을, 직업불만은 심장발작을, 공격성과 적개심은 관상동맥질환을, 자포자기는 각종 암을 유발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긍정, 사랑, 희망, 웃음, 여유라는 항생제를 복용해야 한다.
노먼 커즌스는 《웃음의 치유력》으로 유명하다.
우리들도 긍정과 감사와 웃음으로 자연치유력을 회복하도록 하자.
또 1-- 10 -- 100 -- 1,000 -- 10,000 공식도 좋다
1 하루에 한가지 이상 착한일을 한다(일일일선)
10. 하루에 10번이상 자기가 웃든지 남을 웃긴다.
100. 하루에 100자 이상 글씨를 쓴다. 일기를 쓰던지 성경이나 좋은 글을 베껴도 좋다.
1,000. 하루에 1,000자 이상 남의 글을 읽는다. 성경 한장, 칼럼 한편. 신문 사설을 읽으면 된다.
10,000. 하루에 10,000보이상 (5~6 km)를 걷는다.
이것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면 노후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 말씀과 기도로 여는 하루 >
(1) 크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며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2) 공동체의 잘못을 비난하고 욕하기보다 함께 회개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3) 현재와 미래에 끼치는 죄의 영향력을 막고 성결의 힘을 확보하게 하소서.
(4) 추상적인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내 죄를 자백하게 하소서.
(5)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과 법조인이 있으니 권력을 잘 활용하게 하소서.
♥️ 子女(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屬(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世上(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4:4) / 萬一(만일) 우리가 우리 罪(죄)를 自白(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義(의)로우사 우리 罪(죄)를 사하시며 모든 不義(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 그는 하나님의 使者(사자)가 되어 네게 善(선)을 이루는 者(자)니라 그러나 네가 惡(악)을 行(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空然(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使者(사자)가 되어 惡(악)을 行(행)하는 者(자)에게 震怒(진노)하심을 爲(위)하여 報應(보응)하는 者(자)니라 (롬13:4).
< 오늘의 찬양 >
YouTube 에서 '주님의 여행` 박진희/찬양 https://youtu.be/oUhvhbwPOoQ
*<역사단상> 이런 일본 외교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뇌조리에 자리 잡은 하늘묘원.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천주 묘지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 제2대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1909∼1997년)의 묘가 있다.
묘역 관리는 비교적 잘 돼 있었다. ‘제2대 주한 일본국 대사,
金山 아우구스티노 政英님의 무덤’이라고 또렷하게 쓴 묘비석이
우뚝 서 있었다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인물의 묘가 일본 땅이 아니라
한국 땅에 들어선 자세한 사연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수교 협상을 전후한 임시대리대사 체제가 끝나고
66년 3월 기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
초대 주한 일본 대사에 이어 가나야마(金山政英)가 68년 7월 15일
제2대 대사로 서울에 부임한다.
72년 2월까지 3년7개월간 주한 대사로 일하면서 한국의 산업화 초기에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대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재계 총리 이나야마도 두 손 들어
특히 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만나면서
“기백이 넘치는 훌륭한 분”이라고
평가하면서 각별한 존경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도
그를 격의 없이 대하며 아꼈다.
최서면(89)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58년부터 30년간 도쿄에 체류하면서
한국연구원을 설립하고 독도와 한·일 관계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원로 역사학자다. 박 대통령과 가나야마 대사의
친분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최 원장은 “포항제철은 박태준씨가 주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숨은 공로도 있다”며
비화를 공개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이 “술이나 먹자”며 가나야마 대사를 청와대 쪽으로
불렀다. 박 대통령이 돌발 질문을 던졌다.
▶박정희=“가나야마 대사, 당신은 누구요.”
▶가나야마(金山政英)=“예, 일본국 주한 특명전권대사입니다.”
▶박정희=“거꾸로는 안 되겠소? 대한민국의 주일 특명전권대사 역할
한번 해주시오.”
박 대통령은 이날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에게 건넸다. 친서에는 포항제철소를
만들고 싶은데 일본 측이 기술 협력을 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일본 외무성에는 알리지도 않고 가나야마 대사는
조용히 도쿄로 건너가 사토 총리를 만났다.
▶사토=“(한국의 제철소 건설을 지원하는) 그 문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또 해달라고 가져왔군.”
▶가나야마(金山政英)=“박 대통령께서 저에게 이 친서에 답이 없으면
한국에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한 관계가 끝장납니다.”
▶사토=“이거 큰일 났네.”
사토 총리는 그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신일철 회장 겸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에게 전화를 돌렸고 그날 밤 세 사람이 만났다.
▶이나야마=“나사도 제대로 못 만드는 한국이 무슨 제철소야.”
▶가나야마(金山政英)=“그런 말씀 마십시오. 1897년
야하다(八幡) 제철소(신일철 전신)를 만들기 전에는
우리도 나사조차 못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변명보다는 도와줄 방법을 찾아주세요.”
가나야마(金山政英)는 마치 주일 한국 대사로 부임한 사람처럼
집요하게 이나야마 회장을 설득했다.
당시까지 ‘일본의 재계 총리’로 불리던 이나야마 회장은
결국 마음을 돌렸고 포항제철소 지원의 길이 열렸다.
“광복절 행사에도 참석 못 할 이유 없어”
기억할 만한 일화는 또 있다.
대사 부임 이후 처음 맞은 69년 3·1절 기념식에
가나야마(金山政英)는 주한 일본 대사로서 사상 처음 참석했다.
이후 지금까지 어떤 후임 대사도 엄두를 내지 못한 기록이다.
당시 본국의 질책을 받자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는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한국과 잘 지내기로 해놓고 한국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 문제가 되나.
8·15 광복절 행사에도 못 갈 이유는 없다”고
항변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가나야마 대사가 일관성 있게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자 일부에선
창씨개명한 한국인 김씨의 후예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가 “나는 원래 구보타(久保田) 가문 출신인데
가나야마(金山政英) 가문의 양자가 됐다”
고 해명하자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신 그는 김해김씨 명예회원으로
명부에 올랐다.
이처럼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한 것은 사실이라지만 그렇다고 대사까지
지낸 일본인이 사후에 한국 땅에 묻힌 곡절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기 한 해 전인 1909년 도쿄에서 태어난
가나야마(金山政英)는 97년 11월 1일 미수(米壽·88세)를 넘겨 타계한다.
도쿄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5세 때 외교관이 된 이후
38년간 바티칸 주재 참사관, 칠레·폴란드 대사 등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도쿄의 천주교 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에 생전 그를 아끼던 한·일 양국의
지인들이 몰려들었다.
가나야마(金山政英)의 자녀 12명 중에서 장남은 장례식에 참석하러
한국에서
온 노신사에게 다가가 “최서면 원장님이십니까”라며 인사를 건넸다.
장남은 “부친께서 ‘내가 죽으면 유골을 최 원장께 맡겨달라’고
유언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부친께서 최 원장님께 말씀 드리면 알아서 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절친 최서면 원장에게 “한국에 묻어달라”
자신의 유골을 부탁할 정도로 최 원장과 돈독하게 된 사연이 있다.
72년 귀국한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에게 일본 외무성은 유럽일본관장
자리를
대사급으로 격상해 맡기려 했으나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는 사양하고
바로 은퇴했다. 그에게는 다른 뜻이 있었다.
그해 11월 도쿄에 있던 한국연구원으로 최 원장을 찾아갔다.
당시의 심정과 각오를 대사는 88년 발표한 ‘최서면과 나’라는 글에서
토로했다. 그는 “한국에서 대사로 있으면서 일·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신념을 품었고 제2의 인생을 일·한 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심했다”고 썼다.
최 원장은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 사람들은
미국·소련(러시아)·중국·영국과 외교를 잘하면 일본 외교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일하면서 보니 이들 4개국과의 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한국과의 관계를 잘못 처리하면 일본 외교의 실패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공감한 두 사람은 이날 만남을 계기로 의기투합
했다.
최 원장은 한국연구원에 국제관계공동연구소를 새로 만들어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에게 초대 소장을 맡겼다.
같은 천주교 신자인 데다 공교롭게도
영세명(아우구스티노)이 같은 두 사람은 일가(一家)처럼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다
75년 4월, 가나야마(金山政英)는 최 원장의 모친 3주기를 맞아 방한한다.
지금은
가나야마 대사 자신이 묻힌 파주 천주교 하늘묘원을 찾아 참배했다. 차를
마시면서 가나야마 대사가 대뜸 최 원장에게 깜짝 제안을 했다.
▶가나야마(金山政英)=“나도 죽으면 이 땅에서 묻히고 싶다.
최 원장과 이 세상에서 일·한 관계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최서면=“정말인가.
그럼 내가 여기에 묏자리를 만들 테니 나중에 오시겠나.”
최 원장은 자신이 매입한 가족묘지 공간에
가나야마 대사의 가묘(假墓)를 만들어줬다.
그 후 가나야마 대사는 자신의 가묘를 찾아
“영혼의 집이 마련됐다”고 기뻐하면서 자신의 가묘에 성묘까지 했다.
지금은 가나야마 대사의 묘 바로 옆에 최 원장의 가묘가 만들어져 있다.
유해 봉환식 때 일부 반일 단체 술렁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가 97년 11월 타계한 뒤 그의 유골이
실제로 한국 땅에 묻히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이듬해인 98년 8월 가나야마 대사의 6남 가나야마 세이기치(金山成吉·
전 NHK 기자)가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방한했다.
하얏트 호텔에서 조촐한 유골 봉안식이 있었다.
국회의장으로서 그날 행사를 주관한 김수한(87)
한일친선협회중앙회 회장은 당시 경찰로부터 특이동향 소식을 접했다.
주한 대사를 지낸 일본인이 한국 땅에 묻힌다고 하니
일부 반일 단체가 술렁거린다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은 “한·일 관계를 위해 고향도 아닌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정신이 얼마나 고마운가.
우리가 환영해야지 소란을 피워서는 절대 안 된다”며
사복 경찰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최 원장은 “한국에 유골의 대부분을 묻고
그중 극히 일부를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아들에게 줬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시인 구상(具常·1919∼2004)이 쓴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비문에는
“나는 죽어서도 일·한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고 다짐했던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유언이 기록돼 있다.)
1 가나야마 마사히데 (金山政英)전 주한 일본 대사(오른쪽)와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왼쪽)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영세명(아우구스티노)을 쓴
두 사람이 1970년대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 바오로 6세와 함께 만났다.
2 1969년 12월 3일 가나야마(金山政英) 당시 주한 일본 대사(오른쪽)가
김학렬 부총리와 포항제철 차관 도입 관련 서명을 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숙원사업이던 일관제철소 건설에 속도가 붙었다.
[중앙포토]
한·일 모두 기억해야 할 ‘가나야마 정신’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 대사는 지난해 11월 최서면 원장, 김수한
회장과 동행해 가나야마 대사의 파주 묘지를 직접 참배했다. 그 자리에서
벳쇼 대사는 “한국 분들이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선배 대사의
유골을 모셔주셔서 뼈에 사무치게 감사 드린다”고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김수한 회장은 “가나야마 (金山政英)대사는 딸을 한국인에게
시집 보낼 정도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좋아했고,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속 깊이 한국을 사랑한
일본 외교관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한·일 관계를 큰 각도에서 바라본 가나야마 대사의 정신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이어받아야 한다”면서
“우리도 종전 70주년을 맞아 과거에 너무 집착하거나 편협한 반일 감정
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관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이라크 부흥대사를 끝으로 은퇴한 오가와 고타로(小川鄕太郞)
전 주한 일본대사관 문화원장(공사)은 “후배로서
가나야마 대사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관계와 역사를 잘 모르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오해하고
비방한다”며 “일본에서는 가나야마 대사의 정신을 잊고 있는데
그분의 정신을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서면 원장은 “한국에서는 ‘아베는 왜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요즘 일본에 가면 ‘한국은 왜 그래’라는 말을 듣는다”면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일찍이 역설한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정신이 요즘 같은 때 더 각별하게 다가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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