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TV, '새롭게 하소서'를 통해 오늘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해야겠다.
세계 최초 전신마비 치과의사, 분당서울대병원 이규환(44) 교수다.
-불의의 사고
그일이 있기 전까지 그는 188cm 건장한 체구로 신체 조건이나 학벌 등 완벽 그 자체였다. 치대 본과 3학년 여름,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다 잘못 떨어졌다. 1주일 만에 눈을 떴다. 중환자실이었다. 어깨와 손 일부 외엔 모두 마비됐다. 몸과 달리 머리는 너무 맑아서 이 상태로 공부하면 정말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는 온갖 생명유지장치들이 걸려 있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꿈일 거야.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자고 일어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하던 기도가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로 바뀌었다. 하지만 죽고 싶어도 몸이 안 움직이지니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욕과 저주가 나왔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당신을 믿은 죄밖에 없는데….
-생사가 오가는 중환자실에서
눈만 뜨고 누워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그저 듣기만 해야 했다.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책 좀 주세요. 간호사분들이 10분씩 책을 읽어주셨다. 그곳에서 100권의 책을 읽었다. (만화책, 성경, 소설, 무협지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글을 읽는 시간은 잠시라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긍정적인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하세나님이 나를 살려주셨으니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겠다고 했다. 1년간의 병원생활이 끝났다. 드디어 회복!
-학교는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다.
1년 후 복학했다. 전신마비가 된 그의 모습을 보고 다들 말을 잃었다. 더구나 20년 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전무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치과의사, 수천 번 생각해 봐도 다친 것 때문에 다른 길 간다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았다. 복학을 반대하는 교수님들은 손도 못 쓰는 치과의사가 졸업해서 뭘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법대 쪽으로 전공을 바꿔라고 권한 분들도 계셨다. 이론 수업은 가능하지만 실습 수업은? 의료사고를 걱정해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절실해졌다.
(계단 밑에 멈춘 그의 휠체어를 동기들이 들어올렸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필기도 동기들이 빌려주었다.
밑줄도 그을 수 없으니 눈으로 계속 보고 모조리 외웠다. 집에 오면 방바닥에 교재를 펼여놓고 침대에 엎어져서 하루 종일 봤다. 제 노력이 1이라면 동기, 선후배, 교수님들 도움은 100이었다. )
-열 배의 노력만이 길이다.
장애인이 그나마 다른 사람들처럼 생활하려면 최고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하는 치대생의 생활,
움직일 수 없으니 골반이 무너지고 엉덩이가 녹아내렸다. 욕창을 방치해 균이 온 몸에 퍼졌다. 휠체어에 앉아 기절하기도 했다.
당장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치의는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무조건 때려치우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휴학해버리면 더 이상 복학은 불가능하다. 마침 방학이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한달만 연명하게 해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온갖 독한 약을 전부 투여했다. 오한과 고열이 수없이 찾아왔다. 집에 오면 엉덩이 고름을 짜가며 그렇게 버텨 방학 맞춰 욕창 수술을 했다. 선례가 없었기에 어려운 일을 직접 다 경험해야 했다. 요즘은 각종 계통에 장애인이 늘어났다. 각 분야의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이 최선이다. (맨땅에 헤딩해도 헬멧을 쓰라는 것)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부모님
부모님은 절대 티를 내지 않으셨다. 그저 덤덤하게 바라보셨다. 그게 어디 그냥 덤덤일까.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불효자라고 말한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뿐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 신체적 고통이 올 때마다 기도했다. 그렇게 부정하던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올 때 피난처 되신 하나님!
그는 알고 있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려면 열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보다 열배 노력하면 그나마 비슷해진다. 노력과 기도, 그것이 그의 무기다.
-꿈을 위한 끝없는 도전
의사 면허를 땄지만 다시 벽과 맞닥뜨렸다. 100여 병원에 지원했지만 전부 불합격이었다. 그래도 후회없는 삶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은 기회가 온다! 지원하는 대로 거절만 당하면서 좌절도 많이 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10분만 제 진료 과정을 봐주십시오. 결국 새로운 길이 열렸다. (나중에 병원장님께 왜 저를 뽑으셨냐고 여쭤봤다. ‘너무 귀찮게 해서’라고 딱 한마디 하셨다.)
-장애인이라는 시선에 맞서다
가장 힘든 건 환자의 시선이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진료받기를 거부했다. 장애인 치과의사라니! 손도 못 쓰는 치과의사라니!
재수 없다고 침 뱉고 나가는 사람도 있고, 병신 주제에 진료한다며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중에도 불안하지만 용기 내어 진료 받는 환자들이 있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말한다. "환자들을 향한 진심이 통하다. “제가 몸이 불편하고 그래서 진료가 느립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고 꼼꼼하게 치료하겠습니다." 환자들을 향한 진심이 통했다. 환자들이 조금씩 찾아왔다.
이제 20년 경력의 장애인 치과의사다. 그는 안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제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 정말 지독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걸 증명하듯 그의 손과 손가락은 상처와 굳은살로 뒤덮였다.
-인생
계획대로 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 순간 막히고 끊기는 길 앞에 선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만 따라간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멋진 직업이다. 내 계획 아닌 하나님의 계획대로 순응하는 삶! 다시 살리기를 잘했다고 하시도록 열심히 살 것이다. 불가능한 일도 지독하게 노력하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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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이규환교수를 좀 더 알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난 기사가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더 추가.
"그의 좌우명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자’다.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다. 환자들이 만족하려면 최고가 아니라 최선의 치료를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가슴뿐 아니라 머리도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다." 그는 15년째 장애인 구강검진 봉사를 해오고 있다. 2023년에는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했다. "동아일보 인터뷰 내내 이 교수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감사하다’였다. 그는 세상 어디선가 절망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듣고 희망을 얻는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넘어진 자리를 딛고 일어선 사람이 고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응원과 위로였다."
"그는 여섯 살 난 딸도 있다. 그는 육아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육아 철학도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우자”로 정했다. 딸은 아빠의 무릎과 어깨 위로 기어올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장난친다. “아빠 손은 괴물 손!” 영광의 상처다. 도구에 베이고 질리고 진물이 나도록 끈과 고무줄로 동여맨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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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와서일까. '새롭게 하소서' 에 나온 그의 얼굴은 시종 맑고 편했다.
그의 삶이, 이야기가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정말 "따스한 응원과 위로"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