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p> 판소리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one man's opera 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음악의 표현양식이 독특하고 합리적이며 수준이 매우 높다. 한 사람의 작곡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명창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발달한 음악이기 때문에 지금의 판소리도 고착된 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그 시대에 맞는 현재형의 판소리를 형성하면서 발전해 갈 음악이다. <p>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한 사람의 명창이 고수 한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연출하는 공연물인데 판소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판소리를 들으면 모두 "얼씨구" "조오타"를 연발하며 좋아하게 되는 인기 있는 공연물이다. 한국 현대화의 과정에서 판소리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오늘날 판소리를 좋아하는 인구는 엄청나게 많고 판소리를 전공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수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판소리가 이렇게 대단한 생명력을 가지고 다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판소리라는 음악 그 자체에 큰 매력과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p> 그렇다면 그런 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은 무엇이며, 어떤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발전하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어떤 음악언어를 가지고 어떤 표현양식을 발전시켜 왔는지, 그리고 판소리의 표현양식이 이상으로 하는 세계는 무엇이고 판소리의 발성법은 어떤 것인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다. 짧은 시간에 판소리 음악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몇 가지 문제만이라도 살펴보기로 하겠다. <p> Ⅱ. 판소리의 토양 <p> 지금은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 동안의 판소리는 철저히 자생력에 의해서 발달되어 왔다. 판소리의 자생력이란 결국 소리하는 사람(광대)들과 그 소리를 소비하는 서민 대중들과의 사의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변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성악적인 방법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니까 그것을 발달시킨 수요자의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판소리는 수요자인 우리들이 옛날 얘기와 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소리' 또는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요소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p> 그런데 이런 음악의 생성발달은 철저히 자연 발생적이고 우리의 생활이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누구의 특별한 아이디어나 국가적인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요자인 일반 대중과 공급자인 음악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성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p> 그래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보형 같은 학자는 판소리가 '판놀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각기 '소리'나 '춤' '줄타기' 등을 한판씩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의 예능을 '판소리' '판춤' '판줄'과 같이 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도 판을 짜서 한판 노는 농악을 '판굿'이라 하고 그런 식으로 추는 춤을 '판춤'이라 하고 그런 식의 염불을 '판염불'이라 하니까 '판소리'도 한 판으로 짜서 판놀음에서 부르던 소리라고 하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p> 그런데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무가(巫歌)기원설이다. 무당들이 하는 굿에는 서사적인 내용을 노래도 연출하는 무가가 많이 있다.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도 그렇고 경기 도당굿의 '손님굿'도 그렇다. 진도 씻김굿의 '제석굿'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긴 이야기를 노래로 연출하며 듣는 이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또 무가를 부르는 형태가 경기도와 전라도의 서사무가는 판소리 하는 것과 비슷하다. <p> 특히 경기 도당(都堂)굿의 경우는 남자 무당이 북 장단에 맞추어 무가를 하는 것이 판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형태로 보일 정도이다. 전라도 굿을 많이 본 사람들도 '판소리는 굿에서 왔을 것'이라고 느끼기 쉽게 되어있다. 서사무가의 연출방법도 비슷하고 음악적인 내용도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명창 대부분이 전라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p> 하긴 판소리는 전라도 무속 출신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무속 출신 아닌 사람이 판소리를 할 경우 '비가비(非甲)'라 하여 실력을 낮추어 보려는 경우가 많은데 권삼득처럼 '비가비'이면서도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되면 '양반광대'라고 하여 높여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비'란 동류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 동류란 무속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판놀음 기원설'도 있고 '무가 기원설'도 있는데 또 다른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p>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사회 시절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연해 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직업인이었다고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연출 솜씨도 대단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말로만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도 짓고 춤도 추고했을 터이니까 그런 것이 발전하여 판소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p> 하기는 나도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그런 이야기꾼들의 구연 솜씨는 대단하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바로 판소리로 연결 될 수 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판소리는 그렇게 이야기라는 문학적 요소와 노래라는 음악적 요소와 연출이라는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져 발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 이처럼 우리 서민 대중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는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판소리를 음악으로 연출할 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리'와 '소리'인데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하여야 하고 '소리'도 전라도의 민요 토리인 육자백이 토리의 계면조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자생하고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p> 실제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심지어는 국악은 곧 판소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82년도에 전남대학교에 국악과를 만들고 초대 국악과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라도 시골에 민요채집을 가서 "저는 국악하는 사람 최종민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러먼 판소리 잘 허시것네요"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만큼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국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p>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는 정도는 대단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판소리 판이 벌어진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전주 대사습이나 남원 춘향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데 그 들 대부분이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라고 보아도 된다. 전주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판소리를 들으며 뿜어내는 열기는 자연 "얼씨구" "조오타"와 같은 추임새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추임새 하는 수준이 서울의 국악과에 다니는 학생들 보다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향제 때에 남원 광한루원에 모이는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심청가의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흥겨운 중중모리 장단이 나오면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p>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안목도 대단히 높다. 그래서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판소리 명창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안다. 그러니까 자기 자녀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사람도 많아져서 오늘날의 판소리는 전라도 출신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간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결국 판소리의 발달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연극'등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공연물로 가꾸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음악적인 안목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p> Ⅲ. 판소리의 큰 흐름 <p> 판소리는 시조나 가곡처럼 혼자서 유유자적으로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소릿군이 청중을 대상으로 소리를 파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노래이다. 시조나 가곡 같은 노래들은 청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개인의 수양이나 교양을 위하여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수양과 관련되는 철학과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며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사특한 마음과 욕심을 버리도록 하는 그런 음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 <p> 이런 노래와 달리 판소리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수양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상품의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공급자인 소리광대가 수요자인 청중을 상대로 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온 것이 판소리라고 보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네의 음악작품은 서양의 음악작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모하면서 발달했으니까 판소리의 작품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발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발달한 판소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하는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 영조30년 1754)에 "가사 춘향가 2백귀"라는 것이 있고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때의 문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에 판소리나 줄타기 땅재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18세기 무렵이나 19세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판소리가 불리어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p> 그렇다면 판소리라는 공연물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왔을까?. 국가가 장려하는 음악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패트론(후원자)이 있었을 턱도 없고 순전히 서민 대중들을 상대로 소리를 팔면서 살아야 하는 광대들이 어떤 소리를 어떻게 하면서 판소리를 발달시킬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나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그런 과정을 재구성해 볼 수밖에 없다. <p> 초창기의 판소리는 사설이 재미있고 곡조가 민요와 비슷한 간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때의 재미있는 내용이란 대개 음란한 얘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기는 음란한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교적인 덕목으로 낙이불음(樂而不淫)한 것이 좋다고 하는 생각도 뒤집어 보면 정말 즐거운 것은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것을 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수양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p>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 일반 대중들이 척 들어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좀 음란한 내용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그런 내용의 얘기를 실감나게 하면서도 노래의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 각색하여 들려주었을 것이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나오는 열두 마당 중에서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춘향가를 비롯하여 배비장전·변강쇠타령·강릉매화전·왈자타령등인데 그 내용의 야한 정도는 당시가 유교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p> 그런 야한 얘기나 횡재하는 얘기, 신선의 얘기 등 그 당시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들려줌으로서 한 바탕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마음껏 카타르시스 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판소리가 차츰 인기를 얻고 독립된 공연물로 확산되니까 판소리를 좋아하는 수용층도 다양해지고 판소리 광대들도 세련되어져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판소리가 발달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p> 초기에는 그냥 야한 얘기를 상스러운 표현으로 막 표현하던 것이 한문을 배우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니까 가사의 표현방법이 한문투로 바뀌고 같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가 명분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토속적인 음악언어 외에 젊잖은 음악언어와 다양한 음악언어를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도록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p> 전체적으로 보면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이 훨씬 유교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위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재미와 명분을 함께 지닌 판소리로 발달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미학과 함께 판소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마당 즉 12개 이상의 작품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이 시기로 내려오면 5마당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p> 정절(貞節)을 중시한 춘향가나 효심(孝心)를 그리는 심청가가 인기를 얻으며 가꾸어진다. 횡재하는 얘기에다가 형제의 우애를 내용으로 하는 흥보가는 재미의 요소와 교육적인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서 또한 널리 알려 지게 된다. 수궁가 역시 토끼의 위기극복의 지혜가 재미를 주는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스러움이 유교의 덕목과 합치한다. 적벽가는 가장 많이 읽히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하여 인정과 의리의 문제를 잘 그리고 있어서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p> 이런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의 언어는 우선 가곡의 음악요소를 상당부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되고 경기 토리나 경상도 토리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속적이고 슬픈 정서에서 으젓하고 젊잖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초기의 판소리가 토속적이고 계면조의 성격이었다면 이 시기의 판소리는 가곡과 경토리를 받아드리면서 평조나 우조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 <p> 판소리의 이야기 내용이 명분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재편되면서 음악의 내용도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언어를 받아드렸고 이 모든 것이 청중·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연극적인 요소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리의 공급자인 광대와 소리의 수요자인 청중들의 상호작용인데 "귀명창이 있어야 진짜 명창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공통된 미학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 발달시킨 판소리가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개방적으로 음악언어나 사설내용 등을 받아드리며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p> Ⅳ. 신재효의 광대론 <p>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조선조 후기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인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사설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 등이고 그가 지은 단가 사설은 광대가·도리화가 등 30여 편에 달한다. 고창에 가면 고창 읍성 앞에 신재효가 살던 신재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39호)이 있고 그 바로 앞에 신재효의 호를 딴 동리국악당(桐里國樂堂)이 있다. 동리 신재효는 그 만큼 뚜렷한 판소리에 업적을 쌓았던 인물이어서 "한국의 쉐익스피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p> 그는 많은 광대(판소리를 업으로 삼는 음악가)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잘못된 사설을 바로 잡아 준다든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인 기준을 일러주는 일 등은 그의 장기로 하는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이 춘향가를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으로 구분하여 사설을 정리한 것이고 남자만 부르던 판소리를 여자도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p> 그가 진채선이란 여자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서 경복궁 낙성연에서 '방아타령'등을 부르게 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그 진채선 이후에 허금파 강소향등의 여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여류 명창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신재효이기 때문에 판소리와 관련된 많은 얘기꺼리가 전하지만 오늘은 그가 지은 광대가를 통해서 신재효가 가지고 있었던 명창에 대한 이상이랄까 명창의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p> 광대가는 "고금에 호걸문장 절창으로 지어내어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하면서 도연명이나 백낙천 같은 이들의 대단한 작품들도 다 허황사설(虛荒辭說)이라면서 차마 못 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려천지( 廬天地) 우리행락 광대행세 좋을씨고"하면서 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 둘째는 사설치례 그 지차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대목이 광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p> 여기서 보면 신재효는 광대를 참 좋은 예능인이랄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광대란 그 당시 사회에서 천인 계급이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직업이었는데도 신재효는 그 광대들의 멋진 삶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p> 광대란 말은 본래 가면극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던 말이다. 양반광대 또는 각시광대 같은 경우는 가면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고성오광대 가산 오광대하면 가면놀이나 가면극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 판소리하는 명창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이고 이 경우도 판소리 명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광대란 말도 앞에 다른 말을 얹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용례를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 할 수 있다. <p> 진짜광대·"또랑광대"·"화초광대"·"아니리 광대" 같은 말이 있기 때문인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는 소위 말하는 진짜광대이다. 그러나 크게 이름이 나지 않고 어떤 조그만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기량이 우수하지 못한 광대는 또랑광대라고 비하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인물이나 팔아 먹고사는 광대는 화초광대라 하기도 한다. 또 소리 중심으로 수준 높게 판소리를 하지 않고 재담이나 늘어놓으며 이야기만 계속하는 광대는 아니리 광대라고 한다. <p> 이런 광대들은 바람직한 광대가 아니다. 그래서 신재효는 광대가 기막히게 좋은 것이지만 광대 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의 조건은 무엇인가?. <p> 첫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사설치례>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사설은 이런 것이다.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그냥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p> <p> <p>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서 사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광대는 그러한 사설을 짜기도 하고 멋진 시어(詩語)를 구사할 줄도 알고 같은 내용이라고 더 멋있게 더 분명하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시대의 광대들은 즉석에서 판소리의 내용을 창조적으로 짜서 부르는 것이 유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창조의 역량중에서 가사를 짜는 문학적 역량을 사설치례라는 말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p> 이런 사설치례 다음이 <득음(得音)>이라는 것인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득음은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여기서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한다는 것은 음악의 언어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고 '오장에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제'는 그러한 음악내용을 실제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기교와 발성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p> 그러니까 광대에게 있어서 득음을 했다는 것은 판소리를 하는데 필요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발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도 되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작곡하는 작곡능력도 함께 갖추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너름새>라고 했는데 광대가 에서는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像)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라고 하였다. 너름새는 연기에 해당하는 몸짓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신선이 됐다가 귀신이 됐다가 할 수 있어야 하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p> 정리하면 명창은 <인물>을 잘 타고 나야하고, <사설>을 잘 짜고 멋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창작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곡능력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득음>이 되어야 하고 연기와 몸짓을 통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너름새>를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재효 광대론의 골자이다. 광대라는 판소리 명창은 그렇게 대단한 능력과 매력이 있어야한다는 얘기도 된다. 한 사람의 음악가가 이 모든 역할을 다 감당하여 청중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는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공연물인가?. <p> Ⅴ. 판소리의 평가 기준 '공력' <p> 국악인의 연주를 듣고 "공력있는 음악을 들었다"고 하면 최고의 찬사가 된다. 그 만큼 국악에서는 '공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무슨 오디션이나 콩쿨에 심사를 가면 평가항목에 '음정' '박자' '음악성' 등의 낱말들을 보게 된다. 이런 기준들은 대부분 서양음악에서 빌려 온 것들인데 우리 음악이라고 하여 '음정' '박자' 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력'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p> 공력(功力)은 공(功)을 들인 정도에 따라 생기는 어떤 능력이다. 국악에서는 배우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을 들이는 것" 즉 적공(積功)을 하는 것이다. 적공이란 대개 혼자 산(山)이나 절(寺)이나 폭포 같은 데 가서 계속 연습하는 것인데 많은 명창들이 그런 적공을 통하여 소리를 얻고(得音)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p> 방만춘(方萬春)의 경우를 보자.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의 내용을 그대로 소개해 보면. "방만춘은 距今120년전 순조(純祖)시대에 충청남도 해미읍에서 출생하였다. 幼時부터 총명하고 그 성악의 재질이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의 대성을 期望케하였다. 11세에 해미군 日落寺에 가서 소리공부를 시작하여 약10년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그 중에도 적벽가를 전공하고 공부를 마친 뒤 22세 때에 서울로 와서 처음으로 명성을 드날렸다. <p> 數朔(몇 개월) 逼留(잠시 머물다가)하다가 다시 뜻한 바 있어 황해도 봉산군 어느 절에 가서 4년간을 고심(苦心) 탁마(琢磨)할 때에 성악수련으로 주야(晝夜)없이 목을 써서 성대가 극도로 팽창하여 발성을 못할 경우에 이르렀다. 그 괴롭고 답답함을 어찌 형언할 수 있었으랴. 하로는 절 기둥을 안고 목이 터지도록 전력을 다하여 소리를 몇 번이나 질렀다. <p> 그러나 목은 여전히 터지지 아니하여 나중에는 죽도록 힘을 써서 소리를 질러놓고는 기력(氣力)이 자진(自盡)하여 그 자리에 거꾸러지고 말았다. 때마침 절 목공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뜻밖에 절이 무너지는 듯한 웬 굉장한 소리가 들리므로 깜짝 놀라 곧 쫓아나려 와서 본즉 여러 사승(寺僧)들은 다 외출하고 방씨만 홀로 넋 잃은 사람모양으로 앉았을 뿐이었다. <p> 뇌성(雷聲:우뢰나 천둥소리)한일도 없고 웬 소리가 그리 굉장하게 났느냐고 물은즉 방씨는 괴이하게 생각하면서 모르는 일로 대답하였다. 이것은 그가 기둥을 안고 목을 터치기 위하여 죽을힘을 써서 소리를 질러 목이 툭 터지는 바람에 굉장하게 울려나왔든 것이나 기력이 진(盡)하여 정신을 잃고 거꾸러졌으므로 자기 스스로는 전혀 몰랐든 것이다. 이리하여 성량은 웅장하게 발달되고 공부는 성가(成家)에 이르렀다." <p> 이것은 방만춘이란 명창이 득음(得音)하게 되는 일화를 적은 것인데 이러한 과정을 혼자 공을 들인다하여 독공(獨功)이라고 한다. 혼자 소리(혹은 목)를 얻기 위하여 계속 발성연습을 하는데 그 발성연습이란 것이 고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자연의 소리를 다 흉내내며 큰 소리로 질러대니 목이 견디지를 못하고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목이 붓고 잠기고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계속 소리를 질러대면서 연습하는 것이 판소리의 수련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연습하다가 갑자기 목이 터지고 마음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p> 공든 탑이 무너지랴하는 우리의 격언대로 이런 독공의 수련방법은 그야말로 신념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꼭 된다는 보장도 없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선배들이 했던 대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를 얻으면 대단한 명창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목을 망치는 수도 있다. 판소리는 정말 어려운 음악이기 때문에 명창 되는 것이 무척 어렵다. 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야 한다. 그 연습을 국악에서는 "공들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계속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그것이 적공(積功) 즉 공을 쌓는 것이 된다. <p> 국악은 음악 자체의 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대부분이 단성선율로 되어있기 때문에 음악의 소리 자체가 음악의 충실도나 수준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판소리를 하더라도 소리가 좋으면 더 충실하게 들리고 연습을 많이 한 소리이면 음악을 만들어 가는 수준이 다르니까 더 좋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힘은 연습량이나 연습의 질과 관계가 있는데 그것을 국악에서는 얼마나 적공했느냐로 따지고 그 결과의 소리를 "공력이 있는 소리" 혹은 "공력이 부족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다. <p> 공력이 있는 소리는 모든 국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특히 판소리나 산조에서는 공력을 중시한다. 판소리를 처음 배운 사람은 아무리 목소리가 고 공부를 충실히 했다하더라도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 선생님에게 배운 소리를 그대로 해 가지고는 선생님의 흉내를 내는 '사진소리'밖에 안 되는 것이고 그런 소리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이 국악의 풍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소리를 만들고 자기 음악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반드시 가져야 되는데 그 과정이 바로 혼자 공력을 쌓는 독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몇 년의 독공을 하여야 비로소 자기의 소리와 자기의 음악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그래서 명창으로서의 조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p> 그렇기 때문에 국악에서는 그 공력을 중시하는데 공력이란 음정이나 박자처럼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공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알아 볼만한 안목이 있어야 하고 소위 말하는 심미안이 있어야 그것을 알 수 있다. 요즘 가야금산조나 대금산조를 연주하는 음악가는 엄청나게 많다. 그들이 연주하는 산조를 음정이나 박자로 따진다면 아마 평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모두들 그런 기준쯤은 다 충족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산조에 있어서도 음정이나 박자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은 공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공력이 있는 소리여야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p> 공을 많이 들이는 과정에서 음악을 만들어 가는 음의 문제도 해결하지만 그 음악의 속을 넉넉하게 깨닫게 되고 그래서 그런 사람의 연주는 소리도 잘 나지만 음악에도 여유와 완성미가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수련방법도 사실은 우리 음악의 특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발달했다는 점이다. 우리 음악은 판소리나 산조 할 것 없이 모두 아무리 반복 연습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다. 중학생용과 고등학생용으로 구분될 수 있는 그런 단계가 있는 작품이 아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면서 또 열려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처음 배우는 사람이 배운 그 작품을 한없이 반복하면서 그 연습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음악은 연습량과 연습방법과 연습결과로 얻어지는 <공력>을 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이다. <p> Ⅵ. 명창들의 '득음(得音)' 이야기 <p> '득음'이란 말은 판소리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기악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직역하면 "음을 얻는다" 또는 "소리를 얻는다"가 되어서 마치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득음이란 우선은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음악에서 필요한 소리를 충분하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득음은 발성문제만 해결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p>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득음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낙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득음은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음악언어의 구조를 훤히 알아서 가장 합리적인 표현방법을 구사할 줄 아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p> 오장에서 나는 소리란 입이나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온 몸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고 "농낙하여 자아낼 제"란 자유자재로 멋지게 꾸며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니까 득음이란 그냥 소리만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속'을 훤히 알고 합리적으로, 멋지게, 온몸으로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p>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득음을 해야 한다. 그런데 득음이 그렇게 쉽지 않다. 실제 음악가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득음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만큼 득음은 음악가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음악가들은 그 득음을 위해서 각기 독특한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흔히 <독공>이라고 하는 그 연습시간은 매일 매일 계속되는 장기간의 연습도 있고 '100일 공부'처럼 집중적으로 온통 연습에만 매달리는 그런 방법도 있다. <p> 장우벽(1735∼1809)은 영조 때 활약한 가곡의 대가인데 매일 인왕산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장안을 굽어보며 노래를 불렀다 하고 김계선(1891∼1943)같은 대금의 명인은 매일 새벽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 대금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연습할 때에는 같은 음악을 반복하여 연습하는데 대개는 신발을 벗어 놓고 조금만 조약돌을 모아다가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또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하면서 연습하여 조약돌이 신 하나가득 수북하게 쌓이면 산을 내려 왔다고 한다. <p> 그 만큼 계속 같은 음악을 반복 연습하는 가운데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능통하게 되고 또 '음악 속'도 훤하게 알게 되어 무슨 악기든지 다룰 수 있는 힘과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배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 달리 대부분의 판소리 명창들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하여 득음 하였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박동진 명창만 하드라도 100일 공부한 얘기가 유명하다. 박 명창은 처음 소리를 배운 다음 이곳 저곳 다니면서 소리선생도 하고 조그만 자리의 소리도 하면서 조금은 방탕하게 한동안 지냈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생활을 크게 반성하고 고향에 돌아가 100일 공부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p> 부친에게 그러한 결심을 얘기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부탁해놓고는 혼자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독공에 들어갔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소리만 하는 맹훈련이었다. 그런데 판소리 명창들의 훈련방법은 전력을 다해 통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 목이 잠기고 소리가 잘 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몸에도 무리가 누적되어 병이 나게 마련이다. 박 명창도 그렇게 맹훈련을 하는 중에 몸이 붓고, 이가 솟고, 목이 잠기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p> 그런데 그 고비란 것이 말이 쉽지 본인으로서는 이렇게 소리하다가 산에서 죽는가보다 할 정도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앓아 눕는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마음은 오직 득음에 있을 뿐 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며 소리를 끌어내려고 애 썼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몸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p> 박동진도 마지막에는 소리는커녕 몸을 움직이지 조차 못하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게 되었는데 마침 박동진의 부친이 혹시나 하고 찾아오셨더라 는 것이다. 박동진은 평소에 그럴 때에는 인분 거른 물을 마시면 낫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그의 부친에게 인분 거른 물을 가져다 달라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마셨는데 정말이지 금방 몸의 부기가 빠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백일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p> 박동진 명창은 이 백일공부를 통하여 득음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그 전과는 훨씬 다른 생활태도와 오직 판소리에만 정진하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대 명창이 된 것이다. <p> 함동정월이라는 가야금의 명인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이다. 함 여사가 김명환씨와 함께 살 때에는 식전에 한 바탕 오전에 두 세 바탕 식으로 거의 종일을 가야금 산조를 몇 바탕씩 타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활이 온통 연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함 명인은 보통 사람보다 왼팔이 더 굴고 강하게 발달했고 그녀가 타는 가야금은 줄을 보통 가야금 보다 훨씬 되게 죄이기 때문에 다른 가야금 연주자들은 그 가야금을 타기 힘들었다고 한다. <p> 그 만큼 늘 같은 곡을 반복하여 타면서도 계속 그 음악의 삼매경에 들어가 음악의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늘 새로운 음악의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음악가들의 경우 연습을 한다는 것이 무슨 장단을 지키고 곡조를 익힌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산조라는 음악 속에 들어가 장단과 어우러지면서 차츰 차츰 죄이고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풀고 또 죄이고 풀고 하면서 마음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음악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p> 그렇게 공력을 쌓아 나가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생활이고 도(道)이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득음을 하고 음악가가 되고 그들의 음악이상에 접근해 갔던 것이다. 득음에 대한 일화는 판소리 명창들에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폭포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처음에는 자기 귀에도 안 들리던 소리가 나중에는 그 폭포 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들렸다는 얘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이 음악가들의 득음과 관련한 얘기들이고 이러한 과정이 국악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소개하였다. <p> Ⅶ. 판소리 음악의 구성 <p> 1. 판소리의 음악적인 정의 <p> 판소리란 춘향가나 심청가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명창이라 불리는 성악가가 판소리의 음악어법으로 작곡· 연창하여 청중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극적인 공연용 음악이다. 공연하는 모습은 명창이 돗자리를 펴고 병풍을 둘러친 무대에 북을 든 고수와 함께 나와 인사를 한 다음 명창은 청중을 향해 서고 고수는 무대의 오른편에 명창을 향해 북을 앞에 놓고 앉아서 명창은 판소리를 하고 고수는 명창을 처다보며 반주와 추임새를 하면서 공연을 해 나간다. <p> 명창은 긴 이야기의 내용을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말처럼 하는 아니리로서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북장단에 맞추어 소리대목을 한다. 소리대목은 극의 흐름에 따라서 장단과 조를 달리하며 적절하게 가사의 내용을 표현한다. 이때에 극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왼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부채로 먼곳을 가리키기도 하고 손수건으로 눈물닦는 시늉을 하기도 하면서 소리를 하는데 그러한 일련의 동작이나 몸짓 모두를 발림이라 부른다. <p> 고수는 북으로 소리대목의 장단을 치면서 흥을 돋구기 위하여 "으이" "좋지" "얼씨구" "잘한다"등의 추임새를 하는데 추임새는 고수가 제일 대표격으로 하게 되지만 청중들도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판소리는 명창이 아니리와 소리로서 가사를 성악화하여 부르고 발림으로 극적인 효과를 내면 고수는 북으로 장단을 치면서 추임새로 화답하여 극적인 효과를 부추겨 준다. <p> 명창이 하는 아니리와 소리는 서양 오폐라의 레시타티브와 아리아에 비교되는 것으로 아니리는 레시타티브처럼 반주 없이 말같이 하는 대목이고 소리(唱)는 아리아처럼 분명한 선율이 있어서 반주(장단)도 따르게 되어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성악으로서 공연양식의 중요한 요소로는 말처럼 하는 아니리와 노래처럼 하는 소리와 연기처럼 하는 발림과 흥을 돋구어 주는 고수와 청중의 추임새를 들 수 있겠다. <p> 판소리의 어휘적인 정의를 '한판의 소리'나 '판놀음에서의 소리'로 보기도 하지만 판소리의 한 대목인 '토막소리'를 하더라도 판소리 한다고 하지 토막소리 한다고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는 판소리라는 용어를 그냥 음악장르를 가리키는 용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p> 2. 판소리 음악의 특징 <p> 1) 한 사람의 명창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배역을 담당하고 상황까지 설명하며 고수 한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전체의 공연을 이끌어 간다. <p> 2)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이미 짜여진 가사와 곡조 중심으로 공연을 해 나가지만 현장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상당부분 다르게 연창할 수 있다. 송만갑 같은 명창은 "청중 봐서 소리하고 행화(行貨) 봐서 소리한다"고 했으니 같은 대목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소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능력 있는 명창들은 그렇게 창조적으로 항상 현장에 적절한 소리를 짜서 했던 것이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명창들이 자기가 배운대로 그냥 외워서 부르는 식이기 때문에 거의 똑 같은 곡조로 언제 어디서나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p> 3) 판소리의 공연에 있어서 중요한 표현양식은 아니리·소리·발림·추임새인데 이 중 아니리와 소리부분이 판소리 음악언어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p> 4) 판소리의 소리부분은 가사와 극적인 흐름에 따라 장단과 조가 있는 구체적인 성악곡으로 불리어지는데 장단에는 진양조·중모리·엇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엇모리·휘모리·세마치등이 쓰이고 조에는 우조·평조·계면조등이 쓰인다. 특별한 가락으로 경드름이니 추천목이니 덜렁제니 하는 것도 쓰이고 시조가락이나 가곡성우조 같은 것도 쓰인다. 판소리는 표현위주로 발달한 음악이기 때문에 모든 음악의 표현양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태도를 취하며 발달해 온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p> 5) 판소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여러 배역과 모든 상황을 다 표현해야 하는 성악이기 때문에 발성법과 창법과 가사 붙임새 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발성법은 서양의 벨칸토 발성법과 다른 독특한 판소리 발성법이 따로 있기 때문에 판소리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판소리 발성법을 터득하여야만 한다. 많은 명창들이 그 발성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똥물을 먹었다느니 폭포 옆에서 독공을 했다느니 토굴에서 독공을 했다는 등의 일화를 남기고 있다. <p> 6) 판소리의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구전심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한가지 다른 것은 옛날의 명창들은 대부분 같은 대목이라도 날마다 다르게 가르쳐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의 명창들은 같은 대목은 언제나 똑 같은 내용으로 가르치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옛날 명창들은 그들 자신이 작곡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대목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다른 가락으로 가르칠 수 있었지만 요즘의 명창들은 작곡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가 배운 가락을 평생 외다시피 부르고 또 그 가락대로만 가르치게 된 것이다. <p>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옛날의 판소리선생은 배우기 힘든 어려운 선생이었고 요즘의 판소리선생이 훨씬 배우기 쉬운 좋은 선생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옛날의 선생들은 이런 가락 저런 가락을 통해서 같은 사설이라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가르쳐 주었지만 요즘의 선생들은 그런 창조적인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p> 3. 판소리의 장단 <p> 우리나라 음악의 표현양식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단이다. 우리음악은 장음과 단음만의 연결로 훌륭한 음악이 만들어질 정도로 장단이 중요하고(농악이나 사물놀이)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기악을 잘 해도 장단에 삐었다하면 실격이 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 만큼 장단이 중요한 것이어서 판소리에서도 가사의 극적상황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 되는 것은 장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느 대목을 작곡한다고 가정했을 때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장단이라고 할 수 있다. <p> 가령 춘향가에서 이도령이 광한루에 올라 머언 경치를 바라보는 대목은 느린 진양조여야 어울리고 마지막 암행어사 출도야 한 다음은 급박한 상황에서 허둥대는 서리나 급히 휘몰아치는 역졸들의 모습은 휘몰이로 몰아야 어울리는 것이다. 이처럼 장단은 극적인 상황에 맞게 느린장단 빠른 장단을 적절히 배열하여 판소리의 표현력을 극대화 하도록 한다. <p> 판소리는 바로 그러한 장단이라는 틀 위에 구축되는 성악이기 때문에 아무리 소리를 잘하는 명창이라 할지라도 장단을 제대로 처 주지 않으면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고수가 일등이고 명창이 이등이라는 뜻이 아니라 고수의 존재가 그토록(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면 여러 가지 장단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내용으로 되어있는지 살펴보자. <p> 1) 진양조 장단 <p> 여러 가지 장단 중 가장 느린 장단이 진양조 장단이다. 장단이 느리면 음악도 느리게 되는데 판소리에서는 가사의 내용이 한가롭다던지 스케일이 커서 한원하고 장중한 느낌이 나는 경우에 진양조 장단을 쓴다. 춘향가의 '적성의 아침날'이라든지 심청가의 '범피중류'가 진양조 장단으로 되어 있다. 진양조에도 느린 진양 보통 진양 빠른 진양이 있게 마련인데 특별히 빠른 진양조 장단은 세마치 장단(민요의 세마치 장단과는 다름)이라고 부른다. <p> 진양조는 3분박 여섯 개를 모은 6박을 한 각으로 하여 4각이 한 장단을 이루는 아주 느린 장단이다. 한 장단은 각을 단위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네 부분을 치고(起) 달고(景) 맺고(結) 풀고(解)로 보기도 하지만 네 각을 미는 각 다는 각 맺는 각 푸는 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p> 장단 치는 방법은 각 각의 첫박은 처 주고 3분박 네 박이 지난 다음 5박과 6박을 쳐 주게 되는데 미는 각에서는 5박과 6박을 정확하게 쳐야하고 다는 각에서는 가락을 넣어서 흥겹게 쳐 주고 맺는 각에서는 5박을 힘 있게 양손을 붙이며 맺어주고 푸는 각에서는 5박과 6박을 북편으로 잘게 가락을 넣으며 풀어 준다. 이를 악보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p> 2) 중모리 장단 <p> 중모리는 보통 빠르기의 장단이다. 판소리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장단으로 서정적인 내용이나 서사적인 내용에 두루 쓰인다. 진양조 장단을 설명할 때 한 장단의 세(勢)의 흐름이 치고, 달고, 맺고, 풀고의 네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따졌을 때 진양조는 한 각이 3분박 6박으로 되어있었다. 6박 단위로 첫째각은 치고 둘째각은 달고 셋째각은 맺고 넷째각은 푼다고 생각하면 된다. <p> 그런데 중모리 장단은 전체가 12박 한 장단인데 그것을 네 부분으로 나누면 3박이 한 각을 이루어 역시 치고, 달고, 맺고, 풀고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때문에 처음은 합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긴장으로 고조시켜 세 번째 각의 마지막 박인 9박에서 크게 맺어 주고 네 번째 각에서 북편으로 풀어 준다. <p> 판소리의 장단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중모리 장단부터 배우게 되어있다. 그만큼 중모리 장단은 판소리 장단의 기본이 되면서 많이 쓰이는 장단이기 때문에 중모리 장단을 잘 알아야 한다. 중모리 장단에도 세단계의 빠르기가 있어서 느린 중모리 빠른 중모리라는 말을 쓰는데 장단치는 요령은 같고 빠르기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p> 3) 중중모리 장단 <p> 중모리 장단을 조금 빠르고 흡겹게 치면 중중모리 장단이 된다. 그래서 극적인 상황이 덩실덩실 춤이라도 나오는 대목이라던지 춘향모나 흥보 마누라 나오는 대목처럼 누가 반가운 마음으로 등장할 때 중중모리 장단을 쓴다. 중중모리 장단도 빠르기에 따라 느린 중중모리 그냥 중중모리 빠른 중중모리로 나누어지는데 빠르기만 다를 뿐 치는 요령은 동일하다. 어느것이나 3분박 4개 모인 장단으로 보고 치면 되는데 맺는 박은 12박자로 따졌을 때 9박에 해당하는 박이 된다. <p> 4) 자진모리 장단 <p> 중중모리 장단을 더 빨리 몰면 자진모리 장단이 된다고 보아도 된다. 그만큼 장단은 빠르기에 따라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나누어 지는데 장단 안에서의 세의 흐름은 같은 방식으로 되어있지만 빠른 장단일수록 맺는 박을 제대로 찾아 맺어주고 다른 경우는 그냥 진행하도록 하는 식이어서 장단 치기가 어렵다. 맺는 박은 판소리의 흐름에서 매 장단마다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음악이 한 단락을 이루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점을 찾기가 어렵다. <p> 자진모리나 휘모리 장단의 경우 보통은 맺는 박을 맺지 않고 달아 주며 진행하다가 맺을 대목에 가서야 맺는 박을 크게 쳐서 맺어 준다고 보면 된다. 자진모리는 빠른 장단이기 때문에 극적 상황이 무엇을 빨리 빨리 열거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벌어져서 서둘러야 할 대목 같은 데에 쓰인다. <p> 자진모리 장단은 3분박 4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가사에 따라서 소리가 2분박으로 진행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단치기가 어렵다. 자진모리 장단도 빠르기에 따라서 느린 자진모리 그냥 자진모리로 나눌 수 있는데 느린 자진모리 장단은 무엇을 이것저것 줏어 섬기듯 엮어 나갈 때 자주 쓰이고 그냥 자진모리는 위급한 상황이나 격동적인 대목에서 자주 쓰인다. <p> 5) 휘모리 장단 <p> 자진모리 보다 더 빠른 아주 빠른 장단이 휘모리 장단이다. 아마 휘몰아 간다고 해서 휘몰이 장단 또는 휘모리 장단이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진모리 장단 반 장단이 휘모리 장단 한 장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2분박 매우 빠른 4박자로 채보하면 편리하다. 판소리에서는 어떤 일이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경우에 사용되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어떤 상황이 차츰 빨라져서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대목에서 자주 쓰인다. <p> 6) 엇모리 장단 <p> 5박 둘을 이어 놓은 10박 장단을 엇모리 장단이라고 하는데 판소리에서는 도사나 호랑이 같은 신령한 존재가 등장할 때에 쓰인다. 맺는 박은 10박중 8박에 해당하는 박이 되는데 한 장단의 흐름에서 보면 역시 셋째부분 뒤엣박이 되는 셈이다. 악보로 표시해 보겠다. <p> 4. 판소리의 조 <p> 판소리의 가사를 음악으로 표현할 때 제일 선행되는 것은 장단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가락과 어떤 창법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조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판소리에서 쓰는 조의 명칭에는 우조 평조 계면조등이 있는데 이 조라는 것이 무엇을 나타내느냐에 대하여 백대웅은 <길>의 개념과 <성음>의 개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p> 판소리의 길이란 구성음이나 선율진행과 관계있는 것으로 서양음악용어의 선법이나 음계와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된다. 길에는 우조길 평조길 계면길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대웅은 편의상 서양의 계명을 사용했고 청이라는 말 대신 본청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필자가 그냥 청으로 고쳐 소개하기로 하겠다. <p> 1) 우조길 (솔음계) <p> 구성음이 솔·라·도(청)·도·레·미로 되어 있다. 심청가 중의 화초타령(조상현창)과 천자앞에 심청이 나타나는 대목이 우조길로 되어있다. <p> 2). 평조길 (레음계) <p> 구성음이 레·미·솔(청)·라·도로 되어 있다. 춘향가 중의 천자뒷풀이와 심청가 중의 범피중류 대목이 평조길로 되어 있다. <p> 3) 계면길 (미음계) <p> 구성음이 미·솔·라(청)·시·도·레로 되어있는데 시와 도는 꺽는음으로 도에서 시로 꺽어내려서 한음처럼 사용하고 있다. 계면길은 남도민요의 육자백이나 무가의 선율과 같은 것이어서 애절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 특히 도에서 시로 꺽어내려 미에서 떠는 선율은 전형적인 계면조의 선율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 계면길로 되어 있는 대목은 춘향가중의 이별가나 옥중가 같은 대목이다. <p> <성음>이라는 용어는 민속악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이다. 누가 가야금을 탈 때 그 소리를 듣고는 "성음이 좋다" 또는 "성음에 애원이 있다"는 식으로 평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예를 판소리에 적용하면 성음이란 발성이라든가 창법등과 관계되는 직접 소리로 표현했을 때 그 소리의 질이나 소리의 색깔 소리 속에 섞인 감정등을 함께 일컬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조를 성음의 측면에서 설명하면 우조다운 우렁차고 호기있는 소리로 계면조는 애절하고 슬픈감정이 섞인 소리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p> 백대웅도 "성음은 발성법에 따른 음색이나 음질"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래서 성음은 어떤 기보법으로도 전달할 수 없고 객관적인 묘사나 연구도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조성음은 호기있고 씩씩한 느낌을 주고 평조성음은 한가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며 계면조성음은 애처롭고 슬픈 느낌을 준다고 하였다. 그렇다 성음은 소리를 내는 발성에서부터 어떤 내용을 표현하는 창법에 이르기 까지 전체적인 소리자체의 성질과 내포한 감정등이 들어내는 무엇(음색이나 음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성음의 종류도 판소리에서는 우조성음·평조성음·계면조성음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p> 판소리의 조를 따질 때 길의 개념과 성음의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법은 김명환의 진술에 의한 백대웅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 판소리를 분석하는데 좋은 틀을 제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론만으로 판소리의 조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명창들이 판소리의 조를 판정하는 과정에서는 길이나 성음을 따져서 판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느낌으로 판정하기 때문이다. <p> 정노식도 판소리의 조는 "들어서 안다"라고 했을 정도로 느낌을 중시했고 가곡원류의 조 설명방법도 평사낙안(平沙落雁:평조)이니 애원처창(哀怨悽愴:계면조)이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정의한 것을 보면 조는 음악구조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된 음악의 느낌을 통해서 판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분석적으로 보면 평조길을 우조성음으로 불렀을 때 우조라고 하고 평조길을 계면성음으로 불렀을 때 계면조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길에 관계 없이 성음으로 조가 결정되는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긴 표현 수단중에서 마지막으로 색깔을 입히는 것이 성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조판정에 있어서 성음의 비중이 큰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p> 평조 같은 조의 명칭이 우리음악에 나타나는 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부터 이기 때문에 매우 오래 된 것이다. 그리고 평조니 계면조니 하는 것이 성악에 쓰인 것도 조선조 중기 이후에 크게 발달한 가곡에서 였다. 판소리는 그 후에 발달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평조니 계면조니 우조니 하는 조의 이름은 가곡에서 이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p> 5. 판소리의 발성법 <p> 판소리는 성악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판소리라는 성악으로 대성하기 위해서는 판소리의 발성법에 통달하지 않으면 않된다. 과거의 명창들이 판소리 수련과정에서 엄청난 고생을 감내하고 각 가지 특별한 체험을 통하여 득음하였다고 하는 고사들도 따지고 보면 발성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의 발성법은 판소리라는 음악이 필요로 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판소리라는 성악은 다른 성악장르와 다른 독특한 미를 표출하는 성악이기 때문에 판소리의 발성법 역시 다른 성악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서양의 성악가들이 하는 벨칸토 발성법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혀 다른 발성법을 가지고 있다. <p> 판소리는 사설 내용이나 극적인 흐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성악이다. 바람소리는 "우루루루"하는식으로 표현하고 물에 빠질 때에는 "물에가 풍"하면서 마치 실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처럼 목소리로 표현한다. 슬픈감정은 정말 울음섞인 목소리로 기쁜 감정 역시 거기에 걸맞는 목소리로 표현해야 된다. 목소리로 무엇이든지 표현해 내어야 한다. 가장 잘 표현했을 때에는 실제와 혼동할 정도로 표현한 경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p> 이날치라는 명창이 새타령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들은 새들이 실제로 몰려왔다고 하는 얘기는 바로 그런 표현의 극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렇게 자연의 소리마져도 실제와 흡사하게 아니 실제보다 더 실제답게 표현하려면 장단이나 조라는 음악적 구조도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발성법 자체이다. 소리 자체가 그러한 표현력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표현력을 가지기 위해서 역대 명창들은 어떻게 수련을 쌓았다고 전하는가?. <p>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으로부터 판소리의 작품을 잘 전수 받아야 한다. 사설과 곡조를 중심으로 배우는 것이지만 사실은 극의 흐름과 공연에 필요한 다양한 표현방법을 함께 배웠던 것이다. 그렇게 판소리의 작품과 그 작품들이 표출하고자하는 내용을 이미지로 확실히 파악한 다음에는 흔히 독공을 한다고 하는 수련과정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수련과정이 주로 발성법을 해결하고 판소리 작품을 자기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p> 우선 자기가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하나하나 충실히 소리를 내면서 연습한다. 어느 한계를 정하고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이상의 소리를 목표로 삼아 연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연약한 성대가 상처를 입거나 파괴되기도 하고 인후가 부어서 소리를 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사정 보지 않고 계속 연습을 하다가 보면 몸에 까지 무리가 가서 몸이 뚱뚱 붓게 되거나 한 동안 앓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옛날사람들은 민간요법으로 똥물을 마시도록 권장하고 실제 대나무를 뚝 잘라서 변소에 집어넣어 두었다가 그 속에 고이는 물을 마시는 경우가 허다 하였다. <p> 그런식으로 몸에 무리가 가든 어쩌든 계속 판소리에 필요한 소리를 질러내면서 수련을 하다 보면 상처받았던 성대가 아물고 파괴되었던 성대가 그 소리에 필요한 정도로 재구성되어 아무리 격렬한 소리를 해도 견딜 수 있는 강한 성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대개의 판소리 학도들이 처음에 소리를 배우면 목소리가 쉬게 되고 나중에는 본디 목소리와 아주 다른 걸걸한 소리로 변하는 것은 모두 성대가 그렇게 재구성 되기 때문이다. <p> 판소리를 연구하는 이비인후과 의사 김기령씨는 판소리 명창들의 성대가 보통 사람들의 성대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진으로 비교한 판소리 명창과 일반인의 성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판소리 명창의 성대는 성대의 양쪽 끝 부분이 뭉그래져서 편편하거나 뭉툭하게 되어 있어서 일반인의 뾰족한 모습과 달랐다. 어떻게 보면 판소리 명창들의 발성법 훈련은 성대를 단련시키는 훈련으로 보아도 된다. 공명훈련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명쪽 보다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성대 자체를 단련시키는 훈련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p> 그렇게 해서 단련된 소리가 수리성이니 철성이니 하는 명창들의 소리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역으로 수리성이나 철성과 같은 좋은 소리는 피나는 판소리의 수련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공력있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성대를 가진 명창들의 경우 보통 대화를 할 때에는 겨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하게 쉬어 있지만 소리를 한시간 쯤 하게 되면 목이 부드러워져서 표현이 마음대로 되고 아무리 소리를 오래 해도 괜찮다고 한다. 송만갑 김창룡같은 명창들의 소리가 다 그런 소리라고 할 수 있다. <p> 판소리에서 득음을 하였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리를 마음대로 낼 수 있게 되었다는 발성문제의 해결을 뜻하고 그 다음은 소리속을 알아서 표현의 묘를 창조적으로 살릴 수 있는 작곡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득음했다는 말은 발성법을 해결했다는 말도 된다. 그 발성법은 공명 보다는 성대 자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판소리가 요구하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소리를 띄우거나 소리를 고르게 내는 서양식과는 달리 성대를 많이 쓰고 구강이나 이빨 입술등의 기관을 이용하여 다양하고 변화있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호흡은 단전 호흡을 주로 하고 소리내기는 통성을 원칙으로 하지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필요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p> Ⅷ. 판소리의 가사 발음법과 붙임새 <p> 1. 판소리의 가사 발음법 <p> 판소리는 민요나 잡가와 같이 가사를 소리나는대로 발음한다.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 하여 낱말은 될 수 있는대로 붙여 발음하고 끝소리를 길게 부르도록 하는 배려가 있긴 하지만 가사의 발음은 음가(音價) 하나하나가 완전히 살아나도록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사가 전달되지 않으면 판소리 공연은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사중에 "가슴"은 "가삼"으로 발음하고 "…에"나 "…의"는 "…으"나 "…어"로 발음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가슴은 반드시 가삼으로 발음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판소리의 가사발음법은 가곡이나 시조의 가사발음법과 다르기 때문에 참고하기 바란다. <p> 2. 판소리의 가사 붙임새 <p> 판소리는 장단이라는 규칙적인 틀에 가사를 다양하게 붙여가며 노래하기 때문에 가사의 붙임새는 기기묘묘하게 발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명창의 기량이 뛰어나면 붙임새는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기묘하고 변화있게 붙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형님의 연구에 의하면 그 유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붙임새의 명칭이나 내용도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p> 이보형에 의하면 판소리의 붙임새는 변화를 주기위한 리듬적 기교의 하나라는 것이고 그 종류에는 대마디 대장단, 엇붙임, 잉어걸이, 완자걸이, 교대죽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붙임새와 관련된 말로 밟고가다, 앞서가다, 붙이다, 주서 붙이다, 빼다, 던져 놓다, 걸다, 달아놓다등의 말이 쓰인다고 하였다. <p> 이보형은 판소리에서 사설의 한 행이 한 장단의 머리에서 시작하여 꼬리에서 끝나며 아울러 사설이 매박의 주박에 붙는 것을 대마디 대장단이라고 하고 이것과 어긋나는 것들을 엇붙임, 완자걸이, 잉어걸이, 교대죽등으로 부른다고 하였다. 또 엇붙임은 사설 한 행(혹은 선율선)이 앞 장단의 꼬리와 뒷 장단의 머리에 붙어 있는 형태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설이 앞장단의 중간에서 시작하여 뒷장단의 중간에서 끝나는 형태라는 것이다. <p> 잉어걸이는 사설이 주박을 매우 작은 시가로 밟고 나오는 형태이고, 교대죽은 한 행의 사설의 중간이 뚝 떼어져 앞이나 뒤로 얼마의 공간을 훌쩍 뛰어 밀거나 당기어진 뒤에 남어지 사설이 낙아채이듯이 짧은 시가로 나타나는 경우이거나, 3분박 장단에서 소리가 2분박과 3분박으로 자주 변화되며 사설이 주·부박에 촘촘히 엮어져 앞뒤로 밀고 당기고 뛰어 넘고 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또 완자걸이는 사설이 주박을 앞뒤로 비끼어 붙어서 서로 얽히는 형태라는 것이다. 아무튼 기기묘묘하게 정해진 장단 사이로 가사를 붙여 나감으로서 더욱 변화있고 멋진 소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판소리 붙임새의 효과인 것이다. <p> 1.대마디 대장단과 엇붙임 <p> 세종판 춘향가의 '적성의 아침날'은 대마디 대장단이고 정정열의 '적성가'는 가사도 바뀌어 많은 자수를 붙이고 엇붙임을 많이 썼다. <p> 2. 잉어걸이·교대죽·완자걸이 <p> 잉어걸이 : 잉애걸이라고도 함. 장단박자에 말이 붙지 않고 박자 사이로 말이 빠져나가는 것. 명창들에 의하면 잉어걸이는 베틀에 달린 잉애의 리듬을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잉애는 반드시 베틀의 북과 바디가 움직인 다음에 베틀의 날줄을 걸고 움직인다. 북과 바디가 주박이라면 잉애는 부박에만 움직인다. 소리에서 잉어걸이는 잉애의 움직임과 같이 주박을 살짝 지나 부박에 강세로 소리가 나타나는 리듬형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p> 교대죽 : "북·장··고떡·쿵············부·쳐군악·젓·대 <p> 피리·소리·."처럼 <p> 사설 한 행의 중간에 긴 휴지나 긴 소리가 끼어 있어서 얼마간 공간을 두었다가 행의 나머지 사설이 짧은 음으로 나타나는 형태를 말한다. (김명환)한범수는 "교대죽은 고양이가 뛴다는 뜻으로 괴족뛰기라고 부르고 있고 괴족뛰기는 어떤 가락을 할 때 음을 내어 가지고 여러 박자를 끌어 강력하게 잡아채는 붙임을 말함이다"라고 했는데 김명환의 표현과 거의 같다.이러한 교대죽은 가야금산조에도 가끔 보이는데 이재숙이 채보한 김죽파 가야금 산조 중중모리 제24장단에서 제 25장단에 있다. <p> 김연수는 교대죽을 "交代的 붙임"이라 하며 "말을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공대일과 한순애의 교대죽은 "3분박 장단에 2분박 가사가 붙는 것"이 되어 이재숙이 말하는 가야금 산조 자진모리의 헤미올라 리듬과 같게 된다.서촉지척이요동해창망하다축융봉을올라가-주작이와 같은 것이니까.완자걸이 : 김연수는 교대죽과 완자걸이가 같은 것이라 했지만 한애순은 "사설이 제박에 함께 떨어지지 않고 비껴 엇떨어지는 것"이라 했는데 교대죽이 사설을 뛰어서 밀거나 당겨 붙이는 것인데 반해서 완자걸이는 사설이 제박(主拍이든 副拍이든)에 있지 않고 엇떨어져 副拍 또는 主拍에 붙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 /섭-수쾌자중--치막-과/남-녀의복의잔(누비)질---/ <p> /서-촉은지-처억-이요-/동--해창-망-허구나-/ <p> Ⅸ. 동편제와 서편제와 중고제의 음악적 차이 <p> 판소리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 다른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하는 것이니까 지역에 따라 그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 특히 판소리가 크게 발달한 호남은 동·서의 문화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기 때문에 농악도 우도농악(서쪽)·좌도농악(동쪽)이 다르게 발달해 있고 민요나 판소리도 동·서가 서로 다르게 발달해 있다. 동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도와 접해 있어서 산촌의 지리적 특성과 경상도의 문화적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고 서쪽은 평야지대가 많고 바다에 접해 있어서 그런 환경과 관계 있는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p> 그래서 동편제 판소리는 운봉·남원·구례·곡성등의 섬진강 동쪽지역에서 발달하게 되고 소리는 대마디 대장단을 선호하며 잔 기교 보다는 소리 자체를 통성으로 꿋꿋하고 튼실하게 내며 소리의 끝이나 아니리의 끝을 여운 없이 탁 그치며 마친다. 그래서 쇠마치로 내려 치듯이 마친다고도 한다. 그런 인상 때문에 우조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 서편제는 이리·고창·광주·나주·목포등지에서 발달하게 되고 소리는 애절하고 기교적이고 붙임새도 다양하고 소리의 꼬리도 길어져서 동편제 소리와는 훨씬 다른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p> 중고제는 경기·충청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판소리 스타일이다. 경기·충청지역은 사투리 부터가 전라도와는 다르다. 또 음악언어의 기본이 되는 민요의 토리도 다르다. 때문에 경기·충청 출신들이 판소리를 하면 자연 그 소리의 투가 다르게 될 것이고 그래서 호남소리인 동편이나 서편과 다른 중고제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때는 경기·충청 출신의 명창들이 많아서 중고제가 크게 발전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p> 일제시대 이후 교통이 발달되면서 지역적 특성이 강했던 동·서편제의 소리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본래는 지역과 사사계보가 거의 일치했었기 때문에 동편지역 출신은 동편소리를 하게 되어 있었지만 교통이 편리해 지니까 동편지역 출신도 서편소리를 배우게 되고 한 사람이 여러제의 소리를 배울수도 있게 되어서 사사계보가 막 뒤섞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동편제나 서편제를 하나의 음악양식으로 이해해야지 어느 지역에 국한한 지역적 스타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은 크게 보았을 때 온통 서편계통의 소리가 보급되고 있어서 동편소리는 그 명맥이 끊어질 형편에 놓여 있고 동·서편제의 장점을 결합한 보성소리 같은 것이 유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p> Ⅹ. 이면에 맞는 소리란?. <p> 판소리를 부를 때 서서 불러야 할 부분을 앉아서 부르면 이면에 안 맞는다고 한다. 또 사설의 흐름이 앞 뒤가 바뀌어 있을 때에도 이면에 안 맞는다고 한다. 세 살 먹은 아이가 애를 뱃다고 해도 이면에 안 맞는다고 한다. 병정들이 도망가는 대목을 진양조로 불렀다면 역시 이면에 안 맞는다고 한다. 곽씨 부인이 죽었을 때 우조로 불렀다면 이 또한 이면에 안 맞는다고 말 할 것이다. 이런 예에서 보면 이면에 안 맞는다는 말은 이치에 안 맞는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면에 맞는다는 이치에 합당하다와 같은 뜻이고 이면에 안 맞는다는 이치에 안 맞는다와 같이 봐도 된다는 뜻이다. <p> 그런데 "이면을 그린다"는 말도 있다. 이것은 판소리의 사설을 음악으로 잘 표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설의 내용을 장단이나 조(길의 개념)를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붙임새도 멋있게 작곡한 다음 멋진 소리(발성과 성음)로 불러서 사설의 내용이 그대로 음악으로 나타났을 때(발림도 포함) 하는 말이다. 이런 경우의 이면이란 말의 뜻은 소리로 나타나기 이전의 조건과 소리로 나타난 현상이 일치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p> 소리로 나타나기 이전의 조건이란 사설의 흐름과 사설의 짜임새등이 되겠고 소리로 나타난 현상이란 소리를 짜는 작곡행위와 그것을 표현하는 연주행위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특히 판소리 명창들이 중시하는 것은 "이면을 잘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현상이전의 문제와 현상으로 나타난 소리의 문제를 하나되게 하는 음악행위가 바로 이면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p> 이면의 한자를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것도 짚고 넘어 가야 할 문제이다. 이면을 理面으로 보면 이치적인 측면처럼 되어서 이면=이치가 될 수도 있다. 처음의 용례에서 그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면에 맞다는 이치에 맞다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이면을 裏面으로 보면 안쪽이란 뜻이 되는데 안쪽이 있다는 것은 바깥쪽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p> 이면에 맞는다는 것은 안쪽과 바깥쪽이 어울린다는 뜻이 될 수 있고 이면을 그린다는 것은 안쪽을 잘 표현한 것이 바깥쪽이 된다는 뜻이 된다. 말하자면 앞서 말한 현상이전의 조건이란 안쪽의 내용이 되고 현상으로 나타난 내용이란 바깥쪽의 내용이 된다. 따라서 이면이라는 용어는 한자로 어느 것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理面의 뜻도 있고 裏面의 뜻도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한자의 뜻이 함께 있는 용어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p> XI. 이면이라는 용어의 의미 <p> 국악에서는 "이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면에 맞는다"든지 "이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한자(漢字)는 理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면에 맞는다"는 것은 대개 이치(理致)에 합당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소리를 하는데 엎드리어 땅을 치면서 통곡하여야 할 대목인데 그 소리를 그냥 뻣뻣하게 서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춘향가를 창극으로 하는데 춘향을 남자로 하고 이도령을 여자로 했다면 그런 것도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p> 그런데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하면 좀 복잡해진다. 판소리에서 좋은 소리인지 좋지 않은 소리인지를 따질 때에도 이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는 그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이 일종의 미학용어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천리만리"라는 가사를 표현하는데 "천리"는 좀 짧게 부르고 "만리"는 더 길게 "마아아아알리"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p> 또 놀보가 흥보를 나가라고 할 때에는 막 내쫓는 것이니까 '우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고 흥보가 쫓겨 나갈 때에는 슬픈 마음으로 부르는 대목이니까 '계면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는다. 말하자면 슬픈 대목에서는 슬픈 소리로 부르고 기쁜 대목에서는 기쁜 소리로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한다. <p> 마찬가지로 판소리의 극적인 흐름이 '어사 출도' 대목처럼 바쁘게 도망가고 법석을 떨 때에는 그런 극적 상황에 합당하게 빠른 장단으로 노래하고 한가하게 광한루에 올라 사방 경치를 살펴보는 '적성의 아침 날' 같은 대목에서는 느린 진양조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런 상황을 거꾸로 생각하여 '어사 출도' 대목을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고 '적성의 아침 날'을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 것이다.
<p> <p> <p>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장단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것도 이면에 맞게 배열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가사의 내용이나 극적인 상황에 맞게 소리를 짜고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면에 맞는 소리"란 말은 작곡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하고 연주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면이란 말의 한자는 理面보다는 裏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 <p> 나는 어느 날 아침 산을 오르다가 문득 그 "이면"을 깨닫게 되었다. 이면의 한자는 理面·裏面·二面을 두루 써도 될 만큼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판소리 명창들이 "이면에 맞다"라는 말도 쓰고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도 쓰고 또 "이면을 그린다"는 말도 쓰는데 이 세 가지의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p> <이면>이란 용어는 한문(漢文)을 많이 쓰는 전통사회 시절부터 써 온 용어이다. 분명 한자로 된 성어(成語)인데 그 동안 국악계에서는 그 한자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또 어느 것이 옳은지 한자로 표기하는 예도 거의 없었다. 그냥 "이면"이란 말을 써 오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용어가 한문성어(漢文成語)인 것이 분명한 이상 한문으로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p>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해 보니까 "이면"이란 말의 한문은 앞서 예를 든 세 가지 한문이 다 해당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동안 판소리계에서 "이면"이란 말의 한문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복합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보기에 "이면"이란 말에 세 가지 한문의 뜻이 다 있다는 것일까?. <p> 먼저 "이면"을 二面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사전 조건이라는 한 면과 그것을 나타낸 현상으로서의 한 면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가사(사설)라는 사전 조건을 음악으로 작곡했을 때의 현상이 서로 잘 맞으면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또 그 작품을 합당하게 창(唱)으로 표현했을 때에도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p> 그리고 작곡이 잘 되었다든지 창으로 잘 표현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된 것"이니까 "理面에 맞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작곡이 잘 된 '소리 대목'을 잘 표현한 연주가 이루어졌을 때 "이면을 잘 그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경우의 "이면"은 한문의 裏面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맞으면 "二面이 잘 조화된 것"이고 "裏面을 잘 그린 것"이고 또 "理面에 맞는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p> 여기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음악이란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했을 때 그 <표현된 내용>은 결국 <사전 조건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전 조건이란 판소리의 경우 가사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 가사를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p> 춘향가의 '신연맞이'대목을 동초 김연수명창은 세마치라고 하는 빠른 진양조장단으로 작곡했는데 다른 판소리 작품들은 대부분 자진모리로 되어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같은 사설이지만 작곡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조건이 되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해석의 문제 역시 중요한 것이지만 <사전 조건>에 포함시키면 된다. <p> 그 동안 판소리에서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평가 점수에서 불가(不可) 판정을 받은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면에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민속악에서 "이면의 뜻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이면이 한문성어로 '二面'·'裏面'·'理面'의 뜻을 함께 가진 포괄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조화되었을 때 "이면에 맞는 소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 명창의 역사 <p> 초기 명창 : 영조∼정조 때 우춘대(禹春大)·하은담(河殷潭)·최선달(崔先達) <p> 순조 무렵 : 권삼득(權三得)·송흥록(宋興綠)·염계달(廉季達)·모흥갑(牟興甲)·고수관·신만엽·김재철·황해천·주덕기·송광록·박만춘·박유전.·김성옥. <p> 철종 무렵 : 박만순(朴萬順)·김세종·이날치(李捺致)·정창업·한송학·송우룡·정춘풍·장자백·김정문. <p> 고종 무렵 : 황호통·이창윤·김찬업·박기홍·김석창·유공열·김채만·유성준 ·(김창환·송만갑·이동백·김창룡·정정열 등 5명창시대) <p> 한말 일제시대 : 장판개·박중근·박봉래·김정문·정응민·공창식·김봉학 <p> 여류명창 : 진채선·허금파·강소춘·김녹주·이화중선·김초향·배설향·박녹주·김여란·김소희·박초월 <p> 완창판소리 : 박동진·박초월·김소희·오정숙·성우향·박초선 등 <p> 초기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 박녹주·김연수·김여란·정광수·김소희박동진·박초월·정권진·박봉술·한승호. <p> 강의 담당교수 최 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