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鄭 (정)
1.시조-지백호(智伯虎)
지백호(智伯虎)에 관하여
1.지금부터 2천 6십여년 전 신라개국 이전 경주에서는 6촌장이 자주 만나서 회의도 하고 태평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6촌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을 때 홀연히..건너편 숲속에서 서기가 비쳐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잠시 회의를 멈추고 모두가 그곳으로 달려가 본 즉 백마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백마는 한참을 그렇게 하다가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에는 큰 알이 남겨져 있었다. 그날 후로 알은 점점 크게 자라났고 그 알에서 어린 남자 아이가 탄생하게 되었다..
2.이를 지켜본 6촌장들은 알에서 태어난 아기를 덕망이 있는 촌장에게 위탁 양육케하니 그 남아가 자라 13세가 되었을 때 벌써 재능이 비범하고 총명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6촌장들은 회의 끝에 그 아이를 자기들의 군주로 천거옹립(薦擧雍立)하기로 의견 일치를 보고
모두가 그 슬하에서 지내게 되었다..
4.알에서 깨어난 아기 이름은 혁거세라 지어졌고 그는 군주로 즉위하여 국호를 서라벌이라 정하였다.
그리고 왕호는 거서간이라 칭했으며, 6촌장을 개국좌명공신에 봉하고 작위를 하사하시기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의 시조가 되신 -오조지백호(吾祖智伯虎)-(우리의 시조 지백호란 뜻 )공은 낙랑족 작위를 받게 되었다.
5.그로부터 서라벌의 3대 거서간이신 유리왕 9년에 왕은 6촌장을 모두 6부장으로 개칭하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각각 사성(賜姓)-성을 내려주시사 賜(줄사)姓(성성)그 공을 널리 치하하였다.
6.이때에 지백호(智伯虎)옹 후손에게는 유리왕으로부터 정씨라는 성씨를 받게 됐다.
7.그분이 우리가 모시는 경주 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 가 되셨다.
이처럼 우리 경주정씨는 동방문명의 여명기에 신라 개국 공신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명.공신.경과 충.효열이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받들어야 한다.실로 타에 불허하는 명문 거족으로서 자랑할 일이니 어느 가문이 이에 비할 수 있겠는가.
8.시조 지백호의 묘소는 : 경북 월성군 내남면 노곡리 산 173번지 에 위치해 있다..
8.씨족에는 보사가 있는바 우리는 그 뿌리 근원을 알게 되고 우리의 파조(중시조)는 이러하니라.
2. 문헌공파 -시조로부터 46세손 할아버지시다(정현영 할아버지)
지백 호 46세손인 문헌공(현영) 할아버지
53세손 양경공 할아버지
54세손 옥계공(승복) 할아버지
55세손 성은공(사준)할아버지-
그 아래로 서면에 거주하는 정씨들과 가가운 참봉공,곡구공,직장공 할아버지로 이어져 오고 있다.
3. 성은공파 -시조로부터 55세손 할아버지시다-(정사준할아버지)
우리 집안과 가장 가까운 할아버지
55세손이신 성은공(정사준_할아버지) 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성은공(鄭思埈 정사준 할아버지에 대하여)
조선 명종 8년 (1553년)에 병조참판 오계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심
선조 17년에 무과 제 1에 급제하심 선전관으로 투입 재임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복병장으로 광양만권 전투에서 공을 세우시고
의주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자기 재산을 털어 천여석을 만들어 순천만에서 싣고 지원에 나섬.등 혁혁한 공을 세우심 .
지금 병조참판 신도비가 순천시 서면 동산리 국도상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동화제에 (타령소 妥靈所) 모셔져 있다-순천시 서면 동산리 산 25의 1 동화제
지금 연향동 명말에는 옥계서원이 있어 해마다 제를 올리고 있다..
★ 성은공으로부터 몇 대 손인가..?
성은공부터 시작한다면
나(병길)는 13세손이 되고
내 자녀들은 14세손이 된다.
★ 시조 지백호 할아버지로부터는
나(병길)는 68세손이 되고 (혹은 문헌공파 68 ,69대손이라하면 통함)
내 자녀들은 69세손이 된다.
★잠깐:전국어디서나 경주정씨들과 만남에서는
문헌공파 68세손 혹은 69세손이라 하면 상대방이 알기 쉽고
순천지역에서는 즉 가까운 집안끼리는
성은공 13세 혹은 14세손이라하면 이해가 쉽다.
4 항렬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작명하는데 참고가 되며 집안에서 촌수를 가리는 데도 이용되기도 한다.
66세손-永O
67세손-O朝
68세손 炳O-炳吉,炳浩
69세손 O均-正均
70세손-鍾(쇠북종)O
71세손 O澤
5옥계공(鄭承復 정승복 할아버지에 대하여)
옥계공(정승복)할아버지는-조선중종시 별시와 중시를 거쳐 옥구현감으로 재임시 남해안 일대에 침입한 외적을 소탕하신 공으로 함흥부판관겸 병마절제사를 거쳐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임명되었다가 병조참판 동의금부사에 겸직하시면서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심
지금 순천연향동 옥계서원에 위폐를 모시고 있음
참고
경주정씨의 시조는 지백호(智伯虎)이다.
신라초기 6부중에 진지촌의 촌장인 신라건국의 모태가 되면서
지백호는 정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지백호 시조의 42대손인 「진후」는
지백호 시조의 장종손가(長宗孫家)의 가통(家統)을 그대로 이어왔다.
공의 태어나고 돌아간 연대는 기록이 없고
다만 족보에 벼슬은 금자광록대부
정당문학 병부상서겸 판군기시윤 평장사
월성군 문정공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가정에 전하는 말에는 공의 문장과 명예가 높아
남들이 따라갈 수 없다 하였다.
특히 이학(理學)과 문장(文章)에 밝았던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월성은 경주의 옛지명으로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정하고
이후「진후」를 경주정씨의 득관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경주정씨는 크게
문헌공파,
양경공파,
월성위파,
평장공파로 나뉘게 되며
이는 후손들로 내려오면서 30여개 세파로 분파돼 명맥을 잇고 있다.
이중 문헌공파는 경주정씨 내에서 큰집으로 ,
진후의 5대손 현영은
호부상서와 태학사를 거쳐 문하시중(종1품관직)의 벼슬까지 오르게 된다.
이어 현영은 문헌이라는 시호를 받아
문헌공파의 파조가 된다.
문헌공은
종철과 종보 두 아들을 두셨는데
그중 長子 종철은 월성군으로 문헌공파내 큰집이 된다.
월성군의 차자 인조는
공양왕때 병부시랑(정4품벼슬)을 맡는등 장수로 이름을 날렸고
이성계와 함께 일본군 격퇴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월성군의 후손들은 이후
순흥공파,
추파공파,
우후공파,
장흥공파,
죽산공파,
동래공파,
별제공파,
교수공파,
고산공파로 나뉘게 된다.
문헌공의 次子 종보는
안숙공으로 문헌공파내 작은집이 된다.
안숙공의 후손들은
이후
상서공파,
팔송공파,
좌윤공파,
노송정공파,
추만공파로 나뉘게 되며
이중 노송정공파는
다시 판서공파,
제안공파,
참의공파,
감사공파로 나뉘게 된다
참고 2
경주 정씨 족보
시조의 본명은 지백호(智伯虎)
신라초 6대인 중의 한분 자산진지 촌장이시고
나머지 다섯분과 함께 신라를 세움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옛날에 육촌이 있었는데
넷째가 가산진지촌이니
촌장은 지백호로 처음 화산에 강림하였다.”
이를 근거로 경주 동쪽 20리쯤의 평리동 앞산으로
방무봉이라 부르는 산을 화산이라 하고
화산 남쪽 마석산을 자산이라고 한다고 함
46세 문헌공 玄英(현영) 호는 (秋江) 문하시중
47세 월성군 宗哲(종철) 정헌대부 이부상서 (장자)
47세 안숙공 宗輔(종보) 보문각 대제학 (
48세 仁儉(인검) 군기시정 (넷째)
49세 廉(염) 병조참의
50세 노송정공(老松亭公) 본명은 有永(유영)
중훈대부 성균관사예 = 追贈 홍문과대제학 계림군
-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날 때
생육신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며 경회루 아래서 작별하고
낙향하여 정자를 노송정이라 하여 노송정공이라 칭함
51세 孝終(효종) 병조참의 예조참의겸 五衛將
노송정공의 셋째
첫째 효항은 이조판서
둘째 효상 이조판서
넷째 효본 항해감사
52세 甲先(갑선) 副司果(부사과)
53세 鼐(내) 敦勇校尉(돈용교위) 추증 의정부 좌찬성 남원에서 순천으로 이사옴
54세 玉溪公(옥계공) 承復(승복) 함흥판관 을사사화이후
낙향 옥계정을 짓고 김굉필, 조위등과 교류
추증 승정원좌승지, 병조참판
순천 연향동(명말)
55세 思稷公(사직공) 思翊(사익) 호(圃堂:포당)
옥계공의 장자는 요절하고
둘째 門陰으로 군직인 창신교위 충무위 부사직 昇平四隱이라 칭함
승평사은( 靑莎(청사) 鄭沼(정소) 江湖(강호) 許淹(허엄) 梅谷(매곡) 裵璹(허숙) 圃堂 思翊
(惇(돈), (빈), 恂(순), 悅(열), 운) 다섯분의 자제를 둠
55세 城隱公(성은공) 思竣(사준) :
옥계공 3子 무과 선전관을 지냄
임진왜란 때 동생인 매헌공 사횡과
조카 곡구공 빈과 함께
의주로 파천한 임금계신 곳에 천석을 헌상함
1584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으로 재임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증직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휘하 광양 전탄을 지킴
공으로
광주에 창의 비와 금산에 대첩비가 있다.
55세 梅軒公(매헌공) 思竑(사횡)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참전
가선대부 승정원좌승지 추증 성은공과 함께
광주에 창의비와 금산에 대첩비가 있다. (승평지 임진동의록)
55세로는 思靖(사정)(5자) :
성은공과 함께 임진왜란 노량해전에
참전
55세 思立((사립)
6자: 태천현감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자주 찾아서
전략을 짜고 선조임금께 ‘장익기충’이라 했다.
56세 直長公(직장공) 선조 신미생 1614卒(졸)
恂(순) : 사직공의 장자 고경명(임란의병) 문하에서 수학,
승평지에 효행기록(의주에 천석을 보낼때 노모를 모시느라 동
행을 못함) 승평지 순천시 상사면 초곡리
56세 谷口公(곡구공) 빈, = 義穀千石을 해로로 의주까지
수송하고 선조와 함께 환도함
아산현감 추증 승정원 좌승지,
사직공의 둘째, 鄭門四忠 순천시 주암면 요곡리
56세 통덕랑(通德郞) 悅(열) :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
전남 순천시 연향동 명말
우연히 카페에 방문하였다가 올립니다.
전남 여수시에는 경주정씨 청년회가 있으며 매월 모임을 갖
고 있습니다.
경주정씨 문헌공파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으로
여수 지역의 우리 회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문헌공파 돌림자는
67세는 朝(조)
68세는 炳(병)
69세均(균)
70세 鍾(종)
71세 洙(수)
72세 樂(락)
73세 燮(섭)
여수의 정씨 집성촌으로는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화양면 원포,
삼일읍의 묘도,
돌산읍 둔천
화정면 개도,
소라면 복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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