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막 인생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퇴직금 받은 것으로 집을 신축하고 남은 돈이
4년차가 되자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300여평 농사를 지었지만 우리가 먹고, 고추와 고구마를 팔았지만
연 수입은 몇 백만원 정도였기에 곶감 빼먹듯 은행잔고는 줄어들고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가정 분위기도 원만하지 못했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딸도 참석한 가족회의를 열었다.
가족 모두 같이 돈을 벌자고 했고 딸에게 보내던 약간의 생활비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단키로 했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다고 자꾸 미루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이 왜 이렇게 쓸모 없는 인간이 되었나 하는 무력감도 느꼈다.
아내는 수녀원 식당에 알바를 하고 있었고
한편으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7월부터는 취업을 했다.
나는 직장을 계속 찾아 5월에 도자기 회사에 취직했다
월 130만원 임시직으로...
농사일은 휴일과 5시 퇴근 후에 해도 가능했다.
그리고 1988년 은행 다니던 친구 부탁으로 들었던 개인연금이
금년 8월부터 매월 40만원씩 5년간 수령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한편 2013년 12월 부터 개시되는 국민연금 수령을
5년 앞당겨 조기수령을 신청했다.
이렇게 하여 급한 경제적 어려움을 일단 수습했다.
가족회의 개최 전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일부분이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바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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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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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정말 힘든 시기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자존심도 꺾이고 경제적으로 하루 하루가 어렵고.
이럴 때 일수록 가족이 뭉쳐야 하지 않겠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모두 격려하며 노력 해야지요.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 고맙게 생각하오.
그런 당신에게 흡족한 남편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오.
어렵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이겨내도록 합시다.
2008. 2.14 스테파노
본당 성경필사 전시(2.26)
2007년 교구장 5대 중점 사목의 하나인 성경 중심사목결과
신약 완필자와 완필하지 못했지만 현재 쓰고있는 성경을 전시하고
본당 신부님의 축복장을 줌으로써 성경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다.
NPD Team 방문
(2008.3.16)
96년 초 경영진에서 획기적인 신제품을 개발할 것을 명받았다.
오비마케팅팀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특별임무를 받아
사무실도 따로 얻어서 팀(NPD)을 꾸렸다.
명동에 하나의 사무실을 얻어 새롭게 데코레이션을 하고
그곳으로 출퇴근하며 업무를 수행하고 브리핑할 때만 본사로 들어갔다.
당시 팀원 중 일부가 방문했다.
미혼이었던 팀원이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과 함께 왔다.
봄
(4.27)
5.27
스승예수 성모의 밤
5월
수녀원 수녀님들과 마을 교우들이 함께 참여했다.
묵주기도도 각 단별로 나누어서 하고 성모님께 바치는 노래도 봉헌했다.
공소 성모의 밤
바오로딸 종신서원식
6.30
바오로딸 수도회에서는 종신서원을 준비하러
도전리에 있는 사도모후의 집에서 6개월 피정을 한다.
이 기간 종신서원 예정자 수녀님들과 지도수녀님을 자주 만난다.
침묵중에 산책하거나 공동 야외활동 그리고 끝무렵
우리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축하하는 자리도 갖는다.
메년 본원 종신서원식에 초대되어 축하하러 갔다.
수원교구 성경잔치
(10.5)
교구청에서 성경필사 전시 및 교구장 축복장 수여식이 있었다.
감곡성당 김웅열 신부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도
축복장과 천국의 반지를 받았다.
마리 한(찐빵) 방문
10.29
2년 전 카페에 올린 우리집 정자에 달린 시래기를 보고
먹고싶다는 댓글을 읽고 '보내드릴까요?' 했더니
고맙다는 댓글에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미국주소였지요.
시래기를 보내자 건강보조식품,스웨터 등을 보내왔습니다.
이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제주까지도 방문했습니다.
*젬마 자매
우리집 앞에 사는 결벽증이 있는 나보다 5살 어린 처녀다.
즉 결혼하지 않고 80대 노모와 살고 있다.
성격이 까탈스러워 매사 신경질적이고
특히 본인 어머니에게는 소리를 지르며 항상 야단을 친다.
그래도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를 끌며 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같다.
젬마는 항상 돌아가신 자기 큰 오빠 자랑을 한다.
돈을 많이 벌어 마을 길을 닦아 주었고,
파티마의 프란치스코 수녀원 성당을 짓는데 몇 억을 희사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공덕비도 세워져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산에 묻혀있다.
자기네 친척중 신부와 수도자가 10여명 나왔다고 늘 자랑한다.
마을의 뉴스는 모두 꿰차고 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어릴 때부터 결벽증이 있어
타인과 접촉된 옷, 양말등은 몇 번씩 빨고 또 빨았고
길가다 소똥이나 개똥이 있으면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곤 한다.
사람 많은 곳에는 가기 싫어해
모임이나 피정 심지어 미사참례도 하지 않으려 한다.
큰 오빠가 물려준 재산이 많다고 소문이 났다.
집과 밭 2개 그리고 현금도 10억대를 저축해 놓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사는 동생이 안쓰러워 오빠가 특별히 재산을 많이 물려준 모양이다.
냉담중인 그녀를 레지오팀에 입단시키고
피정까지 함께 가며 결벽증을 완화시키기도 했다.
처음 이사갔을 때 보다는 증상이 많이 완화된 느낌이지만
히스테리한 성격은 여전했다.
첫댓글
긴 인생 여정 길
누구나 굴곡의 인 생 한 페이지는
다 인생역사지요
추억으로 남는 오늘이기도 합니다
행복해 하신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