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切頭山) 순교성지’
가슴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
천주교 신자 수천여명이 참수당한 순교지
피비린내 나는 역사로 지명(地名)이 바뀐 곳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한강변 언덕에 있는 ‘절두산(切頭山)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성지다.
원래 이곳은 산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峰)’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경치 좋은 한강의 명승지중 하나였다.
바로 아래 양화진나루터에는 한강을 통해서 각 지방에서 조세곡 수송선과 어물, 채소 등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손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자, 가슴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성당과 박물관을 비롯한 절두산 성지 일대는 그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사적(제399호)으로 지정됐다.
천주교 박해의 시작(병인박해)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는 18세기 말 교세가 크게 확장됐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를 거부하는 천주교의 확대는 유교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지배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
신유박해와 기해박해를 거치며 교세가 위축되는듯 하다가 점차 다시 회복되어갔다.
1864년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처음에는 천주교를 탄압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천주교를 박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반대세력들의 공세가 이어지자
정권 유지를 위해 1866년 1월, 천주교 박해령을 선포했다.
전국적으로 8천명이 넘는 천주교도들이 처형당했는데, 이로써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순교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조선을 탈출한 리델 신부(1830~1884)는 텐진에 있던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프랑스 선교사
9명의 순교 소식을 전했다. 로즈는 청나라의 중재 제의를 거부한 채 군함 3척을 이끌고 무력보복에 나서며 병인양요가 발생했다. 이들은 9월26일경에 양화진을 거쳐 서강까지 순찰한 후 강화도를 공격하며 약탈을 자행하다가 11월에 철수했다.
이 사실에 격노한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더럽혔던 땅을 서학인의 피로 씻음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했다.
이때 수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참수를 당했다. 잘린 목은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며 한강물이 핏빛으로
변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로 ‘머리를 자른 산’이란 뜻으로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천주교 박해라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지명(地名)을 바꾼 계기가 된 곳이다.
1868년 남연군 무덤 도굴 사건, 1871년 미국 함대의 침입 등의 사건은 대원군의 서슬 퍼런 박해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어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다.
성지 조성 - 우리 전통문화와 순교자들의 고난을 대변
1966년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천주교회에서 절두산 순교기념관을 세웠다. 2000년에 절두산순교박물관으로 개명했다.
우뚝 솟은 벼랑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기념관은 우리 전통문화와 순교자들의 고난을 대변해 준다.
접시 모양의 지붕은 옛날 선비들이 전통적으로 의관을 갖출 때 머리에 쓰는 갓을, 구멍을 갖고 지붕 위에서 내 있는
수직의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웅장하게 세워진 절두산 기념관은 순례성당과 순교 성인 28위의 성해를 모신 지하묘소 그리고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초대 교회 창설에 힘썼던 선구 실학자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의 유물과 순교자들의 유품, 순교자들이 옥고를
치를 때 쓰였던 형구(刑具)를 비롯해 갖가지 진귀한 순교 자료들이 소장돼있다. 그중에서도 최양업 신부 일대기 31점과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 일대기 27점은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또 기념관 정원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 오타 줄리아의 묘, 박순집의 묘,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사적비 등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특히 순례자들은 부친, 형제, 삼촌, 고모, 형수, 조카, 장모, 이모에 이르기까지 한집안 16명의 가족들이 한꺼번에 처형당한
박순집(1830~1912년) 일가의 이야기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생명을 바쳐 믿음을 증거 한 한국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숨쉬는 뜻깊은 성지다.
1984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곳을 방문하여 기념성당 지하 경당에서 기도를 하고 갔다.
현재는 기념성당을 비롯해 순교박물관 등 각종 시설이 마련돼 있어 전국의 신자들이 자주 찾는 유명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음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리라.”
(고린도후서 4장 11∼12절)
야외 정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이 있다.
이밖에도 성인 남종삼 세례자 요한의 흉상, 한국천주교회의 증언자였던 박순집 베드로의 묘와 일가족 16위 순교자
현양비 등이 세워져 있다. 또 프랑스 루르드의 마사비엘을 모토로 만든 성모동굴이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당산철교가 절두산 바로 옆으로 지나가며 이 구간에는 큰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대교구 내 여러 성당 소속 신자들이 이곳으로 도보 순례하기도 하고 지방의 가톨릭 신자들도 걸어서 순례하기도 한다.
교황청 인증 천주교 서울 순례길 일치의 길(3코스)의 4번째 성지다.
*참고 및 인용 자료 : [위키백과] [절두산 순교성지 홈페이지]
절두산(切頭山) 순교성지 방문 안내
*위치 :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6
*대중교통 : 지하철 2호선,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도보 15분 정도 소요)
*방문일 : 2024년 1월3일(수)
첫댓글 잠두봉에서 바라본
천주교 박해의 현장.
천주교인이 아닌 저도
병인박해 내용을 읽으며 가슴 아픈데
천주교도들은
더욱 슬플 것 같습니다.
천주교도들을
처형했던 잠두봉.
지난 날의 잔혹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 바람 속에서
쓸쓸하게 아름답습니다.
가슴아프지만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지요.
그런곳이
가슴아픈 성지였군요.
절두산.이름도 무섭군요.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현장 이군요.
피비린내나는 가슴 아픈
현장이지만 이제는 추모의 현장으로 바뀐 곳이지요.
성지 순방 하셨군요
정초에 마음 모아 기도하기 좋은곳.
세세한 설명에 마음이 울컥 합니다
칼날에 머리를 내어 놓을수 밖에 없었던 그곳!
슬픕니다,,,,
"서라벌 옛 터전에 연꽃이 울어라~"
가끔씩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도 가져보곤 합니다.
세월은 흐르지만
이야기는 역사가 되어
전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