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숲에서
정 목 일
7월 하순, 천년의 숲을 찾는다. 지리산 기슭 함양(咸陽)상림(上林)은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태수로 재직하였을 때, 조성한 숲이다. 불볕더위와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천년의 숲에 안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피서객들은 바다로 몰려간 것인지, 상림은 한산하기만 하다.
갈참나무 그늘에 앉아서 천년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나무들은 자작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이팝나무 등 활엽수들로 30미터 정도의 높이다. 약속한 일도 없었을 텐데. 거의 같은 키를 맞추고 있다. 천년 동안 서로 눈짓으로 균형을 이뤄온 것은 아닐까. 초록의 성벽처럼 둘러쳐진 나무들, 천년 숲을 보면서 몰래 신라 시대로 숨어들어와 있는 듯한 묘한 착각에 빠진다.
스쳐가는 바람도 천년의 감촉인 듯 하다. 여기저기 숲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도 신라 적의 율(律)로 짜르르 가슴에 전해온다. 자지러지거나 애절하지도 않고, 폭포수처럼 시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웅변처럼 열정적이지도 않다. ‘씨이-’ 하고 한없이 늘어지고, 흥얼거리는 자장가 같거나, 남이 부르는 노래에 맞추는 장단 같기만 하다. 조금도 서둘거나 다급함이 없다.
천년의 숲과 매미소리, 바람결이 율과 숨을 맞추고 호응하고 있다. 서로 은연중 마음을 통하고 있다. 매미소리는 잠자리 날갯짓 모양으로 파르르 닿아오고, 잠자리 날갯짓은 매미소리처럼 공중에서 짜르르 떨고 있다. 신라 적의 고요가 내려와 있는 듯 하다.
여름 한복판의 한가함,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더위만 식히는 게 최상인 날씨에 나무 그늘에 몸을 맡긴다. 공중으로 고추잠자리는 한가롭게 날고, 바람은 나뭇잎도 움직이지 않고 지나가고, 꽃들은 몰래 피고 있다. 세월도 흘러 천년이 흘러 간 것일 게다. 모든 게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상림공원엔 조선시대에 세워진 함화루(咸化樓)란 누각이 있다. 누각 앞에 돌거북이 누워 있다. 머리, 등, 발의 조각은 비바람에 마멸되어 섬세하고 정밀하던 석공의 솜씨와 조각 형상은 뭉퉁하게 분별없이 바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돌거북 조각은 돌에서 생명을 얻어 나와 살다가 이제 수명을 다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 돌거북을 조각해 놓은 것은 변함없을 영원의 생명을 만들고자 했음일 것이다. 돌은 형상과 허상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실로 정교하게 새겨졌을 머리와 등의 윤곽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본다. 퇴색이 아니라 자연 복귀의 모습이다. 잘 썩어야만 흙과 교감하면서 자연 속에 편안히 돌아갈 수 있다. 숲 구석진 곳에 비닐 조각, 깨어진 유리 등이 쓰레기가 되어 뒹구는 모습은 구천을 떠도는 귀신같다. 돌아갈 곳을 잃은 실종의 처참한 몰골이다.
천년의 숲에 기껏 두 주일간의 생명을 가진 매미가 바람결 위에 목소리를 올려놓는다. 삶과 운명과 실존을 올려놓는다. 잠자리는 파르르 바람결을 타고 날갯짓도 멈춘 채 날고 있다. 숲 옆에 백련지(白蓮池)에서 연꽃 향기가 숲으로 오고 있다. 군청에서 수백 종의 연꽃들을 심어 놓은 연못을 조성해 놓았다. 홍련(紅蓮)백련(白蓮)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연꽃만도 수백 종에 이르고 빛깔만도 여러 가지다.
땅바닥에 죽은 풍뎅이 한 마리에 수십 마리 개미떼들이 사방에서 달라붙어 끌어당기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용을 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워낙 큰 운반체여서인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은 끌어당기다가 주변을 빙빙 돌다가 다시 덤벼들 듯이 물고 끌어당기곤 한다. 어떤 개미는 한 번 달려들고는 다른 곳을 향해 가버리고 만다. 풍뎅이 주변이 번거럽고 부산하다.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걸 보고 싶은데 꼼짝하지 않는다. 시간은 가는데 이렇게 발광하듯이 물고 늘어지며 끌어당겨도 그대로라니! 한 쪽만으로 끌어 당겨야 움직일 텐데, 사방에서 끌어당기니 제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끙끙대도 움직이지 않는다. 개미들도 답답하고 나도 갑갑하다. 이런 걸 누가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인가.
천년의 숲이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아서 그늘에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다. 멍청하게, 무료하게―. 일 년의 한 복판, 여름의 중심이 기울고 있다. 지루하고 무기력한 이 순간을 평화라고 할까. 연꽃들을 바라보면서 행복이라 말을 할까.
모든 게 소리 없이 피고 지고 있다. 천년의 숲은 시간이 정지된 듯 미동도 하지 않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 정적 속으로 흐르는 소리가 있다. 세월이 흐르는 소리다. 매미 소리가 짜르르 떨려오고, 녹음은 잎 냄새를 내며, 연꽃은 절정에 이르러 있다. 모든 게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다. 돌거북은 느린 동작으로 돌로 돌아가고 풍뎅이는 육신을 개미떼에게 맡기고 있다. 떠나가는 것들의 표정이 천연스럽다.
고요는 평화와 영원의 집일 듯싶다. 갈참나무 그늘에 천년 고요가 있다. 그 고요의 한가운데 앉아 눈을 감아본다. 돌거북은 돌로 돌아가고 꽃은 피고지고 있다. 세상이 참 고요하다.
첫댓글 생生을 주제로 한 10편의 수필을 상재했습니다.
다음은 찰察의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한 수필 10편을 올리겠습니다.
관심있게 읽으시고 작가의 세계에 동행하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음악과 문학의 뿌리가 같다고 봅니다. 항상 행복한 미소가 그려지는 나날이기를. 후안 올림.
글 감사합니다.ㅎ
여름 한복판의 한가함~
이 마냥 그립네요.
추운날 들 지내다 보니~
글 감사합니다.
숲속을 표현한 글 감사합니다.
울창한 숲이 그리워집니다.
고요한 숲~~
천년의 숲속에 푹 빠진 듯
상쾌함을 느껴봅니다^^
감사합니다 ~~
천년의 숲에서 쉼을 갖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글을읽는내내 싱그러운 숲속에 와
있는 착각을 했습니다 ~
나뭇잎이 울창한 그런 계절이 곧
오겠지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