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르는 계단과 고만고만한 집들이 어깨를 맞댄 채 이어진다. 오르다 보면 커다란 전봇대와 함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집이 보인다. 동네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쉼터이기도 하다. 여기서 골목이 세 개로 나뉜다. 왼쪽에 첫째 골목과 ‘바보마당’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에 둘째·셋째 골목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동백꽃이 활짝 핀 옛 공동 화장실
시화골목에는 회색빛 시멘트 풍경이 대부분이지만, 따뜻한 삶의 모습도 있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갖가지 화초와 채소가 자라고, 화분이 담장과 나란히 놓였다. 보리마당 바로 아래 예전에 사용하던 공동 화장실이 인상적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작은 창가에서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고, 식사 시간이면 구수한 찌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상추와 대파 등 갖은 채소를 심은 텃밭도 쉽게 만난다.
정겹고 소중한 풍경이 오감을 만족하게 한다. 골목을 오르다 돌아서면 바다가 조금씩 보이고, 보리마당에 올라서면 바다 건너 영암 땅과 고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할머니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시
시화골목은 모두 수직으로 이어진다. 첫째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면 보리마당에서 둘째 골목으로,
다시 셋째 골목을 따라 보리마당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둘째·셋째 골목은 시화골목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시인이자 화가가 된다. “진도에서 태어나 / 물 건너 하의도로 간 시집 / 첫날밤 신랑이 마음에 안 들어 / 어떻게 살까…? / 그래도 나밖에 모르던 남편 / 딸 하나 낳고 / 마흔여덟에 돌아가셔버리니 / 연탄 지게 져가며 온갖 잡일로 / 가버린 내 인생.” 자서전을 시 한 편으로 함축한 듯하다. 힘겹게 살아온 어르신들의 고된 인생이 묵묵히 펼쳐진다.
바보마당의 빈집은 예술가들이 전시장으로 사용한다.
바보마당은 ‘바다가 보이는 마당’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시화골목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고,
주변의 빈집은 예술가들이 전시장으로 사용한다. 서산동 골목 풍경을 사진으로 담은 ‘골목의 바다+사진’, 화려한 꽃의 색감이 인상적인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술관 이꽃’,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K오빠의 환경미술관’ 등 차분히 둘러보기 좋다. 바보마당에서 내려오면 흰 페인트로 주변을 칠해 눈 쌓인 풍경을 보는 듯하다. 이 풍경 속에 카페 ‘눈의꽃’이 들어앉았다. 아주 작은 마당이 있고, 지붕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연희네그오빠’의 쑥호떡
시화골목 입구에 자리한 ‘연희네그오빠’는 쑥을 넣고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쑥호떡, 매생이떡으로 만든 소떡소떡, 배추와 무말랭이, 미역귀 등을 넣어 국물이 맛있는 떡볶이 등을 낸다. 먹거리가 거의 없는 시화골목에서 허기를 달래주는 곳이니 꼭 들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