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의 야경 엽서 사진.
6시 30분 쯤에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왠지 찜찜하고 불안한 이 기분, 창밖을 보니, 이럴수가, 온통 흐리다. 찌뿌둥둥한 하늘은 곧 야경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오후에는 개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일단 짐을 챙겨 호텔을 나가기로 했다. 호텔 밖으로 나가자마자 제법 내리는 빗줄기가 오늘의 여행이 평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
호텔에서 조식은 제공하지 않은터라 어제 못 가본 하코다테 아침 시장- 현지어로는 '아사이치-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삿포로의 니조이치바보다는 규모가 컸고, 당연히 더욱 활기한 분위기였다. 어디에나 보이는 건 사람 머리만한 커다랗고 붉은 게들과, 주황빛 고운 속살을 자랑하는 유바리메론이었다. 조금만 돌아다녀도 제법 쏠쏠히 시식을 해 볼 수 있었다.
우산 쓰고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Just go에서 소개한 키쿠요 식당을 찾았다.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손님들도 제법 많았다. 역시 책에서 추천해 준 산슈오코노미돈(여러 해산물 중 세 종류를 밥 위에 얹어 먹는 것)을 골랐다. 먼저 나온 따뜻하고 진한 녹차로 속을 데우고, 우니(성게), 이쿠라(연어알을 식초에 절인 것), 게살을 얹은 밥을 먹어보았다. 양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기대했던 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입맛에 맞았고, 특히 우니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바다의 내음이 그대로 입안에서 퍼지는 것이 참 신선한 느낌이었다.
창가에 앉았던 터라 건너편에 보이는 안개에 싸인 산이 낭만적으로 느껴졌지만, 곧 다시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 야경보기는 글렀구나..^^;;
오늘은 일단 멀리 떨어진 트라피스티누 수녀원에 갔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외국인 묘지, 다치마치 곶, 모토마치, 이런 순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수녀원으로 가려면 역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 버스가 알고 보니 1시간에 1대 꼴로 운행된단다.
8시 차는 이미 떠난 상태였고, 9시 55분에나 있어서 그 동안 시간 때울 겸 역 앞 기념품 가게에 잠깐 들러보았다. 꽤 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 나라의 관광지가 그저 그런 상품들만 진열해 놓은 것과는 많이 달랐다. 키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홋카이도의 대표 색인 라벤더의 보라색 모자 달린 옷을 입은 키티는 너무 귀여웠다. 또 올해 키티 해산물, 농산물 시리즈가 새로 나왔단다. 오징어, 아스파라거스, 성게, 메론, 옥수수, 감자 등 각종 농수산물을 상징하는 옷을 입은 키티 상품은 정말 하나쯤 갖고 싶을 정도로 예쁘장했다. 가격이 비싸서 문제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리모'라고 아칸 호수에서 자라는 공 모양의 해초류(?) 같은 것인데 세계적으로 희귀해서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상품화한 것도 참 많았다. 수백 년까지 산다고 하는데 150년 이상 자라야 겨우 직경 6cm정도라니 신기할 뿐이다. 열쇠고리, 작은 어항, 액자 등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해 놓고 있었다.
버스를 타러 다시 역 앞 정류장으로 왔다. 비는 이제 억수같이 쏟아지고, 하늘을 원망도 해 보았지만 어쩌랴.. 게다가 겨우 탄 버스는 1시간이 걸려서야 수녀원 근처에 데려다 준다. 여기서 다시 2,30분을 걸어야 수녀원에 도착한다. 비가 쏟아지는데다 걸어가는 사람은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여행의 재미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씩씩하게 걸어갔다. 입구에 다다르니 관광버스 몇 대가 정차해 있고, 사람들도 꽤 모여 있다.
수녀원의 정경. 비가 와서 더 운치있었다.
수도원은 붉은 벽돌 건물에 크고 멋진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운치가 있었지만 버스 왕복 2시간에 도보로 상당히 걸어야 하는 이 곳을, 성당에 별 관심이 없고,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들에게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곳의 명물 버터 사탕 한 봉지(250엔, 별 특별한 맛은 없었다. 그냥 기념으로 좋겠다)를 사 들고 다시 열심히 걸어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니 바로 전에 버스가 떠난 것이다. 바보같이 버스 시간도 확인 안하고 돌아다니다니,,, 다시 들어가기도 뭣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그냥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자그마치 40분간이나 말이다. 결국 중간에 온 다른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탈 만한 적당한 곳에 내려 다시 역으로 갔다.
좀 억울하고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날씨 때문에 하코다테를 굽어볼 수 있고, 북해도 바다의 내음을 느낄 수 있다는 다치마치 곶을 포기하고, 외국인 묘지도 역시 같은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1시가 다 되도록 구경한 것은 분위기 쬐금 나는 수녀원 하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기분 전환이라도 하기 위해서 다시 아사이치로 갔다.^^;; 아침을 거하게 먹었기에 점심은 가볍게 때우려고 했지만 비가 오고, 다소 싸늘한 느낌마저 들어 라면을 먹고픈 마음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홋카이도를 다녀온 어느 여행자가 추천한 카모메 식당. 길가에 바로 면해 있고, 의자도 몇 개밖에 없는 집이었지만 벽에는 온갖 싸인들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 맛은 괜찮을 듯했다. 가장 비싼(-.-) 카모메 라면을 시켰다.
한 십여 분이 지나 나온 라면의 맛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미역이 들어간 된장 국물은 얼큰한 맛이 있었고, 게, 성게, 가리비, 새우, 오징어가 푸짐하게 들어가 정말 개운하고 맛있었다. 삿포로에서 먹은 라면의 맛은 저리 가라 였다. 눈물을 흘리고 싶을 정도로 맛나게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니 아까의 우울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단순한지고,, 단순한지고.. -.-
가쁜한 마음으로 다시 찾은 곳은 역시나 모토마치. 비는 그쳤지만 하늘을 봐선 오늘 야경 보기는 다 틀린 일. 그냥 모토마치와 항만 지역만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자. 아~ 오늘 항구 마츠리 둘째날이어서 거리 공연이 있다고 했지. 나중에 그거나 한번 보러 가야겠다.
오늘도 유바리 메론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길을 가다 가이드북에서 봤던 예쁜 펜션들과 마주치니 넘 속상하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꼭 한번 묵어 주리라 다짐해 본다. ^^;;
어제 하코다테 공회당에 들어가기 위해 산 표는 두 군데 더 입장 가능한 표라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하코다테 북방 민족자료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이누족을 비롯한 북방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소개하는 자료관이라는데 쓰윽 둘러봐 주고 급히 나왔다. ^^;;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아직 4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거리 공연이 시작되었나.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형형색색 요란한 학예회 차림으로 나와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잠시 후 어느 유치원에서 나온 듯한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유니폼을 맞춰 입고 손에 부채를 들고 나와 희한한 노래와 춤을 추며 간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하코다테의 '이카 오도리(일명 '오징어 춤')이구나. 계속 '이카 이카 이카 이카 이카 오도리'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흥겹기 짝이 없다.
'이카 오도리' 춤을 추던 유치원생과 학부모들.
기대했던 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공연이 되겠구나. 본격적인 공연은 좀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어젯밤 잠시 둘러본 가나모리 창고군으로 다시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다.
낮에 보는 항만 지역은 또 색다른 멋이 있다. 멀리 구름에 싸여 허리까지만 보이는 하코다테산이 항만 지역과 잘 어우러져 있다. 원래 하코다테 우체국이었다는 하코다테 메이지칸으로 들어가 본다. 1층에는 까페, 2층에는 오르골관이 있어 역시 사람들로 대만원을 이루고 있다.
하코다테 메이지칸의 모습.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항만 지역의 창고군
평범해 보이는 외관은 밤만 되면 조명으로 새롭게 탈바꿈한다.
6시가 되어 거리 공연을 보기 위해 도로로 나왔다. 이미 차량은 통제되고 있어 숙소까지는 꼼짝없이 걸어가야 한다.(그래봤자 한 20분 정도지만) 길을 따라 벌써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하며 지나가고 있다. 그냥 그들을 보면서 숙소에 가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이건 장난 아니게 재미있다.
길가 양 옆 인도에는 벌써 구경하려는 시민,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다. 어느새 돗자리, 의자까지 준비해 놓고 한바탕 잔치라도 벌이려는 기세다. 이 때를 놓칠세라 한쪽에선 어느새 발빠른 상인들이 꼬치구이와 맥주를 파느라 분주하다. 자칫 혼잡해질 수 있는 와중에도 질서의식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주 무대인 하코다테 역앞에 왔을 때는 사람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단 어느 팀인지를 알리는 팻말을 들고 기수가 입장하고 그 뒤를 팀원들이 뒤따라오면서 제각기 준비한 것을 선보인다. 마츠리에 쓰이는 가마(명칭이 따로 있는데 까 먹음..^^;;)을 수십 명이 들고 행진하는 팀도 있고, 독특한 분장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팀도 있다.
가장 힘들어 보인 건 행진 내내 강렬한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나아가는 팀들이었다. 보는 이들이야 신나겠지만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춤을 추며 도심을 행진해야 하는 고충은 말로 다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은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보는 사람이 덩달아 즐거워질 정도이다.
음악도 맘마 미아의 '댄싱 퀸'와 같은 올드 팝송, 일본 인기가요, 심지어 도라에몽이나 피카츄 주제가 등 다양했고, 그에 맞춰 춤들을 어쩜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지 보통 실력들이 아니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공연은 계속 따라가며 또 보고 또 보고 했지만 전혀 싫증나지 않았다.
도라에몽팀. 빳빳한 상자로 만든 옷을 입고 힘겹게 걸어가는데 무지
안되어 보임. 가장 인기 있었던 팀
경쾌한 '도라에몽'주제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은 시민들과 악수하고 사진찍고 가느라 행진이 엄청 느려지기도..
팀원들 중에는 이렇게 분장을 하고 거리 행진을 하는 이들도 있고 옆에서 음료수를 들고 가며 보조해 주는 사람도 있다.
우동집에서 나온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이렇게 가마(?)를 메고 행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내라~ 힘!!!
차를 개조해 저렇듯 멋진 배를 만들어 행진 중~~ 위에서는 북치고
장구치고 피리 불고~~~ 에헤라디야~
일본 무사의 복장으로 엄숙하고 정제된 율동을 선보이며 갔던 무사팀~^^;; 개인적으로 넘 멋있었다~ 음악도 캡~!!
너무 귀여웠던 피카츄팀. 도라에몽 팀과 함께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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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영전차협회에서 나온 듯. 많은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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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와 가까운 아오모리현에서 찬조출연한 팀. 그즈음 아오모리에서도 마츠리가 있다고 했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이런 마츠리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나 보다.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던 할머니에어로빅(?)팀. 맨 앞의 단장 말고는
모두 할머니들이었다. 저 몸매를 보시라^^:;
이외에 의사와 간호사,환자들(설마 진짜 환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로 구성된 하코다테 병원팀도 있었고, 소방서팀(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당연한 일인가^^), 시청 소속팀, 앞에서 소개한 하코다테 유치원팀 등 하코다테시의 조직이란 조직에서 다 나온 것 같았다.
일반 시민들이 연습해서 선보이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능숙한 공연을 선보이는 데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이래서야 시민들이 화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겠다.
내내 즐거웠지만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팀은 어느 동네에서 나온 팀인 듯 했는데 처음엔 음악이 너무 경쾌해서 계속 따라다녔는데 거기에 맞춰 춤추는 이들이 다들 멋있어서 계속 따라갔다. 60대 노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밖에 안 보이는 꼬마 여자아이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정열적으로 율동을 선보이는 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노래가 너무 좋아 옆 사람에게 물으니 바로 SMAP의 'Shake'란 노래란다. 그 이후로 SMAP의 팬이 된 건 물론이다. ^^-
준비된 팀들의 퍼레이드가 모두 끝난 뒤에 마지막으로 다시 '이카 오도리'를 열창하며 퍼레이드를 계속했다.
'이카 오도리'를 열창하던 팀. 오징어잡이배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매달린 오징어들이 보이는가? ^^;;
'이카 오도리'노래의 가사는 정말 별 게 아니다. 처음은 '하코다테의 명물~~ 이카 오도리~~''로 시작해서 '이카(오징어')'와 관련되는 제품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 오징어를 국수면발처럼 가늘게 썬 '이카 소면'이야기도 나오는 게 우습다. 노래의 마지막은 '(이카)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라고 외치는 게 압권이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를 계속 반복하며 춤을 추며 1시간 가량 전원 퍼레이드이다. 어느새 시민들도 그 무리에 합세해서 함께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 하는데 한마음으로 화합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공연이었다.
(훈도시 차림-남자의 주요 부위만 가린 쇼킹한 복장^^;;-으로 행진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심히 민망스러웠다.*^^*)
퍼레이드는 10시가 넘어서야 장내 아나운서의 폐막을 알리는 멘트로 끝이 났지만 거리는 아직도 열기로 뜨거웠다. 나의 표현력으로 도저히 그 분위기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
T.T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지 못한 것을 충분히 만회해 줄 수 있을 만큼 멋진 공연이었다.
첫댓글 우와~ 넘재밌었어요~ 타지에서 그런 좋은 공연을 보실수 있으셨다니...좋으셨겠네요^^ 저두훗카이도루 빨리 뛰어가고픈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요~~헐헐
다음편도 언넝 올려주세여,,,!!
피카추도 넘 귀엽구 저두 마쯔리보러 꼭 건너가야겠어요^^;......
전 도쿄에서 마쯔리 이번에 봤답니다... 그때의 감동이란... 그런데 훗카이도루는 더 늦게까지 행사가 하는것 같네요.. 날짜도 다르고..^^;
너무 좋은 경험하셨네요^-^ 님 글 읽으면 정말 저도 하코다테에 있는듯한 기분이..;; 다음여행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지금도 그때의 열기가 생생해요.^^ 특히 '이카 오도리'노래와 춤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죠. 여름에 홋카이도 가시면 꼭 하코다테 마츠리에 맞춰서 가세요. 강추예요. 읽어주시고 꼬리말 달아주시는 분들 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