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에 자장매가 만개했다는 소식에 통도사로 향한다.
날씨는 3°~8°C로 춥지 않은 날씨에 맑게 개어 깨끗한 홍매화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렸다.
영남알프스를 형성하는 산정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는데 통도사의 자장매는 벌써 절정을 지난 듯이 보인다.
통도사로 들어가는 숲길 무풍 한송로에는 소나무들이 휘영청 기울어져 명품 숲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통도사는 불보사찰로 해인사(법보사찰), 송광사(승보사찰)와 더불어 삼보사찰로 80여동의 전각과 20여개의 부속암자가 있는 대가람이다.
한국의 불교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정신의 함양과 법맥을 이어와 오늘의 위치에까지 이르렀음이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인 당우의 처마끝에 서려있다.
통도사 일주문 입구 부도전
통도사 석당간
통도사 일주문
통도사 입구 무풍 한송길의 운치있는 풍경
극락보전 앞의 홍매
자장매
자장매
극락보전 앞의 홍매와 백매
자장매 앞에 누구인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를 모신 유교식 삼문 사당
발우를 형상화한 특이한 봉발탑
통도사를 품은 영축산의 산세
경봉대선사가 오래도록 주석하고 수도했던 극락암 삼소굴 앞의 매화는 이제 벙글기 시작한다.
경봉대선사의 임종계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에서 대문 빗장의 화두는 무엇일까.
극락암 오르는 길의 휘어진 소나무숲
바랑을 메고 극락암 여여문을 들어서는 스님. 여기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극락암의 홍매
삼소굴 앞의 매화는 벙글어진 것도 있고 막 개화를 한 것도 있고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짓기 전 창건한 자장암 뒤편에는 바위구멍에 산다는 금개구리(금와)보살의 영상을 볼 수 있도록 QR Code를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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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https://m.site.naver.com/1dVAu 를 클릭하면 금와보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사찰급 규모인 서운암은 16만 도자대장경이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고 절마당에는 성파스님의 나전옻칠 울주반구대암각화 형상이 수중설치되어 있다.
판매하기도 하는 서운암 된장, 고추장을 담는 장독대가 햇빛에 반짝이고 공작새 무리가 방사되어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닌다.
나전옻칠 울주 암각화 수중 형상
16만 도자대장경 장경각
고추장, 된장이 익어가는 장독대
자연 방사 공작새
통도사를 옆으로 돌아나와 안양암, 극락암, 삼소굴, 자장암, 서운암을 거쳐 내일의 김해, 함안고분군 답사를 위해 김해로 이동한다.
김해에 도착해서는 분산성을 오른다.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분산의 정상에 있는 산성으로 금관가야가 신라에 대적하여 쌓은 것이 아닐까 한다.
최근에 성벽을 복원하여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돌들로 거친 표면을 이루고 있다.
성벽을 따라 만장대의 봉수대, 해은사를 돌 무렵 서산에 해가 지고 헝클어진 나뭇가지에 걸린 태양은 마치 헝클어진 세상을 비추는 듯 산그리메 위에서 빛나고 있다.
이 노을은 허왕후가 인도를 그리워하며 봤다고 하여 왕후의 노을이라고도 불린다 한다.
저. 멀리 낙동강이 보이는데 이쪽 평야의 상당 부분은 가야시대 바다였고, 따라서 금관가야는 활발한 해상교역의 중심지였다.
또한 금관가야는 철의 생산이 앞선 수준이었고 김해(金海)라는 지명도 쇠 금(金)을 포함하고 있다.
김해의 동쪽을 흐르는 낙동강(洛東江)은 가락국(駕洛國)의 동쪽 강이라는 해석도 있다.
분산성
분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김해
분산성 봉수대
해은사 산신각 뒤편 파사석탑. 허왕후와 오빠 장유화상의 이야기가 전한다
해은사에서 바라보는 낙조. 헝클어진 세상사를 둥근 해가 감싸는 듯하다
이튿날이 밝았다.
학창시절 가야 혹은 가락국은 한 줄 역사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삼국시대에 엄연히 존재했던 가야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지내왔다.
가야는 고서에 의하면 이름이 32개나 될 정도로 다양한데 삼국유사에 여러 개의 ○○가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삼국사기, 삼국유사, 중국 삼국지 위서동이전, 일본서기 등에서 다양한 명칭이 등장하는데 기술의 객관성, 사실성 등에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고대 한반도의 부족국가 또는 연맹체들이 그만큼 역동적이었음을 시사한다.
2023년 9월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세인의 관심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야고분군을 답사하게 되었다.
7개 고분군 중에 전북 남원( 운봉가야), 경북 고령(대가야)을 제외한 나머지 5군데가 경남에 산재되어 있고 이번에 김해(금관가야), 함안(아라가야)와 더불어 지난 주 고성(소가야)을 포함 3군데를 답사한 셈이다.
역사는 실존했던 과거의 회고록이라 볼 때 기록과 유물로 그것을 가시화할 수 있을진대 기록은 제한적인데 반해 이번에 답사하게 된 유물의 다양함과 충실함을 박물관 견학을 통하여 신선한 충격으로 알게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눈에 익은 삼국시대의 유물에 비해 눈에 그려지는 유물이 거의 없는 가아 유물, 첨성대를 만들었던 신라 27대 선덕여왕때보다 불과 1세기전까지 존재했던 가야, 어찌 숨겨졌던 유물이 적지 않지 않겠는가.
김해, 함안, 고성 모두 가야박물관이 있고 2군데 국립박물관을 제외하고 함안은 군립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20년의 연혁과 진품 부장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가야, 그 역사속에 인간이 살았고 그 인간의 삶과 연유되어 이웃 국가와의 문물의 교류, 문화의 영향 등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분야는 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함을 느끼며 여기에서는 그 필요성을 박물관 견학을 통하여 인식했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저 생생한 가야의 유물이 찬란한 문화의 역사를 웅변해주건만 여태 눈에 익지도 않은 상태로 세월을 보냈다니.
김수로왕릉
제례복 차림의 김수로왕의 후손
허왕후 왕비릉
파사석탑 관련 QR code. QR 검색하면 내용이 나온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대성동고분군에 있는 대성동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과는 별도의 시설이다.
대성동 고분박물관의 발굴 부장품 모습
국립김해박물관
김해박물관의 전시 유물들
눈에 익지 않은 가야의 문화가 오롯이 펼쳐져 있다.
토기, 철기 등 유물을 한꺼번에 눈인사하시길
각 고분에는 발굴 내역이 안내되어 있다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탄생비화가 있는 구지봉의 거북고인돌.
거북이 목을 내밀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다음 사진은 함안의 아라가야 관련 유물이 이어진다
가야고분의 발굴은 이미 일제시대 일본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후 조선인들에 의해 다시 도굴되었음에도 1970년대쯤부터 체계적인 발굴의 계속으로 상당한 부장품이 발굴되었고 그 예술적, 문화적 면면을 이제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다.
부장품 중에는 중국, 일본의 유물도 있어 활발한 고대 교역을 추정할 수 있고 거기에는 금관가야, 아라가야가 철의 수출을 위시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문명이 대개 그러하듯 교통과 통신이 현대와 달리 열악했던 시기에도 활발한 문물교류의 흔적이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는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지구 위의 모든 고대국가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앞선 수준의 토기와 철기 전시물, 장신구들이 박물관의 조도 낮은 조명 아래에서 1,500년 이전의 오래 된 지하에서의 침묵을 조용히 깨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부장품에 대한 상세 해설은 여기서 첨부를 생략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살아있는 풍부한 스토리로 새겨두고자 한다.
가야는 왜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삼한, 삼국시대 농경사회는 철기가 발전하면서 병장기도 진전하여 나라간 정복전쟁으로 이어진다.
서기 400년에 금관가야, 왜, 백제와 연합한 군대는 신라를 공격하고 신라의 요청을 받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남하하여 왜를 추적하고 임나가라 종발성에서 성이 귀순했다고 중국 지안성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는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금관가야도 광개토대왕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이후 금관가야는 쇠약해지고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532년 항복, 562년 대가야 멸망으로 되어 있는 바 역사속으로 사라진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제시대 일본이 발굴한 가야고분의 부장품들은 일본으로 건너갔을 터인데 이제 우리가 반환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
대영제국이나. 프랑스박물관이 이집트, 그리스를 비롯한 타국에서 탈취하다시피한 유물들을 버젓이 자국의 소유로 치부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병인양요로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의궤는 영구임대방식으로 고국으로 돌아왔건만.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의 시대적, 지리적 경계가 모호한 면이 있고 중첩되는 면도 있는 고대사, 변한이 가야로 발전했다는 이론 등 정돈되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1~6세기 실존했던 가야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확인하는 수준에서 가야고분 답사를 마무리하며 침묵했던 역사, 미지의 역사를 보려면 "가야에 가야 해"로 말하고 싶다.
군립함안박물관
출입구 위에는 토기에 낸 동그라미, 네모, 세모를 지나 불꽃모양 구멍을 냈던 것을 형상화했다.
함안 아라가야의 유물들
일제의 도굴을 딛고 발굴을 이루어내었다
해설에 귀 기울이는 무심재 학생들
눈으로나마 숨어있던 가야유물과 인사하기
일부는 사진을 확대하면 해설을 읽을 수 있다.
함안 성산산성 발굴 시 연못에서 발견된 700년 된 연꽃씨로 연꽃 피우는 데 성공한 아라홍련
배모양 토기도 발견되어 가야는 주변국과 철 등의 교역이 활발하여 조선술과 항해술도 발전했을 듯 싶다
아라가야 말이산고분군 4호분의 구덩식돌덧널무덤
피장자의 아래쪽에 5~6명의 순장자의 유골이 반켠되었다.
가야를 비롯하여 삼국시대, 중국, 인도, 이집트, 유럽 등 고대에는 절대자의 사후 매장에 죽음 이후에도 시중을 들게 할 목적으로 살아 있는 남녀를 숨을 끊게 하여 순장을 지냈다.
사후의 세계가 영원하다는 믿음 앞에 천부인권의 설 자리는 없었던 시대도 인간의 시대였다.
함안 아라가야 말이산고분군
첫댓글 문항님!!!
아라가야인들의 역사를
머리속에 쏙쏙 ~~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덤으로 본 자장암의 금와보살보러 한번 더 가봐야겠죠
고생하셨어요
언제 미리별님과 좌고우면합시다
더 깊이 있는 내용은 알지도 못 할뿐더러 자료정리해서 올리면 글이 한정없이 길어질 주제입니다.
몰맀던 가야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데에 위안을 삼습니다.
좌고우면막파로 저변을 확대하면 장수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좌측에 고기
우측에 냉면
막걸리에 파전.
이렇게 길게~자세하게 사진까지 첨부해서 올려주신 후기라니~~
감사하고 감동입니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돌아보니 당췌 요약되어지지않는 역사공부 ㅠㆍ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연식이 된관계로 ᆢ관심을 가지고 수시로 들락거리며 다시 보겠습니다ㆍ
수고많으셨습니다~~~
좌고우면이라ᆢ
역사책에 쓰여진 고귀한글인줄ᆢ
아이구야~~
그런뜻이었군용ㅎㅎ
한국을 떠나기 전(?) 후다닥 글을 썼습니다.
역사는 그 실체가 복잡하고 다면적이어서 정돈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야라는 잃어버린 왕국을 문틈으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데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화려한 자장매 등의 매화를 지나 가야의 역사를 펼치심에 엄지척 합니다.
현대인의 잣대로만 평가하면 그 옛날의 과학과 예술 등이 뒤떨어졌을거라 여기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는 문명을 수많은 기록들과 당시의 유물들에서 보여줍니다.
다른나라를 침략해서 가져간 유뮬등에 대한 반환운동은 심사숙고해서~~~
가려진 왕국은 더 큰 왕국들의 위세가 있었고 역사의 기록들이 그쪽으로만 유도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
호기심과 모험이 필요하고 직접 가야만 알 수 있는 역사의 발자취 여행에 동의합니다.
좌측에 고기 우측에 냉면 막걸리에 파전에 손을 번쩍 들어 적극 재청합니다~^^
유물해석과 기록분석에 유추와 추정이 더해질 역사해석, 가야사는 더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랄 것 같습니다.
다음 번 가야고분 답사(창녕이든, 합천이든, 고령이든, 남원이든) 일정이 나오면 "가야에 가야 해!"를 외칠 것 같습니다.
가야가 멸망한 562년에서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98년 동안만 삼국시대이고 나머지는 사국시대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좌고우면은 빼고 그냥 막파만 있어도 젓가락 한 모만 더해도 좋을 때가 언제 올까요?
수고 하셨습니다
통도사 가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그냥...
아쉬운 마음 문항님의 글로 달래보았습니다
통도사의 매화 가슴이 설레입니다
미쳐 몰랐던 유물들을 보며 역시 문항님의 후기는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가야에 가야해 ㅎㅎㅎ
그렇게 하겠습니다
겨울이면 겨울, 봄이면 봄, 초로기님이 떠도는 그 어디든 아름다운 산하를 기록하는 둘째 손가락의 감각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좋은 신발 신고 부지런히, 건강하게 이땅을 누비실 초로기님을 응원합니다.
무심재 선생님께서도 그분의 詩! '안데스로 가는 길'에서
'가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다네
가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노래할 수 없다네... '라고 말씀 하셨지요.
통도사 매화와 함께 답사하신
세계문화유산 가야 역사기행!
과연 문항님의 말씀 대로
"가야를 가야 해"
가야를 가야만 이렇게 글도 남기고 사진도 남기고,
가보지 못한 많은 분들께 전해드릴 수도 있겠지요.
그 중의 한사람으로 읽고 보고 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요약해주셨는데,
요약하신 후기 또한 방대해서
세 번을 읽고도
가야를 상상만 할 뿐!
노래처럼 스쳐 지나갈 뿐!
멋진 말씀만 마음에 새겨지네요.
"가야를 가야 해"
그곳에 가더라도 문항님처럼 후기 남기는 일은
어려울 거라 생각됩니다.
머리에 지진 날 듯하니까요.
답사 후기는
이런 식으로 남기는 거라는 모범을 보여주시고,
여러 번 미소 짓게 하신 문항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가야고분 박물관에서 유물의 세세한 특징이나 모양, 색채 등은 스쳐지나가며 보는 상황이어서 깊이 있는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고 역사라는 은밀성을 추적하기에는 지식의 한계로 추후 가야를 더 들추어보아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관점의 접근은 포기하였습니다.
각 유물의 해설도 사진을 찍었으나 반영하지는 못했습니다.
친구 중에 적지 않은 나이에 국사공부를 하여 국사급수 자격을 딴 친구가 한동안 페북에 가야에 대하여 올렸는데 그때조차도 깊이 읽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할 수는 없지만 더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항님 덕분에 가야답사 복습 지대로 하고 갑니다 비오는 날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가야답사는 처음 이었지만
너무 의미있고 보람된 시갼들이었어요
함안가야박물관 해설사님의 열정
가득한 해설도 잊을 수가 없을듯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가야에 꼭 가야해를 외쳐봅니다
정성 후기 수고하셨어요 🫡
아직 못 가본 가야고분군이 4군데(율리만님은 5군데) 더 있는데 무심재님이 계획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고분의 정비도 잘 되어있지 않을까요.
백제와 일본의 이야기를 다룬 최인호의 소설 "잃어버린 왕국"에 어쩌면 가야의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봅니다.
당시 일본과의 교역은 백제보다는 가야가 앞섰을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