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광야를 지나며.
올레길 서쪽 걷기의 마지막 날이라 북쪽으로 걸어야 하고
숙소를 옮겨야 해서 캐리어를 끌고 걷는다.
갯바위와 돌길을 만났는데 캐리어가 무거워 어깨에 메고 걷다 넘어졌다.
캐리어가 조금 깨졌으나 거친 길을 무사히 통과하니 참 기쁘다.
히즈윌(HisWill)의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이 내 삶같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 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고 이어령 문학박사는 <우물을 파는 사람>에서
“광야의 시간이 없으면 기복신앙으로 빠지게 된다.
기독교는 사막의 체험에서 비롯된 종교이다.
사막의 삶에서 갈증이란 대단한 것이다.
사막이기 때문에 갈증의 그 고통을 알게 되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갈증 없이 이루어지는
기독교는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하나님은 나에게 봄의 따스함을 보기 전에 겨울의 추위 먼저 경험하게 하셨다.
가나안의 꿀맛을 알기 전에 광야의 쓴 맛을 먼저 보게 하셨다.
내일의 단맛을 보기 위해 오늘의 쓴맛을 먼저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쓴 인생을 통해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묵상: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 이 되었느니라!”(에스더.9:22).
*적용: 하나님은 당신의 슬픔이 기쁨이 되게 해주시고,
쓴맛의 인생을 단맛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시니 힘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