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졸업여행 겸해서 다녀온 남도 여행!
평소 가깝게 지내는 20여명의 선후배 지인들과 함께 전남 일대의 유서깊은 여행지를 1박2일로 다녀왔습니다.
남도는 벌써 봄이 온 듯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계절적으로 겨울이지만, 겨울이 아닌 듯 낮최고 기온이 영상 10여도를 넘는 봄날씨가 계속되니까 날씨가 미친 것인지 계절의 신(神)이 치매를 앓는지 모를 정도로 요즘 겨울은 엉망이고 개판(dog table)인 것같습니다.
어쩌면 교직생활에서 가깝게 지내는 교직 선후배님들과 마지막 여행인듯해서 바쁜 일상 속에서 1박2일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개학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요즘의 상황이 심각하지만, 그래도 일상적 삶은 정상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해서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1월31일 아침, 리무진 버스의 안락한 의자에 몸을 싣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영광 굴비로 유명한 한정식집이었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산해진미 중, 바다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음식재료는 다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푸짐했습니다.
이어 도착한 곳이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를 방문해서 산책을 하고, 소화도 시킬 겸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즐겼습니다. 특이하게도 그곳의 불교 유적 박물관에는 파키스탄에서 가져온 불상들과 기와에 새겨진 부조 형식의 불상 유물들이 많았습니다. 박물관 설립당시 군수님이 파키스탄 대사님과 협약을 맺어 유물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어 도착한 곳이 신안 증도의 태평 염전이었습니다. 소금 박물관은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미 문을 닫은 상태라서 염전의 산책로를 쭉 걷고 전망대에서 낙조를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구름이 끼어 있어서 낙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동행한 대학 선배이시고 현대건설 상무와 포스코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윤도령(예명. 양로원과 요양원 등 1년에 수십차례 노래 봉사 활동)님께서 사회는 물론 반주를 맡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친교의 시간을 밤늦도록 가졌습니다.
노래 반주기 일체를 임차한 버스에 싣고와서 설치한 상태에서 마치 라이브 까페처럼 독채로 빌린 팬션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친교와 오락 시간을 꽤 오랫동안 가졌던 것같습니다.
저는 거기에서도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학교밖 전학공 멤버들이 2월1일(토)에 함께 학습 과제를 편집해서 메일로 보내느라 아침 새벽에도 분주했지만, 다른 지인들은 해안을 산책하고 여유있는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은 뜨거운 뚝배기의 장뚱어탕으로 시래기와 어울린 맛이 아침 숙취 해소에는 제격이었습니다.
증도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곳이 2월1일 첫 방문지가 바로 강진 무위사였습니다.
특이하게도 대웅보전이 아니라 극락보전이라는 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서방정토의 사후 천당에 갈 수 있도록 기원하고 제를 지내는 목적으로 세운 절'이라고 동행한 유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인문학을 섭렵한 유교장선생님의 유창한 설명을 들으면 박학다식한 진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무위사를 방문했을 때, 마침 천도제를 지내는지 많은 불자들이 스님의 독공소리에 절을 하고 합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도착한 곳이 해남의 고산 윤선도 유적지였습니다. 문화해설사님의 자세한 설명을 바탕으로 명당 중의 명당도 둘러보고 기념관에 전시된 그림들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강진을 방문했으니, 강진의 한정식으로 유명한 집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문학파 시인 김영랑의 생가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육회까지 나오는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시인 김영랑의 생가와 시문학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당시 500석지기 지주의 아들로 구두밑창에 3.1독립선언문을 숨겨와 강진읍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본명 김윤식의 영랑선생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화순의 운주사였습니다. 운주사는 와불이 유명하기때문에 꼭 방문해야 한다고 모임을 주선한 후배 교감선생님께서 강력히 추천하여 거리가 좀 멀었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운주사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운주사 일주문에서 운주사까지 약 800미터 길과 와불까지 올라가는 산꼭대기 길이 너무 좋아서 맨발로 걸었습니다. 같이 동행했던 일행중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맨발을 보니까, 발이 시려울 것같아서 제마음이 시려온 듯합니다. 겨울철인데 동상 걸릴까봐 그런 마음이 드는 것같습니다."
다른 지인은 농담처럼, " 세상에 기인들이 많은데, 송교장샘도 기인 중에 한명이군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울철이지만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30분이상 맨발로 흙길을 걸으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기인처럼 느껴집니다.
운주사 방문을 끝으로 2일간의 방문지 여행을 마친 시각이 오후 5시30분!
원래 출발한 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되었지만, 마음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1월말, 2일간의 빡빡한 일정의 남도 기행!
마음이 통하고, 오랜 친분을 쌓은 분들과 여행은 색다른 추억과 감동을 주는 것같았습니다. 그동안 바쁜 일상에 쫓겨서 '나에게 여행이나 놀러다닌다는 생각은 사치이다.'라고 여기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윤도령(예명) 사장님의 구수한 입담과 삶의 역정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피가되고 살이되는 정신적 찌개백반처럼 긴 여운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저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몇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다보니까, 세계 각국의 공사현장을 다니면서 많은 비행기를 타면서 여러가지 애피소드가 있었답니다.
40대 초반의 건설회사 과장 시절에 이코노미석을 탔을 때, 자신의 좌석을 무심코 뒤로 젖혔더니 뒤에 탄 한국인 남성이 갑자기 주먹으로 의자 등받이를 쾅하고 쳤답니다. 노트북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던 사람이 등받이가 기울어지니까 노트북이 자신의 무릎에 떨어졌다고 화를 낸 것입니다. 그래서 승무원을 불러서 좌석을 바꿔달라고 했답니다. 그자리에서 멱살잡이나 서로 싸우면 결국 공항경찰에 인계되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에 잘 참고 그렇게 요구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승무원이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면서 비즈니스석으로 좌석을 옮겨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참는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셨다고 합니다.
2019학년도는 친구가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는 학교의 방과후 강사(포크기타반)를 1학기 동안 진행했는데, 학생들에게 인성교육도 겸하니까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칭찬과 인정, 격려의 표현은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이라고 강조했습니다.그러면서 톰크루즈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배우 톰크루즈도 소년 시절에 소심하고 소극적인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톰크루즈가 어느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는데, "우리 크루즈는 목소리가 참 예쁘구나! 장차 성우나 배우가 되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을거야!"라는 칭찬 한마디가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기타를 가르치면서 중간중간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더니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또 이런 말씀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길을 만드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아인시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다져진 단단한 길은 내발자국을 남기지 못하지만, 처음 길을 만드는 길과 아직 다져지지 않은 길은 나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
아울러, 인성이 왜 중요한가는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들어낸 박지성과 이천수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박지성은 인성이 좋아서 히딩크가 데려가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켰지만, 이천수는 그렇지 못했다. 히딩크와 박지성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축구선수로서 '인성이 좋은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으며,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은 남의 집 식구(배우자)끼리 서로 감정섞인 표현을 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령, 큰 며느라가 막내 며느리한테 이런 표현은 해서는 안될 금기어라고 하였습니다. 인내와 참을성을 강조한 표현으로 "짚고 넘어가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막내 동서가 설날 아침에 차례상을 차려놓은 상태에서 나타나거나 못마땅한 면이 많았는데, 그것을 그냥 인내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그것을 꺼내지 않는 것이 바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참지 못하고 "동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말은 짚고 넘어가야겠어!"하고 전화로 시비가 붙으면, 그후부터 형제간의 우애와 동서간의 친밀한 관계는 모두 박살이 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백번 옳은 지적이라서, 저도 공감이 가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감화를 받았습니다.
(이라크 공사 현장에서 현대건설 직원이 IS요원들에게 인질로 잡혔을 때, 이라크 수상과 대책회의를 진행하는 윤상무님)
(시문학파(정지용, 김영랑, 박용철등) 시인인 영랑(본명 김윤식)시인의 생가 입구 시비(詩碑)
(신안 증도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조의 모습! 구름에 해가 가려서 잘 보이지 않음)
(영광의 보리굴비 한정식 식당 모습)
(동백꽅이 떨어진 영랑시인의 사랑채 옆 떨어진 동백꽃)
(고산 윤선도 유적지 고택 담장에 누군가 하트 모양으로 만든 동백꽃의 인상적인 모습)
(신안 증도 앞바다 저멀리 1004대교가 보이고, 이순신 장군 동상과 나룻배가 어울린 풍광)
(강진 무위사 찻집의 창가에 놓인 화분, 다육식물 등의 정겨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