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란 본래 없다
세수 38세에 대덕품계를 받고 불가에 작은 이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를 찾는 신도들이 늘어나자 "부처님을 먼저 찾으라, 3천배를 하라"며 피했다.
또 "불전에 공양하지 말고 남을 도와주라"는 설법으로 종단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1961년 부인과 법률적으로 이혼을 했고 부인도 출가, 일휴(一休)라는 법명으로 지난 1982년 석남사에서 입적했다.
세상의 혈육인 수향도 출가, 불필(不必)이란 법명으로 해인사 보현암 금강굴을 지키는 비구니가 되었다.
1967년 해인총림의 방장에 취임, 법보사찰 해인사의 정신적 사표가 됐다.
"한국불교의 사활문제가 인재양성의 요람인 해인총림에 달려 있다"며 마지막까지 봉직했다.
1981년 1월 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돼 저 유명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법어를 토했다.
큰 스님의 마지막 정양이 금강굴에서 이루어진 것도 세속의 끈끈한 인연이라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스님의 반야(般若)의 길을 누가 알겠는가.
"출가(出家)란 조그만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인 온 세상을 위해 사는 게야.
출가의 근본정신은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일체를 위해 사는데 있지.
이것이 불교의 참 정신이야!
자기중심이 되어 산다면 그것은 출가가 아니라 재가(在家)인 게야.
출가한 이들이 정신을 잃게 되면 온갖 부정과 갈등과 분쟁이 생기거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은 위도(僞道)야."
이 가을 큰 스님이 세속의 욕심에 찌든 우리에게 마지막 들려주는 법문은 과연 무엇일까.
큰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생사(生死)란 본래 없다.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캄캄하다가도 눈을 뜨면 온천지가 광명인 것같이 생사 이대로가 열반(涅槃), 즉 자유와 해탈이다.
눈을 뜨고 보면 자유가 있을 뿐, 윤회는 없다.
생사 밖에서 해탈을 구한다면 그 사람은 눈을 감은 사람이다.
이 육신은 옷에 비유할 수 있다.
옷이 낡아 그 옷을 벗었다고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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