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2:11~25)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세상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기다리시는 것은
마지막 한 사람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하나님이 베푸실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를 발휘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거기에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일'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만약 철저하게 세상과 괴리된다면?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반하는 삶이다.
그렇다고 나만의 울타리를 부수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
하나님의 원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히 unique하게 만드셨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적정한 세상과의 차단 시간 -휴식, 영성 회복, 자아 회복 등-은 필요하다.
가끔 세상을 죄악시하는 것이 과해서
철저히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영적, 구별적 차단이 아니라
실제로 완전히 차단시키는 듯한 모습을 본다.
죄악을 미워하고, 사람(영혼)을 사랑하여 분별된 행동을 해야 하는데
영혼까지도 배척한다. 대표적인 것이 영혼 혐오이다.
만약 우리가 영혼을 혐오한다면, 우리 자신도 혐오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그러니 아주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무대는 당연히 세상이고,
우리가 관심과 사랑을 베풀 이들도 사람, 영혼들이다. 특히 믿지 않고
going astray한 길 잃은 영혼들.
그들을 혐오한다면, 이미 그들을 하나님 길로 인도하는 일은 끝난 것과 다름 없다.
동성애자?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들보다 다른 것이 있는가?
성도의 선행은 삶으로 보여주는 복음이라는 내용이 본문 해설에 나온다.
그리고 사람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되,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은 이에게도 순종하라고 한다 .
리더십을 공부하면서 -리더십도 하나님이 주신 원리이다-
분별의 중요한 기준은, 일단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대로 다 주는 것이다.
아니, 줄 수 있는 대로가 아니라 모두 다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매우 허용적이고, 모든 것을 섬김의 도에 따라 행동한다.
다만 복음, 사랑, 또 다른 타자를 지키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사안에 대해서
혹시 그것에 도전하는 이가 있다면 필요에 따라 '엄정'해 질 필요가 있다.
Dirty가 아니라 엄정해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군의 중대장이 신병에게 규정을 초과하는 심한 얼차려를 시행하는 바람에
뼈가 녹는 고통을 당하다가 사망했다.
중대장이 대원을 강하게 키우려는 것이 유일한 목적과 취지였을까?
순전한 목적이었다면, 고귀한 동기였다면
나는 그런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심하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대장은 일시적이라도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려는
자기욕망에 휩싸여 그렇게 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순간적인 욕망의 산물이다.
사랑의 마음, 타자에게 더 좋게 해주려는 취지로
Dirty가 아니라 '엄정함'으로 다룰 일이 있다.
그 드문 경우의 엄정함은 곧 사랑이다. 사랑이어야 한다.
이것도 결국은 섬김의 일부이다. 일부이어야 한다.
자유와 섬김.
다른 것이 아니다. 온전한 섬김이 나를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 오늘 귀한 메시지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여전히 죄의 습성 속에서 헤매입니다.
하나님,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목장의 목자님 가정, 재정적 위기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좋은 해결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을 하나님과 더 깊이 사귐을 갖는 시간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박 집사님, 진단 결과를 듣습니다. 어떤 결과이든 선한 결과,
박 집사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양정환, 평안함을 유지시켜 주시옵고 완전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