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병이 깊어지면서 내 몸은 더 나빠지고 더 쇠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말한 내용이 1주일 뒤, 또는 한 달 뒤에는 어떻게 비뀌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밤새 잠을 자는 등 마는 둥 하다가 새벽3시에 눈을 떴습니다.
다리와 왼쪽 어깨가 무척 아팠습니다. 방이 몹시 더워 땀이 흐르고 목도 말랐습니다.
그렇다고 밤새 엎치락뒤치락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엎치락뒤치락’이란 말은 루게릭병 환자에게 용납되지 않는 사치입니다.
한 번 반듯하게 누우면 옴짝달싹 못하고 지긋하게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5시15분 정각. 길고 긴 밤이 지나고 방문이 열렸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말과 함께 두 수녀님이 들어 왔습니다.
수녀님들이 나를 일으켜 침대가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오른쪽 다리 근육이 억제 할 수 없을 만큼 마구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수녀님들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한 참 동안 애쓴 다음에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병을 앓는 동안 대여섯 번 정도 심하게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상처를 입고 혼이 났지만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넘어진다면 심각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일 뼈라도 부러진다면 영영 치료가 안 될 것이고, 머리를 부딪친다면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나를 돌보는 두 수녀님은 간호사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해졌습니다.
수녀님들은 나를 휠체어에 태운 뒤 녹음기와 빨대가 꼽힌 커피 잔이 놓인 책상 앞으로 밀고 갔습니다.
책 여러 권을 받쳐놓고 그 위에 커피 잔을 올려 놓아 목을 움직이지 않고도 빨대로 마실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목과 어깨 근육이 아주 쇠약해졌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면 머리가 가슴에 닿듯이 축 늘어져 버리는데,
늘어진 머리를 곧추 세우려면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녹음기를 틀어 전날 미리 준비한 학생 미사 강론을 점검했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쯤 녹음 된 강론이 끝났습니다.
녹음기를 끄고 수녀님들에게 미사 준비를 부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