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르 (Loire )
루아르 지방을 동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루아르 강은 총 길이 1,020km로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 강 유역에는 낮은 언덕과 계곡, 풍부한 숲이 펼쳐지는데, 곳곳에는 포도밭과 많은 고성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루아르 강변 곳곳에는 중세시대에 건축된 왕과 귀족들의 옛 성들이 800여 개나 흩어져 있다.
프랑스어로 샤또(Chateau)라고 불리는 성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11~15세기에 군사적 방위목적으로 지은 성채인데 시농성, 로슈성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는 르네상스 시대에 왕족과 귀족의 거주지로 우아하게 지어진 성으로 샹보르 성, 쉬농소 성, 앙부아즈 성 등이 있다.
당시에는 성의 규모와 장식의 호화로움이 그 성에 거주하는 일족의 지위와 재력 등을 상징했다.
쉬농소 성 (Chateau de Chenonceau)
루아르 강 인근에 16세기 세워진 쉬농소 성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알려져 있다.
루아르 강의 지류인 셰르(Le Cher) 강 에 걸쳐있듯이 세워진 이 성은, 강물 위에 만든 5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기둥 위에 3층 건물로 지어 졌다.
쉬농소 성은 원래 11세기에 지어진 마르케 집안의 작은 성이었는데,
1513년 빚 때문에 노르망디 공국의 재정출납관인 ‘토마 보이에(Thomas Bohier)에게 팔리게 되었다.
토마 보이에는 1515년 이 성을 모두 헐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그러나 쉬농소 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토마 보이에의 부인인 카트린 브리소네(Catherine Briconnet)가 건축을 맡은 후였다.
1522년에 여성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성으로 완공한 후, 브리소네는 궁전에 드나들었고
당시의 프랑수아1세 왕도 쉬농소 성을 두어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토마 보이에 부부가 사망한 후에 쉬농소 성은 프랑스 왕실 소유가 되었다.
프랑수아 1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앙리 2세(Henri II)는 그의 애첩인 ‘디안느 드 프와티에(Diane de Poitiers)’에게 이 성을 선물하였다.
디안느는 앙리2세의 어릴 적 가정교사였는데, 20세나 연상이었다고 한다.
그 후 6명의 여성이 이 성의 주인으로 되면서 ‘여인들의 성’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한편 앙리2세와 정략결혼을 했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s, 1519~1589년)’ 왕비는,
앙리2세가 1559년 사고로 사망하고 8세의 셋째 아들(앙리3세)이 왕위를 이어받자 섭정을 하며 이 성의 주인이 되었다.
* 앙리3세(1551.9.19-1589.8.2)
1559년 누이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와의 결혼으로 열린 마상시합에서 부친인 앙리 2세가 참전했는데,
스코틀랜드인 근위대장인 몽고메리 백작 게이브리얼과의 시합에서 마창의 나무파편이 투구 사이로 들어가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해 10일 후에 사망한다.
그러자 메디시스의 아들 프랑수아2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어리고 몸도 약하여 처외삼촌인 기즈 공작 앙리에 의해 국사가 운영되었다.
그러나 프랑수아2세는 1560년 12월 귀에 발생한 종양으로 요절하였다.
그 후 셋째 아들인 앙리 3세가 15세가 되던 해인 1566년에 앙주 공작이 된다.
아들이 왕이 되면서 권력을 쥐게 된 카트린은 ‘쇼몽 쉬르 루아르’라는 성을 구입하여 교환하자는 핑계로
디안느를 그곳으로 보내고, 쉬농소 성을 자신이 차지하였다.
"셰르 강" 위에 걸쳐있는 길이 60m의 회랑은 카트린 메디시스가 이탈리아 양식으로 장식한 것이다.
지금도 쉬농소 성에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디안느 드 프와티에’가 만든 2개의 정원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이 성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쉬농소 성 입구인 매표소 앞
매표소에서 시작되는 가로수 길이 끝나는 곳에 쉬농소 성이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쉬농소 성
첫댓글 신데렐라가 왕자와 춤을 췄다가 유리구두를 놓치고 나온 그 성과도 흡사하구나!
용환이가 쉬농소 castle 앞에 서 있는게 여행객이 아니라 성의 주인장 같은데.. 방금 뒷편 숲에서 사냥을 하고 막 돌아온.. 불란서는 거대한 저런성들이 강을 따라 수백 채 나 있다니 골칫거리 일 수도 있겠다...
저기를 갔다 왔는데도 아래 저 강을 Cher 강이라고 부르는것을 몰랐네..
거의 혼자 다니고 용환이같이 꼼꼼하게 챙겨보는 버릇이 없었어.
가수 Cher 선조가 저 강 어디께 출신인 모양이군.
Cher도 이젠 많이 늙었는데 아직도 무대에 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