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모악산 해문대총림 용천사는 백제시대 침류왕1년, 서기 384년 마라난타스님에 의해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또한 현재 대웅전 계단 오른편에 바위틈 사이로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여 용친사 라고 칭하였다. 또한 용천수가 영광 앞바다까지 흘러 서해에 이르고 있다. 백제 무왕때 서기600년 사찰이 번창하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전소되었고 이후 숙종조에 석등과 탑 등, 여러 전각이 복원되어 발전하였다. 하지만, 6.25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사찰 대부분이 불타 전소되었고, 1960년대 대웅전과 요사채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98년 이후, 한평군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발굴조사와 복원계획서를 바탕으로 주요 전각들이 복원되고 있다. 용천사 주변에는 백년 이상된 야생차밭이 있으며, 모악산과 주변에 산재한 한국최대의 꽃무릇군락지가 가득하고, 해마다 9월 중순이되면 불갑사일대와 더불어 수 십 만평의 모악산 전체가 콫무릇 향기로 붉게 불들인다.
함평 용천사
[ 龍泉寺 ]
요약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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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
종파창건시기창건자소재지
대한불교조계종 |
600년 |
행은 |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지도 |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천불전(千佛殿), 지장전((地藏殿),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