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으로 넘쳐나는 봄은 활기가 넘쳐 나도 모르게 싸돌아다니게 된다.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지천으로 꽃이 만발하고 날씨도 따듯해져 몸과 마음이 들썩인다. 시골 아가씨가 부푼 마음으로 무작정 상경하던 때도 요즘이다. 사돈따라 장에 가듯이 덩달아 봄나들이로 하루가 다 갔다. 꽃사진을 가득 안고 오는 길에 김밥 재료를 준비했다.
부엌에 들어가면 거시기가 떨어진다는 어머니의 가정교육 탓에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로 여겼다. 항상 어머니의 밥상을 받았고 결혼하면서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남자로 태어난 덕분에 직장을 다니며 월급만 벌어다 주면 만사는 해결되었고 모든 것은 아내가 알아서 했다. 세상은 급변하여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없어졌다. 여자도 돈벌이에 나서고 남자도 밥을 하는 시대가 왔다. 처음에는 겨우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차차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카레밥을 시작으로 김치찌개도 할 수 있었다. 시대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원했다. 아내에 얹혀 살기보다 자립형으로 변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서툴지만 요리도 해보면 되었다. 자신감으로 이번에는 김밥에 도전하였다.
사실 준비는 며칠 전부터 했다. 하루는 김과 발을 다음은 단무지, 맛살을 오늘은 빠진 것을 점검하고 채소를 샀다. 성격이 무엇이든 생각나면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고심 끝에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급한 일이 아니라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처음 하는 일은 더 그렇다. 일단 인터넷에서 김밥 만드는 법을 숙지한 다음에 재료를 손질하였다. 달걀을 부치고 당근은 채를 썰어 볶고 시금치는 데쳤다. 밥은 참기름, 깨소금, 식초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망치고 싶지 않아 심혈을 기울였다. 김밥을 마는 발 위에 김을 깔고 밥을 일정한 두께로 깔았다. 그 위에 미리 준비해 둔 계란지단, 당근, 시금치를 올리고 동그랗게 말았다. 중간에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발에 힘을 주어 밥과 재료가 뭉치도록 했다. 발 위에는 잘 말린 김밥 한 줄이 놓여 있었다. 이런 재주가 나에게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은 칼로 잘라야 하는데 부서질까 봐 매우 조심스러웠다. 단단한 것보다 무른 것을 자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자란 까닭에 칼을 많이 써 본 경험은 이럴 때 유용하였다. 잘 잘린 단면은 알록달록하여 예뻤다. 신나서 혼자 보기 아까웠다. 먹어보기 전에 자랑할 양으로 카메라로 요리조리 몇 장을 찍었다. 매우 흡족해하면서 이번엔 맛을 보았다. 그냥저냥 먹을만한데 조금 싱거웠다. 음식은 아무리 솜씨를 부려도 간이 안 맞으면 맛이 없다. 소금을 더 넣을까 하고 생각 중인데 경황이 없어 단무지, 햄, 맛살이 빠진 것을 뒤늦게 알았다. 첫 줄은 반만 성공이었다. 이제는 빠지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가며 두 번째 김밥을 말았다. 퇴근한 딸이 김밥을 먹어보더니 한마디를 했다. 내일 점심으로 김밥을 싸가야겠다고 한다. 맛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신바람이 나서 준비한 재료에 맞게 김밥을 더 만들었다. 우리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흐뭇했다.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처럼 기쁜 일이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 어머니도 그리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김밥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한번 가공된 재료가 여러 가지인데도 바로 준비해야 하는 가짓수가 많았다. 어쩌다 한번 할 것이지 마냥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모두가 좋아하는 만큼 시간 있으면 또 하려고 한다. 이제 기본을 알았으니 응용하여 여러 가지를 해 볼 요량이다. 참치김밥, 불고기 김밥, 채소 김밥 김치김밥처럼 소제는 무궁무진하다. 요리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자식한테 칭찬받으니 좋다. 아마도 손자가 있었으면 손자 등쌀에 맨날 김밥 만드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식보다 더 예쁘다는데 그냥 넘어갈 사람은 없다. 하지만 희망 사항일 뿐이다. 결혼하지 않는 시대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산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 생명을 키우는 기쁨과 보람을 모르는 젊은 세대가 안타깝다. 내가 만든 김밥을 손주가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봄날이 너무 따듯하다. 새싹이 돋듯 우리의 미래도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ㅎㅎ 김밥집 에서 싸준김밥보다 맛나게 쌌네. 하나주문해도 될까?
안돼. 난 은퇴했어.
김밥집 내라고 하면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