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5명이 출전하는 경기다. 교체선수까지 포함한 엔트리는 12명이다. 그 정도는 있어야 경기 도중 부상, 5반칙 퇴장 선수가 나올 때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예비선수 하나 없이 5명만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따낸 기적 같은 팀이 있다. 바로 강양현 코치가 이끄는 부산 중앙고(교장 진광효) 농구부다. 이들은 최근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중고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들이 일군 기적 같은 이야기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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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원주 치악 체육관에서 열린 대한농구 협회 장기대회에서 전통적 강호 용산고와 부산의 농구 명문 중앙고가 맞붙었다.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중앙고 팀에 남은 선수는 달랑 셋. 둘은 퇴장 당해 셋으로 경기를 치른 중앙고는 결국 석패하고 만다. 점수 차는 63-89. 완패였다. 용산고는 우승과 함께 허재 감독의 아들 허훈 선수가 대회 MVP를 차지하면서 경기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관중이 갈채를 쏟아붓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쪽은 승자인 용산고가 아니라 준우승 팀인 중앙고였다. 용산고는 우승을 하고도 준우승 팀에 묻힌 양이 된 것이다.
중앙고가 화제가 된 이유는 5명이 풀 경기를 뛰면서 파죽지세로 상대 팀을 꺾고 결승까지 올라온 여정에 있었다. 멤버 다섯 명으로 준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인터넷에서도 슬램덩크 실사판이라고 술렁거렸던 부산 중앙고 농구부. 한 명 있던 벤치 멤버는 부상으로 병원에 실려가고 교체 선수도 없이 다섯 명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하자 인터넷은 이들이 우승해 슬램 덩크 이상의 드라마를 써주기 원했다. 하지만 다섯 명이서 교체도 없이 풀 경기로 인한 체력 고갈은 필연적이었고 경기 시작부터 시작된 용산고의 올코트 프레스, 중앙고 측의 5반칙 퇴장 등으로 필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중앙고를 보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바로 '슬램덩크 실사판'.
지금도 농구 만화의 명작으로 남아있는 슬램덩크. 15년 일본에서 출간된 만화 '슬램 덩크'는 한 무개념 농구 천재(...)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려고 약체 농구부에 비집고 들어갔지만 농구에 대한 애정과 승부욕에 눈을 뜨면서 비약적 성장하는 전형적 스포츠 소년 만화였다. 하지만 엄청난 개그 코드와 포텐 터지는 그림체,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만화 속 캐릭터들의 실력이 실제 고교 농구 선수의 수준을 넘어선 MBA 수준(작가가 너무 열중한 나머지 주인공들이 고교 농구라는 걸 까먹음)으로까지 발전했지만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그야말로 한일 양국에 돌풍을 일으켰다. 농구가 비인기 종목이고 인프라가 별로인 일본에서는 이 만화로 인해 농구 열풍이 불고 한국에서는 SBS에서 저녁 시간대 슬램 덩크 애니메이션을 방영, 남녀 학생을 불문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와 실컷 컷 당한 버전이었지만. 그야말로 전국에 슬램 덩크 열풍이 불어 갑자기 농구 지식에 해박해지고 심지어 농구 룰을 일일이 다이어리에 적어 다니거나 여학생들 경우에는 자기 이상형에 따라 서로 서태웅 내 꺼 정대만 내 남편 윤대협 내 남친이라고(........) 난리......
그 인기를 업고 한국에서도 '헝그리 베스트 5'라는 만화가 나온 바 있다. 떨거지 선수들로 급조한 하위권 대학 농구팀에 들어온 청소년 대표 출신 신입생, 손 빠른 전직 소매치기, 전직 축구부 꼴통 선수, 멀쩡히 의대 다니며 취미로 농구하던 놈, 심지어 농구 하라는 계시를 받고 왔다는 놈까지... 그런 팀이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킨다는, 슬램 덩크와 같은 플롯의 만화로, 슬램 덩크 베꼈다고 욕도 많이 먹었을 만큼(기획자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난리쳤지만) 지금도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슬램 덩크. 그야말로 한 편의 스포츠 드라마인 이 만화가 현실화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왜국 만화에서 왜국 선수들은 하나같이 세기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천재들이 일본 스포츠의 위상을 드높이지만 정작 이게 실제화 되는 건 만화 그리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 왜국을 만화로 정신승리하는 찌질 종자들로 만들어 현실 시궁창을 선사하는 사례를 보여준 사례라는 것도 ㅋㅋㅋ)
<왜구의_현실.jpg>
부산 중앙고는 부산의 전통적 농구 명문으로 꼽힌 학교다. 1958년 창단된 동아고 농구부와 더불어 1978년 창단된 중앙고 농구부는 부산 고교 농구의 양대 산맥으로 동아고와 엎치락 뒤치락했다. 사실 부산의 고교 농구 인프라 자체가 부실해 이 두 팀 말고 내세울 팀이 별로 없긴 한 게 현실이지만 중앙고는 오성식 ,추승균, 강병현, 박훈근, 박규현 등 유명 선수들을 배출해내면서 전통적 농구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로 운동장 매우 커서 놀기 좋고(...) 이 학교 출신의 말에 따르면 만화 '8용신 전설'의 작가인 박성우 작가도 이 학교 만화부 출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날리던 중앙고 농구부는 요즘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이유는 서울 수도권 쪽 고교들의 마구잡이 선수 스카웃 때문이다. 이번에 출전한 용산고도 전국적으로 유망 선수들 마구잡이 스카웃으로 악명 높은 학교였기 때문에 지방 고교 농구부들은 지역 유망주를 수도권 고교에 빼앗기고 존폐 위기에 놓이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중앙고도 마찬가지로 중앙고는 이번 대회에 달랑 6명으로 출전했다. 게다가 멤버들은 가드 천기범, 슈터 배규혁, 새로 부임한 신입 코치가 길거리에서 헌팅해 온 길거리 농구하다 얼떨결에 들어온 1년 차 초보 선수들인 정강호와 홍순규, 1학년 허재윤 등 중학교 때 한 경기도 못 뛴 벤치 멤버 신입생 등으로 이뤄진 팀이었다. 농구부원인 서명준과 광신정산고전에 출전했던 서민혁 등 총 8명이지만 주전 선수 여섯 명 중 한 명 병원에 실려간 상태. 결국 다섯 명이 전 경기에 출전해 뛰어야 했다. 한 마디로 교체 선수는 많았던 슬램덩크보다 상황이 나빴으니 이건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실사판(..............)
중앙고의 준우승이 이렇게 관심을 받은 이유는 드라마적 요소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고 출신으로 현역 선수로 뛰다 일찍 은퇴하고 모교 농구팀에 온 신입 코치 강양현, 천재 선수 한 명, 벤치 신세였던 선수, 길거리 농구하다 코치한테 낚여온 선수 등 정말 간신히 꾸려진 팀이었다. 초보 코치도 뭘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무지 고생했다고 하는데 돌아다니면서 발로 뛰고 조언 구하고 다니고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뛰었다. 이번 시합도 선수 수 미달로 못 나갈 뻔했다는데 그나마 있던 선수 정진욱은 예선에서 부상으로 입원했다. 남은 선수들은 묵묵히 'No.4 정진욱'을 매직으로 써넣은 테이핑을 감고 병원에 있는 정진욱과 함께 뛰었다. 5명만으로 상대 팀을 꺾으면서 신림고에 85-42승, 제물포고에 84-64승, 홍대부고에 69-58승에 이어 8강에서 광신정보산업고를 77-64로 꺾고 준결승에 올라오자 네티즌을 비롯한 여론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슬램 덩크가 현실화 되는 거 아니냐고. 중앙고가 준결승에서 춘계대회 준우승팀 안양고를 74-40로 꺾으면서 결승에 진출하자 네티즌들은 이제 중앙고가 우승이라는 드라마로 결말을 맺어주길 바랬다.
사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승승장구에 회의적이었다. 교체 선수도 없이 다섯 명이 전 경기를 뛰어야 하는 체력 고갈에도 계속 경기를 하게 하는 것에 대한 비난도 있었고 병원 갔다와서 바로 다시 경기 뛰는 상황에서 8강 이상은 무리라고 봤다. 결국 쌓인 피로와 용산고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천기범 견제, 올코트 프레스에 두 명이 5반칙 퇴장으로 3명이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패배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중앙고 농구부는 전통적으로 강호였기에 전국 대회 때는 학생들이 수업 쉬고 응원가고 그랬다는데 후배들의 선전 소식에 졸업한 선배들은 일정 다 취소하고 100여명 대거 달려와 응원하고 난리가 났지만
기사에는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준우승은 드라마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왜 다섯 명만 뛰어야했나? 이번에 우승한 용산고에도 사실 중앙고에 가기로 했던 선수가 한 명 있었다는 풍문이 들려올 정도로 스카웃 때면 선수 빼오기에 나서 감독들 신경전은 물론 시합에서도 기싸움 장난 아닌데 특히 농구 명문이라고 불리는 용산고와 경복고 등의 횡포에 가까운 지방 선수 빼내 가기 행태는 그야말로 악명 높다. 사실 수도권 고등학교들이 농구 강호로 부상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선수 뺏기로 전국적 인재로 이뤄진 팀이니 강호가 되는 것은 당연한 현실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중앙고 측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경기 진행에 대한 불만으로 코치가 파울을 지시해 퇴장을 자처하고 상대에게 공 집어던지고 시비 거는 듯한 모션이 꽤 보였기 때문.
<실력에 맞는 인성과 스포츠 정신까지 갖춘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길 바람!>^^
사람들은 드라마를 사랑한다. 한계를 넘어선 투혼에 감동하고 인간 승리에 환호하고 결과를 넘어서 그것의 정수를 보여주는 광경,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는 광경에 열광한다. 스포츠는 이 모든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에 인기 있고 부산 중앙고는 은퇴한 신입 코치와 아무 것도 아니었던 선수들로 그 정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기와 상관없이 부산 중앙고에게 승자의 갈채를 보낸 것이다. 전국에서 선수 다 빼와서 한 용산의 우승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도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일궈낸 중앙고 농구부를 보면서 느낀 사람들의 희열, 그리고 아예 지방 선수 다 빼와 서울 리그 만들어서 서울 팀들끼리 대회하란 소리 나올만큼 심각한 지역 유망 선수 포획이 개선되기 바라는 마음. 물론 현실상 불가능하기에 중앙고의 우승이 일회용 감동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우승은 못했지만 부산의
중요한 결론: 만화는 왜구가 그리고 현실 제패는 한국이 한다! |
출처: 개독과 먹사는 be the 고자 원문보기 글쓴이: 로미 슈나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