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 (8)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김정애 씨 ‘개쑥버무리’
남도매일신문 2022.07.26(화)
그리운 누군가에게 말 없이 건네는 속 情
야생의 생명력에 인생의 희로애락 버무린 ‘어느 봄날의 별미’
달보드레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맛 그리움은 향기되고
김정애 씨가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그의 인생과 ‘개쑥버무리’에 담긴 사연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먹었던 마늘과 ( )
▶단오절의 음식문화로 액땜 뜻이 담긴 음식 ( )떡
위의 괄호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정답은 바로 ‘쑥’이다. 쑥은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예나 지금이나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되기에 쑥은 우리 땅에서 흔하면서도 소중하다. 봄이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쑥은 여러 갈래의 줄기에 잎이 어긋나게 달리고 털이 있으며 녹색을 띤다.
이 향긋한 봄쑥으로 집집마다 국, 전, 떡 등 다양한 음식들을 해서 즐겨 먹는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쑥에 대한 생각이다. 그런데 한국 식물학계의 대부인 이영노 박사가 펴낸 ‘새로운 한국식물도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쑥이 25종 3변종 1품종으로 총 29분류군이 자생한다고 한다. 쑥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그럼, ‘개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취재진이 처음 들어본 정체불명의 이름이다. 더구나 개쑥으로 떡을 만드는 주인공이 있었으니 바로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에 사는 김정애 씨다. 일흔여덟의 할머니라도 손수 옷을 짓고 두건에 예쁜 꽃을 수놓아 자기만의 스타일로 꾸민 그의 마음은 소녀 같다. 수공예, 음식, 노래 등 재주가 많고 끼가 넘치는 그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잘하는 게 있으니 ‘개쑥버무리’이다.
김이 모락모락, 때깔 좋고 먹음직스런 개쑥버무리
구례 사람들이 부르는 개쑥은 국화과 ‘떡쑥’을 말하며 지역에 따라 ‘괴쑥, 솜쑥’으로 불린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을 검색하면 “떡쑥(학명Pseudognaphaliumaffine(D.Don) Anderb.)은 전국 각지의 들과 산에서 서식하고 어린 순은 식용으로 쓰인다.
잎이 부옇게 털로 덮여 있고 쥐의 귀를 닮고 있으며 꽃이 황색의 쌀알 같은 입상이라 누룩을 닮았다고 해서 서국초라 하는데 옛날에 이 풀로 떡을 만들어 먹어 떡쑥으로 불린다고 전한다”라는 기록이 되어 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쑥버무리’는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추억이지만, ‘개쑥버무리’는 다소 생소할 것이다. 한낱 이름 모르는 풀로 지나칠 수 있지만 이 ‘개쑥’은 오랫동안 구례 향토음식의 식재료로 쓰였다.
김정애 씨가 개쑥버무리를 처음 먹게 된 것은 시어머니에서 비롯됐다. 구례군 마산면 태생인 그는 21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토지면 파도리에서 시집살이를 했다. 시댁이 파도리에 자리 잡은 것은 1948년 10·19 여순사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순사건으로 인해 낮에는 경찰, 밤에는 빨치산들이 주둔한 지리산에서 좌우익 이념 대립으로 휩쓸린 산간 마을들은 거의 불태워졌다. 김정애 씨의 남편이 어릴 적에 살았던 마을도 전부 불로 타버리자, 좀 더 안전한 보금자리로 옮긴 곳은 면소재지 근처에 있는 파도리였다.
파도리의 원래 지명은 배가 닿는 곳이라는 뜻의 ‘바더리’인데, 이것을 음차해 ‘파도리’로 불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파도, 반곡, 동방천 3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졌는데 취락이 형성될 때는 1680년경 평강 채씨가 반곡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파도리로 합쳐지면서 마을 규모가 커졌고 지금은 200여 호가 모여 산다.
이곳은 쌀과 보리가 주산물이며 감나무 농사도 많이 짓는다. 웅장한 지리산을 풍경 삼아 단아한 멋을 간직한 이곳은 마을 중앙에 커다란 고목과 고택이 있어서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 마을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김정호 저자의 ‘천하명당 금환락지’(1992)와 권경안의 ‘큰 산 아래 사람들’(2000) 책에서 언급된 ‘구례 3·1발포사건’의 중심에 파도리가 있다. 때는 1947년 3·1운동 기념일. 구례군 토지면 주민들은 토지초등학교에 모여 ‘사회주의해방만세대회’를 열기로 했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찾기 위해 투쟁한 이 날, 파도리 주민 수백여 명도 참여했다. 그런데 경찰이 파도리 주민들의 대열을 가로막으며 총격을 가했고 이에 사망자는 22-23명, 부상자는 10여 명에 달했다. 그날 부산, 제주 등 여러 곳에서 경찰과 충돌사건으로 무고한 희생들이 발생했는데 구례 지역은 전국에서 피해자가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언론에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기존에는 구례 3·1발포사건이 큰 얼개만 알려졌을 뿐인데 올해 3월2일자 구례신문에 자세한 내용이 밝혀져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75년 만의 일이다. 파도리 주민들의 증언과 답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순천대10·19연구소의 문수현 연구원에 의해 가능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낳은 상처를 안고 있는 파도리에서 김정애 씨의 가족도 피해자 중 하나이다.
그렇게 아픈 역사는 쉬쉬한 채 그가 농사일을 하고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남편과 자식을 돌보며 파도리에서 산 지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40년간 호된 시집살이에 홀시어머니가 미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이 ‘개쑥버무리’였다.
살아생전에 음식 잘한 시어머니가 스텐 국 대접에 개쑥버무리를 해 놓으면 고된 들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며느리는 출출한 터에 맛있게 먹었다. 과거 친정아버지가 경찰이라서 부유하게 자랐고 시댁도 잘 살아서 춘궁기의 배고픈 서러움을 모르고 지냈던 그에게 개쑥버무리는 시어머니가 봄날에 해주는 별미였다. 개쑥은 주로 들에서 잘 자라지만 몇 해 전부터 그의 집 앞 텃밭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어서 그때부터 떡을 만들어 먹고 있다.
“시어머니와 같이 만들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먹어본 기억만으로 해본거여” 입이 기억하면 손이 따라가는가 보다. 오로지 맛만 느꼈을 뿐인데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 생각난다는 그의 솜씨가 더욱 궁금하다. 취재진이 4월 중순에 찾아가던 날. 그의 텃밭에는 노란 꽃이 알알이 핀 개쑥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때에 떡을 해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한다. 손으로 만지면 잔털이 있고 감촉이 보드랍다. 엄지와 검지 손끝으로 맨 위에 연한 움을 뚝 뜯은 후, 작은 소쿠리에 수북이 담는다.
텃밭에는 노란 꽃이 알알이 핀 개쑥이 눈에 띈다. 이 때에 떡을 해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한다.
“일반 쑥은 삶은디, 개쑥은 겁나게 부드러워서 삶으면 안돼.” 개쑥을 티가 없이 여러 번 물로 씻은 후, 밑간이 잘 배도록 적당한 소금과 사카린을 녹인 물에 2분 정도 담가둔다. 간이 안 맞을 때, 씨간장이 든 옹기 속에 조선간장이 굳어진 덩어리를 곱게 갈아서 간을 맞추는 것도 그만의 묘수. 단짠단짠 맛이 밴 개쑥의 물기를 살짝 짠 후, 보온밥솥에 물을 조금 붓고 끓인다.
개쑥을 여러 번 물로 씻은 후, 밑간이 잘 배도록 적당한 소금과 사카린을 녹인 물에 2분 정도 담가둔다. 단짠단짠 맛이 밴 개쑥의 물기를 살짝 짠 후, 보온밥솥에 물을 조금 붓고 끓인다. 채반에 개쑥을 올리고 멥쌀가루와 밀가루를 적당한 비율로 넣어 엉키지 않게 고르게 펴준 후, 물이 끓고 있는 보온밥솥에 약 10분 찌면 먹음직스런 개쑥버무리가 완성된다.
“미리 끓인 물로 해야 개쑥 향도 좋고 색도 살아. 근디 처음부터 같이 해불면 색이 누렇게 되부러” 채반에 개쑥을 올리고 멥쌀가루와 밀가루를 적당한 비율로 넣어 엉키지 않게 고르게 펴준 후, 물이 끓고 있는 보온밥솥에 넣어 취사를 누른다. 약 10분 찌면 김이 모락모락, 때깔 좋고 먹음직스런 개쑥버무리가 완성. 며느리는 시어머니 시절에 소금과 밀가루로 개쑥버무리를 만들었던 방식보다 사카린과 멥쌀가루를 추가해 맛을 한층 높였다.
1947년 ‘구례 3·1발포사건’의 중심에 선 파도리의 아픔은 올해 3월 언론에 보도되며 75년 만에 세상밖으로 드러났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낳은 상처를 안고 있는 파도리.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곳곳 오래된 풍경들만이 그 날의 상흔을 간직한 채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막 쪄낸 개쑥버무리를 한 입 넣으면 달보드레하면서 씹을수록 은은한 쑥향이 나고 부드럽게 꿀꺽 넘어간다. 자꾸 손이 가는 개쑥버무리를 먹다 보면 입 안에 쌉싸름한 맛이 남아있어 묘한 매력이기도 하다. 냉랭한 시어머니라도 애쓰는 며느리를 위해 만들었던 개쑥버무리는 말없이 건네는 속정인 듯 싶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시어머니와 얽힌 애환으로 그녀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18번 노래가 있다.
♪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굽이굽이 살아온 자욱마다 가시밭길 서러운 내 인생…. 아~ 사랑이여 눈물이여….
구슬픈 노랫가락과 가사처럼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고달팠다. 하지만 야생에서 세찬 비바람을 맞아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켜온 개쑥이 달고, 짜고, 담백한 재료들과 버무려져 맛난 떡이 되듯 여자의 일생으로 노년까지 버티고 살아온 그도 개쑥버무리처럼 맛을 내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