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지
남성대
삭풍이 채 가시기 전 꽃샘바람 시샘하는 춘삼월 어느 날 해질녘에 간병인협회로부터 온 메시지다.
“종합병원 별관 507병동 11호실 권 현 84세 18시까지 가세요. 수고하세요.
서둘러서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3호선 일원 역 계단을 오르며 또 다른 삶의 숨 가쁜 발걸음을 지켜보며 함께해야 할 긴장감에 짊어진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병원 주변 야트막한 동산에는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별관 회전문을 따라 5층으로 올라가니 굳게 닫힌 병실문은 여느 병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소지품부터 검사한다. 휴대폰은 물론 볼펜 한 자루 신 발끈 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연필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몽당연필을 지급할 정도로 철저히 통제된다.
보호자 1인 외에는 출입을 불허하며 환자의 상태가 통제하기 어렵거나 난동을 부리는 경우 독방에 구금 또는 일정기간 담당 주치의의 결정에 따라 결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지만 불가항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족들도 종종 목도하는 일이지만 야간에는 더욱 심해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다.
증상이 부드러운 경우 다인 실에서 분위기 좋게 지낼 수도 있지만 심한 사람은 특히 야간에는 거의 밤새도록 힘겨운 씨름을 한다. 독방에 함께 갇힌 채 문을 밖에서 잠근 후 비상벨을 건네준다.
아침이 밝아오면 일상처럼 규칙적인 생활로 타원형의 복도를 따라 걷기도 하며 모두 나와 건강 체크도 하고 티타임에는 간식도 서로 나눠먹으며 모든 일상이 공동생활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모범적인 사람은 칭찬하며 그래프를 작성해 붙여놓고 일정한 점수가 되면 전화카드를 주어 가족에게 전화하게 한다든지 안전요원들의 인솔 하에 병원 밖 나들이는 최고의 인기 있는 상품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노래자랑은 그야말로 야단법석 대단하다.
정신병원이라 하면 미친 사람 취급하던 옛날과는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
물론 심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너무나 순수하다. 내가 모시고 돌보던 분들 중 이름 만 대면 알 수 있는 장관, 국회의원, 박사님 등 신분과 직업의 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든 예외 없이 건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 같다.
11호실 앞에 도착하니, 80대 초반의 낯설지 않은 친근한 느낌의 노인이라고 하기엔 세련된 어르신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자초지종 설명하는데 첫 대면부터 허물없는 사이처럼 심정을 다 쏟아놓는다.
오죽하면 그러랴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예기치 못하고 당한 일인데다 병의 특성상 대놓고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하물며 이웃이나 친척, 친구 분들께도 떳떳하게 말 할 수 없는 처지이다. 마음에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다, 설상가상 입원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니 나부터 걱정이 앞선다. 문제는 수면인데 얼마나 버틸지 난감하다.
오래전 퇴임 후 전공분야인 원자력연구소를 차려놓고 연구에 전념하면서 전직 교수 분들과 함께 짬짬이 산행을 할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부러움을 살만큼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최근 무릎관절에 이상이 생겨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후 예전처럼 별 문제 없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 처방을 받아 복용한 지 수개월 만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담당 과장님이 오셔서 응대를 하지만 여기가 어딘지 계절은 물론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조차 모르고 막무가내 가자고 한다. 젊은 주치의한테 지시를 한 후 부인께 그동안 정황을 묻는다. 나를 보더니 아들이냐고 묻는다. 간병인이라고 소개하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세요?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힘겨운 씨름이 시작되었다. 이런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간병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환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교감을 하자면 주위 환경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자극적인 소리나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차분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은 환자 위주로 이루어져야 하며 설득이나 강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동물적인 감각만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부드럽게 접근해서 편안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 듣거나 교육 받은 것이 아니라 이전에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면서 면밀히 분석하고 실행하며 직접 체득한 것이다.
권 박사님 부인은 평생 교직에 계셨던 분으로 경우가 밝고 남편을 섬기는데 최고의 예우와 존대를 한다. 소파에 어르신 앉는 자리에는 다른 가족들조차 앉을 수 없다.
아들은 종합병원 과장이다. 딸과 사위는 선남선녀가 만난 듯 공과대 로봇 공학박사로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분들에게 호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6개월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모두가 함께 이루어낸 성과로서 기본은 신뢰가 바탕이 된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신질환자나 마찬 가지로 다른 환자들도 스트레스와 근심걱정으로 인하여 치료효과도 반감되고 스스로 부정적인 기재가 작용하면서 여러 형태의 신체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본다.
우선 호흡이 갚아와 맥박이 빨라지고 소화 장애가 발생하는 등 병의 발병과 치유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운동을 꾸준히 병행한다면 한층 효율적인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의사 선생님들의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이다.
침대 난간에 머리를 기댄 채 떨어질 줄 모르고 안타까이 수심 가득한 표정의 마나님을 보고 있자니, 두 분 서로의 깊은 정이 느껴지는 듯하여, 희끗한 흰머리가 애잔하게 보인다.
“어르신 휴게실에 가셔서 눈을 좀 붙이세요.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모든 것은 의사에게 맡기시고요. 저도 환자와 익숙해져야하니까요. 아무래도 오늘밤은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밤을 새울 필요는 없겠죠. 내일 일도 생각해야지요.”
“남선생 말이 일리가 있네요.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밤을 지새운 후 날이 밝자, 뇌파검사, MRI 검사, X-레이,초음파, 혈액 검사 등 예약이 잡혔지만 어느 하나 진행할 수가 없다.
주치의가 몇 번이나 설득해도 어쩔 수 없어서 친구이자 옛 동료 교수 딸인 홍 박사가 이 병원 정신과 과장인데 직접 설득해보기 위해서 방문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대책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쉬운 것부터 진행하기로 했으나 문제는 MRI 검사가 문제다. 30분 이상 움직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해야하는데 난감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가는 동안 환자와는 어느 정도 소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오래전 옛날 시골 풍경이나 풍습 같은 얘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해 보았더니 아쉬운 대로 효과가 있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곧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돌아가곤 한다.
벽시계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불안해하거나 느닷없이 엉뚱한 말이 두서없이 튀어 나온다. 그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며,
“자 이제 편안하게 잠이 올 것 같지요?”
이렇게 안정시키곤 했다. 그 후 어려운 고비마다 안정을 시킨 후 검사를 하거나 시술을 할 때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도움이 되어서 시술팀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을 8번이나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다른 팀 관계자가 나가 달라고 할 때면,
“김 박사께선, 그분은 필요합니다. 그냥 두세요.”
내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모병원 과장인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간병하는데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간병인이 환자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다.
사위는 올 때마다 수고한다며 돈을 주고 가서 받기가 미안해서 사양할 때면 안 받으시면 불효하게 된다면서 슬쩍 주머니에 넣어놓고 잰 걸음으로 웃으며 나간다.
담당의인 김 박사님은 회진 올 때마다 나에게 상태를 묻는다.
“어제 밤에는 어땠습니까?”
“네, 소변 량이 평소보다 엄청 많았는데, 그 때문인지 후들거리며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어 아침 운동을 걸렀습니다.”
“약을 바꿔서 그럴 겁니다. 잘하고 계시지만 너무 지치지 않게 쉬어 가면서 하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정신과 시술이란 메스를 대지 않고 머리에 부착된 전극을 통해 전기를 흘려서 인위적인 경련을 유발하여 정신병적 증상이나 기분증상을 호전시키는ECT 전기충격치료 방법이다.
마취가 풀리고 병실에 돌아온 후 한 시간 정도 산소 호흡기를 씌운 채,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 한다. 의식을 회복한 후 최근의 기억이 지워져 내가 누군지도 기억을 못한다.
“어르신, 내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에이! 내 친구 태수 아닌가, 서울시 부시장 지낸,”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마나님, 얼마나 웃으시던지, 이젠 여유를 찾으신 듯 농담도 건넨다.
“태수 어른이 당신 보고 싶어 찾아 오셨지 뭐야.”
“이 친구, 새삼스럽게 뭐 하러 와 산행 때 만나면 되지.”
상실한 기억은 차츰 회복 되지만 늦어도 6개월 이내엔 완전히 회복 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며칠씩 건너가며 8회를 거듭했다. 마취 후 뇌신경을 전기 충격으로 자극을 주기 때문에 근육 이완주사를 놓게 된다. 그렇기에 시술 후 한동안 환자나 간병인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기력이 떨어지고 잠을 잘 못 이루기 때문에 재활과정은 더더욱 힘들다. 4각 보행기에 의지한 채 허리 벨트를 부여잡고 못 걷겠다며 주저앉는 사람 달래가면서 힘든 재활이 시작된다. 종아리에 근육이 뭉치고 풀리기를 몇 번 반복해야 한다.
너무나 힘들어 때로는 적당한 핑계대고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날이 갈수록 지치고 힘들어진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주저앉거나 넘어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번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만 해도 벌벌 떨며 두려워한다. 한번은 에스컬레이터를 태워보려 하다가 입구에서 겁을 먹고 주저 않은 후 한동안 그 옆을 지나가지 못했다. 또 병원 2층에서 연결 통로를 지나 야트막한 동산 산책로를 걷던 중 무섭다며 불안해 해 돌아온 적도 있다.
날마다 열심히 채근한 결과 손을 놓은 채 밖에 나가서 둘레가 4백 미터쯤 되는 병원주위를 하루 일곱 바퀴씩 돌다보니 어느새 움도 트지 않았던 살구나무에 주렁주렁 살구가 익어가고 신발 밑창을 바라보니 지나온 여정이 아득하게 느껴져 벌써 추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구나 하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권 박사님과 같은 동갑이기에 더욱 눈앞에 선하다.
권 박사님의 병명은 건강 염려증으로 지나친 염려와 걱정이 빚어낸 불안과 초조로 인한 수면장애에다 덧붙여 과도한 약물 남용에 의한 뇌신경 손상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서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마음의 즐거움은 약이 되어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