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대회
애초에 ‘태권도’라는 운동이 어떤 것인지 취미 삼아 했었고 입대 후에는 별로 할 기회가 없어서 거의 잊고 있었던 상태였는데 사회에서 운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상부 조직에 추천을 했고, GOP에서 근무 중 어느 날 갑자기 연대본부로부터 합숙훈련에 참가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아무리 명령체계이지만 실력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서 미리 알았으면 일단은 거부의 의사를 내비쳤을 것이다.
이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어쨌거나 오랜 합숙훈련이 끝나고 플라이급 연대대표로 다른 체급의 선수들과 함께 군용트럭으로 대회장으로 나선다.
사회에서도 이 운동을 하다가 왔지만 시합에 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운 마음이다.
두려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키기 위해 <윤정하>의 조용한 노래 <찬비>를 불러본다.
“... 갈 사람 가야지 잊을 건 잊어야지
찬비야 내려라 밤을 세워 내려라
그래도 너만은 잊을 수 없다. 너무 너무 사랑했었다.”
대회장에 가면 이 노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대회가 진행될 것인데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품세와 격파, 겨루기의 세 종목에서 종합 점수를 매기는 방식.
대회에 참가하기에 앞서 생기는 압박감, 초조함,
물론 상대 선수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상대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전혀 모르는 정보의 깜깜함, 불안감.
대회장에서 대회가 시작되기 전 화장실을 무려 여섯 번이나 들락날락 한다.
감정이 이렇게 꼬여지게 되면 평소에 자주 하지 않던 생리현상도 자주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사단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전우신문’에 경기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나온다.
이후 사단에서 태권도를 좀 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몇 달 간 합숙훈련을 하면서 많은 시합을 나갔다.
취미로 시작했던 태권도라는 운동.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응암동에서 <청도관> 소속의 도장엘 다녔었다.
나는 겁이 많아 겨루기 할 때도 몸이 얼어붙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당시에 인천체육전문대학이라고 있었는데 도장의 관장이 그들과 꼭 나를 겨루기 시범을 보이며 귓속말로 “예, 저 놈들 도장에 나오는 폼이 좀 건방진데 손 좀 봐줘”
같이 운동했던 동료들 중에는 서강대학교 다니다가 ROTC로 입대한 선배가 있었고 또 한 동료는 페인트 기술자였는데 수련 시간이 끝나도 혼자 남아 계속 연습을 했는데 결국은 5개월 만에 승단 시험에 합격하고 공수부대에 지원해 입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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