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사교육다이어트,아이](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hoto-contents.daum-img.net%2Fmiznet%2F200904%2F07%2Fd146m.jpg)
왜‘사교육 다이어트’가 필요할까?
경제 위기로 인해‘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던 사교육비 역시 다이어트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비는 경제 위기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다이어트해야 하는 영역이다. 어지간한 상류층의 가계를 제외하곤, 장기적으로 가계 소득과 사교육비 지출 사이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하는 돈을 실제 조사해보면, 대학 이전에 들어가는 돈보다 이후에 들어가는 돈이 훨씬 더 많다. 일단 대학 등록금이 사립대의 경우 연간 1천만원 선에 달한다. 이는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고, 대학 시절이나 그 이후에도 각종 취업 학원비, 어학연수 등으로 상당 액수의 지출이 이뤄진다. 또 우리나라 문화는 자녀의 결혼 자금으로 부모가 상당한 목돈을 쓰게 되어 있다. 이에 대비하여 가계 수입의 추세를 보면, 자녀가 고등학교 나이 정도일 때 최고에 이르고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결국 소득이 내리막길인 시기에 자녀에 대한 지출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결국 중산층 또는 그 이하의 가계에서는 초∙중∙고교 시절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사교육비가 노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흔히 부모들은‘어떻게든 대학만 잘 보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초∙중∙고교 시절에 자녀에게 아낌없이 사교육비를 투자하곤 한다. 그러나 가계 소득과 지출의 장기적인 추세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행태는 노후 생활 기반을 잠식한다. 즉 사교육비 다이어트는 경제 위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사교육의 문제는‘돈’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가 게으르고 의존적인 인성을 갖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방학 기간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흔히 학원에서는 다음 학기에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가르친다. 개학을 하면 아이는 학교에서 그 내용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학원에서 학교 진도에 맞춰 또 한 번 가르치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기가 되면 총정리다 뭐다 해서 다시 가르친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뜻에 따라 학원과 학교를 왕복하며 동일한 내용을 적어도 네 번 이상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 학습의 장기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일단 학습 효율이 낮아진다. 되도록 짧은 시간을 투자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내겠다는 자세보다는, 지적으로 나태해진 상태에 서‘어차피 또 배울 테니까’라는 안이한 태도를 가지게 될 위험이 크다. 또 별다른 지적인 노력 없이도 교과 내용을 다 알게 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점차‘복습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된다. 복습 기술을 익히지 못하는 경우 그에 따른 위험은 매우 크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처럼 범위가 좁은 시험을 대비할 때에는 복습법의 영향이 그리 드러나지 않지만, 수능처럼 넓은 범위의 시험을 대비할 때 체계적인 복습 기술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는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학원을 많이 다닌 학생들을 상담해보면, 전혀 복습할 생각을 하지 않거니와 복습 기술도 익히지 못한 학생이 대다수다.
학원에서는 학습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전 과정을 주도한다. 이른바‘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학원에 의존하면 할수록 자기 주도 학습을 이끌어갈 능력이 떨어지고, 관리 기술이나 복습 기술을 익힐 기회가 줄어든다. 그래서 더더욱 학원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불안하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기 어려운‘학원 중독증’에 빠지게 된다.
정확한 교육 정보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교육 정보는 대체로 학원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업계에서 유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당연히 업체의 이해관계에 의해 굴절되어 있다. 그래서 결론이 항상“학원을 되도록 빨리 다니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다녀라”라는 식으로 귀결된다. 학부모로서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끔 만드는 내용도 많다.
그런데 그러한 정보는 얼마나 근거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아이가 수학에 좀 재능이 있다 싶으면“수학경시대회에 내보내야 한다”고 권하는데, 실제로 수학올림피아드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여 상급 학교 진학(주로 과학고에 진학)을 하려면 상당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그야말로‘죽도록’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들러리로 학원가의 매출을 올려줄 뿐이고, 그 과정에서 과중한‘학습 노동’으로 인해 수학에 대한 흥미를 일찌감치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한자 급수 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자녀의 언어 감각과 지식을 늘리는 데 얼마나 실용적일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입학과 연관해봐도 명문대 가운데 한자 급수를 선발 과정에서 인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교육업계에는 종종‘기획 상품’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최근의 가장 성공적인 기획 상품은 이른바‘창의사고력 수학’이다. 그런데 창의사고력 수학은 그 실상을 따져보면 교과 수학을 잘하게 만드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우리나라 교육 여건과 입시 제도를 고려해볼 때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억지로 시킬 필요가 전혀 없는 내용이다.
가장 폭넓게 퍼져 있는 오해는“특목고 준비는 초등학교 4학년 때(심지어 초등학교 1~2학년 때) 시작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새겨봐야 하는데, 일찌감치 특목고 전문 학원에 들어가야 특목고를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한다면 큰 오류다.
외고 입시의 경우 내신 성적, 영어, 구술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 영어의 경우 토플등 별도의 시험 성적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므로 시험에 얽매일 필요 없이 꾸준히 실력을 높여가면 되고 여기에 더하여 내신 성적이 충분히 높다면 단기적인 준비를 통해서도 진학할 수 있다. 구술 면접은 시사 또는 논술과 사회 과목을 연관시킨 문제가 나오는 추세이므로 이러한 주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학생이라면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다.
실제로 한두 달 준비해서 대원외고에 들어간 학생도 여럿 본 바 있다. 특목고는 이렇게 ‘여유 있게’들어갈 만한 학생이 들어가야 빛을 보지,‘ 간신히’들어간 학생은 대체로 하위권에서 놀게 되고 그러한 데서 겪는 심리적 중압감과 열등의식으로 오히려 일반고에 가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과학고의 경우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과 내신 성적, 구술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 이 올림피아드는 수학의 경우 경쟁이 심하므로 초등학교 5학년 정도에 시작하는 게 좋으며, 물리∙화학∙생물 등의 과학 과목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정도에 시작하면 충분하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 후반에 올림피아드 준비를 시작하여 과학고에 진학한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대치동에서 과학 올림피아드로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는 학원에서는 중학교 1학년 후반기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더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성과가 좋아지지 않는 이유는 피아노를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다 잘 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과 적절한 타이밍이 맞물렸을 때 최고의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구술 면접은 수학과 과학 전 영역에서 고1 수준까지 출제되므로 중1 또는 중2 때부터 적절한 수준의 선행학습을 꾸준히 해나가면 된다.
수험생들과 폭넓은 상담을 해본 입시 전문가로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읽기(독서) 경험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권하고 싶다.
읽기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수능 언어 영역,논술 그리고 수능 외국어 영역에 있어 정말‘대책이 없다’. 어려운 영어 문제의 경우 제시문과 문제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해줘도 정답을 못 맞히는 학생이 의외로 많으며, 이러한 추세가 점점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나치게 선다형, 단답형 점수 따기 교육으로 학생들을 내몰았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 시험 문제들은 그 평가 목적이나 문제 수준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경우도 상당한데, 이런 시험에서 한 문제 더 맞고 틀리는 데 집착하다가 훨씬 중요한 기초공사를 놓친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라고 할 것이다. 글의 흐름과 논리를 파악하고 다소 어려운 글을 밀도 있게 분석
하는 역량을 충분히 길러주지 않으면, 대입에서 절대로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첫째아이(8세)가 태어날 때부터 기어다니는 방에 책을 깔아놓고 거실의 두 벽을 책장으로 꾸며 각종 읽을 거리들로 가득 채워놓았다. 직접 산 책도 많지만 다수는 여기저기서 얻어온 1990년대 책들이다. 다음은 내가 만든 독서 교육 십계명인데, 참고가 될까 싶어 소개한다. ① 꾸준히 읽어줘라. ② 집에 책이 많아야 한다. ③ 책을 여기저기 늘어놓아라. ④ 강도 높게 칭찬하라. ⑤‘확인’하는 대신‘얘기’를 나눠라. ⑥ 스토리가 없는 책도 읽어줘라(도감, 지도, 잡지 등). ⑦ 학습 만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⑧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를 확실히 지원하라. ⑨ 집에 책보다 재미있는 것을 없애거나 엄격하게 규제하라(컴퓨터, 게임, TV 등). ⑩ 부모가 모범을 보여라.
특히 아이가 특정 분야에 비교적 강한 흥미를 보일 경우, 이를 적극 지원해주고 해당 분야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으로 연결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관심을 가진 영역에서는 또 래의 눈높이에 맞는 책뿐만 아니라 그보다 수준 높은 글도 읽어낼 수 있는데, 이런 경험을 통해 한두 영역에서라도 일찌감치 어른스러운 지식의 세계를 접하는 통로를 확보하게 될 경우 그 아이의 지적인 시야와 수준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가 된다.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좋아하는’과목이 여러 개 있다면 가장 성공적인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가장 불행한 경우는 중학생이 되도록 좋아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거나, 심지어 저학년 때는 좋아하는 게 있었는데 중학교 갈 무렵에는 모든 게지겨워지는 경우다.
최근 대치동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전교 1등을 하고 이를 꾸준히 유지한 학생의 사례를 발견했는데, 이 학생은 영어를 제외하고 다른 학원은 다닌 적이 없으며, 오직 초등학교 시절 부모의 지원을 통해 충분한 독서와 몰입의 경험을 가진 경우였다. 상담하면서 이런 경우를 발견할 때마다 가장 기쁜 것은 물론,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내달리는 식의 교육에 사로잡혀 있는 학부모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글쓴이 이범(교육 평론가)은…
연봉 18억대 수능 과학탐구 스타 강사,매가스터디 창립 멤버 등 한창 주가를 올릴 때 학원가를 떠나 교육평론가로 변신, 무료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수호천사 이야기」,「 학원 발가 벗기기」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