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게시글도 많지 않아 아들이 이병,상병 (2011년 봄~여름)때 올려졌던 아버지와 아들의 군대 이야기 다시 올려 드립니다.
아버지와 아들간 31년이라는 세월차이로 입대한 군에대하여 당시 야심차게 10편까지 기획하였는데 아들의 군생활 중반부부터
생동감이 떨어져 5편에 머물렀었습니다.
* 31년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 1편(입대)
(2011년 4월 28일)
아들 입대한 후 아들과의 레이스를 한답시고 여러차례 글을 남겼었는데
이제 그 녀석에게서 뿜어나오는 신선한 취재거리도 시들시들해지고
이 핑계 저 핑계로 탄력 늘어진 고무줄 가락이라 소재 빈곤만 탓하고 있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어버지의 군대라는 안주거리로 깃발을 들어본다.
31년이 지난 후 아들과의 틈바구니를 찾아가는 세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이리하여 <31년 세월의 틈바구니>를 꿰어 맞추다보면
그 녀석도 내 곁으로 내품으로 돌아와 다시 속 썪이는 삶을 부대끼며 살아가겠지...
< 첫번째 이야기 - 군대가기 한달 전 >
불현듯 떠올라 부랴부랴 지난 사진을 찾아보다가 1979년 봄, 나의 군 입대하기 한달 전 사진을 발견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0855364D9694920E)
야단법석 사진을 스캔 떠놓고보니 흐릿해져있지만 입대 영장 받은 후
세상 막장인 것 처럼 방황하던 시기에 대충 꾸려서 남이섬에 당일치기로
야유회 삼아 나들이 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나는 1979년 5월 29일 103보충대(춘천)에서 100 소총수로 낙인찍혀
새로 창설된 최전방 부대용 사단 자체 신병교육대 최초 입소 군번(330000**) 으로
12사단(인제 원통)에서 훈련 및 배치받고 10.26사건과 12.12사태를 겪으며
무지막지 오래동안 복무했던 흐린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15E3359B74C8D21)
아들이 군에 입대하기 한달 전쯤 파주 어디쯤인가에 다녀왔던 사진모습 중 한장도 찾아냈다.
당시 306보충대만 찍힌 입영통지서를 받았기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 복무하는 인근에 갔다는 사실이 우연치 않지만
아들은 작년 6월 1일에 306보충대(의정부)를 거쳐 백마신교대에서 훈련받고
현재까지 9사단 28연대 3대대에서 일등병 마지막 달을 향해 열심히 군 복무 진행중에있다.
2대에 걸친 초여름 입대를 엇비슷하게 (3일 차이) 비교해보며
31년의 세월 차이를 그려보게 되는 것은 오늘따라 유난히 복잡함을 다스리지 못해서일까....
즐거운 모드로 자체 변산하여 이어나간다.
내가 그 당시 103보(춘천) 입소를 한달 앞두고 남이섬을 향한 것은
어차피 동부전선 방책선 요원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감지한 탓에
춘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무르기를 갈망함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들 너도 역시 306보충대(의정부)에서 네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파악한바대로 허한 마음도 달랠 겸하여
파주지역을 혼자 정처없이 쏘아다녔으리라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련해온다.
나는 당시 보충대에서 배출되던 날 연병장에서
"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속의 원통으로 추첨되어 12사단에 배속받고선
동해안 경비사령부로 호송되는 전세관광버스에 몸을 싣는 동기 장정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나는 동기 100여명과 함께 도살장 끌려가듯 인솔되어
소양강에서 배로 옮겨진 이후엔 다른 세상에 빠져들게되었다.
강으로 뛰어내릴까봐 배 밑창으로 구겨 넣어진 뒤엔
암흑 속 공포에 떨며 양구 어딘가에 떨궈지는 수난이 시작되었다.
햇빛에 눈부셔 겨우 어리둥절을 벗어나는 찰나에 인상 고약한 호송관에 인계되어
습관처럼 얼차려를 한차례 혹독하게 받은 다음 털털거리는 60트럭에
짐짝처럼 따블백 둘러메고 실려진 신세로 몰락되어갔다.
험준한 고개를 이동하던 중 오르막 경사에서 "병력하차" 푯말만 나오면
우리에겐 "병력하차"를 외치며 내리게하곤 빈 트럭은 먼저 올라가 대기하고
우리는 뛰어오르게 했는지 아직도 머리를 갸웃하게된다.
아들 ! 너는 어쨌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버스라도 얻어탄 것 같아서 하나도 미안하게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지지리도 복도없이 춘천에서 가장 오지이며 험악하다는
사람 구경도 못해보는 원통으로 유배되어지고,
너는 의정부에서 드라이브코스인 파주로 가는 선택을 받은 것을 생각해보니
혹시 뺑뺑이나 로또 살 일 있으면 나 보다 네가 구입하는 편이
우리집 가세를 위해서는 확률이 훨씬 유리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아님 말고...
아버지의 31년전 군대생활에 비하면 현재 아들의 군대 생활은 군대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지만
당시에 느끼던 갇혀있음의 비장한 몸부림과 현재 아들의 탈출하고픈 발버둥은 그넘이 그넘일 것이겠지..
그래도 좋아지긴 좋아졌나 보더라... 하긴 모르고있다 너의 통화로 인해 일본 지진난 것을 알 정도였으니까.
좋은 세상이야. 여기 TV에 강호동 1박2일 나오면 거기 TV도 똑같이 1박 2일 동시에 나오쟎아.. 뭘 더 바래..
첫댓글 그당시의 심적 상태를
고스란히 잘 표현해
놓으셨네요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마음한켠에 한자리 하겠지요
잘보고 갑니다
늘 강건하세요 회장님^^
모든 지나간 시간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