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행선지(http://cafe.daum.net/songjongki
게 시 판 : 곳간
번 호 : 747
제 목 : 희망(색글방-잠잠이 님의 글)
글 쓴 이 : 굴레
조 회 수 : 0
날 짜 : 2004/12/18 16:58:54
내 용 :
<pre><font size=3 color=steelblue face=georgia>
아침에 남편이 친정에 죽을 사서 갖다 드렸다
어제 저녁에,
암 투병으로 제대로 식사도 못하시는 엄마얘기를 하면서
회사 근처에 아주 유명한 죽만 전문으로 파는 집이 있는데
항상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맛있는 집이라고 하면서
몇 가지 종류를 골라서 따스할 때 드시라고 아침에 갖다
드려야겠다고 말했었다
남편은 엄마에게 죽을 골고루 드리면서 그 중에
입맛에 드시는 것을 말씀하시면 앞으로 아침마다 자신이
배달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면서
출근한 후 한참 후에 그런 문자를 보내왔다
지금 엄마는 병원에서 디자인한 암치료 8번을 무사히
끝낸 상태이시다
여태 잘 견디어 오셨는데 마지막인 이번의 그 치료가
아주 힘이 들었다고 하신다
입이 헐어서 아무 것도 드실 수가 없다고..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암치료가 힘들어서 끝까지 견디며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저녁에 집 안 일 모두 정리한 후에 모래시계 재방송을 보면서
엄마가 놀라시면서 좋아하시더라고 말하길래 나도 남편에게
친정에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를 잘 말하는 편이다 아이들에게도..
아무튼.. 그 뒤에 남편의 말은 그랬다
내가 자신의 엄마에게 잘 해서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나는 막내며느리다
위로 형님이 두 분 계신데 사실 시댁에선 왕따를 당하고 살고 있다
고생하나 모르고 자란 것 같고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내가
이유 없이 얄밉단다
나도 자신들처럼 온갖 고생 해봐야 한다고..
그래야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지..
몇 년 전에 어떤 커다란 사건 때문에 시댁엔 왕래를 끊었다
그것이 나도 그들도 서로가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워낙 일의 종류가 남에게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시댁 출입을 삼가겠다고
남편이 먼저 말해주어서 나는 고마웠고
시댁에서 시숙들조차 그렇게 얘기하는 남편과 나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도 나의 눈치를 본다
자신들이 잘못해도 잘못하지 않은 내가 나이가 어리니
알아서 먼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들어오길 바라겠지만
아무리 우리나라 정서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기에
나도 이러고 있다
남편이 나에게 그만 화를 풀라고 얘기하면 나도 마음이 조금씩 움직일텐데..
시댁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나보다 남편에게 더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이란 사람들이 어찌 그리도 남보다 더 신경쓰고 잘해줘야 할
진한 인연에 모질게 구는지..
그들과는 악연이란 생각 밖에는 없다
그런 나에게 여전히 시엄마는 노상 와서 살려고 하신다
시골에서 오시면 큰댁보단 우리 집에 오시려고 애쓰시고,
한 번 오시면 가실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사실 나는 남들이 보기엔 버릇없는 며느리일지도 모르겠다
시엄마가 시어머니가 아니라 친정 엄마같은 기분으로
그리 함부로 대하니 말이다
시엄마 오시면 잘 됐다 하고는 아이들 맡겨두고 여행간다고
보따리 들고 나서지 않나..
시엄마 앞에서 함부로 야시시한 잠옷 바람으로 같이 앉아서 드라마 보고..
사실 난 드라마 안 본다
하지만 어머님이 오시면 하루 종일 틀어 놓으시니 할 수 없이
옆에 앉아서 보게 되는데
보다 보면 줄거리의 앞뒤도 잘 모르겠고 해서 물어보고 하면서 대충
그 분위기를 옆에서 맞추어 주는 편이다
기다란 소파에 누워 계시면 일어나시라고 하고는 시엄마 한쪽에 앉게 하고
나는 그 옆에 누워서 책을 보기도 한다
다리는 시엄마 무릎에 올려놓고..
맛사지 하고 얼굴에 팩을 할 때면 꼭 해드리는데 그것도
강제로 협박해서 한다
그리고는 그 얼굴로 남편 문 열어 주면 남편은 시엄마와 내 얼굴을
기가 차다는 듯이 쳐다보고..
하지만 그 표정이 싫지는 않은 듯 하다
며느리면 의례히 일어나서 아침상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그건 아주 곤혹스런 일이다
더구나 우리 집은 아침을 선식으로 하기에 시엄마가 오시면 나에게는
그건 형벌같은 일이기도 하다
이젠 어머니도 나에게 적응을 하시는지.. 밥을 해 놓고는 어떨 때는
불려 놓은 미역을 뭘로 끓일까 하고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자고 있는 나에게 묻기도 하신다
남편도 시엄마가 오셨다고 나를 일찍 깨우는 것도 아니고..
사실 우리 집에서 나만 빼고는 다들 잠이 없다
나는 여태 결혼 생활 하면서 한번도 남편을 아침에 깨워본 적이 없다
사실 깨울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항상 먼저 일찍 일어나서 신문 보고 뉴스 보고 하니까..
말도 고분고분하게 안하는 편이다
친정 엄마에게 하듯이 그냥 그렇게 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원래 성격이 뭐에 적응을 하려고 작정하면 순식간에
그렇게 되어버리는 성격 탓인지..
아니면 신혼 때, 그냥 친정 엄마라고 생각하자.. 라는
그 스치면서 하던 의식이 그리 뿌리 깊게 내린 것인지..
아무튼
시엄마도 나에게 편하게 그러시고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엊그제 시골에 내려가셨는데 화장품이 없다고 하시길래
가지고 있던 파우치 두개와 화장품 몇 가지를 드렸다 용돈도..
사실 시엄마는 가지고 싶으신 걸 다른 두 형님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가끔은 그것이 이상해서 나도 왜 나에게만 무얼 사달라고
말씀하시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때 뿐..
사실 나는 내가 시엄마에게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리 집에 오시라고 말씀드리지도 않는 편이고 오시면
그냥 그렇게 내 일상이 시엄마가 오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싫기에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며 맞추려는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서로에게는 일상적인 호흡처럼 편안하고
이미 익숙해진 습관의 행동처럼 나타나는 것 같다
남편이 나에게 그런 칭찬을 해 준 것에 기뻤다
나의 그런 일종의 버릇없는 며느리의 행동들을 이해하고
예쁘게 봐주었다는 거니까
또한 남편이 친정에 신경 써주는 것도 기뻤고..
요즘 남편이 서서히 가족적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비로써 자신이 신경쓰고 지켜야 할 사람이 누군지 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다행이다
일이 애인이라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남편의 그런
작은 움직임에 조금씩
결혼 후 점점 커져만 가며 가슴 속을 채워오던
나의 이 외로움이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희맘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