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2022.08.05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코로나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휴가지마다 3년 동안 참고 있었던 피서객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요즈음 젊은 층들은 예전처럼 민박이나 모텔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캠핑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캠핑 도구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휴대용 야외 테이블입니다. 야외용 테이블을 볼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말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호기심에 젖어 때로는 엉뚱한 발명품을 생각해 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계단을 오를 수 있는 휠체어, 뚜껑이 없는 치약, 윈도블러쉬가 없는 자동차 따위가 왜 없지 하는 생각입니다. 그중에서 호기심이 도가 지나쳐 실제로 실행에 옮긴 발명품도 있었습니다. 발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지우개를 연필에 붙인 것을 발명한 미국의 가난한 화가 지망생 하이만 리프먼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후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입니다. 농촌에서 여름방학이면 모내기를 끝낸 후라서 좀 한가한 때입니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나무 그늘 밑에서 하모니카나 불면서 보낼 시간은 없습니다. 퇴비로 사용할 산풀을 베러 가거나, 고추밭이나 콩밭에 물도 줘야 하고, 가뭄이 오면 논에 물도 퍼올려야 합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아서 여름방학이 되면 심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죄다 부모님께 이끌려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도시에 있는 친척집에 올라가 있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까닭입니다.
방바닥에 누워 한가하게 신문을 읽었습니다. 선풍기가 없을 때였지만 방문의 앞뒷문을 열어 놓아서 시원했습니다. 한문이 섞인 기사를 어렵게 읽다가 자동차가 늘게 되면 레저산업이 발달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없어서 갈 수 없는 지역에도 사람들이 많이 가게 될 것이라는, 레저산업의 발달로 관련 산업도 호황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기사였던 것 같습니다.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늘어놓고 먹는 가족사진도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플라스틱으로 007가방처럼 만들어서 펼치면 테이블이 되고, 가방 안에는 조립식 의자 4개를 넣을 수 있는 야외용 테이블이었습니다. 그것이 있으면 어떤 곳에서도 땅에 음식을 깔지 않고 품위 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트에다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30센티 자로 크기도 정하고, 가방을 펼쳐서 표면이 위로 올라가도록 엎어 놓았을 때 접히지 않도록 격자형의 쇠걸개도 그렸습니다. 테이블 다리는 가방 네 구석에 나사처럼 돌려 세우는 구조였습니다. 의자는 요즈음 낚시의자처럼 군용 천막천으로 만들어서 접을 수 있게 그렸습니다.
오후 내내 설계도를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문방구에서 8절 도화지를 사다가 입체적인 그림까지 그렸습니다. 테이블이며 의자의 규격하며 재료까지 생각나는 대로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단짝 친구의 집으로 갔습니다. 친구가 지내는 구석방에는 먼저 온 친구들이 야외전축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야외전축을 끄고 친구들 앞에서 설계도를 펼쳐 보였습니다.
“이걸 누가 돈 주고 사? 그냥 신문지 한 장 깔면 되는데?”
세 명의 친구 중 두 명이 너 또 엉뚱한 짓을 하느냐는 얼굴로 비웃었습니다. 한 친구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제가 서툴게 그린 설계도를 살폈습니다.
“이걸로 뭐 할 건데?”
“응. 미도파 백화점에 가면 가구점이 있거든. 거기 가서 사장님께 아이디어를 팔 생각이라구.”
저는 신문에서 미리 아이디어를 팔 곳을 정해 두었습니다. 신문 사회면 하단에 큼직하게 난 미도파가구점이 제 아이디어를 팔 대상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살까?”
“미친 척하고 한번 만나보는 거지 뭐.”
“만약, 가구점 사장이 아이디어를 사겠다고 하면 얼마를 받을 건데?”
“주는 대로 받아야지.”
다른 친구들이 듣든 말든 그 친구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짰습니다. 당장 서울까지 가는 차비는 친구가 보리쌀을 몰래 팔아 마련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날 밤 온갖 상상 속에 기와집을 열두 채나 짓느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새벽기차를 타고 점심 무렵에 명동 입구에 있는 미도파 백화점으로 찾아갔습니다. 신문에서 본 것처럼 3층에 꽤 큰 가구점이 있었습니다. 이제 열여섯 살 밖에 안 되는 시골 촌놈이 사장님을 찾는다는 말에 50대의 사장이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서 아이디어를 팔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소파로 안내를 했습니다.
“여기는 가구를 만드는 곳이 아냐. 공장에서 만든 가구를 판매하는 곳이지.”
사장은 제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웃음을 멈추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꿈이 산산조각 난 저는 충북 영동에서 왔다고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사장은 뜻 밖에도 내려가는 차비나 하라며 2만 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돈 2만 원이 생겼다는 생각에 어젯밤의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헛고생을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 농촌 품삯이 새마을 담배 한 갑에 2천원 정도였습니다. 한나절 방바닥에 누워 설계도를 그리고 그 10배를 벌었으니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물론 설계도를 사장에게 줬다는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 버렸습니다. 어서 집에 가서 자랑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서울역 쪽을 향해 걸었습니다.
제가 발명을 했던 레저용 가방은 20년 후쯤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으로 레저용 혹은 야외용 테이블을 치면 제가 8절지에 그렸던 것과 똑같습니다. 지난해에 계단을 오르는 손수레를 인터넷으로 구입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계단을 오르는 휠체어를 생각했던 것처럼 작은 바퀴가 세 개 달린 손수레는 광고와 다르게 실용성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계단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손수레였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습니다. 이북(E-book)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무렵인 2010년도 중반 누구든지 사이트에 소설을 올려서 인기가 많은 작품은 유료화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그 아이디어는 다행히 투자자를 만나서 동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가 소설은 물론 이북에 대한 개요도 모르는 투자자라서 둘이 다투기만 하다 결국 포기를 했습니다. 지금 웹소설 시장은 연간 1조원이 넘습니다.
스타벅스나, 커피 빈 등 브랜드 커피 가격이 4~5천 원씩 하는 것을 보고 원가 계산을 해 봤습니다. 커피 한잔 원가가 170원, 인건비, 점포 임대료, 관리비를 포함해도 700원이 넘지 않았습니다. 2천 원씩 팔면 많이 팔릴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줬습니다. 그분은 아이디어가 좋다며 차일피일 프랜차이즈 회사 창립을 미루더니 결국 포기했습니다. 5년 정도 지나니까 저가 커피 브랜드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즈음도 중소브랜드 커피가격은 1,500원 정도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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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