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기술의 현안 |
한국소방기술인협회 이민형 |
세미나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어떤 행사 자리에서 소방방재청의 어느 간부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청의 직원들은 폭주하는 질의에 대한 응답 때문에 늘 밤을 새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 소방기술현장의 상황이 딱 그렇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상황이 그대로 계속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질의사항의 본질은 무엇인지, 담당공무원의 혹사는 작은 정부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인지를 명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개선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정부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여야하나 국민의 한사람인 담당공무원의 복지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상황의 본질적 검토를 통하여 필요하면 정원을 늘리든지 업무의 일부를 민간에 이양하든지 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소방은 타 기술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분야이다. 기계 전기 건축 화공 통신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복합되어있지만 각 구성분야 내에서는 일부분의 작은 범위만을 점유하며 전문성이 그리 깊지도 않다. 그럼에도 소방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이질적인 분야의 기술들을 통합하여야하고 또한 역사가 짧고 전통이 부족한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며, 확립된 기술이 상대적으로 적어 새로운 적용 상황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술발전과 인식의 전환에 따라 법령과 기준의 개정이 빈번하고 같은 법령 또는 기준을 두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일이 복잡해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진짜로 중요한 이유는 이런 명분들 아래 깊숙이 숨어있다.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두 가지의 측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는 왜 이리도 질의할 의문점이 많은가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질의에 대해 공무원이 왜 밤을 새우면서 응답해야하는가이다. 우선 왜 이리도 의문점이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첫째로 우리의 법령이나 기준에 모호한 점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리 화재안전기준이 지나칠 정도로 빈약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법령조차도 짜깁기 식으로 꿰어 맞춘 게 많고 제ㆍ개정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어 모호한 부분이 많다. 단순한 사실을 기술하는 법령의 조문조차도 너무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일관하여 읽다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일선 소방공무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시설기준은 아무리 꼼꼼하게 해 놓아도 모든 경우를 다 포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방서나 성능을 고려한 기술자의 판단에 상당한 정도를 맡겨야할 부분이 많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법령체계는 그런 부분을 전부 담당 소방관서의 결정에 맡기고 있다. 둘째로 꼽을 것은 경직된 행정체계이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기준을 적용하면서 모호한 부분은 담당공무원의 판단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담당공무원마저도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의를 함으로써 질의 건수가 늘게 된다. 기준을 만든 것은 기술적 성능을 달성하기 위함인데 성능 취지를 만족하기 위해 기술자들과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몸보신하는 방향으로 상부의 유권해석만을 구하다보니 질의 건수는 자연 많아지게 마련이다. 또 한편으로는 현장기술자의 의견이 담당공무원과 다를 경우 철저히 무시된다. 그러면 그 유권해석 또는 담당 공무원의 일방적 해석은 절대적 권위를 갖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중간에 바뀌어 새로 부임한 담당공무원이 전임자와 다른 의견을 가짐으로써 골탕을 먹었다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새로 생겨서 업무를 이관 받은 부서 혹은 분서에 인사를 안 했다고 괘씸죄로 당했다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이현령비현령의 이런 법령운용체계, 그러면서도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둘러대는 이런 관료적 체계에서는 도대체가 기술자들이 자기 판단으로 기술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 오로지 유권해석-그 절대 권위-에만 목을 매는데, 유감스럽게도 소방방재청은 인터넷게시판 질의응답은 법적권위가 없으니 해당 소방관서에 알아서 잘 보이라고 헛기침했다는 소문이다. 밤새워 응답은 해 주지만 그게 다 쓸데없다는 거다. 다음, 그 쓸데없는 질의에 응답하려고 왜 공무원이 밤을 새워야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첫째로 꼽을 것은 성격상 민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판은 이제 보편적 질의수단이 되었고, 그 질의에 대해 응답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대국민 서비스의 하나가 되었다. 대국민 서비스라고 하지만 모호한 법령이나 규정에 대한 설명이니 사실은 잘못된 행정에 대한 보완이지 서비스라 할 것은 아니다. 그토록 중요한 민원처리를 그렇게 쓸데없도록 만드는 것은 밤새워 몸 때움으로써 부족한 행정행위를 합리화하려는 것일 뿐 법령 기준의 합리적 적용을 위한 진지한 공무수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비록 쓸 데 없는 짓이지만 현장기술자들이 상식조차 모자라니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교만한 관료의식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승자박이다. 소방방재청이 일선소방관서의 담당자들과 현장 기술자간의 갈등을 전혀 모를 정도로 귀가 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권위를 소방당국이 독점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현장 기술자들에게 융통성을 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안이 아무리 작고 일선소방서의 권한행사가 경직되고 치졸하여도 그에 대해 현장 기술자들이 대들도록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자 하나하나에 대해 소방당국이 절대적 해석권을 가져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담당공무원이 밤을 새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절대적 해석권을 가지고 밤새워 고생하여 만든 그 응답내용이 일관성을 유지하며 질의의 취지를 잘 만족시키는 신뢰성을 갖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 애매모호한 규정이라는 게 원래 일관성 있는 해석을 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오랜 기간 산더미처럼 쌓인 질의응답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소수의 담당 공무원이 어찌 관리해서 예나 지금이나 수미일관한 응답을 낼 수 있겠는가? 셋째로, 차마 하기 민망한 말이지만 담당공무원들의 기술지식을 짚어볼 일이다. 모든 기술분야에 가장 중요한 현장 시공지침-군대식으로 말하면 FM-은 시방서이다. 그런데 시방서가 없는 단 한 분야가 바로 소방이다. 표준시방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NFPA 코드(NFC)는 인쇄물을 한 줄로 세워놓으면 총 두께가 3m에 달한다. 그렇게 치밀하고 방대한 규정인데도 잘 들여다보면 수많은 타 기술표준과 참고도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자세한 기술표준들을 다 열거하여 시공에 빈틈이 없도록 하면서도 그 방대한 참고문헌들을 제시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그 코드의 규정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고, 기술자들이 성능위주의 판단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며,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 기술기준(화재안전기준)은 인쇄물 두께가 1cm에 불과한데도 타 기술표준을 언급한 것은 몇 가지 재료에 대한 KS 규정뿐이다. 그나마 일부 규정은 KS 규정과 배치되기도 한다. 머리 좋은 젊은 관료들이면 기술지식 없이도 달달 외울 수도 있는 분량, 그나마 타 표준과 배치되어도 절대기준이라고 주장하며 관철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시공관리를 해도 될까? 서구 선진국처럼 그렇게 방대한 기술표준을 적용하지 못하면 최소한 표준시방서라도 갖추어야한다. 그런데 우리 소방공무원들은 시방서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아마도 기술관료가 아니어서 그렇겠지만, 기술적 관리가 필요한 곳에는 기술에 밝은 사람이 있어야한다. 우리나라 소방공무원 중에도 스스로 공부하여 기술적 소양을 쌓고 기술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여럿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기술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기술정책을 운용하고 기술기준을 관리하는 부서에 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공무원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기술고시 출신은 있는가? 혹시 기술적 선진성이나 기준 수립의 민주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 주도의 환경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해서 그런 면으로만 강한 관료들을 중용하는 것은 아닐까? 소방은 시방서가 없어서 시공도 편하고 감리도 편하다. 설계는? 물론 편하다. 그래서 생산성(?)도 높다. 날림을 하더라도 많이 하는 것이 생산성 높은 것이라면 말이다. 건축주들도 소방공사 날림으로 하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마지못해 하는 시설, 싸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방설계비나 감리비가 무척 아깝다. 담당공무원들 또한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성능보다는 얄팍한 규정만 따져도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사실은 현장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공무원이 간섭하는 게 민망한 일이라는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이런 일들을 어떻게 개선해야할까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관료주의를 타파할 일이다. 빈약하나마 기술기준을 만들면서 기술자들과 상의 없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부 기술자들과 밀실야합 하듯이 졸속으로 만든 규정들은 늘 문제점을 안고 있게 마련이다. NFC 아무 코드나 한 번 들여다보라. 그 제․개정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고 그 코드의 제정 이후 변천사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NFC도 우리 기술기준 못지않게 수시로 개정되지만 모두들 그걸 개선과 발전으로 알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우리처럼 예측불능의 조변석개라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건 그 제․개정과 운용상의 절차적 투명성과 민간주도의 민주성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기술적 오류 또는 견해 차이가 행정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서구사회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에서도 소방분야 외에는 없다. 사회가 관료 지배하에 있어야한다는, 심지어는 기술마저도 행정관료가 주도해야한다는 구시대적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이다. 둘째는 기술체계를 제대로 확립해야한다. 앞서 말했듯이 NFC는 NFPA의 연구분과와 총회를 통해 수시로 개정된다. 민간 기술분야에서 제정하고 수시로 개정하는 것이 권위를 가지고 표준이 되는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도록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수적 선행조건이다. 기술 체계를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기술기준을 민간에 이양하여 기술발전과 연구성과를 반영한 자발적 개선이 지속되도록 하고 표준시방서도 만들고 하여 현장에 능동적으로 적용되도록 환경을 조성하여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아는 공무원이 필요한 자리에 있어야하고 불필요한 관료적 간섭으로 현장기술자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하여야한다. 관료적 간섭은 회피기술의 발전을 조장할 뿐이다. 잘 모르는 기술적 지식을 행사하여 현장에 간섭해야하는 일선소방관들에게도 회피기술은 똑 같이 발전한다. 행정관료들이 아는 정도를 넘어서는 기술을 적용하려면 온갖 장치를 통하여 납득시키는데 애를 써야하지만 그들이 아는 정도만 하고 말면 아무 탈 없이 넘어가는 우리 기술환경, 이것이 바로 회피기술의 온상이다. 셋째는 규제 개혁과 지원이다. 규제개혁의 원래 의미는 정부로 지칭되는 공무원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한다는 의미이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의 개선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민간 기술분야에 대한 규제를 풀어나가는 한편 지원도 이루어져야하는데, 불필요한 간섭에 소요되었던 인건비 절감분만 가지고도 충분한 지원이 가능하다.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했던 부문의 인력을 줄이면 갈등해소는 물론 민간분야에 대한 풍족한 지원과 함께 공무원 복지까지 개선하는 일석 다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확신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관이 주도해 왔던 것을 일거에 푸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주겠지만 통금제도 폐지, 건설감리제도, 주5일 근무제 등의 시행초기를 회고해보라. 거의 혁명적 수준이었던 발상들이 시행 즉시 연착륙하여 사회발전을 선도하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는 줄 안다. 그러나 이런 발상들이 관 주도로 이루어 진 건 결코 아니라는 것 또한 유념하여야한다. 뜬금없이 관 주도의 돌출적 발상이 나오는 경우를 일러 쿠데타라 한다. 성능위주설계를 박사가 주도토록 하겠다는 발상이 돌출되었다는데, 대형소송은 법학박사가 주도토록하고 대형 수술은 의학박사가 주도토록 하겠다는 것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림이 안 된다. 이렇게 돌출적인 발상을 공무원이 함부로 제기하지 않는 것, 민의를 살펴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진정한 규제개혁이다. |
첫댓글 구구절절이 옳은말입니다.어제도 뉴스에 고시원에서 불이나서 인명피해가 있었는데...소방서에서 소방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었는지 점검한다는 아나운서의 멘트. 아니 처음 허가 내줄때는 뭘했으며...그 동안 점검 한 번 안했다는 이야긴가요???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멘트 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