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역학이 통권 397호로 34주년을 맞이하였다.
전용원 대표님께서 6월에 성남 사무실을 방문 하셨을 때
직접 한 컷을 찍으신 류래웅 선생님 사진이 커버스토리로,
<되돌아 본 나의 역술 인생>이란 글과 함께 실렸다.
한국역학협회(주) 월간역학이 명맥을 이어오기까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애썼을 그동안의 노고가 새삼 느껴지며
더 오래도록, 세상의 책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축하와 함께 한결같은 발전을 기원해 본다.
<되돌아 본 나의 역술 인생>은
1) 예언 2) 세상의 빛과 그림자 3) 자민련의 책사가 되다
총 6페이지로 사진 몇 장도 같이 실렸는데, 일부분을 발췌해서 소개한다.
COVER STORY
되돌아 본
나의 역술 인생
학선 류래웅
이달은 국내 역학계의 거산 (巨山) 류래웅씨를 표지 인물로 선정했다.
역학의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한 인물이다. 평생을
바친 그의 학문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자전 (自傳)을 간략하게 싣는다.
-전용원- |
< 1) 예언 > 중에서
- 중략 -
부친께서는 늦둥이 아들을 낳으신 것이 기뻐서 다음날 바로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하시러 가다가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고 있던 술사를 보고 문뜩 이름과 사주풀이를 부탁하셨다.
그는 사주와 이름을 보고 3세 안에 죽거나 장애자가 될 팔자인데, 잘만 넘기면 장관자리 하나는 해 먹을 인물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소 찝찝했으나 끝소리 장관을 한다는 소리가 위안과 기쁜 마음이셨단다. 즉 당신은 겨우 군수밖에 못 했는데 아들이 장관이 된다니 좋으셨단다. 그런데 자리를 뜨려는 순간, 만약 장애자가 되면 역학을 가르치시오. 명복(名卜)이 될 것이오!
부친께서는 이 말씀을 여러 차례 들려주셨고, 유학자라 역학이나 무속, 종교를 싫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림을 그리고 붓을 잡는 것은 반대하셨지만, 역학을 공부할 때는 묵인하고 도와주셨다.
맞지 않았으면 좋았을 길거리 도사의 예언은 적중하여 나는 3세를 못 넘기고 사고를 당하여 장애자가 되었다.
- 중략 -
15세 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의 첫 번째 사부 백두노인(白頭老人)을 만나 역학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승은 기인이어서 일제 때 만주에서 잠시 독립운동도 했고, 명마(名馬)를 사들여 조선의 갑부들에게 팔기도 했고, 타짜생활도 하셔서 그 비결을 나에게도 전수해 주셨지만, 백부님과 부친이 유학자라 그 영향에서 성장한 탓인지 노름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19세 때 한국 최초의 성명학 개척자이신 김계홍(金桂鴻) 선생님을 만나 역학의 깊이를 더했으나, 술사가 될 생각은 없어서 소설 창작에 매달려 신춘문예 투고에 심취했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글쟁이 팔자가 아니어선지 번번이 낙방이었다.
도장 파는 기술도 배워보았고, 기원이라도 차려서 생계를 하려고 바둑도 두어 보았지만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중략 -
생계를 위하여 1973년 4월 1일 서울 신림동 파출소 옆 골목에 [철학원]을 개업하였다. 몇 년만 하고 전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70세가 된 현재까지도 술사 노릇을 하고 있다.
< 2) 세상의 빛과 그림자 > 중에서
- 중략 -
70년대의 한국 경제는 발전의 시기였으므로 상담 내용도 사업을<개업>하겠다는 상담과 살림살이가 조금 향상되었으므로 가옥을 늘려서 <이사>하고 싶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면 길(吉)하겠냐는 내용이 주류를 차지했고, 일부 남자들은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본능적으로 호색하여지므로 외도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한 가정불화가 잦아서 <남편외도>가 언제 멎느냐는(지금은 바로 이혼 여부를 질문) 어느 정도는 구시대적인 인습이 남아서 가정을 깨고 싶지 않은 여인들의 아릿한 상담이 많았고, 자녀들의 탈선으로 인한 <가출> 때문에 언제 정신을 차릴지 돌아올지 하는 상담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 중략 -
어느 정치모임에서 고급 음식점으로 나를 초대했다. 어떤 이의 생년월일시를 주면서 다음 ‘대통령’이 가능하겠냐고 물어본다. 살펴보니 대통령은커녕 동네 반장도 못할 사주라, 솔직히 말했더니 얼굴빛이 변하며 현직 대통령의 아들 중 한명인데 현 대통령은 곧 종신 대통령이 될 것이고, 이어서 다음 대통령으로 추대가 될 각본이란다. 하도 기가 차서... 쯧쯧.
< 3) 자민련의 책사가 되다 > 중에서
- 중략 -
우선 대전, 강원체신청장과 서울 마포구의회 제1대, 제2대 의장을 역임하셨던 松堂 김원태 회장님의 회고록 『흐르는 물과 구르는 돌』에 언급되어 있는 필자에 관한 글이다.
〝불구의 몸이기는 했으나 잘생긴 얼굴에 앉아서 칠 백리를 꿰뚫어 볼 정도로 역학의 도사였다. 살아온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의 일을 마치 손바닥에 놓고 보듯 훤하게 알아맞혔다. 한 예로는 1992년 김일성의 사주를 보고 1994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으로 정원식 씨와 조순 씨가 경합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원식 씨가 당선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조순 씨가 당선된다고 장담을 했다. 그의 예언대로 조순 씨가 서울시장이 되었다.〃1)
1) 김원태 지음. 『흐르는 물과 구르는 돌』 ㈜삼현. 2007. 249쪽
그 후 자민련 창당과 관련한 글
나는(김원태) 역학도사 류래웅씨에게 전화를 해서,
〝자유민주연합 창당대회를 3월 29일로 하려고 하는데 아우 생각은 어떤가?〞
〝29일은 안됩니다. 그 이튿날로 하세요〞라고 말했다. - 중략 -
〝김청장 자네 정말 도사네 그려. 누구한테서 귀띔을 받았나?〞
〝도대체 류래웅 씨가 사는 곳이 어딘가?〞하고 물었다.
3월 30일 드디어 자유민주연합이 창당되었다. 다행히 자민련 창당일은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대대적으로 성공리에 치러졌다.2)
2) 김원태 지음. 『흐르는 물과 구르는 돌』 ㈜삼현. 2007. 273쪽~274쪽
개인 운명을 상담하던 보통 술사였던 내가 하루아침에 JP의 눈에 들어 자민련 공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서민의 삶에 조언을 주었고, 정치가와 술 마시며 시국도 논해 보았으며, 정보국 고위층과 형 동생하며 노래방도 전전했으며, 방송 신문기자와도 논쟁과 우의를 다져본 나는 태어날 때 군수 아버지를 추월하는 장관이 되는 팔자라고 한 길거리 도사의 예언 이상 오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은퇴는 못했지만 나의 남은 인생은 그간 바빠서 정리 못한 학문을 정립하고,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바치고 싶다.
- 월간역학 2023년 7월호에서 발췌
저작권자인 한국역학협회(주)의 허가를 받고 전재한 것임. - 舞我
첫댓글
선생님 열정에 감동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