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경력 : 대종상 여우주연상(1980)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대종상 여우주연상(1981)
영화 : 안개마을(1982) 죽음보다 깊은 잠(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우진필름,1980) 정부(1982)
질투(1983) 목마와 숙녀(1976)
속 사랑하는 사람아(1983) 사랑하는 사람아 3(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그녀는 1954년 충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용모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어릴적 부산으로 이사와 당감국민학교를 거쳐 혜화여중.고를 졸업하였다. 소녀시절 무용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대학진학에 실패하자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신인모집에 응모하였고,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영화출연은 실패하였으며, 그녀는 좌절하였다.
그 이듬해 1975년 신필름에서 제작한 영화 <욕망>(이경태 감독)에 다시한번 출연교섭을 받았으며,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 <노주현>, <정소녀>와 함께 주연으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출연한 영화 <욕망>은 흥행에 실패하고, 그녀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첫작품의 흥행실패로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TV쪽에서 연락이 오는데, 영화 <욕망>을 눈여겨본 당시 동양방송 TV국장으로 있던 <황정태>씨가 그녀를 <쇼쇼쇼>프로에 사회를 맡긴다. 가수 위키리와 공동사회자로 4개월정도 활동을 하였는데, 그즈음 해태제과에서 CF모델 요청이 들어왔으며, 그녀의 얼굴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 <청춘극장> 출연요청이 들어왔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지미>나 <윤정희>가 모두 <청춘극장>의 <오유경>역로 스타덤에 올랐던터라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해내었고, 상대역으로는 <신영일>, <김창숙>, <김희라>등이 열연하였다. 이 영화는 그해 추석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정윤희>의 이름만은 확실하게 알렸다고 한다.
<청춘극장>이후 그녀는 TBC-TV 드라마 <맏며느리>, <청실홍실>등에 출연 높은 인기를 얻었고, 그녀는 영화나 TV에서 동시에 발판을 구축하며 일약 인기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녀가 짧은시간에 그토록 쉽게 부상한 것은 우선 시기가 좋았던 것이다. 60년대 후반 <윤정희>, <문희>, <남정임>의 트로이카시대가 형성되었고, 이때가 한국영화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영화가 생산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TV가 영화관객을 흡수하고 여배우들은 결혼과 유학등으로 영화계를 떠난다. 이후 약 3년간 스타공백기간이 계속되다가 다시 트로이카가 형성되었으니 즉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세사람 인 것이다.
1976년 그녀는 <목마와 숙녀>(이원세 감독), <고교 얄개>(석래명 감독)등의 작품에 출연했고, TV드라마에 고정출연하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활동한 그녀는 1980년과 1981년 연거푸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돌한 말 같지만 이제야 연기가 어떤 것인지 알것같다”고 수상소감을 밝힌 그녀는 여배우로서 최고의 정상자리에 올랐으며, 출연작 <사랑하
는 사람아>(장일호 감독)가 대만에서 흥행에서 대성공하고, 일본에서 초콜렛 광고와 달력의 모델로 활동하는 등 아시아의 연인으로 부상한다. “동양의 꽃”이라 불리운 여배우 <정윤희>. 뛰어난 미모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그녀는 1985년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은퇴, 현재 평범한 가정주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와우
표향옥상님의 무한추천클릭 기대해보겠습니다. 2006-02-27
16:44:57
천일째 눈팅
참~~~조아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모하시나~~~~~ 2006-02-27
16:51:32
루 게릭
아, 사진 좋습니다.
아무리봐도 정윤희가 밑에 있는 처자보다 훨 예쁜데 말이죠. 2006-02-27
16:54:31
첫댓글 리플읽기도 재미나서...
정윤희...그녀의..이름만으로..느껴지는..빛나는..끌리는,,존재감...스타성..영원함...그녀이기때문에..가능한....배우...흡입력,,,세월을 뛰어넘는...매력....
리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