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가 생겨나는 이유
-문학이 가야 할 길
진짜 같은 가짜를 두고 사이비라고 한다. 사전에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으로 정의 되어 있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이 사이비에 대해서 수시로 경계의 말씀을 하셨는데 “회칠한 무덤” “양의 탈을 쓴 늑대” "거짓 목자" 같은 표현을 썼다. 우리는 사이비라는 말을 가짜 종교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쓴다. 사악한 영(악령)에게 영혼이 팔려간 인간들이 예수의 복음을 많이 팔아먹는데 의외로 예수의 가르침은 모호함이 없고 간단명료하다. 이웃을 위하는 마음(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 이 담기지 아니한 경우는 그가 아무리 선을 베풀었다 하더라도 사이비라는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고 아주 쉽게 정리해버린다.
고대 인간들의 혼돈했던 정신세계가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진보된 것은 종교와 정치가 철저히 분리된 데 그 공이 있다. 인류정신사는 고대 다신적 신화적 정신세계(헬레니즘)에서, 유일신 사상인 헤브라이즘(신 절대주의, 신본주의 사상)으로 귀결하였다가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르네상스(인본주의 사상)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진보되어 왔고 그 영향으로 과학과 철학이 융성하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인간의 이성이 암흑 속에 갇혀 있다가 크게 빛을 발하는 시대로 진보 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세계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늘 내일에 대한 불안이라는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어서 이 불안이 어떤 계기를 만나 사이비 인간들의 선동에 의해서 증폭될 때는 세상 모든 것이 거대한 어둠 속으로 떠밀려가게 되어 다시 암흑 속에 갇히기도 하는 것이다. 믿음은 맹신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데도 종교인들은 무조건 “아멘!”하며 믿으라고 만 가르친다. 이성이 들어오면 종교가 되지 않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데 내가 읽은 복음서는 이성적인 가르침만으로 가득하였으니 나는 "믿음"과 "아멘"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무조건 적으로 종교인들의 설교를 따르지 못한다.
나무 밑의 도토리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하늘이 무너졌다며 달아나던 다람쥐 뒤를 이어 모든 산짐승들이 달아나기 시작하니 마침내 사자가 나와서 그게 도토리임을 밝혀 숲을 진정시켰다는 우화가 있다. 믿음은 사자와 같은 그런 굳은 심지를 말한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원초적 정서인 불안심리를 성찰한 이숍이라는 천재가 문학으로 그려낸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도 당연히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을 버리라는 의미)"고 가르쳤다. 신천신지(새 하늘과 새 땅)는 성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말인데 최후의 심판 뒤에 오는 신국(神國)을 말한다. 이는 상징이다. 불국토니 미륵정토니 십승지지니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은유와 상징을 모르면 그리스 신화나 고대 경전은 한마디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물론 문학은 더 모르는 것이고~.
사이비 정치인들이나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상징조작 (실체와는 다른 환영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대중을 움직이는 방법.) 을
통해 사람을 끌어모으는 짓을 귀신처럼 잘한다. 언론도 시청률이나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서 종종 써먹기도 하고 기업은 마케팅 기법으로도 써 먹는다. 참 문학, 참 종교, 참 지도자는 늘 이점을 냉정한 눈으로 감찰하고 밖으로 드러내어서 사이비 바이러스가 자기복제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려고 창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수도 복음서에서 "너희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로 이를 표현한 바가 있다. 실재로 유대인들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서 7일 동안 무교병(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빵)을 먹는다. 출애굽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영역에 굴레(노예)를 씌우는 모든 것들로 부터 해방이 되어 자유롭게 되는 일에 대한 상징이다.
알베르토 카뮈는 인간의 정신세계는 본디부터 부조리하다(부조리 바이러스에 오염되었다)는 것을 성찰하고 부조리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페스트>와 <이방인>을 썼다. 신국이 있다면 인간의 정신세계를 오염시키는 괴상한 바이러스가 몽땅 다 퇴치 된 이후에 나타난다. 아마겟돈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어둠의 바이러스를 몰아내려는 인간의 이성이 벌이는 최후의 싸움이자 빛나는 싸움이다.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부조리 함이 사라지면 찬란한 빛이 비치는 신국(神國)이 열린다는 뜻이다.(이는 필자의 문학적 생각이다. 종교적 신학적 해석이 아님으로 논쟁은 사양한다)
이참에 생각난 바를 한 가지 더 적는다. 어떤 사이비 이념이 태동되어 그 세력이 확장되기 시작하면 자신들의 이념을 더욱 정제해서 원리주의화 시키는 세력과, 그것으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나온다. 조직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한 필연으로 두 세력은 결탁(야합)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신격화 작업이 일어난다. 인간의 자유성을 말살하는 원리에 죽고 사는 우상 숭배(이념화)작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쉽게 배교(배신)할 수 있을 것 같아도 한번 굴레를 쓰면 벗어 나질 못한다. 이미 조직에 갇혀버리고 조직 속에서 기가 눌려있으니 혼자서는 어쩌지 못한다는 좌절과 저주의 공포와 영적 고립이 몰고오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비행기를 탄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집단 자살한 오대양 사건처럼 교주가 죽으라고 명령하면 끽 소리 한번 못하고 죽음의 길로 가게 된다. 우리 인간의 정신 세계는 이렇게 취약하다. 철저한 신분제로 무장된 조선 5백년을 지배한 성리학 사상도(백성 중 40%가 평민, 50%가 노비였고 그들은 오로지 10%의 양반을 위해 존재했으며 인권이 없었다),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일성 주체사상도 그렇게 해서 태동된 것인데,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과 도구로 삼는 모든 정치이념과 종교는 사이비(=우상)다. (필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자기 말에 세력을 얻으면 사이비가 될 위험이 매우 크다.)
서구는 오랜 정신사적 혼란기를 거쳐서 실존주의(존재가 곧 본질) 사상이 사회를 이끌고 있지만 아직 우리 한반도는 죽은 이념을 위해서 하나 뿐인 귀한 목숨을 걸고 오늘도 수 많은 영혼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한반도가 세상의 모든 이념과 종교의 시험장이 되고 있는 것은 "도 아니면 모"로만 가는 우리 민족의 기질 탓이 크다. 500년 동안 성리학적 이념(세계관)의 지배 하에서 철저하게 억압 받은 민족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낳은 결과물 일수도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의식 세계를 크게 실존주의로 바꿔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스크 한 장, 치료 병실 한 칸이 그 어떤 이념이나 종교보다도 절실함을 안다는 것 그 자체가 실존주의 사상을 적극 흡수하고 있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스크 장사가 떼돈 벌기 위해서 매점매석한다는 뉴스에 문득 쌀이 아닌 양반들만이 쓰는 망건의 재료인 말총을 사 모아 떼돈을 벌었다는 허생이 생각난다. 소설이지만 허생은 돈을 벌기 위해서 힘 약한 백성을 곤경에 몰아넣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어서 옛날의 양반처럼 “여봐라! 이리 오너라!” 하면서 대대손손 이 땅 위에 군림하고픈 욕구가 엄청 강한 우리 민족의 유전자를 바꾸는 길은 문학을 하는 작가님들이 <완장> 같은 소설들을 많이 써내는 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 아닌가 한다.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배워야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한 생명이 천하 보다 귀하다"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야라!" (2020. 3. 2)
==============================
# 2022. 3. 9 대선 투표가 있다. 사이비만 골라 내어도 세상이 아주 살기가 편해진다. 우리 모두는 오류가 많은 생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