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남과 베풂
명절 앞두고 냉장고의 묶은 음식을 꺼냈다.
유통 기간 지난 것을 가렸다.
찌든 떼를 닦았다.
세재의 독함을 손이 알았다.
냉장고 숨소리가 부드러웠다.
싱크대 속 해묵은 부엌살림도 치웠다.
빈 용기를 모아 창고에 들였다.
열 살 먹던 섣달그믐날,
아버지는 초당에 세뱃돈 따기 위해 화투 치러 갔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달그락거리며 묶은 때를 벗겼다.
그 곁에서 잠들지 않으려 용을 쓰다 깜박 쓰러졌다.
세월은 코흘리개를 훌쩍 들어 반백으로 물들여놓았다.
웬 은혜인지 자식의 자식을 선물받았다.
6개월 된 친손녀 맞을 작은방을 꾸몄다.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 냈다.
쓰레기는 분리해 내려놨다.
나물을 삶아 무친 아내가 간 좀 봐라! 입에 넣었다.
정리할 시간이 모자랐다.
새벽에 아들 내외가 먼 길을 왔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친손녀 보듬어 얼마나 큰 복인가?
그리운 가족을 꽃 본 나비처럼, 물 본 기러기처럼 반겼다.
손녀가 보물이었다.
딸린 짐이 만만치 않았다.
손녀로 웃음꽃이 피었다.
촉을 세워 안아 주기 바빴다.
만남의 복된 시간, 소망의 닻을 올리는 설날을 맞았다.
대접할 기회라 얼마나 좋은가?
아침 햇살이 얼굴에 비췄다.
어릴 때 가난한 가슴에 부푼 꿈을 안겨준 햇볕!
떡국 한 그릇, 새우튀김, 소고기 산적, 생선구이..
디지털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설음식 맛이었다.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복되고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지난 삶을 반추하며 행복한 대화를 이어 갔다.
어머니 집 점심 약속에 서둘러 음식을 챙겼다.
먼저 도착한 익산 동생 식구들이 따뜻한 밥을 지었다.
두 상에 두 가정 음식을 담아내자 진수성찬이었다.
찬송을 부르고 말씀 전한 후 기도하자 풍성함이 넘쳤다.
사과, 배, 천혜 향으로 후식을 즐겼다.
설거지 마치고 어릴 적 그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세배드렸다.
그때는 던져준 동전에 마음을 뺏겼다.
이제는 못난 자식이 한 해를 어떻게 살 것인지?
땅속 두더지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고,
햇빛 흐르는 벌판에서 기를 펴고 싶었다.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
많은 세월 살아낸 어머니의 덕담을 기다렸다.
‘건강하고 화목하고 하는 일 잘 되거라.’
‘웃음꽃 피우고, 가슴에 기쁨 가득하거라.’
권면이 햇살처럼 반짝거렸다.
‘노를 저으면 배가 흔들리고,
소를 키우면 외양간이 더럽혀진 법!’
팍팍한 삶을 헤쳐 온 어머니도 이곳저곳 흠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봄볕만치 다사로우셨다.
봄기운 같은 말씀이 풀 내음 같았다.
고우시고 밝고 맑고 처음처럼 아름다우셨다.’
덕담처럼 새해 주님의 복 많이 받고 그 복 나누길 원했다.
‘아픈 사람이 뭔 세배를 받느냐?’ 하셨지만 그게 아니었다.
흡족한 마음에 힘을 내셨다.
나 또한 세배를 받았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심정으로 내 옥합을 깨서 세뱃돈 봉투를 썼다.
차례대로 나눌 때 드린 기쁨이 더 컸다.
‘어머니, 복된 새해 맞아 강건하세요. 큰 아들이’
‘감사해요, 사랑해요. 남편이’
‘예쁜 효진, 주아 키우느라 수고 많다. 행복하렴.’(자부)
‘이쁜 주아, 이쁘게 자라 고맙다. 이쁜 짓 많이 하렴.’(친손녀)
‘기쁨의 찬양 채우길..’(막내)
‘보배로운 가정 이끄느라 수고 많네. 행복한 삶 누리게..’(사위)
‘밝은 별, 환희 비추렴.’(외손녀)
‘힘찬 아이, 씩씩해 자랑스럽다.’(외손자)
‘늘 마음 써 주심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제수씨)
‘난 성경(큰 조카) 사랑해 너무너무..’
‘넉넉함과 배려심 많은 성지, 늘 고맙다.’(둘째 조카)
‘듬직하게 세워진 모습 보기 좋다. 귀한 꿈 이루렴.’(셋째 조카)
한숨 돌리고 편을 나눠 윷판을 벌렸다.
삼 판 양승!
패자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두 통 배달까지 책임지기였다.
동생네와 붙었다.
첫판을 내주고 두 판을 이겼다.
깨끗하게 승복하고 조카가 원하는 맛 신청받아 배달 앱으로 시켰다.
너므너므 달콤하고 맛나 순식간에 비웠다.
헤어진 후 아들이 할머니에게 드럼 세탁기를 설치해 드렸다.
‘아빠! 고등학교 때 괜찮은 핸드폰 갖고 싶었어요.
할머니에게 편지 써서 40만 원 받았어요.
그 빚을 이제 갚네요.’
칭찬할 일이었다.
연휴가 길어 딸 집에 모였다.
어머니도 모시고 갔다.
숨이 차서 한참을 소파에 기대셨다.
고기를 구워 넉넉히 먹었다.
손녀, 손자가 참새처럼 재잘재잘 떠들고 웃었다.
운동장처럼 휘젓고 뛰어다녔다.
엄마가 간간이 ‘조용해!’
소리 질러도 몸을 흔들어 춤추는 막무가내였다.
세상의 어떤 꽃이 너희만 할까? 싶었다.
손자 피아노 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절대 음감의 소유자였다.
한번 들은 음을 악보 없이 빠르게 쳤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누이보다 앞서갔다.
처음 맞은 동생 위해 기막힌 반주를 선보였다.
두 아이가 신기하게 어린아이를 더 잘 봤다.
연휴 끝날 목포로 가족 여행을 갔다.
북항에서 해상 케이블카 표를 끊었다.
가족 나들이가 많아 기다렸다.
아이들이 좋아 어쩔 줄 몰랐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는 직원 도움으로 타셨다.
화창한 날씨에 하늘에서 본 시내와 항구가 새로웠다.
흥분한 손주들에게 다음에 비행기 태워주기로 했다.
평화의 광장으로 갔다.
새우깡 먹이에 갈매기가 몰렸다.
해촌에 들려 조개 초무침에 밥을 비벼 먹었다.
죽 맛이 죽여줬다.
추억의 맛집, 밥값을 어머니가 냈다.
어머니 자랑거리가 쌓였다.
광주 딸과 이모에게 전화할 때마다 입이 닳을 정도였다.
목포 여행과 손자사위가 식구 11명 초정,
전대 앞 롤링 파스타에서 큰돈 썼다고..
행복한 만남과 베풂에 감사드렸다.
2024. 2. 17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