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 모래섞인 흙땅에서 첫날의 미사가 열리던 관산동성당의 아침나절은
분주하기만 하다.
검은 채양이 쳐진 앞마당엔 여기저기 줏어와 제각각 모양의 의자들하며..
건너편 루시아성님네 대문밖 길가엔 이백여개 국수그릇들 나딩굴고...
봉일천, 고양동. 성당 남정네. 아낙네들 가난하면서도 신나 돌아다니고..
까만 헬멧에 오토바이 타고 나타나신 고등학생 나이?의 신부님과 미사를 올린다.
하필이면 그날이 우리 리노 첫돌생일과 겹친날이라 할매는 국수말아 준비하고
리노애비는 고장난 풍금에앉아 반주를 하며
좋기도 좋을씨고~의 가락으로 우리 하느님을 찬양하며 불러대던 노래가락들
또한 우렁차고 설레었다.
100 사람에게 떡을 돌리면 아가가 오래산다는 옛날 속설을 생각하며
300개의 첫돌 떡을 나누어 먹었으니 우리리노는 참말로 오래오래
무병장수할거란 기쁨이 함께 했던 관산동 성당 첫날의 미사는 가히
그날의 사람들 모두의 기억에 남아있으리라.
"여러분! 성당도 지어야 되고., 구역도 나눠야 되고... 이것도 저것도
준비해야 되니 미사 봉헌예물도 많이 해 주길 바란다며
"미사열번 봉헌하는 사람은 한번은 공짜로 해준다며
중국집 짜장면도 열개 시키면 한개는 서비스로 주는데 우리 성당도
미사한번 서비스로 해준다며 온 마당을 박장대소케 하던 초대 정석현 신부님!
지난주 백발의 더벅머리가 되어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실때...
눈물 한방울 맺혀 아린 마음으로 그날의 첫미사 마당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고. 저쪽 귀퉁이엔 성가대몇몇이 어우러져 하느님 찬양하고,
낯이 설은 성님들은 쭈뼛거리며 서먹해 앉아 두손모으고.
앞치마 걸친 아낙네들 미사하며
점심준비 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눈이 푹푹 빠지는 천막성당앞 을 치우면서 "시커먼 내복소매 들어보이며
'엄청 따뜻한데 우즈베키스탄인가 하는 데서 누가 선물로 줬다나. 샀다나...
8천원짜리랬든가 하시면서.... 소탈하게 웃어대던 신부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좁아터진 사무실안에 노인네들 다 밀어넣고
우산쓰고 기어이 평일미사를 드리고야 마는 신부님...
추운 겨울날 제대로 된 온기도 없이 혼자 천막수박성당 지키실 신부님이
걱정되어 밤마다 한바퀴 돌아 오던 퇴근길의 리노할배...도 보인다.
오늘의 관산동 성당 을 짓기위해 주일마다 다른 성당에 모금나가시며
"앵벌이"? 갔다온다며 힘듦과 싫음도 내색않으시고 독수리처럼 뛰어도 날아도
지칠줄 모르던 철인같던 모습도 생각난다.
성탄이 다가오는 겨울날의 천막성당 화덕엔 언제나 신부님이 구워내는
군고구마와 노가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을 녹여주고 안아 주었던가..!.
아우먼저.. 형님먼저.. 신부님 먼저.. 아이들 먼저.... 손사래치며
나눠먹던 온정의 시간들 속엔 그날의 모두는 피를 나눈 가족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누고. 다독이고. 감싸안고. 위해주며 함께 웃고, 아파하고, 울어대던
모두의 수고와 인내로 근사한 성당이 지어지고
봉헌식을 마치고 그렇게 정석현 베드로 신부님은 떠나가셨다.
올때와 같이 갈때도...
까만 헬멧하나에 탈탈이 오토바이 쌩하니~ 타곤
"잘들 계세요~~" 부르릉~~!! 하고
리노할매는 처음부터 베드로신부님이 참 좋았다.
꾸밀줄 모르고... 터프가이 같고... 성실한 주님의 청지기같은 그분의
삶이 너무 좋았었기에 개인적으론 또 아픔도 겪어야 했음을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용서청하며 그분앞에 고개 숙였다.
"신부님! 많이 사랑합니다" 했더니
"사랑은 서방님한테 하는 거예요" 라며 여전한 장난기 발동하시며
의지의 하느님 사람 으로 살아가시는게
참 고맙고.....
든 든 하다!!
"정석현 베드로 신부님!
리노할매는 신부님이 참 좋습니더....
더벅머리 백발의 삽살이 모양새라도...
꼬질꼬질 김칫국물 튄 셔츠를 입고도 별거아니란 표정을 짓더라도...
화덕속 숯검댕이 얼굴에 붓칠한줄 씨~익 했어도....
사 랑 합 니 다~~~~!!
아멘
작성자 : 이명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