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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율곤학회 / 이중재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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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聖賢)들이
연구한 사주철학(四柱哲學)은 천인지(天人地)의 자연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삼원일체(三源一體)의 천인지(天人地) 학문이다.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과
사요취선(史要聚選)에 의하면, B.C.8364년 지갱(地鏗)이었던 지황씨(地皇氏)에 의해 간지법(干支法)이 창안되었다. 이때부터
사주학(四柱學)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B.C.3512년경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창안했으며, B.C.2676년 황제(黃帝) 때 하도낙서(河圖洛書)가 그 시대 처음으로
서문화(書文化)되었다.
은(殷)나라 때 36국이
난립하게 되자, 사회의 불안이 가중되는 틈을 타서 간지(干支)를 이용하여 점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갑골문자(甲骨文字)다.
B.C.1222년경
내사(內史) 벼슬을 한 천문학자(天文學者) 숙복(叔服) 선생이 처음으로 년(年)을 기준한 사주법을 이론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B.C.221년경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 때에, 자기를 비방하는 유생(儒生) 464명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고, 수만 권에 달하는
사서(史書)․천문(天文)․지리(地理), 비전(秘傳)으로 전해 내려오던 사주학 관련 책을 모두 불살라 태워버린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일어났다.
그때가 사주학의 시련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수(隋)나라 때에 인쇄
매체가 발달하자, 일부 비전(秘傳)과 구전(口傳)으로 흩어져 전해 내려오던 낡은 책들이 다시 빛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저서로는
명리비결(命理秘訣), 명리약언(命理約言), 취자고서(取自古書), 책번취간서(刪繁就簡書), 자해비전(自解秘傳) 등이
있다.
A.D.367∼249년경
동주(東周)의 낙록자(珞琭子) 선생이 년월(年月)을 기준하여 사주보는 학설을 창안했다. 그의 저서로는 원리소식부(元理消息賦)가
있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때의
귀곡자(鬼谷子), 동중서(董仲舒), 사마계(司馬季), 엄군평(嚴君平), 동방삭(東方朔) 등은 주로 월(月)을 기준한
사주법이었다.
그리고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관로(管輅), 진(晉)나라의 곽복위(郭僕魏)가 있다.
A.D.880년경 당(唐)나라
때 이허중(李虛中) 선생이 일간(日干)을 기준하여 새로운 사주학설을 세운 것이 오늘날까지 사주학의 기본이 되고 있다. 원천강(袁天綱),
일행선사(一行禪士), 이필(李泌)은 그 당시에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명(明)나라 때의
서거역(徐居易:일명 子平)은, 이허중 선생이 연구한 일간(日干)을 기준으로 하는 학문적인 바탕 위에 정설(定說)을 완벽하게 서문화(書文化)했다.
서거역의 사후(死後),
충허자(沖虛子) 선생이 도홍(道洪)이란 도승(道僧)의 비전을 이어받았는데, 서대승(徐大升) 선생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보아진다. 이때야말로
사주학(四柱學)이 생긴 이래 최대의 빛이요 경사였다.
이상과 같이 유명한 선생들의
저서 연해자평(淵海子平), 계선편(繼善篇), 통천부(通天賦)가 흩어진 채 비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 외 원수성(袁守成)의
지남오성서(指南五星書), 여재(呂才)의 합혼서(合婚書), 일행선사(一行禪士)의 성력서(星歷書), 오대유(五代有)의 녹로서(轆轤書),
송유(宋有)의 전가서(殿駕書), 요금유(遼金有)의 교도서(喬掏書), 야율(耶律)의 초재서(楚材書), 배대헌(裵大獻)의 금당허실서(琴堂虛實書)
등이 있다.
그리고 청(靑)나라 때
소암(素庵) 선생은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인 적천수화해(滴天髓和解)를 저술했는데, 이론이 정연하고 놀랄만큼 훌륭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고려(高麗) 때의
혜증(惠證) 선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영통도사(靈通道士), 이오년(李午年), 정인홍(鄭仁弘), 정북창(鄭北昌) 선생 등이
있었다.
일제 때에는 서울에 유명했던
백사 사주가(四柱家)가 있었고, 전라도 순천에 문둥이(나병 환자) 사주가가 있었고, 최운학(崔雲鶴), 강남월(姜南月), 배상철(裵相哲) 등이
있었다.
일본 사람으로서는
아부희작(阿部喜作)이 22권의 방대한 사주 전집을 남겼다. 상학(相學)에는 고도탄상(高島呑象), 송전(松田), 이동통상(伊東通象),
길촌관수(吉村觀水), 앵정태로(櫻井太路) 등의 대가가 속출하였다.
근래에는 사주학을
간명사전(看命辭典)으로 엮은 구석애풍(龜石厓風)이 있고,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을 엮은 가등대악(加藤大岳) 등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대전의
박재완(朴在玩), 이석영(李碩暎), 이명학(李明鶴), 김우제(金于濟) 등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수천 년
동안 일간(日干) 논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인간의 운명 역시 복잡함을 더해가자,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충사주(沖四柱),
합사주(合四柱)로 보는 방법이 있는가하면, 지지장간(地支藏干)을 중점적으로 보기도 한다. 육임법(六壬法)을 정임신과편(丁壬神課編)으로 보는
방법이 있다. 궁통보감(窮通寶鑑)으로 보는 방법, 적천수(滴天髓)로 보는 방법도 있다. 사주 대운(大運)의 간지(干支)를 나누어 간(干)을
5년, 지(支)를 5년으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상생(相生) 상극(相剋)을 폭넓게 사용해 보는 방법도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십이운성(十二運星)을 중요시하여 판단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사주가들은 지지장간분야표(地支藏干分野表)라고 하여 오(午)를 사(巳)로, 자(子)를
계(癸)로 보기도 한다. 애매한 당사주(唐四柱)라는 것을 들고 나오는 사주가도 있다.
삼합(三合)이라 하여
수국(水局)을 신자진(申子辰), 금국(金局)을 사유축(巳酉丑), 목국(木局)을 해묘미(亥卯未), 화국(火局)을 인오술(寅午戌)로 보는 법도
있으나 이것 역시 잘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요즘에는 둘만 합해 삼합(三合)이 된다는 식으로 사주를 감별하고 있다(子申․辰申․辰子․巳酉
등).
사주 중 격국(格局)도 대단히
많다.
귀인황수격(貴人黃綬格)ㆍ정관격(正官格)ㆍ사시승왕격(四時乘旺格)ㆍ관살혼잡격(官殺混雜格)ㆍ자오묘유격(子午卯酉格)ㆍ인신사해사생격(寅申巳亥事生格)ㆍ진술축미사귀격(辰戌丑未事貴格)ㆍ관묘격(官卯格)ㆍ묘살격(墓殺格)ㆍ육임신과격(六壬神課格)
등 대강 360여 개로 추론하고 있다. 이것만 공부하려고 해도 십여 년이 걸릴 것이다.
형충파해(刑冲破害)와
350가지 이상의 살(殺)들이 있다. 그러므로 사주(四柱) 격국(格局)을 보는데도 지나치게 어렵고 방대하여 무엇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사주 책만도 수백 종이다.
필자(律坤 李重宰 선생)가
30여 년 간의 실험을 통해 볼 때 형(刑)ㆍ충(沖)ㆍ파(破)ㆍ해(害)ㆍ합(合)ㆍ살(殺), 십이운성(十二運星), 월덕귀인(月德貴人), 그리고
사주격(四柱格) 등 약 300여 가지를 알아야만 사주조직을 구성할 수 있다. 엄청난 시간이 소모된다. 봉사가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기둥이라고
하는 식의 오류를 범할 여지가 많다.
위와 같이 사주를 감별하다보니
잘 적용이 되지 않으므로, 사주학의 기본개념을 잡설(雜說)하는 현상이 생겨 많은 무리를 빚게 되었다.
20세기 초반에 접어들어
사주학을 일부 혁신시킨 학자는 바로 일본의 아부희작(阿部喜作) 선생이다. 수천 년 동안 일간(日干)만을 사용해 왔으나, 그는 대단한 연구로
월지(月支)를 기준으로 한 이간법(二干法)을 정립했다. 참으로 대담하고 훌륭한 착상(着想)이요, 연구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사주의 진수를
알지 못해 필자가 삼간법(三干法)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1963년에 오래된
상론(相論)을 총정리하여 이십사상론(二十四相論)을 내놓았다. 이십사상(二十四相)이 수많은 상(相)으로 변형(變形)되는 오묘한 진리이다.
1967년에 연구한 삼간법(三干法)과 오단통변법(五段通變法)은 오성(五星)에 의한 사주학의 새로운 혁명이다.
이를
바탕으로『오행신법론(五行神法論)』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주(四柱) 네 기둥만으로
마음의 행로를 읽을 수 있는 오묘한 진리요 심법(心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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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字는 한民族의 歷史에 의해 만들어졌다.hwp
첫댓글 율곤선생님은 2011년 돌아가셨습니다.
율곤 선생님도 사주명리학에 대단한 실력이 있으셨나봅니다.
네 이분도 공감하시듯 ... 사주는 장태상 선생님 글에서 말씀하시듯 .... 대만의 종의명 선생님의 스승이신 오영수 선생님 말씀처럼 사주는 만능고가 아니라는 것을 또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도 몇 년 하다가 육효로 갈아탔습니다.
간지술에서 ... 사주학이 성립된 시기는 한나라 때 경방이후로 알고 있습니다. 육친설이 그 때 창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율곤 선생님 말씀과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사주명리학 논문 쓰시는 분들은 잘 참조될 것 같습니다.
신왕하기로 하늘을 찌를 듯한 겸사박사님께서
忍耐를 참지 못하고 육효로 간 것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풍수,육효,성명학,기을림등 여타 음양오행학문이 사주명리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깊어질 수 있다 생각되고, 사주 명리학은 또한 주역의 64卦 음양이론을 근거로해야
해석의 깊이가 더욱 우러나올 수 있다 생각되는데 제 생각은 어떤지요?
제가 명리를 해보니 적어도 10년이상은 헤메고 투자해야 뭔가 어렵픗이
다가올 수 있다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고 길어서, 지쳐서 다른 학문을 찿는 것 같습니다그려!
또한 우리 대학원시절 정답없는 이렇다할 선생없이 우리들끼리 큰소리치며 설치는 사람이
많았기에 실망하여 겸사선생이 육효로 간건 아닐는지?
어쨋던 사주학이됐던 육효가 됐던 상대 상담자가 잘 맞춘다고 인정하고
시인할 때 그게 정답이고 확실한거지 식신 상관 어쩌고 저째고 육신이론만을 가지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것 아니겠어요?
사주 명리학은 정말 어렵고 무궁무진 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해석의 깊이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정답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산 율곤학회 이중재님 윗글 올려주셔서 감사히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산 선생님 우리 2004년 석사과정때 정말 사주로 많이도 설왕설래했지요. 저는 장태상선생님이 육효를 해 놓으면
아침에 몇 살, 누가, 무엇때문에 온다는 것을 훤히 알 수 있다고 하시기에 ... 그런 학문이 있을까 하는 맘에서 신기했답니다. 게다가 학선 선생님께서 육효로 이름난 맹인 조낭자 이야기 등을 해주셔서 더욱더 관심이 있었답니다.
학선 선생님께선 사주는 대포고 육효는 권총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사주는 심오한 학문이지만
도대체 설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잘 맞아 들어가는 사람들 보면 더 배우고 싶기도 하고...
19금 얘기를 사주로 훤히 아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서 언제 듣보잡 19금 강의해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ㅎ
육효강의하면서 제자 선생님들이 어디서 그렇게 정보들을 가져오시는지 귀로 듣는 것이 많답니다. 요즘은 인천사시는 선생님이 사주까지 갈 거 없어요 음월 혹은 생일이 음날(짝수)날 난 사람들은 남자라도 여자 같아요 하시기에 오홍 그런게 있냐고 대입해보기도 한답니다. 어쨋든 지산 선생님은 정말 해가 갈수록 사주실력이 일취월장 일신우일신 하신것 같습니다. 이럴때 제가 늘 농담처럼 말하는 멘트가 있지요. 선생님 정상에서 만나자고 ㅎ 저도 육효를 10년만 더 하면 조낭자 선생님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향상되겠지요?
"학선 선생님께서 육효로 이름난 맹인 조낭자 이야기
사주는 대포고 육효는 권총이라고" 같이 공부하고도 이 얘기는 생각 안나는 것을 보면
겸사선생이 훨 기억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금수상관이 목화통명보다 머리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학선교수님한테 전하시요?
감사합니다.겸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