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산장에서 빌었다…“부디 고이 잠드소서”
파파로아 트랙의 또 다른 특징은 등산객과 산악자전거 애호가들을 위해 두 가지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뉴질랜드 위대한 올레길 열 곳 중 처음으로 생긴 기념비적인 일이다. 뉴질랜드 전국의 MTB(산악자전거) 애호가들에게는 하늘을 바로 눈앞으로 하고 달리는 산길이 열린 셈이다.
자전거 길은 56.2km, 등산길보다 1.1km가 길다. DOC는 최소 하루는 산장에서 숙박하길 권하지만 종아리가 완벽한 삼각형꼴을 갖춘 남녀 자전거족들은 열 시간도 안 걸려 주파하곤 한다. 자전거족과 등산객이 길에서 만났을 때 우선순위는 무조건 등산객에게 있다. 탈것(vehicle)의 힘을 빌려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보다 온전히 두 발의 힘으로만 전진하는 등산객의 마음이 더 숭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장 나서자 미스코리아 다리 같은 늘씬한 능선 나타나
둘째 날 구간은 세스 클라크 산장에서 달빛산장(Moonlight Tops Hut)까지 9.7km, 3시간 거리다. 산길에서 한 시간에 3km를 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편한 길이라는 뜻이다.
이런저런 게으름을 피우다 느지막하게 아침 열 시가 넘어 남자 1, 2의 뒤를 따라 산장을 떠났다. 날씨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가을 배를 서너 조각째 벤 것처럼 맑았다. 뉴질랜드의 늦은 여름과 이른 가을을 동시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산장을 나오자마자 미스코리아 다리 같은 늘씬한 능선이 나타났다. 해발 1,100m를 오르내리는 평탄한 길이 내 앞에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 능선 양 옆으로 확 뻗어 있는 신비한 숲의 세계가 나를 유혹했다. 배낭을 낙하산 삼아 쭉 날아내려 가면 넓은 품으로 나를 꼬옥 안아 줄 것만 같았다.
하늘에는 토끼 귀만큼의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이 멋진 자연 길을 나 혼자 걷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달팽이처럼 걸어도 숙소에 오후 4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주 쉬고, 간식도 더 오래 먹었다. 큰 배 한 개가 성에 안 차 또 하나를 먹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공기가 내 폐부를 감쌀 즈음, 멀리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전거족들이었다. 여섯 명의 자전거족은 얼굴에 ‘영차영차’ 하는 표정의 힘을 줘가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허벅지를 훔쳐봤다.(다들 남자였다) 마동석 뺨칠 근육을 과시하고 있었다. 파파로아 트랙이 자전거족이 이용할 정도로 쉬운(?) 길이라고 해도 산길은 분명 산길이다.
‘아차 하면 저세상 길’…그 길을 자전거로 달려
내가 3박 4일 동안 55.1km를 걷는 동안 아차 하면 저세상으로 갈 수도 있는 길이 수십 군데 보였다. 근데 그런 길을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제 몸도 아닌 자전거로 달린다(걷는다, 가 아니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게다가 비까지 거세게 내린다면….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파파로아 트랙을 걷는 중에 서른 명 정도의 자전거족을 만났다. 서너 팀은 친구 사이 혹은 동호회같이 보여 안정감 있게 느껴졌지만 이십 대 아가씨 자전거족이나 일흔에 가까워 보이는 할배 자전거족이 홀로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는 경외감과 함께 안쓰러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 열 곳을 걷거나 노를 저으면서(왕가누이 저니는 발 대신 노를 사용해 움직인다) 유독 애정을 가진 대상은 나처럼 홀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홀아비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그들 마음도 나랑 다르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모든 인간은 개체로 왔다가 개체로 간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들도 나처럼 그 개체의 고독과 자유를 철저하게 즐길 뿐이다.
DOC의 도움말을 무시하고 세 시간 거리를 다섯 시간에 걸려 달빛산장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양옆으로 펼쳐진 전망이 황홀해 빨리 걷는 게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셋째 날(DOC 안내 책자에는 둘째 날 구간)은 더 환상적이라는 데 오늘 죽어도 좋은 기분을 하루 더 연장해야 하는 홀로 여행자의 야릇한 기쁨을 따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산장 난로에는 석탄 넣은 불이 훨훨 타올라
산장 안은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피운 난롯불 덕에 포근했다. 파파로아 트랙 산장은 다른 올레길 산장에 견줘 독특한 점이 있다. 장작 나무에 더해 석탄을 연료로 쓴다는 사실이다. 트랙 주위와 숲에 널려 있는 게 ‘검은 금’인 석탄이다. 장작과 석탄이 활활 타오르는 산장의 밤, 그사이에 피어나는 등산객들의 정겨운 사람 사는 이야기…. 삭막한 문명 세계에서는 찾기 힘든 아름다운 밤 풍경이다.
저녁을 먹고 산지기와 함께 하는 대화 시간(hut talk)을 가졌다. 산지기는 20대 중반의 여자, 이름은 알렉스(Alex)다. 아담한 체격에 옅은 보조개와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일품’이었다. ‘달빛산장’(Moonlight Hut)에 딱 어울리는 산지기였다.
달빛산장. 참 낭만적인 이름이다. 하늘 ‘아래로’ 달이 떠오르고 그 달을 보며 그 무엇을 소원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을 머금고 있다. 1865년 이곳 인근에서 금을 발견한 조지 문라이트(George Moonlight)를 기념해 지었다. 조지는 손으로 길을 다져 초창기 파파로아 트랙을 만든 개척자(frontier)로 평가받고 있다.
걸음걸이조차 하늘하늘한 알렉스를 따라 달을 보러 산 위로 올라갔다. 뉴질랜드 위대한 올레길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달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짙은 구름에 가려 예쁜 달님 보기는 실패했다.
출발할 때는 오붓한 가랑비로 시작했지만
산지기가 어젯밤에 전해준 무시무시한 말은 다음 날 아침 현실이 되었다.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간밤에 산지기는 ‘어쩌면’ 산행을 그만 해야 할지도 모를 비바람이 몰아칠 거라고 겁을 줬었다. 가냘픈 체격에서 그런 위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자연도 냉정했지만 산지기도 그에 못지않았다.
나를 비롯해 산장에 머물던 등산객 열댓 명은 동이 트자마자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오늘 걸어야 할 달빛산장에서 포로라리 산장(Pororari Hut)까지의 19.1km, 5~7시간 구간은 파파로아 트랙의 ‘황금길’과 같은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말할 경우 비를 맞으며 걷거나 달린다면(자전거족) ‘지옥길’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여덟 시간을 걸었다. 간식이나 점심도 산속 동굴이나 큰 바위에 기대 때웠다. 출발할 때는 오붓한 가랑비로 시작했지만 산장에 도착할 때는 장대 같은 소낙비를 맞으며 몸을 풀어야 했다. 당연히 파파로아 트랙의 상징 같은 ‘론 핸드’(Lone Hand)도 감상하지 못했고, 열두 폭 병풍을 펼친 듯한 창조주의 대작도 즐기지 못했다. 그저 ‘무사히, 살아서 도착해야지’ 하는 맘뿐이었다. 론 핸드는 파파로아 트랙 안내 책자에 꼭 나오는 손 마디 모양의 절벽을 말한다. 돌로 된 빨래판 같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빗길 산행이라도 명색이 글쟁이 등산객인데 하루 여정의 추억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비 때문에 다른 것은 거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19.1km 구간 곳곳에 드러나 있었던 파파로아 트랙 공사의 흔적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직 채 챙겨가지 못한 중장비들, 짓다 만 대피소, 버려진 삽과 철판 더미들.
파파로아 트랙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공사 ‘중’이다. 2020년 3월 공식적으로 등산객을 맞았지만 지금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트랙 길은 완성했지만 중장비 같은 공사의 유물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공사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동영상을 봤다. 거센 비와 흉흉한 눈보라를 헤치고 55km 산길을 만든 노동자님들의 노고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안개를 머금은 나뭇잎 습자지처럼 사각거려
비옷을 뚫고 들어간 빗물은 바지와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적셨다. “중간에 되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날 알렉스가 한 말이 겁으로 끝난 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산장에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지펴 놓은 화롯불이 신나게 타오르고 있었다. 빗속 전투를 무사히 끝낸 등산객들의 옷과 모자들이 빨래걸이에서 김을 뿜었다. 내 몸을 지켜준 옷가지를 그사이에 걸쳤다.
비는 밤새 내렸다. 피곤함에 절어 쥐 죽은 듯이 잤다. 아침이 되자 신기할 정도로 날이 개어 있었다. 어제 못 뜬(아니 안 보인) 반달이 하늘 위에서 나를 보고 인사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숲속 나무 떼가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안개를 머금은 나뭇잎이 습자지처럼 사각거렸다. 비 온 뒤 맞는 자연의 오묘함이었다. 이 맛에 빗길을 걷고 또 새 아침을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구간은 포로라리 산장에서 와이코리 길 주차장(Waikori Road Car Park)까지 16km를 4~5시간 걸으면 된다. 포로라리강(Pororari River)을 아래로 하고 쭉 걸어가는 길이다. 난이도는 중급 아래. 나 같은 초보 등산객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래도 오후 2시에 나를 데려갈 셔틀버스가 오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포로라리강은 웨스트 코스트에서 금광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이곳 물을 바라보며 크로이시스같은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고자 했던 곳이다.(금은 강에 있는 바위와 돌속에서 나오기도 한다.) 파파로아 트랙 끝부분에(뒤집어 말하면 첫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하루짜리 등산객(Day Tramper)을 위한 산길이 여러 곳 있다. 다 초창기 광부들이 걸었던 역사적인 길이다. 개척자의 길(A Frontier Track)도 그중 한 곳이다. 이런 길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진다.
29명의 광산 폭발 희생자 추모길…“부디 고이 잠드소서”
파파로아 트랙은 이곳 깊숙한 곳에 있던 파이크 리버 광산(Pike River Mine)에서 가스 폭발 사고로 죽은 29명의 광산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길이다. 뉴질랜드 정부(DOC)가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영원히 기리겠다며 유가족의 요청을 받아 세웠다. 그분들의 희생 끝에 우리는 또 하나의 귀중한 자연 선물(Great Walk)을 받았다. 그들의 몸은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정신은 우리에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Rest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