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사랑회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요.
늦었지만 새해 일출이후 두번째로 인사를 드립니다.
병술년에 접어든지 벌서 시간이 좀 흘렀지요.
올해도 계획하신바 모든 일이 순항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다들 공사다망하신데 문의할 사항이 있어 몇 자 올립니다.
저희 고을에서 사료를 조사중 남해 난포만호(蘭浦萬戶)로 재임중 임진왜란을 당해 분전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어 선조대왕시 내금위장(內禁衛將)으로 승진한 분이 있어 자료를 조사중입니다. 당시 공신록권(功臣錄券)을 소장하신 12대 후손이 있어 사료를 열람하였습니다.
궁금한 것은 남해에 난포란 지명이 현재도 존재하는지, 당시의 난포진영이 존재하였는지, 현재의 위치가 궁금하여 몇 자 적어 올렸습니다.
아시는 제현께서는 연락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조선시대이전에는 남해가 남해현보다 평산현과 난포현이 더 큰 현이였지요. 고려시대에 남해로 오신 백의정이 사신곳이 난포였는데 그 당시는 지금의 이동면 성현, 수촌을 지나 문고개를 넘어 홍콜로 가는 길이 난포로 가는 최고의 길이였고 과거 송씨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 난포현지로 알고 있습니다.
백이정을 모신 난곡사가 지금의 홍골에 있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거기를 놀이터 삼아 놀던 기억도 있고 바로 그 나무 아래에 난곡사라는 사당이 백이정을 모신 사당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동면 난음2리 난죽부락(대밭마을)이라 어르신들께 들은 기억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첫댓글 난초 蘭자를 사용하는 지명이 제가 자라난 이동면 난음리인데, 포구를 상징하는 浦자를 붙인 곳은 잘 모르겠군요. 바닷가에 닿아있는 난음리가 있어도 배가 닿을 곳이 아니라 포구로는 이용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해고지도에 보면 지금의 난음지역을 남포현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비자나무 있는 근처까지 포구였다고 들었습니다. 난포만호는 지금 이동면 난음지역의 만호였을 것으로....
감사합니다. 참고로 고증에 도움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비수님 오랫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남해의 고지도나 기록을 상고해 보시면 어디엔가는 난포진영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추가로 고증할 자료를 찾으시면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의 난음을 예전에 "남부"라고 불렀는데, 난포, 남포, 난부, 남부로 변천된 것일까요? 비수님. 제가 어릴적에 어디사느냐 물으면 남부에 산다고 하는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금오산님 안녕하시지요.백우님은 빨리 조사하여 금오산님께 알려드리세요.사료조사위원이신 백우님의 실력을 믿습니다
남촌님 반갑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월(신유) 원본281책에 兵批, 以沈杉爲魚游澗僉使, 以沈樞爲五衛將, 以金銓爲宣沙浦僉使, 以朴而厚爲知世浦萬戶, 以鄭陽復爲於蘭浦萬戶(어란포)이 있네요 참고바랍니다 (각종기사에 어란포만호는 보이는데 난포만호는 보이지 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군 소속 종4품 어란포만호(於蘭浦萬戶)는 정담수(鄭聃壽) 였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어란포는 전라남도 해남 송지면에 있다고 합니다
나르미님 좋은 자료 대단히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승정원일기 숙종조는 임진왜란이후 수대를 내려온 후 입니다. 고증은 선조조의 사료입니다. 임란으로 인하여 사료의 멸실이 심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심을 보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찾으시는 분 함자를 알려주시면 참고가 되지 않을까요?
조선시대이전에는 남해가 남해현보다 평산현과 난포현이 더 큰 현이였지요. 고려시대에 남해로 오신 백의정이 사신곳이 난포였는데 그 당시는 지금의 이동면 성현, 수촌을 지나 문고개를 넘어 홍콜로 가는 길이 난포로 가는 최고의 길이였고 과거 송씨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 난포현지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남해문화원에 연락하시면 더 자세한 자료들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의견제시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백우가 김성철군 이라는 것을 얼마전에 알았네, 나는 납산 밑에 살던 사람이네. 아뭏던 남해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모습이 너무 좋구먼, 새해는 건강하시고 하는 일들 마다 소원성취하시게, 고맙네.
백이정을 모신 난곡사가 지금의 홍골에 있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거기를 놀이터 삼아 놀던 기억도 있고 바로 그 나무 아래에 난곡사라는 사당이 백이정을 모신 사당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동면 난음2리 난죽부락(대밭마을)이라 어르신들께 들은 기억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동방스타님 감사합니다. 가까운 시기에 현장 실사를 할 계획입니다.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비수님이 남해문화해설사시니까 잘 안내해드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난곡사의 유래를 아시는 어르신들이 몇분이나 계실지가 관건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