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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과 함께하는 ALS(루게릭병)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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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마음들 스크랩 박승일과 함께하는 als에 올린 글(2)
베스트맨 추천 1 조회 123 14.02.25 14:2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생각의 차이(2006년12월30일)

요즘 나의 기분은 너무나 즐겁습니다.
왜냐구요?
생각을 바꾸었거든요.
일단 말을 할때 조금은 과장스러워도 크게 웃고 명랑하게 이야기 합니다.
전화 통화하면서 사람들이 저에게 뭐 좋은일 있냐고 할 정도니까요.
그리고 모든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엔 남들의 충고나 격려가 가진자들의 여유와 조롱으로 생각하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무슨 말이든 감사하게 되요.
설령 저에게 약간 기분 나뿐 말을 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하니 그것도 고맙더라구요.
그리구 요즘들어 신앙생활을 해보려구 합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접할수록 맘이 편해지고 두려움이 점점 줄어듭니다.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어떠한 힘이 있다는것을 강하게 부정해온터라 스펀지 처럼 쉽게 흡수하진 못하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있다고 느껴집니다.
올 한해 되돌아 보면 제 병명으로 인해 고통스럽기도 하고 심한 좌절감과 두려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했지요.
하지만 맘 한번 고쳐먹으니 그런것들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어차피 주어진 운명이라면 단 하루 를 살아도 즐겁고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지요.
매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줄수 있어 행복하고 큰 고통없이 투병생활을 할수 있어서 감사하고 모든걸 준비할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또 감사하네요.
그리고 항상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여러분들이 있어 맘까지 든든합니다.
희망승일님 처럼 저도 내년엔 어떠한 희망이라도 여러분에게 보여줄수 있을겁니다.
멋진 제 모습 꼭 지켜들 봐주시고 여러분도 항상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되길 진심으로 빕니다.쑥스럽지만 큰 소리로 사랑합니다라고 크게 외쳐봅니다

 

거리 서명 운동 참여기(2007년1월8일)

우선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져 합니다.
꿍이경희님이나 신밧드님이 올리신 글이 서명운동의 전반적인 사항를 올리신데 비해 전 제 중심적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글 내용도  일기형식이랄까 큰 의미를 두지않고 생각나는데로 쓰다보니 미흡한게 많습니다. 그냥 남 일기 훔쳐본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세요. 또 그러면 사생활 침해인가요?

1월 6일
아침부터 창밖의 풍경은 온통 흰눈이 펑펑 내리고 차량 지붕 위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가뜩이나 영등포 서명운동에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나에겐 어찌보면 적당한 핑계거리로 피해갈수 있는 길이 보이는 듯 했다.
그래서 양면성님에겐 날씨를 핑계삼아 못 갈수 있다는 암시적인 쪽지를 보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했으나 한편으론 가야한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눈발은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포기하고자 맘을 먹을때 웬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덧 오후 1시
안되겠다 일단 나서보자 하면서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었다.
처음으로 눈길위에서 전동휠체어를 운전해 보는것이기에 걱정도 되지만 분명히 길을 열어주실거란 믿음으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런 마음이 통해서 일까 어느새 눈도 그치고 있었고 길위의 눈도 녹아있었다.
두시에 출발하는 용산 급행 전철에 난생 처음으로 휠체어에 몸을 싣고 탑승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예전에는 자리에 앉아 있기가 미안할 정도로 노인분들이나 아기엄마들이 많아 오래 앉아 있을수 없었는데 갈때까지 편히 앉아 갈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나왔다.
3시 30분 영등포역에서 내려 급히 약속 장소를 찾아 헤매였다.
촌놈이라 찾는게 그리 만만하진 않았다.
민정님에게 문자를 보내서 나좀 구해달라고 sos를 보내니 어느순간에 초록이 님이 다가와 나를 무리로 데려다 주었다.
처음보는 분들이라 난 당황스러워 어떻게 인사를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경희님과 양면성님은 그래도 카페에서 자주 뵙고 예기를 한적이 있어서 금방 마음이 편해졌다.
솔직히 여기 올라오면서도 그냥 구경만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올라왔기에 적당한 시간이 되면 적당한 핑계거리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다른 분들이 서명운동을 시작하는걸 보니 나도 한장이라도 받아야지 맘이 편할것 같아 서명용지를 달라고 한다음 막 나서려는데 보니비님이 함께 하자고 하셨다.
아무런 멘트도 준비하지못했고 아무런 계획도 없던 나에겐 천군마마를 얻은기분이랄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씁니다.
만약 2부를 쓰게 된다면 보나비님과 2시간가량 다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만남의 연속들과 감사의 글을 쓰게 될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약속은 못할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면 한번 부딪혀 보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림(2007년 5월25일)

하는일 없이 바쁘다는 말
요즘 내 일상이 그런듯 하다.
아침 늦게 애들 등교시간에 일어나 늦은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가 차려놓고 간 밥상에 혼자 앉아 아무생각없이 습관처럼 밥을 먹는다
간혹 오는 환우분들의 전화가 외부인들과의 접촉이 전부인듯
그들과 머슴아인 난 와이프의 전화처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푸념도 하구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무얼로 한끼를 때울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국에 밥말아 한끼 해결
그러다보면 반가운 딸아이가 온다
그러나
딸아인 하교후 바로 가방을 집어 던지고 자신의 놀이로 집을 빠져 나간다.ㅋㅋ
붙잡고 싶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녀석이 나랑 노는건 재미 없어 할테니 도저히 붙들어 놓을 자신이 없다.
녀석의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젠 아들녀석을 기다린다.
5시가 다 되어 아들녀석이 돌아온다
그런데 딸아이랑 별반다른게 없다
후훗
내가 뭘 기대한걸까
녀석들에겐 나보다 더 잼나고 신나는 일들이 많을텐데
이젠 아내를 기다린다
하루일로 몹시 지친 아내는 집에오자마자 저녁 식사를 준비 하느냐 바쁘다
피곤함이 역력한 얼굴로 빨리 밥먹구 쉬고싶어하는 눈치다.
크크
그래 다들 바쁘구나
그냥 옆에 있어주는것만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걸 더 무얼 바라리

 

떠나는 이들과 떠나야 할 나(2007년8월27일)
내가 이 카페를 처음 알게된건 작년 봄쯤이었을거다
그땐 그냥 이런 카페도 있구나 생각하며 별 관심없이 지나쳤다.
진단받고 어딘가 치유의 방법이 있을거란 믿음으로 한참 헤메던 시절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몇개월의 치유의 방법을 찾아 헤메이던 나에게 어느 정도 포기란  생각이 들 무렵 티브속에서 박승일을 보았다.
솔직히 티브속의 승일씨 모습은 나에겐 많은 두려움을 주었고 나의 미래 모습이라는 생각에 시청하는 내내 맘이 편치 못했다.
티브를 옆에서 보시던 어머님은  넌 절대 저렇게 안되니 티브를 끄라고 성화셨다.
그당시 난 산속에서 순리치료라는 것을 쫓아 혼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방송을 한다는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날 산속에서 나와서 티브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일이 있은후 며칠 지나서 난 산속을 나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천안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할일이 별로 없었다.
루게릭이란 놈을 이젠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르자고 다짐하자 그야말로 할일 없는 놈팽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다 호기심으로 이 카페에 들어와서 루게릭 환자라는 사실을 알렸을때 많이도 반겨주던 많은 카페 가족 분들의 환대에 조금은 당황 스러웠다.
그중 항상 밝은 모습(?)으로 카페 올때마다 반겨주던 꿍이 경희님
그리고 천안에 사신다며 퇴근길에 달려와 여러 말씀을 해주신 희망행복~j님
카페 들어 올때마다 한줄 메모장에 인삿말을 건네주던 부산 사랑님
처음 서명 운동 참여 했을때 절 보며 맘이 많이 아프다고 하시던 아름다운 영혼님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시고 힘을 주시던 분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카페를 떠나거나 내 주위에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미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것이 아쉽기도 하고 감사의 마음도 못 전한것이 미안하기까지 하다.
다음 만남을 약속하기도 하고 서로 연락을 자주 하자고 말을 해 보지만
이젠 내가 그 약속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 질거란 생각이 든다.
모레면 희망 행복 ~j님이 이곳 천안을 떠나신다.
솔직히 다음 만남을 기약할수가 없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내 육신이 만남을 기약할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제 약간의 증상을 보이는 팔과 얼굴 근육들의 경련이 날 불안하게 한다.
이젠 내가 이곳을 떠날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협회 지부장이란 자리도 조만간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젠 남들이 내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것 보단 
내가 떠나야 할때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별은 슬프고 서운함도 많치만
나중에 더 큰 이별로 터 큰 슬픔을 갖기 보다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개월은 내 인생에 있어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가정 나 자신만 알고 살아왔던 나를 한번 뒤돌아 보게 해주는 시간이였고
너무나 좋은 분들을 많이도 만나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너무나 좋으신 많은 분들을 보면서 
건강을 찾게 된다면 그들처럼 좋은일을 꼭 해야 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니 내가 못하게 된다면 자식들에게라도 꼭 가르쳐서 내가 받은 사랑을 대신 꼭 갚으라고 말하여
조금이라도 내 마음의 빛을 갚고자 한다.
하나님이 날 어여삐 여기셔
진행이 아주 느리거나
잠시 멈추게 된다면 
이별의 인사가 조금은 늦어질거고
함게할수 있는  시간도 조금 길어질테고
헤어진 그들을 다시 만날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져본다.





추석빔(2007년9월23일)

어제 밤엔 딸 아이를 전동휠체어 앞에 태우고 할인매장을 다녀왔습니다.
딸아인 부탁하기 어려운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저에게 이야기 한답니다
딸아이 말이 치마가 하나 밖에 없다고 저에게 하나 사 달라고 조르네요.
솔직히 딸아이가 뭘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하는지라 큰 맘먹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할인매장 아동복 코너에서 둘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옷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딸아인 이옷 어때 아빠하고 묻곤 하는데 제가 뭐 알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판매하시는 분의 도움을 받아 치마랑 그 치마에 어울리는 티도 같이 사게되었습니다.
막상 딸아이 옷의 값을 치루고 나니 아들 녀석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중2인 아들 녀석은 요즘 남방을 좋아하는것 같아 옆 매장으로 가서 남방을 하나 더 구입했습니다.
딸아인 오빠가 별로 좋아하지않는 스타일일거라고 했지만 전 틀림없이 좋아할거라고 했지요.

아이들의 옷을 사가지고 오면서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많은 부분에서 아빠 노릇을 하지못하는 부분이 많은것 같아 미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옷 한벌씩 사주고 나니 제 마음이 참 편안해 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제 생각대로 아들녀석은 꽤나 맘에 들어 하더라구요.
그런데 바지도 없다고 있는건 짧다고 하며 바지도 사주시면 안되요? 그러더라구요
어젠 임마 아빠 돈 없어 했지만
오늘은 아들녀석을 데리고 나가서 바지 두벌 사주어야겠어요.
아직까지 아빠의 존재를 그리고 사랑을 보여줄수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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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3.02 13:15

    첫댓글 서명운동. 저때의 사진을 보니 그때의 일들이 추억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보고 싶은 얼굴들도 많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베스트맨님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바래봅니다..^^

  • 14.03.02 19:37

    정말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만남들의 연속이셨네요~
    함께 하진 못했던자리임에도 낮익은 얼굴들을 접하니 반갑고 고맙고 사랑스럽기만합니다~^^

  • 14.03.05 05:04

    저 때도 지금 사진으로 보니 그냥 얼마 전에 찍은 것만 같네요. 그리운 분들도 많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베스트맨님의 심경이 절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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