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엡 6:1-3)
유대인들의 지혜를 모은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세상에 보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이 세상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 세 가지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정원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이었고 두번째는 천진난만한 아기의 웃음이었고 세 번째는 그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는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왔을 때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꽃은 이미 시들어 추하게 되었고, 어린 아기는 자라서 훌쩍 커버렸고 단지 어머니의 사랑만은 여전히 아름답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 곁에 가서 있을 수 없으므로 대신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의 한없는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을 때 진정한 삶의 의미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가지만 부모님의 사랑보다, 부모님의 그 은혜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부모님의 사랑 덩어리요 은혜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약속있는 첫계명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1. 부모공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첫 계명입니다.
(엡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구약에 나오는 십계명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지켜야 할 신앙윤리입니다. 이 십계명은 내용별로 보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관계된 대신계명이고, 5-10계명까지는 이웃과 관계된 대인계명입니다.
그러니까 대인 계명의 첫번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입니다. 본문에서 십계명의 제 5계명을 왜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 하셨겠습니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관계된 대인 계명가운데 첫번째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껏 축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뿐 만 아니라 첫 계명이라는 것은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첫 계명이라는 것은 최우선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도덕 이상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계명은 준엄한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선하고 착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우리 부모님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길 수 있겠습니까?
요일 4:20에는“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육신의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의 신앙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은 일이란 말은 공동번역에는 마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 말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습니다만 오늘 본문 원문에는 <순종하라>는 말 뒤에 ‘왜냐하면’이란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종하라 왜냐하면 이것이 옳으니라. 왜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하나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뿐 만 아닙니다. 부모님 사랑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되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중에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 때문에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될 물질을 하나님께 다 드렸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을 가르켜 고르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렸으니 부모에게는 안드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말이 되는 논리입니까?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시대를 보면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현대문화를 가리켜 “탕자 문화”라고 지칭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마지막 시대를 알 수 있는 징조에 대해 디모데후서 3:1~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타락한 탕자의 문화가 팽배한 세대입니다. 타락한 탕자 문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대를 본받고 살아가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이 세대는 멸망을 향해 줄달음질 치고 있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기자들이 취재를 했는데 어떤 자식들은 부모에게 제주도 관광시켜 드린다고 모시고 와서 기억력이 없는 그런 노인들을 버리고 가서 제주도 양로원이 가득 찼다고 하는 기사였습니다. 기자들이 그런 노인들을 만나 자식이 누구냐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는데 오히려 그 부모들은 자기를 버린 자식을 두둔하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0년이 넘게 “내리사랑 올리효도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 김평일 장로님은 말하기를 “명절이면 얼굴만 살짝 내밀고 돈 몇 푼 던져놓고 가는 고약한 자식,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효도한다며 변명만 일삼는 사특한 자식, 바쁘다는 이유로 시골 부모님께 전화 한통 하지 않는 몰인정한 자식들이 많다. 이러한 풍조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대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뜻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분명한 말씀앞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 주고 진실로 사랑했고 변함없이 사랑했다면 그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부모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셨던 그 순수한 사랑이 바로 자녀를 향하는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랑, 저런 사랑, 많이 말하고 있지만 부모님의 사랑만큼 크고 위대한 사랑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는 형제간의 사랑입니다. 또 친구 간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형제간이든 친구간이든 한쪽이 지나치게 잘 되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게 되면 형제든 친구든 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시기하지 아니하는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랑은 자기 사랑이 우선합니다. 자기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배신할 수도 있고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사랑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식이 잘되든 못되든 부모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은 가장 큰 사랑이요,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아가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어떤 분의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참회의 글이 있습니다. 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 너머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이 한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이셨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마디 하시고 접견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후 아들은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무렵 형이 면회를 와서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놈아 아직도 정신 못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하고 말했습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받으셔서 찾아가 보니 엄동설한 추운 계절에 자식의 죄가 내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끊으시고 나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식의 죄와 어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 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군 부대가 이동하면서 숲속을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기러기 아빠들 보세요. 자식 공부 잘 시키기 위해서 부부와 떨어지고, 자식과 떨어져서 돈 버는 기계처럼 자식들에게 돈을 보내지 않습니까? 누가 이런 사랑을 하겠습니까? 이런 사랑은 부모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런 사랑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일이고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잉태했을 때 엄마가 자식을 보호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몸이 아파도 약을 먹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약을 먹으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잘못될까 봐서 열이 펄펄 나고 아파도 그냥 참지 내가 낫겠다고 약 먹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습니까? 음식도 아기에게 좋은 것을 골라서 먹습니다. 뱃속에서부터 온갖 정성을 다 해서 키우지 않습니까? 아기가 뱃속에서 먹는 피도 여러 말을 먹는답니다. 나와서 먹는 젖은 어머니의 흰 피라고 합니다.
이처럼 부모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물론 부모님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너무 큰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그 어느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 큰 사랑을 기억하고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효도해야 됩니까?
1)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진정한 공경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모를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사랑해 주지도 않았고 어린 시절에 제대로 공부도 못 시켜 주었고 고생만 시켰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낳아준 이 한 가지만으로도, 오늘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있게 한 것, 이 한 가지만으로도 조건은 넉넉합니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기를 '감사치 않는 자녀를 두는 것은 독사의 이빨보다 더 날카롭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실수가 있어도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 앞에서 실수한 것을 생각해야 하고 부모님도 참고 키워주셨는데 우리도 참아야 될 것입니다.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누워있거나 혹은 노병으로 거동이 불편할 때 우리는 부모님이 나를 안아서 키워준 것을 생각하고 안아 드려야 됩니다.
또 수저로 음식을 떠 잡수시게 해야 한다 해도 나를 기르실 때 수저로 떠 먹이신 것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옷을 입혀 드릴 때 부모님이 나를 옷입혀 주시고 키운 것을 생각하고 불평없이 해야 될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2)늦기 전에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언제 어느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조금 있다가 잘하겠습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어떤 목사님은 아버지가 평소에 너무 건강해서 아무 걱정없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하여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간암 말기라고 합니다. 몇 달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땅을 치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미루지 마세요. 늦기 전에 효도하세요.
3)진심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이 그냥 흉내만 내고 있는지 진심으로 하는지 부모님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모르겠습니까? 내 자녀들이 진심으로 하는구나. 모양만 내는구나. 다 알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진심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먼저 “부모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한번 해봅시다. “부모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전화로라도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꼭 하십시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부모님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늙은 어버이의 영광은 자식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것은 말로서 부모님께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연세가 들수록 더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예사롭게 던진 자식의 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부모님이 많이 있습니다. 말로써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십시오.
4)부모님의 육신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육신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육신을 편안하게 해드리려면 먼저 의식주를 돌봐드려야 합니다. 입으시는 것, 먹으시는 것, 잠자리를 편안하게 돌봐드리십시요. 이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십시요. 또한 육신을 편안하게 해드리려면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해드려야 합니다. 주기적으로 용돈도 드리고 건강도 돌봐드리십시요.
주기적으로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진도 해 드세요. 관절염, 치매, 암 등 질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식들 기르다가 이제 남은 것은 병밖에 없습니다. 부모님 건강을 잘 돌봐드리십시요. 연세 많으신 부모님이 자식에게 가장 하기 싫은 말이 아프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식에게 누가 되고 폐가 될까봐 아파도 아프다고 안한다고 합니다. 아플 때 잘 모시고 돌봐드려야 합니다.
5)부모님을 외롭지 않게 해드려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자녀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너무나 외롭게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외롭게 해드리면서 잘 살고 복받을 줄 생각하고 있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부모님께 하루에 한번 전화하시오”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자주 전화를 드리십시오.
6)믿지 않는 부모님을 예수 믿고 천국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부모님께 가장 큰 효도는 예수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사시는 것입니다. 또 믿는 부모님이라면 자식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례식에 갔더니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시신이 화로에 들어가는데 딸이 절규하며 우는 겁니다. “아버지 얼마나 뜨거울까? 우리 아버지 얼마나 뜨거울까?”
그런데 육신은 죽으면 그속에 있던 영혼은 육신을 떠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흙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영혼이 지옥에 가면 뜨거운 유황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믿지 않는 부모님에게 최고의 효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위해 힘써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천국소망 가지고 살아가시는 것이 자녀가 할 가장 큰 효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끝없이 사랑해주신 부모님이 구원받도록 눈물을 뿌려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만나뵐 수 있어야 진정한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효도는 하나님의 약속있는 첫계명입니다. 그 약속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 약속을 이루고 우리의 자녀손들도 그 약속을 이루는 복있는 가정을 이루셔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복있는 가정, 땅에서 장수하셔서 평생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