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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전통문화와 인삼의 향기…영주(榮州)를 찾아서
강 욱 자유기고가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영주시(榮州市)는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다. 영주의 지형은 남북으로 길고 동서는 협소하며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주봉인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연화봉(1,383m)과 죽령을 경계로 하여 도솔봉으로 이어진다. 소백산을 중심으로 해서 영주시는 그 동남쪽 기슭에 안기듯이 터를 잡았고,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으로는 강원도 영월군과 접경을 이루었다.
지금의 영주 땅은 본디 영주, 풍기, 순흥의 세 고을이 엇비슷한 규모로 솔밭처럼
나뉘어 오랜 역사를 이루어 왔던 곳이다. 삼국시대에 지금의 영주시 지역은 고구려 땅으로서 내기군으로 불렸다. 신라와 세력을 다투던 고구려의 맨 남쪽 영토로서 이곳 사람들은 끝까지 신라에 버티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주
사람의 기질이 굳고 끈질기고 철저한 데가 있는 것이다.
안동에서 38 킬로미터쯤 북쪽에 떨어져 있는 영주시는 동해안의 해산물, 내륙의
목재와 석탄 따위의 물산이 거쳐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955년 말 영주와 강원도 삼척군 상장면 철암리 사이에 영암선이 개통되어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의 내륙 물산은, 북쪽의 서울로 가거나 남쪽의 부산으로 가거나 한번은 영주를
거쳐야 했다. 따라서 화주나 상인들이 영주에서 하루쯤은 묶어야 했고, 영주시가
소비도시이고 상인이 많으며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철도와의 인연 때문이다.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아 내륙의 제주도라고 하는 풍기읍은 인삼과 사과와
직물의 명산지이다. 임야의 낙엽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나무가 많은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풍기는 또 「정감록」에 따라 ‘십승지지’의 첫째로 꼽혀
온 땅이다. 조선 중엽에 혼란기를 타고 유행한 풍수도참설과 어울린 「정감록」은
난리를 피해 살 수 있는 땅을 나라 안에서 열 곳을 들었는데 거기에서 풍기군 금계동을 으뜸으로 쳤다. 풍기는 고려 때의 거란과 몽고의 침입이나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때에 큰 피해가 없었고 육이오 때에도 전란이 스쳐 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영험’이 ‘경험’으로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몇몇 한약상들은 풍기 인삼을 담았던 봉지에서는 몇 달이 지나도 인삼 향기가 난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지방 것에 견주어 풍기 인삼은 두세번 달아먹어도
좋다며 그 약효를 높이 친다. 자연 산삼의 약효에 뒤지지 않는다고 풍기 사람들이
자랑하는 풍기 인삼은 조선 왕가에서 즐겨 썼으며, 일정 때는 개성삼은 열여섯냥,
금산삼은 열냥, 풍기삼은 여덟냥을 한근으로 쳐서 협정가격을 매겼다고 한다. 풍기에서 인삼이 재배되기 시작한 내력은 여지껏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다. 옛날부터 소백산 일대의 산삼이 이름난 진상품이었다고 하는데, 조선 중종 때인 1545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산삼 종자를 구해 기후와 풍토가 알맞은 이곳에 재배를 장려했다고 전해진다.
인삼은 화학비료를 주면 썩어 버리므로 퇴비만을 주는데 인삼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과 같이 정성을 들여 길러야 한다. 토질도 너무 좋으면 안되고
밤낮의 기온 차이가 커야 좋다고 한다. 이처럼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자란 풍기 인삼은 타지방의 어느 곳 인삼보다 내용조직이 충실하고 인삼 향이 강하며 유효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아 뛰어난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풍기에서 죽령을 향하여
차로 10분쯤 달리면 소백산 희방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로 접어들면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지는데 바로 희방계곡이다. 여기서 다시 30분쯤 걸어 올라가면
연화봉 중턱에 높이가 28미터이고 물 길이가 4미터인 웅장한 희방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희방폭포는 소백산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몇 천 구비를 돌아돌아
흐르다 이곳에 멈춰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와 함께 웅장한 폭포를 이룬다. 무더운 여름철 우거진 수목과 함께 어우러진 희방폭포에는 많은 피서인파가 몰려든다.
폭포를 뒤로하고 그 북쪽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에 터를 잡은 희방사가 자리잡고
있다. 희방사는 조선 선조 원년인 1568년에 만든 「월인 석보」의 판목을 보관해
왔던 절이다. 1권 머리에 붙은 「훈민정음」의 것까지 합친 「월인 석보」의 1권과 2권의 판목은 모두 2백장이었다. 이 절과 판목은 몽고와 왜구의 병란도 피해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으나, 불행히도 육이오 전란으로 모두 한줌의 재가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글의 창제 내력을 밝혀둔 「훈민정음」의 판목은 소실되기 얼마 전에 그것을 박아 만든 책 한 벌이 타고난 절터에서 발견되어 가까스로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희방사는 그 후 1953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은은한 종소리로 유명한 희방사 동종이 보관되어 있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순흥면 내죽리의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고려 때의 유학자 안향(安珦)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조선 중종37년인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그의 뜻을 기려 백운동 서원을
세웠는데, 소수서원의 전신으로 이 나라 서원의 시초로 친다. 이 서원은 명종 4년인 1549년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를 지내면서 임금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이란 네 글자를 받게되어 이름이 소수서원으로 바뀌었으며 사액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사액서원은 임금이 책이나 논밭이나 노비를 내려보내고 면세와 면역의 특전까지 주던 서원을 말하는데 선조 때에 이르러서는 나라안에 이런 서원이 백 개가 넘었다고 한다.
몇 백년 묵은 소나무가 울타리를 친 2,270평의 소수서원 자리는 본디 숙수사란 큰
절이 있던 터였다.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받들던 ‘억불숭유’의 정책이 쓰여진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절터가 서원터로 바뀐 일이 흔했다고 한다. 소수서원 경내에는 강학당, 문성공묘, 직방재, 일신재, 장서각, 전사청, 학구재 등의 건물이 있으며
국보인 회헌 안향의 영정과 보물 제485호인 원나라에서 가져온 공자의 제자상, 주세붕 영정 등이 보관되어 있다.
성리학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순흥면에서 동북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부석면에는 1,300년 전쯤인 신라 문무왕 16년에 화엄종의 본산으로 의상대사가 세운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우리나라 5대 명찰의 하나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경계에 위치한 봉황산(819m) 품에 안겨 있다. 이 절은 창건한지 삼백년 만에
불타 없어졌고 1041년인 고려 정종 7년에 중건한 것이다.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1016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왕명으로 중건할 때 지은 사찰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은 각각의 지름이 기둥머리 34㎝, 중간 배흘림 부분 49㎝, 기둥밑 44㎝의 배흘림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부드럽고 탄력적인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무량수전은 흔히 복잡하게 보이기 쉬운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물과는 달리 모양이 우아하게 단조로운 것으로, 그 배부른 기둥으로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건축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친다. 부석사에는 국보 18호인 이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국보 17호인 석등, 국보 19호이고 역시 고려 때에 지은 조사당,
국보 45호인 소조 여래 좌상, 국보 46호인 조사당벽화와, 보물로 지정된 여래 돌좌상, 삼층 석탑, 당간지주와 같은 문화재가 있다.
석등(石燈)은 부석사를 창건할 때에 만든 것이라고 전해진다. 화려한 조각 솜씨와
조형미로 신라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손꼽힌다. 이 석등의 옆면에는 연꽃봉오리를 가슴팍에 쥐고 선 보살상이 도드라지게 새겨져있는데 불빛이 비치면 그윽한 입체감을 지니며 살아있는 듯하게 보인다. 이 석등을 백 바퀴 돌면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부석사에 온 불교 신도들이 그 둘레를 돌기도 한다. 이 탑에서 다시 봉황산 쪽으로 80미터쯤 올라가면 조사당(祖師堂)이 있다. 의상대사의
진영(眞影)을 모셔 놓은 집이다. 고려 우왕 3년(1374)에 지은 이 건물은 건평 11평의 작은 건물이지만 소박하고 간결한 짜임새를 가져 한국건축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소백산은 울창하고 부드러운 산세로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소백산 제일의 자랑인 철쭉 역시 연화봉에서 비로봉, 국망봉의 능선에서
절정을 이룬다. 영주시에서는 철쭉이 일제히 만개하는 매년 5월 말경 ‘소백 사랑
철쭉 사랑’이라는 주제로 소백산 일원에서 철쭉축제를 개최한다. ‘풍기 인삼축제’는 매년 가을 풍기 인삼의 우수성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주 생산지인
풍기지역에서 다양한 이벤트로 펼쳐진다. <조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