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을 들으며 김준선
12월의 첫 일요일 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층과2층은 관객으로 꽉 찼다. 아주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가곡을 들을 수 있어서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중장년층의 관객들은 젊었을 때 많이 들었던 가곡에 그리움과 향수를 느꼈을 것이다. 그때는 가곡을 많이 듣고 불렀으며 당시의 성악가들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만큼 대단했다. 그때는 대중가요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고 요새 같은 트롯트의 열풍도 없었다. 유명한 팝송이나 괜찮은 발라드 정도였다.
팬데믹 이전에 애들과 해넘이 행사로 11월에 공연 한편씩 보자고 약속했다.
가수의 콘서트나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한편씩 보자고 했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서 섭섭했지만 올해는 가곡무대를 만날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맨 앞줄이라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박자만 맞추면서 조용히 경청했다.
가곡이나 동요가 듣기 힘들어진 요즘이지만 가곡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마치 옛날 동지들을 만난 듯 반가웠다.
공연 무대는 단순하고 소박했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키 낮은 아담한 꽃 화환과 반주를 해주는 그랜드피아노 한 대와 피아니스트 한사람뿐이었다.
연광철성악가는 마이크도 스피커도 쓰지 않고 어떤 기계음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육성만으로 20여곡의 주옥같은 우리가곡을 잡음 없이 들려주었다. 악기소리 없이 관중들의 박수소리 뿐 조용히 음악에만 집중했다. 나의 애창곡 청산에살리라를 마지막 곡으로 들을 수 있어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가곡에 목말라 많이 아쉬워하는 청중들의 반응에도 앵 콜 곡이 2곡뿐인 것이 좀 많이 섭섭했다. 마음대로 한다면 밤새도록 듣고 싶었는데. 베이스 연광철성악가는 현제 세계최고의 극장에서 활동 중이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런던로열오페라 파리 바스티유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에서 활약하는 오페라가수다. 그는 세계적인 바그너 해석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베를린 궁정가수의 칭호를 받았다. 그의 베이스 목소리는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들렸다.
어른들에게는 가곡이 아이들에게는 동요가 없어진 요즘이다. 동요를 조용히 불러보면 가사가 가곡의 축소판이다. 고향이 생각날 때는 동요를 불러보고 향수를 달랜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지.”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향땅이라는 동요의 가사다. 어른이 불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릴 적 많이 불렀던 동요는 세월이 지나도 잊어지지 않고 내안에 남아있다. 트롯이나 아이돌의 노래가 온 세상에 시끌벅적한 요즘이지만 동요나 가곡이 많이 보급되고 어른도 아이도 많이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돌의 음악이 넘쳐나지만 가곡이 설 자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음악전공자들이 사명감으로 해내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의 젊은 음악가들의 수준은 세계 최고다. 끼와 열정이 많은 우리민족이 아닌가. 어른이나 아이들이 편안하게 노래 할 수 있게 가곡과 동요가 널리 퍼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 꼭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노래는 살아가면서 어느 때 어느 순간 감정이나 사연이 절절이 가슴에 다가올 수 있고 사는 동안 잊지 못할 기억의 경험도 가슴에 담겨있다. 내게도 잊지 못해 묻어둔 인연이 있었다. 중학교1학년 때 그 당시 언니나 오빠를 정하고 S오빠나 언니라고 했을 때 내게도 언니가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언니는 동생이 없는 막내였고 나를 많이 예뻐했다. 나도 언니를 좋아하고 많이 의지했다. 친언니와는 아홉 살의 나이차가 있어서 언니 같고 친구 같은 s언니처럼 편하게 대해지지가 않았다. 어느 봄날 설빔으로 받은 분홍색 통치마저고리를 입고 산길을 지나오게 되었는데 야트막한 야산에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산을 뒤덮고 있었다. 내 고향엔 유난히 진달래가 많이 피어나는 곳이다.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 앞이 안 보일만큼 많이 껴안고 집에 왔더니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던 언니는 나를 보러 집에 와 있었다. 언니는 꽃과 나를 한꺼번에 안아주었다. 꽃이 너인지 네가 꽃인지 구별이 안 되더라하면서.
그때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언니는 대학생이 되었고 내게도 대학을 가야된다고 격려와용기를 주었고 못 만날 땐 편지로 자주 힘을 실어 보내주었다. 언니의 편지는 내게 큰 힘이 되었고 힘들고 조금 늦었지만 해낼 수 있었다. 혈육같이 따뜻했고 편안했던 언니다. 나는 서울로 이사했고 언니는 지방에서 교직에 근무하느라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몇 년 후 서울로 이사 온 언니와 매일 전화하고 내가 뭘 해도 다 받아주는 언니한테 막내 티도 팍팍 내고 어리광도 부렸다. 우리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자고 굳게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도 전에 언니는 너무 일찍 별이 되어 내 곁을 떠났다. 가곡을 너무 좋아하는 언니가 있는 곳에는 늘 가곡이 흐르고 있었다. 가곡을 들으면 언니가 생각나고 아이같이 씩 웃던 언니가 그립다. 언니를 보내던 날 아들은 가곡을 크게 틀어놓고 엄마가 듣기를 원했다.
나는 통곡으로 아들은 눈물 젖은 가곡으로 엄마와 언니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22년이 지났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언니는 내 기억 안에만 있다. 아이같이 웃던 그 얼굴이 많이 보고 싶다. 진달래가 천지를 붉게 물들이면 그리움에 남모르게 가슴앓이를 했고 언니가 좋아하던 가곡을 들으면 목이 메인다.
우리의 사연과 인생이 담긴 노래의 애절한 가사는 심금을 울린다. 삶을 돌아보면서 그때의 그 노래로 지난시간을 반추해본다. 굴곡진 인생길에 노래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대중가요면 어떻고 가곡이면 또 어떤가. 노래면 다 좋은데 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TV 화면에 많이 비친다. 자신의 인생얘기와 비슷한 가사에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하더라도 항상 함께하고 싶은 내 노래는 나의 인생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위안이고 기쁨이다. 또한 노래는 10대 장수비결 중 하나라고 한다.
첫댓글 주제 넘는 말씀일지 모르나 그동안 읽은 선생님의 글 중에 가장 훌륭한 수필이라 느꼈습니다.
엄지 척입니다. 가곡을 좋아하던 언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전개하셨어요.
주제를 벗어남 없이 감정을 충본히 드러내면서 노래에 대한 사랑이 스며있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셨어요.
'가곡을 들으며' 라는 제목이 너무 겸손하다 싶게 내용이 풍부하네요. (내 마음을 울린 베를린 궁정가수는 어떠세요?)
오랜만에댓글을보니반갑구요좋은평가주셔서감사해요칭찬받도록노력해야겠네요여러가지서ㄴ생님의재주가많이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