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말 100개가 넘을 듯 하여, 이곳에 적습니다.
먼저, 불교를 이야기함에 국가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귀의님은 3류도 몬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저 역시 3류도 몬되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3류도 몬되는 것을 문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중생은, 오십보백보입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거대 종파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선불교 자체를 가치절하하는 말은 적지도 않았습니다. 위에 인용된 제 꼬리말을 봐도, [선일화의 많은 경우는...무초의 경지에 이른 절대 고수, 혹은 무초의 맛을 얼핏 엿본 절정 고수, 혹은 초식의 정점에 이른 일류 고수들이 등장]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많은 선일화에서 최고의 고수들이 등장한다고 지적하고 있죠?
문제는, 적었듯, 선불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소위 "신비주의의 세속화" 이후, 3류도 몬되는 이들이 고수 흉내를 내는데 있습니다.
몇 번 한 적 있는데, 제 이야기를 해보죠... 고등학교 졸업하면, 불교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구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불교 공부를 시작했어요. 처음에 아는게 없으니까, 가장 유명한 반야심경을 붙잡았습니다. 당근 뭔 말인지 모르죠? 그래서 반야심경에 나오는 사리푸타 수준이 되기로 하고, 일단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요가를 했어야 하나? 그건 아니죠? 상좌불교 공부부터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요가를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위에서 인용한 비유를 가지고 오자면, 초식을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
중생은, 초식 공부하기 싫어합니다. 그 이유야 여러가지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초식 공부를 좋아할 중생은 드물어요... 저 역시 그랬던 겁니다... 차후...초식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각종 불교 강의도 듣고 이것 저것 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우리 중생은, 비슷비슷해요. 비슷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어요... 초식 공부 싫어하는 경향성도 그러한 겁니다. 한국의 선불교를 보고 있자면, 승속을 불문하고 그런 거 같아요.
[위와 같은 우리의 경향성]과 ["무초 승 유초"를 논하는 최소 초식의 정점에 이른 일류고수들이 등장하는 선일화]의 결합은 사상누각을 만들어 내게 합니다. 개인이 문제가 아니예요. 중생이 그러한 경향성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엄는 일입니다. 그것은 수용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때야 하겠습니까? 제대로 된 선승이라면, 재가불자에게 초식의 중요성을 알려줘야 할 겁니다. 초식을 배워야 하는 승려에게, 초식의 중요성을 알려줘야 할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현실은 어땠습니까? 그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선불교는...초식도 제대로 몬하면서, 최소 일류 고수 흉내를 내면...겁나게 야단칩니다. 심한 경우, 줘패죠? 그런데 오늘날 선불교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 결과 초식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무초 승 유초"의 경지에 이른 고수 흉내를 내는 이들이 넘쳐납니다. 승속을 불문하고 말입니다... 정작 귀의님 자신도, 이곳의 꼬리말을 보면, 흉내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초식을 얼마나 연마하셨나요?
제가 왜 처음에 기초적 사항에 대한 꼬리말을 길게 적었는가? 그 내용을 보라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비슷한 이야기 이곳에서 여러 차례 했었거든요. 그럼에도 일부러 반복해 제시한 측면이 있습니다. "화두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와 같은 점을 스스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는 권유인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먼저 모범을 보인답시고 적어 놓은 거예요. 그것이, 비록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취지였습니다. 제가 적은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적은 내용 자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게으릅니다... 그래서 지금도 초식 공부하기 싫어합니다. 그 중생이 어디 간 것은 아니란 말이죠... 삼류라도 되어, 무사이기라도 하면 다행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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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 만큼이라도 앞선 중생은 있다는 그런 말씀 처럼 들립니다. 차라리 50보나 앞선 고수, 50보나 뒤쳐진 하수 그렇게 표현하심이 솔직하지 않나요 하하하
그러신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동안 님때문에 초식을 좀 익혔는데 초식이 익기도 전에 일탈을 했군요....
확실이 초식은 선명해지는 뭔가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달라지는 건 아니더란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제대로 초식을 배우기나 했나 묻지는 마십시오. 하하하
과연 맛과 초식이 연관이나 있는 것인지...만약 초식을 열심히 한다면 맛을 볼 수 있을까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그 맛은 우연의 산물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하고 연마를 해서 얻는게 아니라서...해서 초식과는 일면식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선불교도 초식이 없는 게 아니죠 축약해서 할 뿐
다만 초식과의 연관성과 가능성이 워낙 적다보니 흉내만 내는 자들이 나오고 이들을 바라보는, 초식을 익힌 이들은
전체를 까대는... 뭐 꼭 까는 분을 님만으로 한정한게 아니고 요즘 상좌쪽 초식을 익힌 분들이 대다수가
그러는것 같더라는.... 이럼에도 불구하고 초식을 익혀보려고하는 초식으로 돌아온 귀의는 삼류축에도 못끼는 게 맞나봅니다 하하하
길은 없다. 그러니 초식이라도 익혀야 된다.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 혹 수월한 길이 있다고 안내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런 자들은 정치가이고 종교가들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초식이 익혀질 수 밖에 없다.어떻게보면 살아지는 것 이 모두가 초식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
초식을 익히되 "언젠가 도달하겠지" 그런 기대를 말자. 따로이 도달할 곳은 없다. 결국은 지금 이 자리로 돌아와야한다. 이 자리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땐 초식과는 무관함을 알게된다.초식을 놓게된다, 탁자위에 놓여있던 무심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결국 초식은 방편이다. 방편없는 수행이 있나. 모든 게 방편이다. 모든 게 수행이다 .수행은 특별한 누군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삶의 과정이 바로 수행이다. 삶이 바로 수행이며 방편이며 초식이다 여러분이 바로 초식의 고수이다 이젠 초식을 내려놓으라 놓아야만 하지 않겠는가 초식은 바로 너와 나를 분리시키고 니것 내것 을 갈라놓고 상하를 벌여놓는다 누구를 위해서 그 누구가 무엇인가....
하늘은 맑고 강산은 푸르다
이 길의 과정이 그래요.
어른이 아이들을 보면 모르는척 하면서도 다 알잖아요.
자신도 그러했으니깐요.
그과정을 다 아는 거죠.
깨달음의 트임의 과정이 그래요.
자력의 수행을 다해보면 남는것은 신심하나만 남아요.
그래서 자력을 해보아야지 타력을 알수 있죠.
자력수행을 마음만 먹으면 1년이면 색계, 무색계를 넘나들어요.
그래서 그게 어쨌다구요.
이미 20년전에 경험했던것들인데..
그런데 신심을 가진다는것은 어지간히 해서는 안되요.
나를 죽이고 나를 또 죽여야하니깐요.
관전하는 내가 오글오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ㅡ..ㅡ;;
글고..자력으로 뭔가 뽕을 뽑은 것은 아니지만서도..용수님 말씀대로 '그래서 그게 어쨌다구'라는 마음은 있는데
신심은 당최 코빼기도 안보인다는.. 전에는 신심이란게 조금은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신심같은 건 엄는 종자라는 것만 분명해져 감..
이번 생에 신심이라는 게 생길까나? 하고 자문해보면..아마도 힘들지 않을까..한다는..
처음에는 선불교와의 절교를 선언하고.. 자력과의 절교가 이어지고.. 차츰 불법과의 절교..
석존과의 절교.. 경전과의 절교..
여태동안 생각했던 모든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고 분노가 일어나죠..
모든 종교에 대한 파상공격.. 모든 불법에 대한 파상공격..
왜.. 신심을 얻으려구..
신심은 그게 아니라고 하니깐..
석존이 이렇다. 이게 불법이다. 하여도.. 아니요. 그건 불법이 아닙니다.
그건 석존의 마음이 아닙니다.
석존의 마음은 이것입니다.
석존이 이렇게 말했는데 저인간이 왜 저게 아니라는 거야.. 너가 틀렸다. 그래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은 자력의 마음일뿐 석존의 마음이 아니다. 자력의 마음은 각자 틀리고 각자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타력의 마음은 똑같다.
그것은 이종신심이다.
자력의 깨달음의 한계를 안다.
그래서 자력의 깨달음에 대해서 그게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럼 아라한을 인정않느냐? 인정한다.
그럼 연각을 인정않느냐? 인정한다.
그럼 독각을 인정않느냐? 인정한다.
그럼 타력이라고해서 그들보다 높은 깨달음도 아니지 않느냐?
그렇다. 당장은 높지는 않으나 높아질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
왜 그런가?
극락왕생이 정해져있기때문이다.
극락왕생만 하면 바로 보살이 되기 때문이다.
자력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해서 아라한이 되어서 윤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력의 깨달음은 윤회하는가?
계속해서 윤회한다.
그중에는 원효나 신란처럼 모든것을 갖추신분들도 있다.
그렇다고 원효나 신란보다 깨달음이 처지는 것은 아니다.
표현을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