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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가 10여년 전에 비해 4배로 증가했다. 사진은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 행사의 일환으로 어르신 운전차량임을 알리는‘실버마크’를 부착하고 있는 모습. |
도로교통공단 실험결과 고령운전자 신체적 기능 저하 입증
70세 이상 속도예측·장애물 회피 등 60대 후반보다 떨어져
운전면허 갱신 연령별 세분화… 적성검사도 내실화해야
올해로 70세를 넘어선 A씨는 약 5년 전 평생을 함께했던 택시 핸들을 내려놨다. 젊은 시절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후 30여 년만의 일이다. “운전을 천직으로 생각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도 할 수 있었고, 노후에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고 A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지도 않았던 데서 발생했다. A씨는 말을 이었다. “약 40년간 운전을 하면서 사고를 모르고 살았는데 60대로 들어서면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큰 사고가 아니었던 터라 나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달랐던 것 같다.” A씨는 결국 개인택시를 처분하고 운전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고령운전자 대부분은 자신이 고령자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운전경험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능력이 저하되기 시작하는 고령운전자들이 스스로 고령자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5.6% 증가했지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64.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운전면허소지자는 42.1% 증가한 반면 고령 운전면허소지자는 357.9% 증가했다.
특히 교통사고 추이에서도 전체 교통사고가 2001년 26만579건에서 2012년 22만3656건으로 14.2% 감소하는 동안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3759건에서 1만5176건으로 303.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증가의 원인은 운전자의 신체적 기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4월 도로교통공단이 개최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특별 세미나’에서는 운전적성정밀검사와 운전시뮬레이터 실험을 통해 고령운전자의 신체능력 감소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 결과 70세 이상 고령자들은 65~69세 연령층보다 속도예측시간이 길게 나타났으며, 장애물 회피 검사에서도 반응시간이 늦고 핸들사용 오류 횟수 역시 증가했다.
이는 고령운전자가 사고나 교통지체를 유발할 원인이 높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운전상황과 유사한 상태를 구현한 운전시뮬레이터 실험에서도 고령운전자들은 평균 주행속도가 비고령운전자에 비해 낮았음에도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시간이 늦어 위험상황 발생 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로교통공단 강수철 박사는 “고령운전자의 경우 시각·청각 등 지각능력과 신체 반응이 젊은 운전자에 비해 현저히 늦다는 연구결과가 주류를 차지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운전적성정밀검사에서 운전결격자로 분류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강 박사의 지적은 운전적성검사의 부실 논란과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향후 노년층의 정년이 연장되고, 사회참여의 기회 역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고령운전자들의 운전 기회를 마냥 제한할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에는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할 경우 택시요금 등 대중교통 할인혜택을 주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인권침해라는 반발에 밀려 폐기된 바 있다.
결국 고령운전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사와 교육, 그리고 고령운전자들의 의식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선 선진 외국처럼 운전면허 갱신기간을 연령에 따라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같은 고령운전자라 하더라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운전적성정밀검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운전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본의 경우 70세 미만은 5년, 70세는 4년, 71세 이상은 3년으로 구분해 적용하고 있고, 영국은 70세가 넘어 운전하려면 3년마다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의사의 소견을 첨부해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호주 역시 80세부터는 해마다 시력·청력 등의 결과가 담긴 의료증명서를 면허관리청에 제출해야 하며, 85세부터는 매년 시력·청력 그리고 의학검사 외에 실제 도로주행 능력을 테스트해 이를 통과해야 운전을 계속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현행 65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기간 5년을 연령별로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교육 프로그램 마련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미국의 경우 고령운전자를 위한 55+프로그램(55세 이상 운전자를 위한 교통안전교육) 등 국가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운전자가 스스로 필요로 할 때 선택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75세 이상 고령운전자들에게 자신의 운전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해 볼 수 있도록 관련 퀴즈가 수록돼 있는 ‘고령운전자 핸드북’을 자택으로 우송해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도로교통공단이 지난해 8월부터 고령운전자를 상대로 한 달에 한 번 3시간 교육을 실시, 교육을 수료한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5% 할인해주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지난 2012년 교통안전공단이 ‘고령운전자 안전운전 자가진단표’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지만 이마저도 1회성 이벤트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고령운전자의 의식 전환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도로교통공단이 서울 및 6대 도시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운전자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184명 중 57.1%는 자신이 고령자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69세 고령자의 경우에는 자신을 고령자로 인정하지 않는 비율이 91.4%에 달했다.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는 연령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수석연구원은 “고령운전은 타인의 안전까지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엄격한 기준에 의해 제한돼야 한다”고 전제하며 “이를 위해 철저한 검사는 물론 교육 시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특성을 반영해 신체노화에 따른 주요 사고위험 자가진단 프로그램이나 사고 유형별 대처요령, 노인성 질병 보유시의 안전운전 요령 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 추이 |
2014년 05월 30일
출처:백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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