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바다에 관한 시모음 3)
여름 바다 /정찬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여름휴가라며
식솔들을 거느리고 바다로 떠난다.
바람을 부려놓은
바다 멀리 수평선에는
물거품으로 몸을 푸는 검푸른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자맥질
바닷가 해송 아래 짐을 풀고
바쁜 듯 외손자 손녀들은
수영복을 갈아입고
해변 모래밭을 뛰쳐나간다.
더위도 아랑곳없는 꼬맹이들
함께 할 수 없는 나는
감시원이 되어 손주들만 응수한다.
보폭 느린 바닷바람에 밀려드는 졸음
자꾸만 눈꺼풀을 비벼댄다
졸음이 옷을 벗을 무렵
꼬맹이들도 하나둘씩 지쳤나 본다
바다 끝 멀리 붉은 해는
하루를 마중하며
석양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름 바다
보래 구름 붉게 물들어 넋 없이 떠돈다.
*보래구름:많이 흩어져 날리고 있는 작은 구름덩이
여름 바다에 눕다 /박명숙
여름 바다로 가자
파도가 노래하고
조가비의 꿈이 있는 곳
그곳에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사색의 시간을 갖자
여름 바다로 가자.
햇빛 부서지는 바다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것은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
지난날의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노래에
꿈을 실어 춤을 추자
파도야! 파도야! 꿈을 품으라
부서지고 깨지며 아프게 소리쳐라
파도가 부르는 노래는 향긋한 바다 향기
슬픈 이에겐 위로의 노래가
기쁨이 있는 곳에 희망의 노래를
파도야! 파도야! 높이 솟아라
조가비에 새긴 꽃 빛 물결
아름다운 문양의 언어를 새겨라
여름 바닷가 별들의 고향
연인들의 사랑 노래 들려다오
뜨거운 태양 빛이 바다에 눕고
다시 여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묻으며
달빛의 그리움을 잠재운다
여름바다의 사랑 /임영준
술렁이는 파도소리가
가슴을 헤집는가요
해변을 잠재운 별들은
눈물 속에 스며드나요
가까운 듯 먼 섬에
숨어있는 사랑노래가
우리의 속삭임이 아닌가요
언제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백사장인데
함께 찍었던 발자국인데
그 바다에 잔뜩 남겨놓은
우리의 약속은
어디로 가버렸나요
여름 바다 /정민기
벌써 몇 병째 파도를 철썩철썩 들이마시는
해변을 따라 산책하듯 거닐고 있다
추위 지나고 봄맞이하는 사람은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여름을 맞이하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푸른 돗자리 위에 햇살을 골고루 널어놓는 해
문득 입 다문 수평선을 배 한 척이 지나간다
수산물을 가득 넣고 있는 주머니에 거미 어부가
얼기설기 거미줄을 천천히 넣어 놓는다
금세 놀란 햇살이 파닥파닥 뛰어오르고 있다
끼룩거리며 노래 부르는 척, 갈매기 한 마리
눈독을 들이는 저 눈빛 넓은 바다처럼 광활하다
해변을 떠나기 전, 마음 한 번이라도 철썩거린다
바지에 실례한 듯 어기적어기적 더딘 여름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 실랑이하는 장마전선에
지루한 표정으로 나무 아래 개 한 마리 뒹굴고
푸른 고래 배 속에는 출렁거리는 물고기가 많다
나뭇잎 한 마리 용케도 햇볕을 피해 달리는데
하필이면 해변을 왔다 갔다 철썩! 붙잡히고 만다
해가 햇살 혀를 수만 수천 번 날름거리고 있다
여름바다 /이제민
태양이 이글거리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하나 둘씩 모여드는 사람들
작은 도시를 이룬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열기 속에
바다는 모처럼 긴 기지개를 켠다.
백사장은
알록달록한 꽃무늬로 물들고
바다는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천국이 된다.
밀려오는 파도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저 수평선 끝에서 부는 짭짤한 바람에
닫혔던 마음은 넓어져만 간다.
바다는 여름내
작은 도시를 이룬다.
여름 바다의 추억 /이은주
뜨거운 태양과 푸른물결이
우리를 손짓하며 유혹하고
진한 그리움의 추억들이
고개를 내밀며 달려간다
스치는 바람도 작렬하는
여름햇살에 익어가고
바다향기 비릿하게
가슴속에 그리움을 준다
푸른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허공으로 날으는 갈매기떼가
바다위를 아름답게 수놓으며
파도소리 어서오라 손짓한다
지나는 사람들 이끌리듯
다가와 바다의 향기속에 물들어 가며
진한 여름의 추억을 만들어간다
여름바다 /이영지
바다는 어디까지 오셔서 계시나요
이 섬이 날으고파 흰 물결 풀어놓고
물덩이 파란 옷으로 다리까지 놓았다
깊은 밤 흰 옷으로 흔드는 몸짓까지
높높이 하얀입술 내밀어 부르느라
밤두께 무너져내린 아침해가 솟았다
동트는 새벽에야 토해내는 마음밭은
검붉은 사랑빛이 은방울 수놓으며
바다에 목소리 얹어 반짝반짝 비친다
여름 바다 /이원문
여기가 그곳인가
그 해의 여름 처럼
갈매기 울음 파도 소리 변함 없고
다녀 갔던 바위도 그대로 있다
잃고 잊은 것 없는 몸
무엇 찾아 여기에 왔는지
있다면 단 하나
옛 시간 찾아 온 것뿐
얼마 전의 여름에도
홀로 찾지 않았나
겹겹이 오는 파도 바위에 부딪치니
하얀 거품 더 하얗게 한 겹이어도 저럴까
흔적 없는 뱃길 따라
들어 오는 흰 구름
등대의 섬 저 멀리 이곳까지 언제 올까
힘들어 찾아온 섬 파도만이 밀려 온다
여름바다 /김기택
낮은 곳 후미진 곳까지 남김없이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잔잔해진다. 꺼끌꺼끌하게 와 닿은 바위와 돌멩이들이 매끈매끈해질 때까지 그 오랜 날들을 나는 끊임없이 찰랑거려야만 한다.
한적한 하오의 햇볕 아래 나는 하릴없이 누워 있다. 파리를 쫒는 게으른 소처럼 해변에서 깔깔거리는 여자들 흰 잔등을 작은 파도로 찰싹찰싹 밀어내며. 수면 아래로는 푸른 위장을 지나가는 수백만 마리 은빛 고기떼. 푸른 이두박근 삼두박근 사이 정교한 결을 따라 날렵하게 새어나오는 넙치떼와 가자미떼.
고기들이 떼지어 이동하는 산란기가 가까워오면 나는 지구가 흔들리도록 거대한 몸을 뒤채이고 싶어지리라, 물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생선처럼 펄럭펄럭 뛰는 굵은 파도를 해변 넘어 아스팔트 가득 쏟아내고 싶어지리라. 조금만 몸을 흔들어도 배를 삼키고 섬을 덮치며 일어날 것 같은 파도는 아직 잠에 빠져 있다. 잠속의 바다, 아아, 그 목구멍에 아직도 걸려 있는 착한 심청이 만 아니어도 흰 거품 게워내는 뜨거운 몸의 일부를 지구 밖으로 쏟아내고야 말았으리라.
지금, 한류와 난류가 뒤엉켜 도는 허리 어디쯤에서 나는 낮꿈을 꾸며 졸고 있다. 꿈틀 거리는 내 꿈의 저편 끝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요동치다 잠기는 거대한 꼬리 하나. 며칠 후에 들이닥칠 천둥소리의 떨림이, 순간, 전해온다. 비늘 몇 개만 보석처럼 반짝이며 떠가는 여름 하오,
여름 바다 /정민기
여름 바다는 피서객들로 만원 버스처럼
북적거린다 밟을 때마다
친한 척 서로 얼굴 비비는 몽돌
고된 여정에 몸 철썩 드러눕던 파도가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유유히 멀어져 간다
늦게 잠에 빠져들었던 낮달은 아직 꿈속
누굴 기다리는지 기울어져 뒤척거리고 있다
바다 위 얌전하게 놓인 어선 한 척
햇살은 대낮부터 취한 듯 홀로 널브러져
헛소리를 불빛처럼 늘어놓는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몽돌에 머리를 부딪치는 파도
물거품이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뉘엿뉘엿 해가 수평선 너머 둥지로 돌아가지만
열렬한 기세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
바닷물 절반 정도는 구름의 눈물이겠지 싶다
무더위 소식에 피서라도 왔을까, 소나기 몇 무리
시원한 거라도 없는지 항구를 기웃거린다
노발대발 화를 내던 파도가 펄쩍 뛰어오른다
여름바다로 /임영준
발가벗고 해변을 함께 뒹굴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짝궁인가요
바닷물에 절어 짭짜름한 입술을 주고받으며
태양을 한껏 품어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사랑인가요
갯내음 거나한 밤하늘의 별들에게
모호한 앞날을 물어보지도 않고 무슨 인생인가요
한여름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대를 부르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