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은 사라지고
장춘배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마을 앞으로는 동진강 지류의 농수로가 흐르고 있다. 3미터 내외의 농수로 언덕에는 철따라 개구리와 뱀, 메뚜기, 왕치 등 온갖 곤충과 벌레들이 살았고 농수로의 물속에서는 물장군, 물방개, 게아재비, 물땅땅이, 장구애비, 소금쟁이 등이 유영을 즐겼다. 또 눈금쟁이, 송사리, 붕어, 미꾸라지, 메기, 장어 물고기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친구들과 더불어 흙탕물이 일어나는 그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자연산 진흙으로 머드 팩을 하기도 했었다. 흐린 물에서 오래 놀아서인지 눈이 벌겋게 되기도 했었다. 이 농수로의 좁은 철근 콘크리트다리 밑에서는 마을 아낙들이 한가로이 밀린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때는 물고기가 어찌나 많은지 벌거벗고 헤엄치는 우리들의 몸을 쪼아대서 귀찮을 정도였다.
농한기에 농수로에 물이 적어지면 우리는 물막이를 하고 양동이로 물을 품어내어 물이 조금 남았을 때 잡히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팔딱이는 송사리, 붕어, 등을 잡기도 했고 가끔 메기나 장어 참게가 잡히면 기쁨은 두 배,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먹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방과 논둑에 그 많던 메뚜기, 뱀, 개구리 등이 싹쓸이를 당했는지 보이지 않고, 물에서는 물고기가 씨가 마른지 오래다. 농수로의 언덕도 폐허가 되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없다. 흐르는 물도 죽은 도시처럼 적막만 흐를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야 무소유의 깨달음을 터득했는지 물은 조그만 수문을 지나며 콸콸 흑흑 때 늦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친다.
마을에도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하던 옛 친구들도 생활 터전을 찾아 고향을 다 떠났다. 늙은 부부가 살다가 죽으면 그 집은 폐가가 된다. 뒷산에서 한가로이 울던 뻐꾸기 부엉이 등 온갖 새 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대 낮에도 나그네가 길을 물으려 해도 사람 만나기가 어렵고 한 낮에도 밤처럼 조용하다. 꼬리 치며 반기던 강아지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마을에 혼인잔치라도 있는 날에는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다 .축의금으로 곡식이나 달걀 몇 개 정도 작은 것들이었지만 거기에는 진심어린 정이 담겨 있었다. 허드레 일을 도와주며 온 동네 사람들이 진심어린 축하를 해 주었고 준비한 음식을 나누면서 훈훈한 정이 오고갔다. 지금의 결혼 풍속도는 예식장에서 예식 시간과 관계없이 의례적으로 돈 봉투를 내밀고 식당으로 직행 한다. 끈끈한 정이 없다. 사람이 죽어 상을 당하면, 팥죽을 쑤어 오기도 한다. 농산물 등으로 성의 표시를 하기도 하며, 아낙들은 상복을 만들거나 부엌일을 거들고, 남정네들은 차일을 치고 부고를 쓰며, 장작불을 피우면서 밤을 지세며, 자기 일처럼 애도 했다. 그런 날엔 생활이 어려웠던 분들의 생일날인양 몇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부의금을 내밀고 조문을 하면 그만이다. 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에는 세배를 다니며 웃어른들로부터 생활의 지혜 덕담도 듣고 세뱃돈으로 지갑도 채웠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을 회관에서 합동 세배를 하더니 이제는 아예 자기 친지들만 찾는다. 이제는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의미도 없는 명절이 되고 말았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편해지려는 인간들의 욕구는 한이 없는가 보다. 장례문화도 시대적 흐름에 어쩔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화장 위주로 강이나 산에 뿌리거나, 수목장 을 하기도 한다. 또 추모관 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제사 역시 자기 부모 기일에 맞추어 합동으로 하는 집이 많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구들장 온돌 의 따끈한 아랫목, 구수한 된장냄새, 엄마의 품처럼 포근했던 옛 고향,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생각이 난다. 황금만능 편의주의 끈끈한 정이 없는 각박한 이 시대에 김치전에 탁주 한잔 정을 나누던 옛 친구 그때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제4회 상춘곡 백일장 일반부 장원
첫댓글 세록 세록 추억어린 글, 공감하며......
감사합니다
백일장 장원을 축하 드리며...
어린시절 개구장이 모습이 떠 오릅니다...
그 시절이 그립군요...
향우회 카페에 자주 들리십시요...
카페에서 다시 뵈울수 있기를~~~조용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